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찰자의 존재상태는 마음의 장애가 없어야 하지.
  마음의 장애는 명확한 이해로써 다가오기 전에,
  이전의 경험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명확화하려는 습관이 있네.
  고정관념에 의한 분류하고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의 체험은 과거의 어떠한 시·공간속의 체험과도 다른 것인데도
  과거에 형성된 관념의 틀에, ‘지금이순간’의 체험에 대한 의미를 구겨넣는 것이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음이 몸을 돌보는 기능을 하는 데,
  몸의 속성이라는 것은 한 생애(生涯)의 주기(週期)밖에 없으니,
  생명(영혼)은 영원하다는 것에 반대하여, 체험된 사실을 빨리 분류하여,
  어떠하던 몸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도모하고자 하는 두려움에 의한 행위이지.

  마음의 장애를 마음적으로 개선하기는 사실 어렵지.
  그렇지만 마음이 그렇게 분류하기를 즐겨하는 속성을 잘 활용해보세.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이고 확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말이야.

  자기 개인의 입장을 떠나,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성인, 현인, 군자, 선지자, 위인 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사상을
  깊게 살펴서 공통분모를 찾아낸 내용을 판단의 바탕으로 삼는다면,
  확률 높은 판단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일이지.


*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정신적 문화유산을 성실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고 보네.
   인류의 역사가 어디 그냥 이루어져 왔겠는가.
   수많은 선배들(전생의 우리 자신이기도 한)의 열정과 고뇌를 통한,
   보편적인(확률적인) 경험의 귀중한 유산(遺産)인 것이지.
   고전(古典)에 관심을 가지고 독서하는 젊은이들이 아주 드문 현실이네.

   군자(君子)는 평범(平凡)한 것에 관심이 있고,
   소인(小人)은 비범(非凡)한 것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지.
   비범하게 다가오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와 거리가 멀 확률이 높네.
   비범하게 보이는 것에 혹(惑)하다보면 부작용 또한 상당하게 크지.

   영성(靈性)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항상 뭔가 특별한 것을 찾아 끊임없이 밖으로 나돌고 있네.
   그것은 조급하게 이루고 싶다거나,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이지.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고 보네.
   갑자기 이루어진 영적체험 또는 영적능력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이지.
   화려했던 모래성이 무너지고 나면, 그 모래성의 화려함을 상실한 허탈감과,
   그것을 빨리 재현해야한다는 강박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많아.
   그것은 호재(好材)가 아니고, 악재(惡材)가 되기 쉽다고 봐야겠지.

   '근면(勤勉)'해야 하는 것이고, '자조(自助)'로서 스스로를 돕고,
   '협동(協同)'으로 시너지(상승)효과를 발생시키면 좋겠구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