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아이며,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은 빛의 존재들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빛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분은 지구로 왔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있어, 여러분은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어둠과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 간에 이러한 게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여러분이 저항과 어둠을 체험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빛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여러분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의식 상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빛 속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빛이라면, 여러분은 완벽하게 무한하며, 자유롭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큰 전체의 일부이며, 이러한 무한한 살아 있는 의식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이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the One)와 연결해주고 있는 고리가 바로 이 빛입니다.


본질적으로, 빛은 형태가 없습니다. 빛은 물질적인 형태와는 상관없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빛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의식이 머물고 있는 물질적인 형태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며, 여러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과 피도 아니며, 또한 성(性)도 아니며, 현재의 자기 인격을 나타내는 특성들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여러분의 일부분이며, 여러분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의 근원이며,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낸 신성한 창조주입니다.


여러분의 무한한 영혼은 서로 다른 많은 생명의 형태 속에서 살아왔으며, 우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수많은 삶들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아직은 여러분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여러분을 살찌우고 기름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화를 통한 여러분의 고된 여정은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확장하시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형태를 통한 여러분의 여정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여정을 통해, 모든 창조계가 새롭고 풍요로운 방식으로 확장하고, 증식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빛의 결핍, 그리고 연결감의 결핍으로 인해, 여러분이 지구에서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영혼 속에 지니고 있는 기억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자신을 기억한다면, 비록 여러분이 많은 것들을 겪어 왔다 할지라도, 자신의 신성한 본질은 손상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온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여러분은 안도감을, 심지어 환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된 자신이라는 진실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즉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신성한 영혼이라는 진실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참된 여러분을 상기시켜주고, 그러한 자각을 일상생활 속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인 여러분과 신성한 여러분 간에, 실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성한 자아가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성한 자아는 시공간 상에 위치해 있지(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신성한 자아와 연결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짓누르고 있는 주제들로부터 잠시 뒤로 물러남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더 커져, 이러한 주제들로부터 벗어나, 개방된 의식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공간 속에서는 필요한 것, 혹은 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삶에서의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러분이 시도해볼 것을 권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켜, 고요하고 초연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가 있나요? 판단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나요?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차분해지고, 보다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들 혹은 육체적인 감각들이 이러한 고요한 공간 밖으로 여러분을 끌어당긴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버려 두세요.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세요. 이러한 고요한 의식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때가 되면, 참된 여러분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줄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도구를 언제든지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성가시게 하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들과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온전함 및 내면의 자유로운 공간과 교감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그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삶에 실제로 중요하다 할지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결코 자신을 완벽하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감정 및 사건들보다도 더 큰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이러한 모든 사건들과 체험들이 오고 가는 것을 말없이, 하지만 열심히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존재는 파괴될 수 없는, 불멸의 존재이며, 생명 자체의 원천입니다.


지구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의 의식을 일시적이지만, 어떠한 형태, 즉 육체와 연결되기로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육체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의식을 몸과 그리고 현재의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개인과 그리고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재능 및 특성들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재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들이 여러분 자신이라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체험하고 있는 의식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신성한 여러분, 즉 핵심까지 다 벗겨진 여러분의 존재는 넓은 열린 공간, 빈 허공과 같지만, 활력과 잠재력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부로서,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향입니다. 이러한 부분과 연결된다면, 여러분은 안도감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며, 안전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핵심, 즉 온전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찾고 있는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줄 내면의 넓은 공간으로부터, 여러분이 쫓겨났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이러한 단절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심각한 고통이 바로 이러한 단절감입니다


어둠이 존재하는 목적에 대한 이해


도대체 왜 영혼들은 분리를 체험하고자 할까요? 여러분이 육화하여, 물질의 형태 속에 살기로 선택하는 순간,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은 제한되고, 속박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의식도 좁아지게 되고, 무한하다는 느낌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태가 없으며,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참된 자신과의 연결감도 상실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육화의 여정을 처음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 있는 어린 영혼들은 참된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형태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혼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는 인간의 몸속에 영혼이 온전하게 거주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몸을 체험하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몸이 아니라, 어떤 존재(者)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입니다. 영혼이 진해해 감에 따라, 시공간 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물질의 형태, 즉 육체를 초월해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영혼은 형태가 없는 차원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며, 자신의 진정한 본질은 그 차원 속에 거주하고 있다는 인식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진화한 영혼은 하나(oneness)라는 인식을 물질세계 속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왜 육화의 여정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왜 물질의 형태에 구속되는, 즉 탄생과 죽음이라는 순환에,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모든 것들에, 구속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하나가 되어 있는 무한한 상태 속에 항상 머물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지복(至福)한 상태가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해보세요.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절대로 다시는 육화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지구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암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의 영혼이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생애들을 선택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현재 지구에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이번의 생 역시도 여러분의 영혼이 체험하고자 선택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일부는 물질과 함께 춤을 추고 싶어 하며, 나는 이 부분이 바로 여러분의 가장 신성하고도, 거룩한 부분이며, 또한 창조적인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형태 속으로 빛을 가져오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靈:Spirit)은 빛이 형태를 지니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 물질이 생겨나게 됨으로써, 의식과 물질, 즉 정신(spirit)과 육체가 어우러져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신과 육체 간의 상호작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방법입니다.


몸속에 거주하고 있는, 정신(spirit)으로서의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계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진화하고, 성숙해짐에 따라, 영(Spirit)의 빛을 더 잘 간직할 수 있게 되고, 그 빛을 몸을 통해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몸속에서 살아가는 기술은 물질 차원의 범위 내에서 영(Spirit)이 지니고 있는 자유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의 자각으로 인해, 내면에서부터 밝아진, 물질 차원의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발산하게 되며, 삶에 중요한 것을 보태게 됩니다.


체화된 빛, 즉 형태로 표현된 빛은 존재하는 빛 중에서 가장 귀중한 빛입니다. 영혼이 지니고 있는 빛을 지구에서 물질의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계를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며, 여러분의 독특한 존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어떤 것을 전체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