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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첫차’ 노무현의 꿈, 문재인이 이룰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94126.html?_ns=t0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첫 대통령 탄생
2011년 인터뷰에서는 “저는 도저히 엄두 못낼 일”
2012년 첫 도전, 2017년 재수해 19대 대통령 당선
노무현도 문재인도 예상못한 ‘문재인 대통령’
다하지 못한 친구의 숙제 끝내야 하는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치사는 참 흥미롭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됩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됩니다.

문재인 19대 대통령은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그리고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두 사람 사이에는 15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이해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아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4년 ‘노무현 고백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자서전을 썼습니다. 14대 국회 진출에 실패하고 민주당 최고위원을 하며 재기를 모색하던 시기입니다. 진솔한 고백과 투박한 문체로 화제가 됐던 책입니다. 이 책에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사건 유치 커미션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면서 ‘문재인 변호사’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82년 연수원을 졸업한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커미션을 일체 끊어버렸다. 새로 시작하는 후배 앞에서 차마 추한 꼴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며 후보 때 경호를 했던 경찰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며 후보 때 경호를 했던 경찰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대 중반 운동에 뛰어드는 대목에서 문재인 변호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 시절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운영했던 문재인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했다. 대학 시절의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82년 나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 85년 운동을 본격적으로 할 때도 항상 나와 호흡을 함께 맞추어 왔다. 지금도 문 변호사는 부산의 각종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에 몇 차례 육성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하던 시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09년 9월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공개됐습니다. 인터뷰 당시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인지 이 책에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당시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월20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중앙로에서 유세를 하기에 앞서 시민들 사이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원주/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월20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중앙로에서 유세를 하기에 앞서 시민들 사이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원주/



“세 분 다 훌륭한 재목입니다. 그 사람들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저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바람을 잘 일으키는 정치인이 꼭 바람직한 정치인인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히려 말을 떠듬떠듬 하더라도 사람의 행적을 봐서 신뢰할 수 있으면 좋은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정치인의 길’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정치가 뭐 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역사적으로 이 시기에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입니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사람이 그 시기의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역사적 과제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가 경제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경제가 죽었다 살았다 하지는 않습니다.(중략)

빌리 브란트가 왜 높이 평가되었는가? 그것은 당시 독일의 역사적 과제였고 세계 인류에게 부과된 중대한 역사적 과제인 동방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인과 정치에 대해 말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그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역사적 과제를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에서 엮고 유시민 전 장관이 정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2010년 4월26일)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자필기록과 구술기록을 토대로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문재인’에 대한 얘기가 조금 더 자세히 나옵니다.

“문재인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원래 모르는 사이였지만 1982년 만나자마자 바로 의기투합했다. 그는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서도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았다. 정직하고 유능하며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사건도 많았고 승소율도 높았으며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약속했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인권변호사로서 독재정권에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면 나부터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담배를 피우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담배를 피우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1980년대 중반 인권변호사로 노동 사건을 맡으며 운동에 전념했던 시기를 회고하면서 문재인 변호사와 문재인 비서실장 얘기가 다시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가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산에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했고, 대통령 선거 때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 주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 임기 내내 나를 도와주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와 퇴임 후 검찰 수사 때도 내 곁에 있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것은 그저 해 본 소리가 아니다. 나이는 나보다 젊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 그와 함께 한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며 영광이었다.

이 말은 문재인 개인에 대한 것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부족했던 나를 민주화 운동으로 이끌어 주고 내가 정치판으로 떠난 뒤에도 굳건하게 부산을 지켰던, 부산지역 시민사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그 뜨거웠던 6월의 밤 아스팔트 위에서 독재타도를 함께 외쳤던 부산의 이름 모를 수많은 시민들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여러 번 낙선하면서도 부산을 아주 떠나지 못한 것도 그분들과 함께 이루었던 모든 것, 그분들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중에 정치를 할 것이라고,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대통령 자리에 오를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육성 인터뷰에서 문재인 얘기를 하다가 부산 시민 얘기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을 민정수석으로 발탁한 것도 사실은 그가 ‘정치적 고려’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강직한 부산 변호사였기 때문입니다. 검찰에 몸담은 적이 없어서 검찰과 유착하거나 휘둘릴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민정수석을 맡던 순간을 <문재인의 운명>(2011년)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민정수석실 업무 내용 때문에 법조 출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찰을 장악할래야 할 수 없는 비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고자 한 것이 당선인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나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검찰을 장악할 의사가 없다는 대통령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이 나중에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6월 <문재인의 운명> 책이 출간됐을 때 제가 부산에 출장을 가서 ‘문재인 변호사’를 인터뷰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습니다.

2011년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6월15일 출간한 책 <문재인의 운명>. 김태형 기자
2011년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6월15일 출간한 책 <문재인의 운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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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문장이 강렬하다. ‘당신(노무현 전 대통령)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 하게 됐다.’라고 했는데, 숙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적으로 해석하진 말아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
진보적 민주주의 풍토나 토대를 넓혀나가는 일을 말한 것이다. 노무현재단을 맡은 것도 그 일환이다.”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지지도가 꽤 높게 나온다. 이유가 뭘까?

“수면 위의 우리 쪽 후보들이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대세론에 비해서는 크게 부족한 것처럼 보이니까 대안을 찾는 과정인 것 같다. 또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동안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아서 비교적 착한 역할과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를 시작하면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그럼 ‘문재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음 대선에서 누가 우리 쪽 대표 선수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어떻게 잘 통합과 연대를 해서 후보를 내세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국민이 정권교체 희망을 갖게 되면 선거에 역동성이 생긴다. 그 통합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힘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도대체 왜 정치와 선을 긋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잘 못 할 것 같아서 그렇다. 현실 정치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선한 의지만이 아닌 것 같다. 선거를 치를 능력, 개인기도 필요하다. 정치에서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원칙을 지켜가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뚜렷하게 보여줬다. 긴 세월을 통해 낙선으로, 대선자금 수사로, 탄핵으로 보여줬다. 끝내 퇴임 후까지도 고통을 받았다.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려면 정말로 대단히 강인한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걸 굉장히 많이 갖고 계셨다. 개인기도 있었다. 그런데도 끝내 좌절했던 것 아닌가. 저는 도저히 엄두를 못 낼 일이다.”

2007년 5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5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비서실장과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랬던 문재인 변호사가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대통령을 하고 싶어서 평생을 바치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버티던 ‘문재인 변호사’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재수 끝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현실이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나는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지만 구시대의 막차가 되고 말았다”고 여러 차례 탄식했습니다. 이제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은 ‘새 시대의 첫차’라는 노무현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한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나온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2010년)의 머리글을 당시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였던 문재인 변호사가 썼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존경과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마주’입니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이 닮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 그가 따라가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이 글에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읽어도 내용이 워낙 절절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목표가 개인적 출세였던 시절도 있었고 사회의 진보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한 당당하게 살고자 분투했던 사람입니다.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변호사였던 그는 소위 부림사건을 만나 뒤늦게 역사와 사회에 눈을 뜬 이후 마치 활화산처럼 자신을 불태우며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정치에 뛰어든 뒤 숱한 좌절을 겪고 낙선을 거듭하였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실수를 하고 오류를 범했지만, 잘못을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고 교정해 가면서 원칙과 상식의 힘에 기대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한결같이, 그는 반칙과 분열주의에 항거했으며 기회주의와 분연히 맞서 싸웠습니다. 힘이 없을 때에도 부당한 특권 앞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권력을 쥐었을 때에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멀리서 가까이에서 본 ‘인간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기록하거나 구술하였던 삶의 기록 곳곳에서, 우리는 전력을 다해 싸우고 끝없이 번민하는 ‘인간 노무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대통령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함께 2009년 4월30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함께

2009년 4월30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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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22:53:29 (*.170.38.143)
베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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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1.kr/articles/?2990391

文대통령 아들이 개발한 게임 나온다…컴투스 150개국 출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개발한 게임이 올 상반기에 컴투스를 통해 글로벌 출시된다.

11일 컴투스에 따르면 문씨가 소속된 게임개발사 티노게임즈가 개발한 모바일 전략게임 '마제스티아'가 이르면 5월 중 출시된다. '마제스티아'는 지난 3월 비공개 베타테스트(CBT)를 마쳤고 이달 중으로 전세계 150여개국에 동시 출시될 예정이다. 문씨는 '마제스티아'의 게임 그래픽과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컴투스 관계자는 "티노게임즈서 개발한 신작게임이 상반기 중으로 출시될 예정"이라며 "문 대통령의 장남이 게임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건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뉴욕 파슨스스쿨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티노게임즈에 합류해 4명의 이사진 중 1명으로 근무 중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류 수출의 1등공신인 게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 "게임의 순기능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는 규제 일변도의 편향적 정책을 전개해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4131.html?_ns=t0

화려한 인맥과 거리 먼 문재인 가족…부모·형제·자녀 모두 ‘소시민’

[문재인 대통령 당선] 걸어온 길

 어머니가 행상하며 뒷바라지 누 나·동생들도 제힘으로 공부

대학 때 만난 아내와 7년 연애
선거 때 ‘호남특보’라 불리며 도와

아들은 ‘미디어 아티스트’ 활동
‘전업맘’ 딸은 투표 전날 깜짝 등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맨 왼쪽)가 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9대 대선 마지막 유세에서 딸 다혜씨(왼쪽 셋째)로부터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받은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후보, 손자, 딸 다혜씨, 부인 김정숙씨.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맨 왼쪽)가 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9대 대선 마지막 유세에서 딸 다혜씨(왼쪽 셋째)로부터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받은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후보, 손자, 딸 다혜씨, 부인 김정숙씨.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당선인의 가계도는 화려한 인맥과는 거리가 멀다. 문 당선인의 부모님은 이북 실향민 출신으로 평생을 가난 속에 살며 문 당선인을 포함해 5남매를 키워냈다. 그의 누나와 여동생 2명은 모두 주부, 남동생은 항해사로서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가난을 버텨낸 평범한 가족


문 당선인의 부모님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 실향민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왔던 바로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남하한 가족들 중 하나다.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지냈던 공무원 출신 아버지 문용형(1978년 작고)씨는 남한에 와선 막노동일을, 어머니 강한옥(89)씨는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문 당선인은 2남3녀 중 장남이자 둘째로, 누나 재월씨와 여동생 재성씨, 남동생 재익씨, 여동생 재실씨가 있다.


아버지는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 잡지를 읽는 등 사회의식이 깊었지만 생활인으로서는 무능했다. “구멍가게를 열어도 누가 봐도 장사가 잘되기 어려운 가게를 한다든지, 늘 그런 식이었다.” 아버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기억 속에서 늘 무겁고 어둡던 아버지가 가장 기뻐한 것은 문 당선인이 명문인 경남중학교에 합격했을 때였다. 대학 입학 뒤 반유신 시위에 전념했던 그가 사법시험을 치르게 된 것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타계 때문이었다. 그는 “힘겨운 피난살이와 가난 속에서 평생 고생만 하며 제게 기대를 걸었던 분에게 자식으로서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 자책감으로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생계는 어머니가 주로 책임졌다. 6살 무렵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학교가 파하면 문 당선인과 남동생은 어머니를 도와 연탄 배달을 했다. 한번은 내리막길에서 힘이 달린 어머니가 뒤에서 붙잡던 손을 놓쳐, 리어카를 끌던 문 당선인이 길가에 처박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직 부산 영도에서 산다. 굶주릴 때 구호 식량을 나눠주던 수녀님들이 고마워 어머니도, 문 당선인도 그때부터 천주교 신자다. 아흔에 가까운 어머니는 늘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뉴스를 챙겨본다고 한다.



큰누나 재월씨도 공부를 잘했지만, 여상에 들어가 졸업하자마자 경리 직원으로 일하며 문 당선인을 뒷바라지했다. 문 당선인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에 들어갔고, 여동생들도 장학금을 받아가며 공부를 마쳤다. 남동생도 해양대에 들어가 일찍 항해사가 됐다. 이 남동생이 에스티엑스(STX)에 근무하던 시절, 회사가 육지 근무로 ‘배려’ 발령을 내자,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던 문 당선인이 전화해 “그런다고 회사에 혜택 줄 일 없으니 다시 배를 타라”고 호통쳤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 아내, 든든한 ‘특보’


문 당선인의 뒤엔 누구보다 든든한 아내가 있었다. 부인 김정숙(63)씨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의 호남 특보’라고 불릴 정도로 호남에서 살다시피 하며 바닥 민심을 사로잡고 표심을 문재인으로 돌려놓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추석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광주에 내려갔다. 정치인의 아내인 것도 밝히지 않은 채 동네 목욕탕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설 이후부터는 전남 낙도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광주 외 호남 지역까지 동선을 넓혔다. 마을회관, 노인시설, 시장 등을 누비며 보여준 활기차고 친근한 태도가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김정숙씨는 문 당선인과 같은 대학(경희대) 2년 후배로, 시위 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문 당선인을 돌봐주다 사랑에 빠졌다. 구속, 제적, 입대, 사법시험으로 이어진 만 7년간의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 당선인의 처가는 언론 공개를 꺼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정숙씨의 아버지는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출신으로,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했으며 딸의 결혼 무렵엔 요양차 강화도에서 목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김씨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3녀 중 둘째딸이다. 숙명여고,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했고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 결혼 뒤 부산으로 내려갔다. 

 

■ 언론에 ‘내성적’인 아들과 딸


문 당선인의 자녀로는 아들 준용(35)씨와 딸 다혜(34)씨가 있다. 이들은 선거 내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다른 후보의 자녀들과 대조를 이뤘다. 아들 준용씨는 건국대를 졸업한 뒤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광주 비엔날레에 작품을 내기도 한 ‘미디어 아티스트’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출마 선언장에 어머니와 함께 나왔고, 선거 영상도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2007년 노동부 산하 고용정보원에 채용됐던 경력을 놓고,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취업 특혜 논란’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문 당선인은 지난 3월 출간한 대담집에서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아들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내내 준용씨는 언론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준용씨목회자 집안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3살 된 아들이 있다.

딸 다혜씨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남편 서아무개씨와 8살 된 아들이 있다. 다혜씨는 5년 전 선거 때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번엔 투표일 전날인 8일 마지막 광화문 유세 때 아버지께 ‘영상편지’를 보낸 뒤 아들과 함께 무대 위에 ‘깜짝 등장’ 했다. 선거 과정에선 문 당선인과 외손자가 함께 있는 사진이 깜짝 공개된 적도 있다. 손자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든든한 대통령 하라버지 채고(할아버지 최고)’를 들고 활짝 웃는 문 당선인의 모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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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4131.html?_ns=t0#csidxc30b25be0ac9c9c83ebb6f111aea5c6
http://news1.kr/articles/?2990391


文대통령 아들이 개발한 게임 나온다…컴투스 150개국 출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개발한 게임이 올 상반기에 컴투스를 통해 글로벌 출시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씨(왼쪽), 아들 문준용씨(오른쪽).


11일 컴투스에 따르면 문씨가 소속된 게임개발사 티노게임즈가 개발한 모바일 전략게임 '마제스티아'가 이르면 5월 중 출시된다. '마제스티아'는 지난 3월 비공개 베타테스트(CBT)를 마쳤고 이달 중으로 전세계 150여개국에 동시 출시될 예정이다. 문씨는 '마제스티아'의 게임 그래픽과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컴투스 관계자는 "티노게임즈서 개발한 신작게임이 상반기 중으로 출시될 예정"이라며 "문 대통령의 장남이 게임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건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뉴욕 파슨스스쿨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티노게임즈에 합류해 4명의 이사진 중 1명으로 근무 중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류 수출의 1등공신인 게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 "게임의 순기능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는 규제 일변도의 편향적 정책을 전개해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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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X안희정' 팬아트 그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의 커버 사진을 문재인 대통령과 입맞춤을 하는 그림으로 바꿔놓자 빠르게 '좋아요'가 눌리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공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당선 기념행사에서 문 대통령의 볼에 기습 뽀뽀를 했고, 이 사진은 주요 외신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 사진을 패러디한 그림에는 "오늘부터 1일이다"라고 써있다.


안 지사는 "우리나라 대선 모습을 해외 언론에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독일이나 캐나다 언론에서도 보도됐다"면서 "국민이 재미있어 하니 좋다"고 답변했다.

안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당시 홍석천 씨의 손을 잡고 등장했으며 팟캐스트에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논쟁할 가치가 없다"라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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