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빠져나와, 다시 빛 속으로 돌아오자마자, 여러분은 단순히 마음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여행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어둠은  언제나  보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두운 감정들은 숨어 있는 여러분의 일부로서, 다시 여러분과 하나로 합쳐지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이 내면에서 만나게 되는 부정성은 여러분의 지닌 에너지의 일부로서, 정체되어 있음으로써 오랫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던 에너지입니다. 영혼으로서, 여러분은 우주의 여러 장소들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아주 많은 생들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디 이해하기 바랍니다.


지구에서의 삶의 순환(윤회)은 이제 끝나가고 있으며, 석방과 해방의 현시대를 맞이하여, 아주 다른 생들 속에 갇혀 있어, 가장 심한 고뇌에 차 있는 여러분 영혼의 일부분들이 여러분을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 여러분들은 감정적인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트라우마도 역시도 결국에는 언제나 동일한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처리해주기를 바라는 두려움에 관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이 직시하고,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의 일부이며, 정말로 확실한 일부입니다. 두려움은 이원성 게임의 일부로서, 우주의 후미진, 이 조그마한 구석에서 여러분은 이원성이라는 게임을 하고 놀았던 것입니다.


만약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이 지닌 두려움을 겁내지 않는다면, 두려움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여러분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해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합니다. 두려움은 단지 미지의 것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어린아이가 알지 못하는 것과 대면하게 될 때, 대개는 두려움을 지니고 반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알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편해지게 되고,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두려움은 순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알지 못하는 것에 당장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만한 것입니다. 두려움 자체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대해 판단을 하게 되면, 즉 두려움을 불편해 하고, 거부하게 된다면, 두려움은 커다란 어둠, 즉 여러분의 의지에 반해, 여러분을 공포에 떨게 하고, 마비시키는 악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질적인 어두운 힘이 되게 함으로써, 두려움을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두려움 그 자체는 어둡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두려움은 단지 다른 생소한 뭔가로 인해, 불안해지게 된 느낌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지혜롭습니다.영(Spirit)으로서, 영원히 사랑스럽게 빛나는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핵심으로부터,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에 다가가세요. 여러분은 자신이 지닌 그러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크고, 더 강한 존재입니다. 아이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여러분은 두려움에 다가갈 수가 있으며, 두려움에게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해, 그리고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리고 너 역시도 네가 지닌 두려움을 무서워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세요.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두려움을 제거하려고 하는 생각 속에는 판단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두려움과 싸우고자 한다면, 여러분의 겁 많은 부분은 더 겁을 먹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겁 많은 부분은 자신이 소용이 없으며,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로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우주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부디 이해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뭔가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잘 알고 있으며,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여러분이 아직 알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뭔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두려움에 대한 판단도 버리게 될 것이며, 오히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땅을 찾아내게 됨으로써, 여러분이 지닌 빛을 비출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려움을 신뢰하고, 두려움이 여러분의 빛이 되게 하세요! 삶 속에서 두려움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떠한 상황이 존재한다면,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세요. 여러분이 지닌 의식의 빛을 두려움에 비추세요. 두려움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두려움을 무서운 에너지로 여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마음이 더 편안해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두려움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두려움은 창조의 일부이며, 따라서 언제나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고도로 진화해 있다 할지라도, 탐구해야 할 미지의 요소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주는 정체되고, 활력과 생동감을 상실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름답고, 멋진 나라에서 즐기고, 어울리면서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러한 나라를 벗어나는 것, 즉 경계를 넘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땅은 절대로 탐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깊은 성취감을 가져다 줄까요?

이제 나는 여러분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모험심이 강한 영들(spirits)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을 탓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궁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두려움은 모험을 즐기고, 탐구하고 싶어 하는 여러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에게 찾아내야 할 신천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손을 잡고, 여러분이 이 신천지를 여행하게 되면, 현재의 이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비밀은 “무엇을 찾아내게 될지를 사전에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새롭지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좋은 체험을 하게 되는 것, 즉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쁨에 대해 새롭고도 더 깊이 있게 체험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두려움의 세계을 받아들일 때에만, 즉 현재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체험의 한계를 벗어나 있는, 오로지 미지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두려움의 세계를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이치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세요. 내면에 존재하는 많은 두려움은 아주 오래된 여러분의 일부로부터, 즉 아득한 과거의 다른 생들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두려움조차도 새로운 이해에 대한 가능성, 즉 여러분이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두려워하고,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거칠게 거절당했던 체험이 거기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즉 거칠게 거절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고, 그러한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한다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며,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것들이 어려운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아주 엄하게 판단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용서(self-forgiveness)를 체험하는 것도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체험입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끔찍하게 보이는 체험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판단하지 않고 신뢰를 가지고, 그러한 체험을 통과해간다면, 이러한 체험 역시도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체험, 심지어 기쁨을 주는 체험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통해, 여러분은 자기-수용(self-acceptance)에 뒤따르는 해방감과 편안함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가 아주 융통성이 있으며, 체험 역시도 아주 신축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삶에서 두려움을 체험하고 있다면, 바로 그 반대편에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언급했던 것처럼, 영적인 성장은 직선적인 과정, 즉 매 단계마다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이 아닙니다. 차라리, 두려움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면, 삶은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더 이상 일상생활을 지속해갈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여러분은 두려움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두려움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거나, 처리할 수 없게 됨으로써, 두려움이 여러분을 통해 흐르게 되며, 여러분은 이것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여러분이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댐이 붕괴되어,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을 차단시키고, 가두어놓고 있는 문을 열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을 통해 흐르고 싶어 하며, 만약 여러분이 두려움과 함께 흐른다면, 두려움은 또 다른 세계로, 즉 현재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계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세계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하더라도, 이것이 보이는 것만큼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의 바로 문턱에 와있는 것이며, 큰 진전을 이루기 바로 직전에 있는 것입니다.


순리에 맡기고,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게 하세요. 두려움과 싸우지 마세요. “내가 뭘 잘못했지? 영적인 길에서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었나? 왜 어찌할 바를 모르지, 내가 잘못됐나?”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것은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마음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두려움이 하는 일을 알고 있습니다. 깊은 차원에서보면, 두려움은 여러분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러한 일은 여러분이 두려움을 신뢰하고, 통제하려고 하지 않을 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과 더 많이 일치할수록, 삶에 대한 통제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있나요? 이것이 바로 해방인 것입니다! 놓아주는 것(Letting go)은 새로운 것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름답고 정제된, 억압받지 않는 자기 자신(unrepressed You)의 에너지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오늘날의 지구에 육화하고 싶어 하는, 상위 형태(higher version)의 자신에게 이르는 문입니다.


비록 내적인 과정이 여러분을 어둠 속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에 따른 모든 논리가 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내적인 과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의 마음 상태로는 내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지금은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의미는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는 것에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어놓기 바랍니다. 영혼이라는 더 큰 세계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참된 여러분과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의식을 탐구하기 바랍니다.


변화와 격변의 이러한 시기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험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우리는 여러분에게 축복을 보내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용기 있는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해, 비록 여러분이 의기소침해 있고, 외로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삶과의 사랑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 그러한 사랑을 가지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가까이에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의식 중에서 어머니의 에너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느껴보세요. 아마, 이 에너지가 은은하게 빛나는 핑크색으로, 명랑하지만 아주 부드러운 에너지로 느껴지게 될 것이며, 온화하고, 아늑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에너지가 여러분의 에너지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게 하세요. 이 에너지는 여러분에게 치유를 가져다줄 수가 있습니다. 치유라는 말이 “여러분이 지닌 두려움을 없애버린다”라는 뜻은 아니며, 그 에너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다른 세계, 즉 더 사랑스럽고 밝은 세계로 이어지는 문으로서, 이 에너지를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세요, 단지 자기 자신이 되기만 하세요.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미 완벽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보고 있으며, 여러분이 고분 분투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크게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부디 내 에너지로 위안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천사이며, 또한 아름답습니다.


기억하세요. 밤이 지나면, 새 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태양도 다시 비칠 것입니다. 이것은 피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저마다의 타고난 과정을 재개하게 됩니다. 밤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낮이 찾아오는 것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운행(motion)을 직접 체험하고 나면, 새로운 멋진 새벽이 어느새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내면적으로 이러한 여정을 시작함으로써,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에 이르는 내면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돕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나는 초기 단계에 있는 다른 빛의 일꾼들을 위해, 여러분은 길을 닦아놓고 있는 것이며, 차례로 그들도 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혼의 세계에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 즉 지금 지구에서 하고 있는 빛의 일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반대편에 있는.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으며, 부디 우리의 사랑을 받아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참된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