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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조선일보 없애달라 하느님께 기도한다”
  번호 17738  글쓴이 미디어 오늘  조회 377  누리 50 (25,75, 4:1:15)  등록일 2015-5-26 13:13 대문 0
함세웅 신부 “조선일보 없애달라 하느님께 기도한다”
(자유언론실천재단 / 김종철 이사장 / 2015-05-27)
 
 

[자유언론실천재단 특별 대담] “안중근·김재규는 역사적 의인… 제2의 민주화는 5월광주·6월항쟁 힘으로”

 

자유언론실천재단 홈페이지가 광주민중항쟁 35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5월 18일 문을 열고 첫 기사로 함세웅 신부(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 자유언론실천재단 고문)와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대담을 게재했습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제휴 언론사인 미디어오늘에 이 기사를 전재합니다.<편집자 주>


▷김종철(이하 김) : 올해로 5월 광주민중항쟁이 35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해주실까요?

 

▶함세웅(이하 함) : 그날의 ‘광주’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것은 민중의 용감한 투쟁인 동시에 민족사의 비극이자 참사였습니다. 저는 1987년 6월항쟁 직전에 한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새삼스럽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서강대 3학년인 청년이 어느 날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전국을 여행하다가 광주 망월동묘역에 갔답니다. 그는 13살 된 중학생의 묘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렇게 어린 학생이 총탄을 맞아 숨진 것을 알았을 때 부모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겠지. 나는 저 중학생보다 10년이나 더 살았구나.’ 그 청년은 묘지 앞에서 깊은 묵상을 하면서 그 중학생을 항쟁의 대열로 이끈 어떤 신비한 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울에 와서 성당을 찾아가 고백성사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수도자와 사제의 권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그 청년을 하느님께로 인도한 것은 바로 어린 학생의 숭고한 죽음이었습니다. 저는 5월 광주의 정신은 십자가의 힘과 같다고 믿으면서 신자들과 함께 망월동묘역 참배를 계속했습니다. 신자들도 그 중학생의 묘비 앞에서는 숙연해지더군요.

 

전두환 일파는 망월동묘역을 없애려고 갖은 공작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 같은 그곳을 군사독재의 힘으로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갈릴리지방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들과 기쁨과 희망을 함께하셨습니다. 망월동은 한국의 갈릴리입니다. 갈릴리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곳입니다. 따라서 광주는 고난의 땅이지만 동시에 민족의 부활, 희망의 횃불이기도 합니다.

 

  
함세웅 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
 

▷김 : 광주민중항쟁의 정신과 이념을 오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하면 좋겠습니까?

 

▶함 : 민주화를 향한 연대의식으로 박정희의 후계자들인 전두환과 노태우 일파에 맞서 떨쳐 일어난 것이 바로 광주민중항쟁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이른바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들은 침묵을 지켰지만 광주의 전남대 학생들이 과감하게 쿠데타에 항거하고 나섰습니다. 항쟁 기간에 광주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동지애를 다졌습니다. 거기서는 단 한 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것이 광주공동체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남한의 5천만 겨레는 바로 그 아름다움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광주 정신’을 물려받고 있다고 자처하는 여러 단체들이 그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서로 대립하거나 사소한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현재 제일야당과 많은 국민들이 보이는 자세도 유감스럽습니다. 지난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기간에 국정원과 보훈처, 국군사이버사령부 등이 저지른 선거부정이 명백히 드러났고, 투개표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행위에 대해 시민 28만여명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국정원장 원세훈이 구속되었는데도 소수를 빼고 많은 국민이 침묵했습니다. 이것은 권력의 불의에 맞서 싸운 광주항쟁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물려받은 박근혜를 응징하고 제2의 민주화를 이루는 과업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40여년 동안 민주·민족·민중운동을 함께 해온 동지들, 그리고 젊은 세대의 일꾼들과 뜻을 한데 모아 지난 3월 24일 민주주의국민행동 발기인대회를 가졌습니다. 선조들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3·1운동 때의 투지를 이어받고, 미 군정과 야합한 이승만의 독재를 물려받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후예들인 현재의 집권세력을 타파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단을 구실로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수구보수세력을 척결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층을 더 부유하게 하는 신자유주의를 추방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경제체제를 이룩해야 합니다. 저는 제2의 민주화운동이 광주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 :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보겠습니다. 신부님이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것은 언제인가요?

 

▶함 : 1973년에 로마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74년 4월 박정희 정권이 민청학련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북한을 추종하는 노농정권을 세우려고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인혁당사건을 발표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두 사건 모두 중앙정보부가 살인적인 고문으로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구속된 분들의 가족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야만적인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심한 일은 언론이 그런 사실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박 정권은 그해 7월에는 민청학련을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혐의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님을 구속했습니다. 지 주교님은 구속되기 직전에 유신독재를 강하게 비판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하셨는데 그 사실조차 신문과 방송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론의 속성을 잘 모르던 저는 얼마 뒤에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앙정보부 간부나 직원이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언론사에 상주하면서 편집이나 제작에 일일이 간섭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저항하는 언론인들은 ‘남산’이라고 불리던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고문이나 폭행을 당해야 했습니다.

 

저는 당시 사제단 총무와 대변인을 맡고 있었는데 기자들은 이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황새가 다치면 신문 사회면 머리에 나오는데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1단기사도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명동성당에서 기자들을 만나면 특히 KBS 기자에게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치곤 했지요. 그리고 주변에서 감시를 하는 중앙정보부원이나 사복경찰도 나가라고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참담한 현실에서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빼앗긴 언론자유를 되찾고 ‘기관원’이라고 불리던 정보기관원들의 언론사 출입을 거부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저와 동료 사제들은 그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튿날부터 동아일보에 민청학련이나 인혁당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김 : 그런 현상을 깨뜨리려고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언론인들이 그해 11월 12일 일으킨 제작거부 운동을 기억하시는지요?

 

▶함 : 네, 며칠 전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바로 그 전날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 각 교구 주교좌 성당들에서 일제히 인권회복기도회가 열렸습니다.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가족들이 고문의 진상을 폭로하고 사제, 수도자, 교우와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은 그 기도회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니 11월 12일자 석간 1면에 사진을 곁들여 5단으로 보도하거나 사회면 머리에 올리고 동아방송 뉴스에도 맨 앞에 내보내라고 편집국장과 경영진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이 거절하자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농성을 하면서 신문과 방송의 제작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날 하루가 지난 뒤에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는 인권회복기도회가 크게 보도되었지요.

 

▷김 :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 박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보도되기 시작한 뒤 구속자 가족들의 호소, 천주교의 인권회복기도회와 개신교의 목요기도회 소식이 크게 보도되자 박정희는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1974년 12월 하순부터 중앙정보부를 통해 동아일보사에 대해 광고탄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백지로 변하게 된 동아일보 광고면에 격려광고가 실리면서 놀라운 민중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제단은 그때 동아일보에 많은 격려광고를 실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는 무엇이었습니까?

 

▶함 : 12월 31일자 동아일보 8면 전체를 차지한 ‘암흑 속의 횃불’이라는 광고입니다.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비롯해서 지학순 주교님의 양심선언 등 박정희 유신독재의 실체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내용이었지요. 당시 언론은 물론이고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실렸으니 박정희가 보고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그 광고를 싣기 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 문안을 보여드렸더니 이런 내용이 어떻게 신문에 나가겠느냐고 걱정하시더군요. 그러나 정작 ‘암흑 속의 횃불’이 나온 동아일보를 보시고는 매우 놀라시면서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 김 : 1975년 3월 17일 새벽에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160여명을 폭력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들 가운데 113명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했지요. 그보다 닷새 전인 3월 12일에는 조선일보사가 제작거부 농성을 하던 기자 33명을 완력으로 쫓아냈습니다. 당시 함 신부님은 재야인사들과 함께 두 신문사를 오가시며 그 부당한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셨지요. 그런데 조선일보사가 3월 14일자 1면에 올린 사고(社告)를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겸 대변인,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이시던 신부님을 ‘범죄자’처럼 비난했습니다. 두 단체는 3월 10일에 시작된 동아일보사의 기자 해직과 조선일보사의 언론인 강제추방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각각 낸 바 있는데, 조선일보의 사고는 그것을 “자주언론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단정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고는 “우리가 아직도 그 두 성명이 두 단체의 전체 의사라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그 두 단체의 명예와 그 단체가 내세우는 명분을 아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요 멤버이며 민주회복국민회의의 대변인인 함세웅 신부가 개인적으로 두 단체의 전체 의사를 도용했거나 그 중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함으로써 만들어진 성명서로 보고 주로 함세웅 신부를 향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말하려 한다.”

그때 신부님이 정말로 두 단체의 이름을 도둑질해서 그런 성명서를 발표하셨습니까?

 

▶ 함 : 저는 그때 조선일보를 직접 보지는 못했고 나중에야 그런 사고가 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조선일보 주필이던 선우휘라는 소설가가 그 사고를 썼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주장이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독재의 주구들의 속성은 그런 것 아닌가. 우리에게 할 말이 아니라 박정희 같은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그런 소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이후 수십년 동안 조선일보가 저에 대해 인신공격을 펼 때마다 ‘저 신문사의 경영진과 그 하수인들은 악마와 그 졸개’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 김 : 현재의 젊은 언론인들은 조선일보사가 회사의 공식 견해인 사고를 통해 그렇게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왜 악마라는 극단적 표현을 하셨습니까?

 

▶ 함 : 시편에는 여덟 가지 유형의 기도가 있습니다. 찬미, 탄원, 감사 등이 주를 이루는데 후반부에 저주기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없애달라는 저주기도는 그냥 저주하면 한낱 저주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부르면서 저주를 하면 기도가 됩니다. “독자들의 머리를 썩게 하고 시민들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조선일보를 없애주십시오. 하느님!” 하면 기도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 김 : 신부님은 얼마 전에 인터넷신문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나쁜 여인 박근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 함 : 박근혜를 언급하는 데는 얌전한 말들만 썼습니다. 제가 저주시편을 설명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나쁜 여인은 없어져야 한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더니 편집자가 그렇게 제목을 뽑았더군요.

 

▷ 김 : 신부님은 1976년 명동성당의 3ㆍ1절 기념미사에서 발표된 ‘민주구국선언’ 사건 때문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오셨지요. 그리고 1979년 8월에 수원에서 하신 강론 때문에 다시 구속되셨습니다. 그 무렵 동아투위의 장윤환ㆍ안성열ㆍ박종만 위원이 신부님과 함께 영등포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셨다지요? 그 세 분은 1978년 10월 24일 동아투위가 발표한 ‘민주인권일지’ 때문에 투옥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그분들과 함께 지내며 겪으신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 함 :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진 바로 다음날인 1979년 10월 27일 아침에 교도소는 초비상이었습니다. 제가 독방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오전 11시쯤, 재소자 한 사람이 “동아투위 기자들이 세면장으로 물 뜨러 오시라”고 했다고 몰래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담당교도관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서 감방 문을 열고 세면장으로 갔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만나자마자 “박정희가 어제 밤에 김재규의 총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갔다”고 소곤거리셨습니다. 저는 전율을 느끼면서 제 방으로 돌아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독재자를 제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 기도를 마치면서 ‘모세가 홍해를 건너도록 물길을 열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박정희의 죽음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느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자유와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확인하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박정희가 죽은 뒤 50일 만에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것은 날마다 제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런 기도를 바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김 : 2013년에 작가 문영심 씨가 시사IN북을 통해 〈김재규 평전-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를 펴냈습니다. 신부님은 그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이분들이 목숨까지 바치면서 추구했던 가치는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공동선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권력과 부패에 대한 항거였습니다. 권력자들의 오만함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 이성을 마비시킨 분노에 대한 단죄였습니다. 4ㆍ19 민주혁명정부를 전복시킨 5ㆍ16 군사반란의 어설픈 과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리고 아픕니다. 유신의 핵을 제거했음에도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여 광주학살을 자행한 일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김재규 장군은 부마항쟁 현장의 확인자입니다. 우리가 만일 김재규 장군을 살렸다면 광주의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재규 장군은 광주항쟁 기간인 1980년 5월 24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김재규 장군은 부마항쟁의 동지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김재규 장군에게 역사적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 함 : 2003년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하던 때 부마항쟁과 광주민중항쟁 기념행사장에 가면 김재규 장군에 대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근자에 부산에서 강연을 하는데 어느 대학생이 ‘종북’을 극복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단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종북의 원조는 박정희다. 그는 1972년에 10월 유신이라는 헌정쿠데타를 저지르기 전에 미국을 제쳐두고 북한 주석 김일성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렸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님이 시한이 지나 공개된 미국무부 기밀문서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셨습니다. 김일성 역시 유신헌법 제정일인 1972년 12월 27일 같은 날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해 체제를 더 굳게 다졌으니 명목은 ‘통일’이지만 실제로는 두 권력자의 ‘공동이익’이 목적이었지요.

 

▷ 김 : 신부님은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에도 열성을 다하고 계신데요. 안 의사도 이등박문을 권총으로 사살하셨는데 그 행위를 김재규 장군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십니까?

 

▶ 함 : 두 사건 모두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두 분 모두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위해 악을 제거하고 스스로 자신을 희생한 것 아닙니까! 일본육사를 나와 만주군 장교를 지낸 친일파 박정희는 이등박문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중근 의사와 김재규 장군은 역사적 의인들이라고 믿습니다.

 

▷ 김 :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군사반란과 광주학살로 유신독재를 물려받은 전두환이 1980년 여름에 언론인 1천여명을 강제해직한 것과 ‘보도지침’을 통해 거의 날마다 언론을 통제하고 억압한 사실에 대해서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해주실까요?

 

▶ 함 : 전두환은 박정희 못지않게 표독한 독재자였습니다. 수많은 동포의 목숨을 앗아간 그의 죄악과 부정축재는 아직도 정당한 응징을 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는 박정희처럼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언론을 장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광주항쟁 기간에 신군부가 자행한 살상을 전혀 보도하지 못하던 언론인들이 제작을 거부한 것은 동아투위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전두환은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던 언론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나서 문공부를 통해 날마다 ‘보도지침’을 언론사에 보냈지요. 그야말로 나치의 히틀러나 저지를 만한 만행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말〉지에 폭로한 언론인들은 옥살이를 했지요.

 

▷ 김 :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하셨는데요. 2007년 1월 9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 우리가 껴안고 가야”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떤 취지였습니까?

 

▶ 함 : 아마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한 때였을 것입니다. 저는 부산의 송기인 신부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보수세력, 특히 조ㆍ중ㆍ동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면서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저는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지도자로서 좀 더 넓은 시야와 철학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사석에서 노 대통령을 잘 아는 어느 분이 “부산 마피아가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 층이 노 대통령과 너무 밀착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품성이 아주 강직하고 매사에 열정적이지만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성향도 있었어요. 대통령 재직 중에 선배세대와 대화를 하면서 지혜를 빌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안쓰러워서 “노 대통령을 껴안고 가야”라고 제가 언론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에 대해 제가 특히 아쉬워한 점이 있습니다. FTA 문제를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에 관해 미국에 맞서 당당한 자세를 보이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특정 재벌과 밀착했다는 의혹은 현실적으로 입증되기도 해서 보기에 참 딱했지요. 대북송금 특검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굳어진 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여권이 분열된 사태도 가슴 아팠습니다.

 

▷ 김 :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함 : 그는 전과 14범으로 대통령이 되었지요. 제가 옥살이 하던 때 보니 교도관과 재소자들이 제일 멀리하는 것이 사기꾼이더군요. 우리나라 주권자들이 사기꾼에게 걸려든 셈이지요.

 

이명박과 박근혜는 ‘공범관계’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박근혜를 위해 부정선거를 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지 않습니까? 박근혜는 얼마 전에 이명박이 자원외교를 구실로 국고를 탕진한 것을 사법처리 할 듯 말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 이명박의 이름이 언론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박근혜가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진 빚을 사법처리로 갚을 수는 없기 때문 아닐까요?

 

▷ 김 : 앞으로 선거부정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에서 2012년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텐데요.

 

▶ 함 : 다른 정치선진국들처럼 수(손)개표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무슨 목적으로 투표소에서 곧바로 개표하지 않고 투표함을 일일이 개표소로 옮겨야 합니까? 수개표로 하면 비용도 20분의 1 아래로 들고 시간도 엄청나게 절약된다는데 말입니다. 부정의 소지를 수개표로 아예 없애버려야 합니다.

 

▷ 김 :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최대의 불상사가 세월호 참사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건을 두고 박근혜가 대통령 자질이 있는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아는지, 위선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도록 방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함 : 이런 현실 자체가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발전했다지만 정치는 그야말로 후진국의 표본입니다. 독재자의 딸이 아버지의 악업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성찰의 측면에서 저는 우선 반성을 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우상이자 허상인 거짓여론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여론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선거부정으로 표를 앗아가고 의심스러운 전산프로그램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개표 결과를 발표한 세력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박근혜를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의 정당한 지지로 당선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월호는 단순한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국회가 정한 특별법을 무력화하려고 대통령의 이름으로 쓰레기 같은 시행령을 공포합니까? 어떤 교수는 지금 당장은 마음이 아프지만 박근혜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므로 국민의 의식을 일깨우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역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보더군요. 저도 지금 이 상황이 진전된 민주주의공동체를 만드는 과정 중의 은총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계기이자 길잡이 아닙니까?

 

▷ 김 : 민주주의국민행동이 최근에 세월호 참사 1주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를 했지요. 4월 16일을 상징하는 4160개의 촛불로 세월호 참사를 재현해서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이벤트 말입니다. 대중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 합니다.

 

▶ 함 : 저도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름 없는 시민들, 특히 젊은 세대와 함께하지 못하는 민주화운동은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민주행동은 반민족ㆍ반민주ㆍ분단주의 세력이 아니라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항일투쟁운동을 부정하는 친일파와 반성하지 않는 그 후손,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친미ㆍ사대주의 세력은 청산의 대상이지 손을 잡을 상대가 아닙니다.

 

민주행동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민주적 경제체제를 세우고, 부패관료를 추방하고 독점재벌을 해체함으로써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분배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패권주의를 깨뜨리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 합의제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겠습니다.

 

▷ 김 : 체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 보수신문들이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고, ‘낙하산 사장들’이 제작ㆍ편성권과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요?

 

▶ 함 : 아주 어려운 여건이지만 2017년 대선을 통해 민주정부, 통일 지향의 정부를 세우기를 염원하는 조직과 개인들이 뜻있는 언론과 연대하면 수구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막고 진정한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김 : 마지막으로 자유언론실천재단에 참여한 단체들과 재단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함 : 그리스도교인인 저는 조중동과 청와대의 지배를 받는 방송사들을 타파하는 것이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역사적 소명이자 신학적 구원의 책무라고 믿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언론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가치지향적 삶을 제안하는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권력자들은 언론의 비판적 감시기능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언론이 앞장 서 쟁취해야 합니다. 송건호, 리영희 선생님처럼 훌륭하신 선배들,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 지금도 애쓰시는 동아투위 위원들, 1980년에 전두환 일파의 탄압에 맞서 싸우다 해직당한 언론인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이래 언론현장에서 쫓겨난 분들이 하나가 되어 민주화와 통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출 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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