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진아(眞我)>


라마나 마하리쉬는 감각적으로 또는 생각을 통해 체험하는 자기는 <진정한 나>가 아니며 스스로 자기라고 동일시하는 것들을 다 부정한 다음에 남는 순수한 각성이 <진정한 나>,즉 <진아>라고 하였다.

개체적 자아란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마음이 거짓되게 만들어낸 것이고 <진정한 나>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그는 진아는 항상 실재하며 우리가 늘 체험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때는 오직 스스로를 한계짓는 경향을 가진 마음이 사라졌을 때뿐이라고 강조하였다.

마음이 영원히 사라져서 진아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상태가 바로 깨달음이다.



2.<신(神)>


라마나는 우주는 진아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하였다.유신론자들은 보통 이 힘이 신에게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는 신이라는 단어를 진아와 동의어로서 가끔 사용하였다.마찬가지로 그는 힌두교에서의 지고의 존재인 브라흐만이나 시바를 진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때 라마나가 말하는 신이란 구체적인 이름과 형상을 가진 신이 아니라 우주를 유지하는 무형의 존재다.

신은 우주의 창조자가 아니며 우주는 신의 본래적인 힘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따라서 우주로부터 신을 분리할 수는 없지만,우주가 나타나든 사라지든 신은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3.<무엇이 실체입니까?>


항상 실재하는 것만이 실체다.그것은 형태도 이름도 없지만 모든 형태와 이름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그것은 제한되어 있는 것들의 근간을 이루지만 스스로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 있으며 <존재,비존재> 등의 표현조차 넘어서 있다.

이 실체가 외면으로 나타난 모습이 바로 침묵인데,깨달은 사람들은 그것이 진정한 지혜의 최종적 상태이며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상태라고 선언하고 있다.



4.<진아를 깨닫게 되면 무엇을 보게 됩니까?>


보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이 그냥 존재할 뿐이다.깨달음의 상태란 뭔가 새로운 것을 얻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그대가 지금 존재하고 또 항상 존재하여 왔던 그 상태로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그대는 다만 진실 아닌것을 진실로 고집하지만 않으면 된다.그때 그대는 진아를 진아로서 깨닫게 될 것이다.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대는 그토록 분명한 진아를 발견하려고 애썼던 그대 자신에 대해서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깨달음의 상태는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을 초월해 있다.지금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그 <보는 자>가 사라지고 진아만이 남게 된다.



5.<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아(自我)들이 육체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진아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육체가 나>라는 생각을 인정하면 무수한 자아들이 있게 되지만,이 생각이 사라졌을 때 진아가 나타난다.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진아와 분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진아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하는 것이다.

진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육체는 결코 실재하지 않으며,착각의 힘에 의해 왜곡된 마음의 외향적인 측면에서 볼 때만 육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따라서 진아가 육체의 주인이라고 보는 것은 그릇된 견해다.이 세상은 육체를 통해 존재하고,육체는 마음을 통해 존재하며,마음은 의식으로 인해 존재한다.그리고 이 의식은 실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진아를 간파해 버린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진아 외에는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왜? 육체를 <나>와 동일시하던 에고가 사라져 버리고,그는 형태 없는 존재,즉 의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곧 진아라는 사실을 알며 진아 외에는 육체나 그밖의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이와 같은 사람에게 육체가 있고 없음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6.<우리의 본질이 행복 또는 지복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입니까?>


진아의 본질이 바로 행복이다.진아는 완전한 행복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오직 행복만이 존재한다.이 사실을 깨달아 진아안에 머물면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도록 하라.

사람은 깊이 잠들었을 때 아무런 재산도,그의 육체조차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그런데 불행해지기는 커녕 매우 행복감을 느끼며 누구나 다 깊이 잠들고 싶어한다.결국 행복이란 인간 속에 내재해 있으며 결코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기지 않는다.그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는 결국 진아를 깨달아야만 한다.



7.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육체가 곧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드러난다.깨달음이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질이 변화 되는 것도 아니다.모든 그릇된 것들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자연히 드러날 뿐이다.

궁극적인 진리란 지극히 단순하다.그것은 원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이 이상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다.



8.그대는 그대의 무한한 본성에 스스로 제한을 가한 다음,자신이 제한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슬퍼하고,그 존재하지도 않는 제한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대는 무한하며 순수한 진아라는 사실을 알아라.그대는 항상 진아이며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본래 자유로우면서도 왜 저희들은 항상 구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항상 홀 안에 있으면서 왜 그대들은 세계일주를 떠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생고생하면서 헤매인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모두 마음이며 마야(maya 환영)다.



9.<이와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계속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사나(vasana 개개인의 잠재적인 마음의 경향성)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것이 있는 한,의심과 혼동은 남는다.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모든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며 그 뿌리를 잘라버려야 한다.

우선 진리를 들어야 하며,그 다음 진리를 되새겨 보고 진리에 대해서 명상해야 한다.이 두단계의 과정을 통해 마음의 경향성은 점차 뿌리가 뽑히고 무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