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 추천. 일독을 권합니다..........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활 (사후세계) - 요가난다



아래 글은 요가난다의 스승이신 스리 유크테스와르가 부활하여 제자에게 들려준 사후세계입니다.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참조하시라고 드립니다. (요가난다 하권 241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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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biography of a Yogi (Original 1946 Edition)

by Paramhansa Yogananda

CHAPTER 43

The Resurrection of Sri Yukte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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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봄베이 리젠트 호텔의 내 방에 앉아 있을 때,

그 화신의 영광된 형체가 반짝이는 빛 속에서 나타났다.

그 지워지지 않는 환시는 거리를 가로질러 높다란 빌딩의 지붕 위를 밝게 비추더니

갑자기 내 시야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 신성한 형체는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미소와 끄덕임으로 인사를 보내왔다.



내가 미처 주 크리슈나의 정확한 메시지를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축복의 몸짓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나는 무언가 영적인 사건이 예고되고 있음을 느꼈다.

내 서양 순회 여행은 잠시 동안 취소된 상태로 있었다.

나는 벵골로 떠나기에 앞서 봄베이에서 몇 차례의 공개 강연을 갖기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1936년 6월 19일, 그러니까 크리슈나의 환시가 나타난 지 1주일 후,

오후 세시 경 봄베이 호텔의 내 방 침대 위에 앉아 있던 나는

갑자기 아름다운 빛에 의하여 명상 상태로부터 깨어나게 되었다.

그 방 전체가 이상한 세계로 변하더니 햇빛도 천상의 광휘로 바뀌었다.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피와 살을 대하게 된 나는 환희의 파도 속으로 잠겨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아들아!”

천사 같은 미소를 얼굴에 간직한 채, 스승께서는 부드럽게 나를 부르셨다.

생전 처음으로, 그의 발밑에 엎드려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나는 그대로 스승을 끌어안았다.

순간의 순간! 지금 이처럼 무한히 쏟아지는 축복에 비하면

지난 몇 달 간의 고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구루지, 어찌하여 저를 떠나셨습니까?”

나는 너무도 커다란 기쁨에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왜 저를 쿰브하 멜라에 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셨습니까?

스승님 곁을 떠났던 데 대한 자책감이 너무도 쓰라립니다.”



“순례지를 보려던 너의 행복한 기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내가 바바지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가 아니었더냐.

나는 다만 잠시 동안 너를 떠난 데 불과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스승님, 지금도 바로 그 잔인한 백사장 아래 제가 매장했던 그 육신을 갖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 나의 아들아. 나는 그것과 같다. 이것은 피와 살이 있는 육신이다.

나는 그것을 에테르로 보지만 너의 눈에는 분명히 물질로 보일 것이다.

나는 네가 미망의 세계에서 푸리에 있는 미망의 백사장에 묻어 둔

우주적 미망의 육신과 똑같은 것을 우주의 원자들로부터 창조해 낸 것이다.



나는 진실로 부활한 것이다. 지상이 아닌 영계에서 말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지상의 인류보다 훨씬 더

나의 이념과 이상을 훌륭하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너와, 네가 사랑하는 높은 영혼들도 언젠가 거기서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구루이시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잠시 유쾌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를 붙잡고 있는 그 팔을 좀 늦춰 줄 수 없겠느냐?”

나는 그때까지도 문어발처럼 스승을 꽉 껴안고 있었다.



과거에 스승의 육체가 가졌던 특징과 꼭 같은 가냘프고 향긋한 내음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축복받은 시간을 회상할 때마다 내 팔과 손바닥의 주위에는,

그의 신성한 살을 만졌을 당시의 떨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지자들이 인간을 도와서 업을 소진시켜 주도록 이 땅에 보내졌듯이,

나 역시 구원자로서 영계에서 일하도록 신에 의하여 지시를 받은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계속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히라냘로카Hiranyaloka, 즉 ‘깨달은 영계’라고 불린다.

나는 그 곳에서 진보된 존재들을 도와서 그들의 영적인 업이 소멸되고

따라서 영계의 윤회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준다.

히라냘로카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볼 때 고도의 진보를 이룩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탄생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

물리적 육체를 죽음에 내맡길 수 있는 힘을 명상을 통하여 얻고 있다.

그 누구도 이 지상에서 사비칼파 사마디(sabikalpa samadhi, 유상삼매)의 단계를 넘어서

니르비칼파 사마디(nirbikalpa samadhi, 무상삼매)에 든 상태에서 죽지 않는다면

‘히라냘로카’Hiranyaloka에 들어갈 수 없다.



‘히라냘로카’에 거주하는 자들은 이미 일반적인 영계의 차원을 통과한 다음인데,

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의 모든 존재들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지나온 영계에서 스스로 행한 온갖 행위들과 관련된

수많은 업의 씨들을 없애 버리게 된다.



진보된 수행자들만이 영계에서 그와 같은 상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서 이 지원자들은 영계에서의 모든 업의 자취들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영계의 태양 혹은 천상이라 할 히라냘로카에 새로운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돕기 위해 있다.



히라냘로카에는 또한 보다 높은 근원적 세계로부터 온 거의 완전한 존재들도 있다.”



이제 나의 마음은 구루의 마음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림 같은 이런 설명도 일부는 말로, 일부는 생각의 전이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생각이 든 알약들을 즉석에서 받아먹을 수 있었다.

스승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너도 경전에서 읽었을 것이다. 신께서 인간의 영혼을 계속해서 세 종류의 몸,

사념상의 인과율적 신체 causal body,

인간의 정신적, 감정적 본성이 자리한 민감한 영적인 신체 astral body,

거친 물리적 신체 physical body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을 말이다.



지구상의 인간은 육체적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영적인 인간은 의식과 감정 그리고 생명자(生命子)로 이루어진 신체를 사용한다.

인과율적 신체를 가진 존재들은 기쁨 넘치는 사념의 세계에 남아 있게 된다.

내가 하는 역할은 인과율적 세계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영계의 존재들에 관련된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님, 영계에 대해서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탁에 따라 팔을 약간 늦추기는 했지만 아직도 팔로 그를 감싸고 있었다.

보배 중의 보배인 나의 구루가 죽음을 비웃으시며 내게 접근하신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곳에는 영적인 존재들로 충만한 영계가 여럿 있다.

그곳의 주민들은 빛의 덩어리인 영계의 비행선을 타고

이쪽 영계에서 저쪽 영계로 전기나 반사선 에너지보다도 빠르게 여행을 다닌다.



여러 가지 미묘한 빛과 색으로 이루어진 영계의 우주는 물리적 우주보다 수백 배나 크다.

모든 물리적 창조물을 합해도 그것은 영계라는 빛나는 커다란 풍선 밑에 매달린 딱딱한 작은 바구니와 같다.

물리적 세계의 많은 태양들과 별들이 우주 공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듯이

영계에도 역시 무수한 태양과 별들의 체계가 있다.



그곳의 항성들은 물리적 세계의 해와 달보다 훨씬 아름다운 해와 달을 가지고 있다.

영계의 해와 달들은 북극광과 비슷한데 영계의 햇빛은 부드러운 달빛에 비하면 더 눈부시다.

또 영계의 낮과 밤은 지구에서보다 더 길다.



영계는 무한히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결하며 정돈된 곳이지.

그곳에는 죽은 별이나 황폐한 땅도 없으며, 지구상의 오점들인 잡초나 박테리아나 해충이나 뱀들도 없다.

영계는 지구의 변덕스런 기후나 계절과 달리 영원한 봄으로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때로 하얗게 빛나는 눈이 오거나 여러 가지 빛깔의 비가 내리기도 한다.

또 영계에는 오팔색 호수와 빛나는 바다, 무지갯빛 강들이 많다.



보다 미묘한 영계의 천상인 히라냘로카를 제외한 일반적인 영계에는

비교적 지구에서 온 수백만의 영계인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수천의 요정, 인어, 물고기, 동물, 요마, 난쟁이, 귀신, 영령들도

각각 업보에 따른 자격에 맞춰 서로 다른 영계에 살고 있다.



여러 가지 둥근 집이나 진동하는 지역이 선한 영과 악령들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

선한 영들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만 악한 영들은 제한된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땅 위에서 살며 벌레는 땅 속에서, 물고기는 물 속에서, 새는 하늘에서 산다.

이렇게 여러 등급의 영계 존재들이 적당한 진동 지역에 배당되는 것이다.



다른 세계로부터 추방된 타락한 검은 천사들 간에는

생명자 폭탄이나 정신적인 만트라 진동 광선을 사용하는 전쟁이 일어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악업을 갚으면서 더 낮은 영계의 어둠침침하고 축축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영계의 어두운 감옥 위에 있는 넓은 지역들은 모두 밝고 아름답다.

영계는 지구보다, 신의 의지와 완성의 계획에 더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영계의 모든 대상은 우선적으로 신의 의지에 따라 현현顯現되고,

다음에 부분적으로 영계인들이 요구하는 의지에 따른다.



그들은 주님이 이미 창조한 어떤 형태나 아름다움을 고쳐서

더 고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분은 영계에 있는 자녀들에게 의지대로 영계를 변화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는 자유와 특권을 주었다.



지구에서는 고체가 자연적인 혹은 화학적인 절차들을 통해서만 액체나 다른 형태고 변화하지만

영계의 고체는 단지 주민들의 의지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액체, 기체 혹은 에너지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구는 바다에서, 육지에서, 또 하늘에서 전쟁과 살인으로 검게 얼룩져 있지만,

영계는 행복한 조화와 평등을 지니고 있다.



영계의 존재들은 자신의 형태를 마음대로 나타나게 할 수도 있고 또 없어지게 할 수도 있다.

꽃들과 물고기들, 짐승들이 잠시 영계의 인간의 모습으로 몸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영계의 모든 존재들은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쉽게 사귈 수 있다.



이렇듯이 절대적이 아니며 유동적인 자연 법칙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예를 들어 영계의 어떤 나무는 요구에 따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업보에 따른 제약이 있긴 하지만  영계에서 여러 형태를 바랄 수 있다는 점에는 구별이 없다.

모든 것이 신의 창조의 빛으로 진동한다.

아무도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또한 영계인들은 우주 의지의 도움으로 영적으로 응축된 특별한 형태의 자손들을 구현해 낸다.

최근에 육체를 떠난 존재들은 비슷한 정신적 영적 경향에 이끌린 영계의 한 가족에게로 초대된다.

영계의 신체는 추위나 더위, 혹은 다른 자연 조건에 지배되지 않는다.

신체 조직은 영적인 뇌, 즉 수천 개의 꽃잎을 가진 빛의 연꽃과

수슘나에 있는 여섯 개의 각성 중심들, 즉 영적인 뇌척수 축으로 구성된다.

심장은 영적인 뇌로부터 우주 에너지와 빛을 받아서,

영적인 신경과 신체 세포 혹은 생명자로 펌프질해 보낸다.



영계인들은 생명자의 힘이나 신성한 만트라 진동에 의해서 그들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영적인 신체는 예전의 물리적 신체와 똑같다.

영계인의 얼굴과 몸매는 지상에 체류했을 때의 젊은 시절 모습과 같다.

때로 어떤 사람은 나같이 노년의 모습을 지니겠다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며 바로 젊음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는 스승은 즐겁게 껄껄 웃으셨다.



“오직 오감五感에 의해서만 지각하는, 공간적이고 3차원적인 물질세계와 달리

영계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육감, 즉 직관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이다.

모든 영계인들은 순전히 직관적인 감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진다.

그들은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둘은 부분적으로 감겨져 있다.

가장 중요한 영적 눈인 제3의 눈은 이마 위에 수직으로 놓여 있고 열려 있다.



영계인들도 외적인 감각 기관, 즉, 눈, 귀, 코, 혀, 피부, 등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들은 직관을 사용해서 신체 어떤 부위에 의해서든지 감각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귀를 통해서도 볼 수 있고, 코나 피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또 눈이나 혀에 의해서도 들을 수 있으며 귀나 피부에 의해서도 맛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물리적 신체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상처를 입거나 불구가 된다.

그러나 천상의 영적 신체는 때로 잘리거나 흠이 생기기는 해도 의지만으로 곧 치료된다.”



“구루지, 영계인들은 아름답습니까?”



“영계에서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영혼의 질에 있다.

그러므로 영계인들은 얼굴 모습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대로 새롭고 다채롭게 영적으로 현현된 신체로 꾸밀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속세의 인간이 축제를 위해 새 옷을 입듯이 영계인들도 특별히 의도한 형태로 자신을 꾸며야 할 때가 있다.



한 인간이 영적인 진전을 얻음으로써 들어갈 준비가 되었을 때는,

히라냘로카 같이 높은 영계에서 즐거운 영계의 축제가 벌어진다.

그런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천상 아버지와, 그 분과 합일된 성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 몸을 현현시켜 축제에 같이 참가하게 된다.



주님은 당신께 귀의한 사랑스런 이가 원하는 영상을 취한다.

그 귀의자가 헌신을 통해서 경배했다면 그는 신을 성모의 형상으로 보게 된다.

예수에게는, 무한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다른 어떤 개념보다도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즉 창조주가 그의 피조물에게 준 개성에 따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주님께,

있을 법한, 혹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요구를 모두 하는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께서는 계속해서 플루트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른 생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영계에서도 서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우정의 영원함을 기뻐하면서 지상에서 슬픈 가짜 이별을 할

때때로 의심했던 사랑의 불멸성을 깨닫게 된다.



영계인의 직관은 장막을 꿰뚫고서 지상의 인간 행동들을 관찰한다.

그러나 인간은 육감이 어느 정도 발달하지 않는 한 영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지구인들은 영계인이나 영계를 순간적으로나마 얼핏 볼 수 있었다.



히라냘로카에 있는 진보한 존재들은 대개 영계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법열 상태로 깨어 있으면서, 영계를 관리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거나,

방탕한 아들들, 속세에 매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한다.

한편 히라냘로카의 존재들이 잠잘 때에는 때로 꿈같은 영계의 환시를 본다.

그들의 마음은 대개 최고의 단계인 니르비칼파의 기쁨을 의식하는 상태에 열중해 있다.



영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히라냘로카 같은 영계에 사는 높은 단계의 존재들은 예민한 마음으로 인해

행동이나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 잘못이 있으면 날카로운 고통을 겪는다.

이 진보한 존재들은 모든 행동과 생각을 완전한 영적 법칙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영계의 주민들 간의 대화는 완전히 영적인 텔레파시와 초시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상인들이 겪어야 하는 글과 말의 혼동이나 오해는 없다.

영화 장면 속의 사람들이 일련의 광선 사진들을 통해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영계인들도 산소에서 힘을 얻을 필요 없이 지혜롭게 이끌어지고

종합되는 빛의 영상들처럼 걷고 일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고체, 액체, 기체, 에너지 등에 의존하지만

영계인은 주로 우주의 빛으로 산다.”



“구루이시여, 영계인들도 음식을 먹습니까?”



나는 모든 감수성, 즉 정신, 마음, 영혼을 총동원해서 이 놀라운 설명을 흡수하고 있었다.

인식을 초월한 진리의 지각은 영원히 진실하며 변함없지만, 스쳐가는 감각적 경험이나 인상은

일시적인 혹은 상대적인 진리일 뿐이라서 곧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게 된다.

구루의 말은 내 존재의 양피지 위에 너무 강력하게 기록되어서,

언제든지 내 마음을 초의식적 상태로 바꿈으로서 성스러운 경험을 명확히 다시 체험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빛나는 광선 같은 채소들이 영계에는 많다. 그래서 영계인들은 채소를 먹고,

찬란한 빛의 샘과 영계의 실개천이나 강에서 흘러나오는 감로수를 마시고 산다.

마치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영상이 창공을 뚫고 가서 텔레비전 수상기에 보이게 되고

나중에는 다시 공중으로 송신되듯이 신이 창조한 영계의 보이지 않는 채소와 식물들은

하늘에 떠 있다가 그들의 주민이 원하면 영계로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무모한 공상에서 향기로운 꽃들이 있는 정원 전체가 실현되고

나중에 다시 하늘로 보이지 않게 돌아간다.

그러나 히라냘로카와 같은 신성한 영계의 주민들은 먹는 욕구에서 거의 해방되어 있지만,

(지복의 만나만을 먹는) 거의 완전하게 모든 조건을 벗어 던진 인과율적 세계의 영혼들이

더 높은 단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상에서 해방된 영계의 존재들은 시간에 따라 지상에서 여러 번 태어나는 동안 알았던

수많은 친척, 부모, 아내, 남편, 친구 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누구를 특별히 사랑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모두가 신의 자녀이며 개별적 표상이라고 여기게 되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신성한 사랑을 베풀 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외모가 그 영혼의 최근 생애에서 계발된 새로운 자질 때문에 다소 변했을지라도,

영계의 존재들은 실수하지 않는 직관으로 그들 모두가 한 번은 다른 존재세계에서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새로운 영계의 집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

모든 원자는 창조될 때 어쩔 수 없이 개성을 부여받기 때문에

영계의 친구는 그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지상에서 한 배우의 개성이 어떤 가면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계에서의 일생은 지상에서 보다 훨씬 길다.

보통 수준의 영계인이 갖는 평균 수명은 지상의 시간 기준으로 쳐서 500~1,000년 정도이다.

어떤 삼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더 살고, 어떤 요기들이 60~70세 경에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수백 년 사는 것처럼, 어떤 영계인들은 다른 이들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영계의 방문자들은 그 육체적 업보의 과중에 따라 오래 혹은  짧게 산후에,

업보에 따라 명시된 시간 안에 지상으로 다시 쫓겨 간다.



영계인은 그 빛나는 몸을 벗을 때 고통스럽게 죽음과 겨루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영적인 형체를 벗고 미묘한 근원적 형체를 입으려는 생각에 약간 초조해한다.



영계는 원하지 않는 죽음이나 병, 노화로부터 자유스럽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공포는 지상의 저주여서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항상 공기, 음식, 수면 등으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육체와 자신의 의식을 거의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육체적 죽음에는 숨이 멈추는 것과 신체 세포의 분해가 동반된다.

영계의 죽음은 생명자, 즉 영계인의 생명을 이루는 명백한 에너지 단위의 분산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적으로 죽은 존재는 육체의 의식을 잃은 후 영계에 있는 자신의 미묘한 형태를 깨닫게 된다.

또 정해진 시간에 영계의 죽음을 겪음으로써 영계의 생과 사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육체적 생과 사에 대한 의식으로 넘어간다.



영적인 현현과 육체적 현현의 계속적인 이런 순환은,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경전에 쓰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정의들은 때로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일련의 오랜 기간 동안 즐거운 영계와 실망스런 지상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무의식보다도 더 깊은 기억 속에서 생각나게 한다.”



내가 요청했다. “사랑하는 스승님,

지상에 재생하는 것과 영계나 인과율적 세계에 재생하는 것과의 차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개체화된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과율적 신체를 지니고 있다.”



구루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그 몸은 신이 근본적 사고력으로 요구하는 서른다섯 가지 상념들의 총체인데,

신은 나중에 이것들 중에서 열아홉 개 요소로 예민한 영적인 신체를 만들고,

열여섯 개 요소로 거친 물리적 신체를 만들었다.



영적인 신체를 이루는 열아홉 가지 요소들은 정신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그리고 생명자에 관계된 것들이다. 이 열아홉 개의 성분들은

지성intelligence, 자아ego, 감정feeling, 정신mind (sense-consciousness)과,

지식의 다섯 가지 도구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해당하는 예민한 도구), 그리고

행위의 다섯 가지 도구 (즉 출산하고, 배설하고, 말하고, 걷고, 수공 기술을 발휘하는 일 등에 해당하는 정신적 도구),

생명력의 다섯 가지 도구 (즉 고정시키고, 동화시키고, 제거하고, 변형시키고, 순화시키는

신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 등이다.



이런 열아홉 가지 요소를 지닌 예민한 영적 신체는,

거친 열여섯 가지의 화학적 성분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신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다.



신은 자신의 내부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내서 그것들을 꿈으로 투영해 낸다.

영적 요소와 열여섯 가지 물리적 요소로 이루어진 모든 복합체를 만들어 냈다.



즉 처음에는 예민했다가 나중에는 거칠어지는 진동력의 응축을 통해 신은 인간의 영적인 신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극도의 단순성이 놀랄 만큼 복잡해지는 상대성의 법칙에 따라,

인과율적 우주나 신체는 영적인 우주나 영적인 신체와 다르고,

마찬가지로 물리적 우주나 물리적 신체는 다른 형태의 창조물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살로 된 육체는 창조주의 확실하고 구체적인 꿈들로 만들어진다.



지상에는 이중성이 항상 존재한다.

즉 질병과 건강, 고통과 기쁨, 잃음과 얻음 등이다.



인간은 3차원적인 것에서 한계와 저항이 심한 위협을 받으면

죽음이 다가와서 육신이라는 무거운 옷을 일시적으로 벗게 된다.

그러나 영혼은 아직도 영적인 신체와 인과율적 신체 속에 들어 있다.



세 가지의 몸이 모두 함께 모일 수 있게 하는 결합력은 욕구이다.

인간의 모든 속박 상태는 성취되지 않는 욕구에 기인한다.



육체적 욕구는 이기주의와 감각적 즐거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각적 경험의 충동이나 유혹이 영적인 애착이나 근원적 인식과 관련된 욕구보다 더 강하다.



영적인 욕구는 진동에 의한 즐거움을 중심으로 한다.

영계인들은 영계의 천상의 음악을 즐기며, 변화하는 빛이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모습을 보고 황홀해한다. 또 영계인들은 빛을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욕구는 모든 대상과 경험들을 빛의 형태 혹은 응축된 생각이나 꿈으로 만들어 버리는

영계인들의 능력과 관계가 있다.



인과율적 욕구는 오직 인식에 의해서만 성취된다.

오직 인과율적 신체만을 입고 있으며 거의 완전히 자유로운 이 존재들은

전 우주를 신의 생각과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순수한 생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근원적 인간들은 물리적 감각이나 영적 기쁨의 즐거움을,

인간의 훌륭한 감성에 있어서는 천하고 답답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과율적 인간들은 자신의 욕구를 즉각 실현시킴으로써 그 욕구를 해결한다.

자신이 얇은 베일 같은 인과율의 몸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존재들은

창조주와 같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우주적 꿈으로 짜여진 것이기 때문에

얇은 인과율적 신체만을 갖고 있는 영혼은 막강한 실현 능력을 갖는 것이다.



영혼은 본질상 볼 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신체에 의해서만 구별될 수 있다.

어떤 한 종류의 신체가 있다는 것은, 성취되지 않은 욕구들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혼이 무지와 욕망이라는 마개로 단단히 밀봉된 하나, 둘, 혹은 세 개의

신체 용기 속에 들어가 있는 한 그는 성령의 바다에 합일될 수 없다.



천한 물리적 그릇이 죽음이라는 망치로 깨어져도 다른 두 개의 그릇,

즉 영적인 그릇과 인과율적인 그릇은 그대로 남아, 영혼이 의식적으로 편재하는 삶과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지혜로써 무욕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그 힘이 남아 있는 두 개의 그릇을 깨뜨릴 수 있다.

그러면 마침내 자그마한 인간의 영혼이 빠져 나와서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성스러운 구루께 고귀하고 신비로운 근원적 세계에 대해 좀더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인과율적 세계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곳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광대하며 마치 딱딱한 바구니를 매달은 빛나는 풍선 같은 영계와

물리적 세계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굉장한 집중력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초인적 집중력으로 아주 복잡한 그 두 세계를 순수한 사고로 변화 또는 환원시킬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인과율적 세계에 도달하여 정신과 물질이 용해되는 경계선에 서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창조된 모든 물체, 고체, 액체, 기체, 전기, 에너지, 모든 존재들,

인간, 짐승, 식물, 박테리아 들을 순수한 의식의 형태로서 인식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눈을 감았을 때 육체적 눈에는 그의 육체가 보이지 않고

단지 생각으로만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인과율적 존재는 인간이 공상 속에서 하는 일을 무엇이나 실제로 할 수 있다.

가장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인간의 지성은 오직 정신력으로 극단에서 극단에 이르는 생각을 전개할 수 있으며,

또 정신력으로 한 항성에서 다른 항성으로 건너뛰거나 영원한 구렁으로 끝없이 빠져들 수 있으며,

로켓처럼 은하계를 날을 수 있으며, 탐조등처럼 우윳빛 자국을 남기며 별이 총총한 하늘에서 불꽃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과율적 세계의 존재들은 이보다 훨씬 큰 자유를 지니고 있어서

애쓰지 않고도 어떤 물질적, 영적 방해나 업보에 따른 한계를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즉시 객관적인 대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



인과율적 존재들은, 물리적 세계가 주로 전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영계도 근본적으로 생명자로 구성된 것이 아님을 안다.

실제로 이 둘은, 피조물을 창조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방해하는 상대성의 법칙,

즉 마야에 의해 잘리고 나누어져서 아주 작은 부스러기가 된 신의 사고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인과율적 세계의 영혼들은 서로를 기쁨의 성령이 개체화된 각각의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사고만이 그들 주위에 있는 대상이다. 그들은 몸과 사고의 차이가 단지 관념임을 알고 있다.

인간이 눈을 감으면 눈부신 하얀빛이나 희미한 푸른색 아지랑이를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사고에 의해서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정신의 힘으로 어떤 것을 창조하거나 분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과율적 세계에서의 죽음과 재생은 생각 안에 있다.

인과율적 신체를 지닌 인간들은 오직 영원히 새로운 지혜의 음식으로 잔치를 즐긴다.

그들은 평화의 샘물에서 물을 마시며,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인식의 땅을 밟고 다니며,

끝없는 기쁨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보라! 그들의 빛나는 생각의 몸체가 성령이 창조한 수많은 항성을 지나고,

새로 생긴 세계들의 신선한 거품들과 지혜의 별들을 지나서,

무한한 하늘의 가슴에 그려진 황금빛 성운의 신기한 환성을 넘어 날아가는 광경을!



많은 존재들이 인과율의 세계에 수천 년 동안 남아 있게 된다.

보다 심오한 법열의 경지에 의해 자유로워진 영혼은

이제 조그마한 신체로부터 자신을 끌어내서 우주의 광대함을 지니게 된다.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 사랑, 기쁨, 평화, 직관, 평온, 자기 통제, 집중력 등의 물결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가 영원히 즐거운 지복의 바다로 함께 녹아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영혼은 따로따로 흘러드는 의식의 물결로 기쁨을 느낄 필요가 없이,

그 모든 물결들을 포용한 하나의 우주 대양으로  몰입된다.

영원한 웃음을 지닌 그 바다로!



한 영혼이 세 개의 몸으로 된 덮개에서 벗어나면,

그는 영원히 상대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한 불멸의 존재가 된다.



별과 달과 해로 꾸며진 날개를 가진 나비 같은 편재의 전능자를 보라!

성령으로 발전된 그 영혼은 어두운 빛, 어둡지 않은 어둠, 생각이 아닌 생각이 존재하는 곳에

홀로 우주 창조의 꿈속에 법열의 기쁨으로 젖어들어 있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여!”

나는 경외의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스승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한 영혼이 마침내 세 가지 신체적 미혹의 항아리들을 제거하면, 개성을 잃지 않고 무한자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는 예수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 마지막 자유를 얻었다.

지상에서 겪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사흘로 상징되는 과거의 세 단체들을 통해

그는 완전히 성령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던 것이다.



발달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세 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지상과 영계의 인과율계의 윤회를 겪어야만 한다.



이 궁극적 자유를 얻은 초인은 다른 인간들을 신께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예언자로서 지상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있고, 나처럼 영계에 남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구원자는 지상에서 사람들의 업보의 짐을 얼마만큼 떠맡아서

영계에서 윤회의 순환을 마치고 영원히 인과율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혹은 어떤 자유로운 영혼은 인과율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곳의 존재들이

몸을 입고 있는 기간을 단축하고 그럼으로써 절대적 자유를 획득하도록 돕는다.”



“부활한 자이시여,

영혼으로 하여금 다시 세 가지 세계로 돌아오도록 하는 업보에 대해서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전능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영원히 귀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상에 계실 때는 결코 한 번에 이처럼 많은 그 분의 지혜를 소화시킬 수는 없었다.

이제 처음으로, 생과 사라는 장기판 위에 있는 불가사의한 공간들에 대해서

명확하고 정확한 통찰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스승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셨다.



“인간이 영계에 계속해서 머무르려면

그 전에 물리적 업보 내지 욕망이 완전히 해결되어야만 한다.



영계에는 두 종류의 존재들이 있다. 즉, 아직 해결해야 할 지상의 업보를 갖고 있으므로

그 업보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다시 천한 물리적 신체를 입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후에, 고정적인 거주자들과는 달리 일시적인 영계의 방문자로 분류된다.



지상의 업을 속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계의 죽음 이후에 우주 사고의 근원세계로 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열여섯 가지의 거친 요소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신체와 열아홉 가지 미묘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적인 신체를 의식하면서 물리적 세계와 영계만을 왔다 갔다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 발달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매번 육체적 죽음을 당할 때마다

죽음의 혼수상태에 빠져서 아름다운 영계의 모습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영계에서 머문 후에 다시 좀더 교육받기 위해 물질세계로 돌아가는데,

이처럼 반복된 여행을 통해서 미묘한 영적 구조를 가진 그 세계에 점점 익숙해진다.



반면에 영계에 오래 거주하는 보통 거주자들은 모든 물질적 욕구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어서

더 이상 거칠게 진동하는 지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존재들은 영계의 업과 근원계의 업만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후에 무한히 섬세하고 정교한 근원계로 간다.



우주 법칙에 의해 결정된 기간이 끝난 후에 이들 진보된 존재들은

히라냘로카나 비슷한 단계의 영계에 돌아와서

아직 속죄하지 못한 영적 업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적 몸으로 태어난다.”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 아들아, 이제 내가 신성한 신의 섭리에 의해서 지상으로부터 오는 자들보다

특별히 근원계에서 다시 영계로 윤회해 오는 자들을 위해서

구원자 역할을 하려고 부활했다는 것을 좀더 잘 이해하겠지.

지상에서 오는 자들이 아직도 물질적 업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면

히라냘로카 같이 고귀한 영계로 오르지 못한다.



지상의 사람들이 대부분 명상으로 얻는 환시를 통하여 고상한 기쁨을 즐기고

영계 생활의 이점을 상상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죽은 뒤에도 다시 제한되고 불완전한 지상의 즐거움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듯이

많은 영계인들도 자신의 영적인 몸이 분해 되는 동안 인과율 세계의 진보된 기쁨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조잡하고 저속한 영계의 행복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영계의 천국을 방문하기를 갈망한다.



그런 자들은 무거운 영적 업을 속죄해야만, 영적인 죽음을 겪은 후에

창조주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근원적 사고의 세계에 완전히 머물 수 있다.

눈에만 즐거운 영계의 경험을 더 원하지 않아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근원계에 머무르게  된다.



근원계에서 모든 근원적 업과 과거 욕망의 씨앗들을 속죄하는 일이 끝나면,

갇혔던 그 영혼은 세 개의 무지의 마개 중에서 마지막 것을 던져 버리고

근원적 신체라는 마지막 병에서 빠져나와 신과 합일을 이룬다.



이제 이해하겠느냐?”



그때 스승의 미소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던지!

네! 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과연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노래나 이야기에서도 이처럼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지식을 얻은 적이 없었다.

힌두교 경전들이 인과율 세계와 영계 그리고 인간의 세 가지 신체에 대해서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 글들은 부활하신 우리 스승님의 말씀에 나타난 따뜻한 확실성과 비교해서 얼마나 궁벽하고 의미 없는 것들인가!

그 말씀에는 어떤 여행자도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발견되지 않는 곳이 정말로 전혀 없었다.

스승은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인간의 세 가지 신체들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그의 3중적 성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지상에서 방심하지 않고 있을 때는 세 가지 신체를 어느 정도 의식한다.

그가 감각적으로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듣고, 보는 일에 열중할 때는

주로 물리적 신체를 통해서 일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려 보거나 의지력을 행사하는 것은 주로 영적인 신체를 통해 일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거나 깊은 내성 내지 명상으로 빠져들 때는 근원적 신체가 표현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근원적 신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는 우주적 사고 정신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개인은 넓게 물질적 인간이나 에너지적 인간 그리고 지성적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인간은 매일 열여섯 시간가량 자신이 물리적 신체와 같음을 확인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어서 꿈을 꾸면,

영계인들 처럼 어려움 없이 어떤 대상을 창조할 수 있는 영적 신체로 있게 된다.

그러나 잠이 깊이 들어서 꿈도 꾸지 않으면, 그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의식 내지는

나라는 감각을 근원적 신체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잠은 원기를 돋우는 것이다.

꿈을 꾸면 그의 근원적 몸이 아니라 영적 접촉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잠은 완전히 유쾌한 것은 아니다.”



스리 유크테스와르가 놀라운 설명을 하고 있는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와 같은 스승님,

당신의 몸은 제가 푸리 암자에서 엎드려서 울고 있던 그때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군요.”



“그렇다, 새로운 모습은 노년의 내 모습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나는 지상에서 그랬던 것보다 훨씬 자주, 언제든지 마음대로 이 모습을 형상화 시키기거나 없애거나 한다.

또 이제 재빨리 몸의 형상을 분해함으로써 빛의 기차를 타고 한 항성에서 다른 항성으로

혹은 더 나아가서 영계에서 인과율의 세계나 물리 세계로 즉시 여행할 수 있다.”



성스러운 나의 구루는 미소를 지으셨다.

“오, 이제 보니 저는 스승님의 죽음에 대해 쓸데없는 슬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죽었단 말이냐?”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두 눈은 애정과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는 지상에서 단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고, 지상에서 네가 보았던 내 몸도 꿈일 뿐이다.

너는 그 꿈의 영상을 매장한 것일 뿐이다.

이제 더 훌륭한 꿈의 세계에 부활 한 것이다.

지금 네가 그것을 보고 있고 또 이렇게 꼭 껴안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언젠가는 이 훌륭한 환상의 육신과 환상의 세계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들 모두가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환상의 거품들은 결국 꿈을 깨는 마지막 손길에 의해 꺼지고 만다.

나의 아들 요가난다야, 꿈과 현실을 구별해야 한다.!”



<베다>에 나타나는, 부활을 대한 이런 생각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푸리에서 생명이 없는 그 육신을 보았을 때 연민을 느꼈던 것이 부끄러웠다.

마침내 나는, 구루가 항상 완전하게 신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지상에서의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의 부활까지도 모두 우주의 꿈속에 있는

신성한 생각들의 상대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이해하였다.



“요가난다여, 이제 너에게 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진실들을 모두 다 말해 주었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오히려 인간들의 지상 세계로부터 또 다른 신의 꿈의 세계인

영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나의 부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불행으로 고통 받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이 스며들 것이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의 부활을 목격한 기쁨을 왜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하지 않겠는가!



“지상에서 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곤란할 정도로 높아서 대개 사람들의 성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때로 내가 해야 할 정도보다 더 심하게 너를 꾸짖기도 했었다. 그러나 너는 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너의 사랑이 모든 꾸짖음의 구름을 뚫고 해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오늘 또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결코 다시 책망하는 무서운 눈초리로 너를 보지 않겠다.

이제는 더 이상 너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스승의 꾸중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모든 꾸중들이 나를 보호해 주는 수호 천사였는데!

다정하신 스승님 천만 번이라도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꾸짖지 않겠다.”

스승의 성스러운 목소리는 엄숙했지만 웃음을 밑에 깔고 있었다.



“우리의 두 형태가 신의 환상(마야)속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한, 너와 나는 함께 미소 지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가 사랑하는 우주의 신과 합일되면 우리의 미소는 그 분의 미소가 될 것이며

합치된 기쁨의 노래는 영원히 진동하며 신과 조화를 이룬 영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께서는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도 암시를 해 주셨다.

봄베이 호텔 방에서 함께 보낸 두 시간 동안 스승께서는 나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1936년 6월의 그날에 그가 세상에 대해 예언했던 수많은 사실들이 이미 사실로 실현되어 지나갔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 나는 너를 떠난다!”

이 말에 나는 껴안고 있는 내 팔 안에서 스승의 육신이 녹아 버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며 내 영혼의 하늘로 진동해 왔다.



“내 아들아, 네가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문을 들어서서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오늘처럼 살과 피로 이루어진 몸으로 너에게 올 것이다.”



이 거룩한 약속을 남기고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름 같은 목소리가 천둥의 음악이 되어 되풀이 되었다.



“모두에게 말하라!

니르비칼파의 깨달음에 의해, 지상이 한갓 신의 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히라냘로카라는 더 정교한 꿈의 세계로 올 수 있으며,

그곳에서 지상의 육체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한 나를 발견할 것이라는 사실을.

요가난다여,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라!”



이별의 슬픔은 사라졌다.

오랫동안 평온을 빼앗았던 스승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연민도 이제는 부끄러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복의 기쁨이 새로 열린 무한한 영혼의 숨구멍들을 통해 샘처럼 솟아났다.

과거에는 쓰지 않았던 막혔던 구멍들이 이제는 밀려오는 법열의 물결로 깨끗하게 넓혀졌다.

내 전생들이 활동사진의 장면들처럼 내면의 시야에 나타났다.

과거의 선한 업과 악한 업이 스승의 방문에 의해 내 주위를 비추는 우주의 빛으로 스러졌다.



(끝)



이 글은 정태호가 수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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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난다 (43장 스승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활)



위대한 성자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챕터라고 생각되는 43장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활> 부분을 원문에서 가져왔다. 이 챕터는 생과사의 비밀과 영계의 모습, 우리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욕망의 원인 등 아주 중요한 내용이 실려있다. 국내에도 발간된 서적이 있으나 이부분은 단어 하나에도 극히 정밀한 의미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원문을 찾아왔고, 중간중간 나름대로 원어에 맞추어 해석을 해보는 중이다.



여기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은 3가지 차원이 있게 된다. 그리고 스리 유크테스와르가 (world, cosmos)-(sphere, planet)라는 단어를 구분하고 단,복수를 구분함으로서 영계라는 말은 astral cosmos, astral world로 표현되고 여기에 포함되는 행성들은 astral planets 이런식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영계란 단순히 1개의 세상으로 된 우리식으로 "저승" 이런식 개념이 아니고 지금 물질계의 우주처럼 거대한 정신적인 우주가 있다는 말이다.



<causal world> - 인과율적 세상 (역시 각각의 별들이 있다. 아주 고차원적인 세상)



<astral world> - 영적 세상 (각각의 개성과 업보에 따른 영적인 별들이 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일반적인 영계와 히라냘로카가 있으며 히라냘로카는 영계의 천상이라고 불린다. 영계에서 가장 진보된 존재들이 있으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계에서 수련을 하거나 물리적 세상에서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상태에서 의식적인 죽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phisical world> - 물리적 세상 (지구; 다른 별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영계의 모습과 인과율적 세상을 보아 있을거라 추측된다.)



세상은 이렇게 3가지로 나뉘어지고 각각의 세상에는 존재들이 각 세상에 맞는 몸을 가지고 있는데 물리적 몸, 영적인 몸, 인과율적인 몸 이렇게 구분된다. 이러한 몸은 우리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카르마(업)를 모두 소멸해서 3가지의 몸을 다 없애면 근원적인 존재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지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위치는 물리적 세상에 위치해 있으며 3가지 몸을 다가지고 있는 상태고, 해야 할 일은 명상, 단학 등 정신수련으로 고도의 삼매상태에서 죽어서 히라냘로카에 드는것이 인생의 과업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승들이 가끔 잘하고 있다 앉아서 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