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 질병과 감정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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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내 에너지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쁩니다. 여러분은 용기 있는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해, 삶에서 마주하고 있는 저항과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가야 하는 길을 따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과 타인들 속에 저장되어 있는 부정성과 마주하고 있지만, 그러한 부정성으로 인해, 내면적으로는 배우고,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지니고 있는 힘과 빛은 자기 자신과 타인들의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비록 내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지구에서 의식의 변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선구자들입니다.

 

오늘, 나는 “질병과 건강”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여러분의 문화를 형성해온, 과학적이고 이원성적인 전통에 의해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육체를 어떠한 물건, 즉 기계장치로 여기게 되며, 따라서 그러한 장치는 여러 개의 부품들로 분해될 수가 있으며, 전문 “수리공(mechanic)”에 의해 수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영혼, 즉 정신(psyche)과 단절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여러분에게 최선인지를 아는 존재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전문가, 즉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의학적인 전문가들은 육체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람들이 관련된 기계장치들에 대해 특화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그러한 지식을 여러분의 몸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 간에 이러한 형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여러분은 이방인이 되는 것이며, 감정적인 연결도 단절되게 되는 것입니다.

 

내세(來世)의 관점에서 보면,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어 있는 기계장치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육체란 영혼 중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가시적인 부분입니다.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정말로 육체는 영혼 중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드러나 있는 부분입니다. 영혼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영원한 빛이지만, 체험을 통해 내적으로 풍성해지기 위해, 일시적으로 육체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느낌을 통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며, 따라서 느낌은 영혼과 육체 간의 다리를 형성하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이러한 느낌을 통해 물질 속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영혼과 연결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 육체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에너지가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들 속으로 주입되지만, 가장 깊은 단계에서 영혼은 자유로우며, 묶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지구에서 이 번의 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자신을 이 육체를 통해 표현하기로 선택했으며, 따라서 육체는 자신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에게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영혼과의 연결이 단절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느낌과 인간적인 개념들, 즉 두려움 그리고 환상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육체는 자신의 영혼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직접적인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영혼이 지닌 독특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러한 에너지에 지속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자신의 영혼과 단절되어, 더 이상 영혼의 자극(impulses)을 느낄 수 없게 되면, 결과적으로 육체는 고통과 불평(complaints) 혹은 질병으로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진정으로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인 것입니다. 질병과 고통이라는 불만(complaints)은 몸을 통해,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의사나 의료진이 물질 차원에서 가치 있는 조언과 방편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 하더라도,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질병은 여러분에게 가치 있는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질병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질병은 영혼이 여러분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을 위해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신호들을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과의 연결이 철저하게 차단됨으로써,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은 느낌과의 연결, 즉 여러분을 통과하는 감정의 흐름이 끊어지게 됩니다.

 

지구의 현실 속에서, 여러분이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느낌과 감정들을 통해, 영혼은 자기 자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만약 내면에서 느낌의 흐름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 및 이해하고 있다면, 차단된 에너지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이 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어떠한 감정들이 의도적으로 억눌리게 됨으로써, 보이거나, 들리지 않게 될 때, 신체적인 장애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들이 그곳에 존재하면서, 여러분의 몸에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그러한 감정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들과 거의 혹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여러분은 이러한 감정들과 차단되기로 선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거나, 의도적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 점에 있어, 인간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그래도 감정 속에는 힘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원시적인 형태의 감정들은 위험하고, 통제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은 잘 적응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삶 속에서 배우게 된 것입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정과 대립하게 될 때, 몸과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본질적으로 감정은 역동적이고,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여겨보세요. 이글거리는 에너지가 복구, 가슴 혹은 목을 통해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감정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장소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쨌든 그러한 감정은 살아 있는 역동적인 힘으로, “안 돼, 나는 이것을 원치 않아!”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이 여러분을 통해 밀려올 때, 여러분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감정을 향해 가거나, 아니면 감정을 외면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감정을 돌보려고 하지 않고(외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을 가지거나,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분노, 두려움, 슬픔, 질투, 야망 혹은 욕망이 될 수가 있습니다. 타인들과 구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혹은 공평하게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는데 따르는 두려움 때문에, 심지어 기쁜 느낌조차도 종종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몸속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긴장감은 내면에 머물게 됩니다. 왜냐하면 타인들에 대한 여러분의 행동은 여러분이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여러분에게서 기대되는 것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자발성(spontaneity)을 상실하고, 실제로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점점 더 적게 깨닫게 되는, 아주 조심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어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자기 영혼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느낌을 통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와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려고 할 때, 여러분에게 말을 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 혹은 분노와 같은 “나쁜” 감정들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빛이 결여되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 및 열정과 같은 긍정적인 느낌들은 여러분의 영혼으로부터의 신호로서, 여러분이 자신과 잘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지닌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항상 점검하고, 조절하거나, 자신의 통제 하에 둔다면, 영혼은 더 이상 여러분과 교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따분해지고, 의기소침해지거나, 병이 나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영혼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이는 이러한 반응은 여러분이 당초에 가졌던 감정이 아주 명확한 신호를 여러분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비꼬지 않고, 깊이 있게 숙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그러한 신호들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그러한 신호들이 오로지 속삭임과 질병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표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부정, 판단 그리고 억압이라는 강압적인 손이 육체적인 질병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형태의 감정은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서, 홀로 남겨진(방치된) 파도가 정점에 이르렀다가, 해변에 이르러 고르게 펴지는 것과 같습니다. 파도는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며, 자연스럽게 바다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제심을 가지고, 긴장해 있는 어른으로서, 여러분은 지금까지 파도를 타지 말고, 파도에 저항하며, 흐름을 억누르라고 배워왔습니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파도는 움직임에 방해를 받게 되며,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감정은 몸속에서 계속해서 큰 혼란을 만들어내게 되며, 감정의 삶도 부자연스럽게 펼쳐지게 됩니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만성적인 긴장상태로 인해, 여러분은 점차적으로 정상적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정상적이지 않은, 뭔가가 내면에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의 본성이 되는 것이며, 이 본성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게 되고, 내면에서 정말로 느끼고 있는 것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의 느낌이 얼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 에너지가 이제 억제되고 마는 것입니다. 

 

감정이 얼어버린 상태는 거의 언제나 머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것과 함께 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에 대하여, 여러분의 마음은 온갖 종류의 믿음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개 머리로 자신의 감정을 판단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감정들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게 되며, 언젠가는 그러한 감정들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들은 점차적으로 깊은 믿음이 되어, 여러분의 모든 사고 및 행동 속에 스며들게 됨으로써, 감정체가 스스로 정화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체는 자기 정화(self-cleansing)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뭔가로 인해, 균형을 잃게 될 때, 동시에 배워야 하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줄 때, 감정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이 지닌 메시지를 정말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감정 그 자체는 정화의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