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우리가 기다리는 미륵부처님




56억7천만년 후에 오실 미래의 부처님을 미륵불이라 한다.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56억7000만년이 지나면 우리가 사는 세계로 오신다는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현재 도솔천에 머물고 계신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까지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분입니다.

미륵부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뒤덮여 있고, 인간의 수명은 팔만사천세가 되며, 모든 사람이 기쁨과 평온함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는 모든 생명에게 희망을 의미합니다.

사찰에서 미륵부처님을 모신 곳이 많은데, 이 전각을 미륵전이라고 합니다. 또 용화전이라고도 부르며,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모신다고 해서 장육전이라고도 합니다. 법당 안에는 도솔천에서 설법중인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하며, 용화수 아래에서 3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의 용화회상도를 후불탱화로 봉안합니다

         
모든 중생의 희망인 미륵은 어떤 분이신가? 원효대사께서는 미륵상생경종요(彌勒上生經宗要)에서 “무릇 미륵보살의 존재는 그 수행한 시간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릴 수 없고 그 공덕의 깊고 얕음을 측량하지 못한다. 시간적으로 비롯함도 없고 마지막도 없으며, 그 공덕은 마음도 아니며 물질도 아니면서 천지가 능히 실을 수 없고, 우주가 능히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성인이 일찍이 그 한계를 엿보지 못하고 일곱 가지 변재로 족히 그 궁극의 경지를 말할 수 없도다. 이 미륵보살은 우리말로 ‘자씨각사(慈氏覺士)’이니 현겁천불(賢劫千佛) 가운데 제5여래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셨다.

미륵은 범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로 한자로 미륵이라 음역하고 그 뜻은 ‘자비하신 어머니’라 하여 예불 시에 ‘자씨 미륵존 여래불’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에 이 사바세계에 오실 부처님으로 현재는 욕계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에 머무르시며 인간세계에 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신다고 한다. 그러나 오시고 싶어 하시는 부처님께서 오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륵하생경>에 보면 미륵불이 오실 때의 중생들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물은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인구가 번창하며 사시 계절이 순조로워서 백여덟 가지 질병이 없고 탐 진 치가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 마음도 평화롭고 뜻이 통하여 서로가 즐거워한다”고 경전은 말한다.

지금이 미륵불이 올 시기인지는 우리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부처님은 중생의 원에 의하여 나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과연 미륵불을 맞이할 중생들의 마음가짐이 되어있는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상향의 세계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였고 미륵부처님이 빨리 오시기를 기원하는 바가 너무나 컸다. 동네의 이름에서 산천에 이르기까지 미륵의 이름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미륵골, 미륵댕이, 미륵당, 미륵리, 미륵산, 미륵내 등등 길거리에도, 불당에도, 나무 밑에도, 바위틈에도 모든 형상의 부처님은 모두다 미륵불이라 불러 부처님을 일반화 시켜왔다.

또한 전쟁과 질병, 굶주림이 영원히 사라지는 미륵의 세계, 즉 용화세계를 이 땅에 실현시키고자 무진 애를 써 왔다.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군주의 카리스마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조상들이 바라는 미륵의 세계는 너무나 절실하였다. 고통과 죽음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백성들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는 미륵불의 모습은 어떠할까? 먼저 큰 부처님을 조성한다. 미륵불의 크기가 장육존상(4.8m)으로 큰 이유를 <미륵성불경>에 보면 “그때 미륵부처님이 기사굴산 낭적산 마루에 올라 기사굴산을 손으로 쪼개어 두 쪽으로 열자 마하가섭이 멸진정(滅盡定)으로부터 깨어나 장궤합장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를 미륵부처님께 올렸다.

이때 대중들은 ‘어찌하여 이 세상에 사람 머리를 가진 버러지가 이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추하고 작은 몸에다 사문의 옷을 입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는가’라며 궁금해 했다. 이어 미륵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람을 그렇게 가볍게 보지 말라’꾸짖으시고 ‘가섭존자는 고행 닦기로 제일이다.



밤낮으로 정진하기를 머리에 타는 불 끄듯 하였고, 가난하고 천한 중생들을 언제나 불쌍히 여겨서 행복하게 제도하여준 거룩한 존자로서 다만 법을 위하여 아직까지 머물러 있느니라. 온 대중들이 모두 가섭에게 예경을 하였다. 그때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를 받아서 오른손에 놓으니 겨우 두 손가락을 가릴 정도여서 모든 대중들이 괴이하게 여기자 미륵부처님은 ‘먼저 부처님의 몸이 저렇게 작았음은 다 그대 중생들의 업이 혼탁하고 교만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은 미륵부처님이 크신 이유를 잘 알려주고 있으며 미륵도량인 보은 법주사에는 특이한 조형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미륵부처님께 바치려고 머리위에 잘 포개서 접어 얹은 가사와 연꽃으로 표현된 발우를 두 손으로 들고 서있는 가섭존자의 모습이 작게 묘사되어 속히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꿈꾸는 조상들의 간절한 염원이 남아 있다. 또한 양산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봉안한 봉발대를 두고 있어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부처님을 혼탁한 사바세계에 빨리 오시도록 맞이하고자 하는 중생들의 바람을 담고 있어 해학적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결가부좌를 하는데 비하여 미륵부처님의 모습은 파격적이다. 미륵부처님은 의자에 앉으시거나 쪼그려 앉으시는 독특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옛날 경주 남산 삼화령에 계셨던 경주박물관의 미륵부처님도 쪼그려 앉으셨고, 법주사의 바위에 새겨진 미륵부처님도 그렇다.

왜 그러하실까? 선정인의 결가부좌는 빨리 중생에게 오시기에 불편한 자세이다. 한시라도 급한 마음에 쪼그리고 앉아계신 미륵부처님을 조성하여 빨리 일어나 중생의 고통을 소멸하고 평화로운 삶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아니 오신다면 미륵부처님의 등이라도 떠밀어서라도 모시고 싶은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있어 해학적이다.

또한 예산 삽교 신리에 있는 서있는 미륵부처님은 중생이 부처님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를 해학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어 이채롭다.

혹시나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 다리라도 아프셔서 안 오시면 어쩌나 중생의 걱정은 태산이다. 미리 다리가 불편하시지 않도록 먼 길 오시더라도 힘드시지 않게 손에 지팡이라도 쥐어드리면 괜찮을까?

여러 궁리 끝에 결심을 하고 미륵부처님께 멋지고 긴 지팡이를 선물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이 자리에 미륵부처님이 오셔서 중생의 고통을 말끔히 치유해주신다고 믿고 있는 조상님들의 순수성에 감동을 한다.

부처님에게 지팡이라도 드려서 빨리 오시게 하는 열정은 우리조상님들만이 할 수 있는 신앙심이리라. 너무나 순수한 해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러한 조형을 통하여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부처님이 빨리 사바로 오시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미륵의 세계를 조형한 조상들의 신앙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지금 어지러운 현실 속에 하루빨리 미륵부처님이 오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이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미륵불을 기다리자면 몇 생을 유전하며 윤회를 거듭하여야 할까?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시간의 개념은 자기 자신 마음의 조화라고도 한다.
옛말에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이 있다.
‘한 찰나의 순간에 세 번의 가을이 지나 간다’라는 기다림의 표현으로 1초가 3년이면 56억년도 그리 먼 훗날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