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존재의 기본형태는 끈으로 된 원이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은 끝의 진동의 가능성으로 그 진동과 진동의 만남으로써 존재탄생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먼저 11차원의 끈의 진동방향에 대한 존재의 변화에 앞서 무라는 것에대해 더 생각해보자.

무라는 것은 존재에 의해 창조되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12차원 진동의 모든 가능성이 음(골)과 양(마루)의 합이 끈의 원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원또한 무한한 시간동안 존재한다면? 그 원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때 다른 의문이 생기게 될것이다.
그것은 그 원이 나의 전부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면 그 자체가 존재인가 아니면 무인가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판단할 어떠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러기에 이 끈은 두가지 가능성을 처음에 가지게 된다.
진동안에서 골과 마루의 두부분이다. 그 상태를 항상 가지며 진동을 해야 존재로써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게 된것이다.

의식적으로는 "나는 존재하고 있다와 나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라는 두 끈의 진동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가능성의 시작인 무라는 것은 왜 그런 가능성을 표현했는가?


13차원의 진동의 가능성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

14차원인 바로 0차원 "무"가 지금은 존재한다.
그것은 어떠한 존재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곳이다.
이유는 내가 이미 존재라면 그전의 상태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내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무라는 차원은 의식적 인식의 장소이지 물질적 인식의 장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곳에서의 운동은 태극의 운동인 끈의 진동의 기본을 이룬다.
즉 점의 진동이다.

그러나 점이란 표현은 공간이 존재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찍는 마침표는 점이지만 그것을 무한히 미세하게 가다보면 원의 면적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의 점이란 그런 면적이 존재하지 않는 점의 진동이다.
결국 이 점이라는 것은 무한히 작아지거나 무한히 커지려는 성질을 내포하게 된다.

즉 무한히 작아지려는 진동과 무한히 커지려는 진동이다.

이것은 둘다  어느쪽 한방향으로 무한히 나아가려 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이것의 의식적 의미는 "의지"이다.

즉 이 나아감은 탄생의 의미이다. 결국 이 진동의 실체는 태어나려는 의지인것이다.
그곳이 13차원의 모든 가능성, 양자요동과 같이 여기 저기서 불확실한 확률로 튀어나오는 입자들처럼 이 의지는 12차원 존재의 태어남을 이루는 기초가 되는 의지인것이다.

그곳이 13차원 무극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13차원 양의 무극(의지의 가능성)의 음으로써 존재하던 무라는 것은
결국 의지를 이루는 바탕인 조화이다.

여기서 조화의 성질은 제로이다.

모든 가능성이 모두 이루어져 평형을 이루는 상태이다.
이미 모든 것이 존재로 활동함으로써 경험하는 모든 경우를 실험하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모든 의지의 균형인것이다.

그것이 드러난 것이 13차원 모든 의지의 가능성이며 그것은 무한한 진동의 가능성으로 표현된것이다.


우리는 지금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기본입자는 원으로 된 끈이며 빛이다.

우리가 무를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게 이렇다. 만약 나홀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무라는 의미는 당연히 나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라면 상황이 다르다.
너와 나로써 존재한다면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와 내가 서로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당연히 서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우리라는 개념에서는 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12차원의 상태에서 존재는 자신의 존재하려는 의지를 끈으로 점점 자신을 표현해 나아가게 되는데  후에 너와 나로써 서로를 인식하는 상대계를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즉 간단히 말하면 11차원의 여러운동들 또한 12차원의 끈의 상태로 13차원으로 돌아가는 끈이 존재하고 또한 10차원으로 드러나는 끈의 운동으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이 10차원은 모든 끈들이 기억되어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선택하여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는 데 그것이 우주이다.

즉 이미 이루어진 나에서 9차원부터 선택을 한다는 의미는 그 전상태 즉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잊는 다는 뜻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우리가 우주에서 느끼는 무라는 것은 내가 인식하지 않는 세상을 말하며, 즉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을 말한다.

여기서 상대계를 이루게 되는 근본은 전체에서의 변형의지이며, 그것이 4번째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기억을 선택한 너와 나로써 존재하게 되는 상대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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