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공동창조'의 문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우주에 없다 내 머리속에 인지 되지 않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천만에 입니다.> 내 머리에 인지되지 않는 것도 나와는 무관하게 거기에 존재합니다. 내가 변한다고 그게 변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자유게시판에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나이다 내가 주인이다라는 류의 글이 올라와서 다른 의견을  첨부 하려고 함니다. 좀 길어서 여기다 올립니다.

내 책임이란것을 알면 그 일을 그만두거나 변화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할것입니다. 변화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 나만 생각하지않기 때문입니다. 님들이 환경오염으로 병들어가는 지구나 이 비인간적인 경제산업시스템이  내가 끌어온것이니 내 마음이다 내가 하는일인데 내가 만든 환상인데 뭐가 문제냐 그러니 상관하지 말고 뭐라하지 마라 이것은 하나의 환영일뿐이다...투로 말하지만 이러고 자기 중심 본위 개인수준에서 수동적으로 있는 사이 거기에 개입된 타인의 생명들이 죽어간다는 겁니다.단지 그들의 죽음이 나에게 대단한 자각을 주는 하나의 영상 역활만 하는 것으로  감사만해야 할까요? 그 고통을 내 고통처럼 같이 느끼고 눈물을 흘려주는게 정답입니다. 나에게 그런 고통스런 쇼를 보여줘서 고마워요가 아닙니다. 당신이 고마워하는 고통스런 쇼 하나를 위해서 그들은 생명을 바치었습니다. 지구도 느낌을 갖는 생명체입니다. 별들과 행성들은 삶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입니다. 항성과 행성들도 근원신에 봉사하는 자들에의해 창조되었습니다. 님들은 타인과의 만남이 나의 에너지에 대한 발견이라는 것은 자각했지만 타인을 나의 발견을 위해 이용만 하고 있을 뿐 타인을 생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사태의 심각성은 아직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주가 송두리째 멸망해도 근본에선 잘못된게 없다고 하나 잘못된게 없고 상관없다 장난같이 생각하는 것이죠. 근본에서 잘못된것은 없을지라도 여기선 잘못된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분별의 일이며  죄의식이나 공포를 느낄것이 없습니다. 악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그것이 악인줄 알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님들이 감당할수 없는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님들의 위치에 정직하게 되는것이며 크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들에 대해 걱정할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거기에 걸맞는 존재들이 매치하고 역학이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님들의 영혼시스템이 님들을 보호해 줄겁니다. 선과 악은 없다 네가 나고 내가 너다 근본에서 망해가도 잘못된게 없다 얼핏 들으면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인데 잘보면 그러하 뉴에이지성 말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간판할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서 득이 되는 세력들은 있는 겁니다.이런 메시지를 예수가 아닌 아눈나키가 말했다 했을때 그 의미는 크게 역전됩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여러분의 눈을 안온하게 가리며 수동적으로 대응하게 만들게 만듭니다.네가 나고 내가 너다? 그것은 신(근원)의 특징을 말한것이지 여기에 와 있는 우리 자리에 있는 우리의 특징을 말한게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신과 근원으롯서의 신의 위치는 다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신이지 신으로서 신이 아닙니다. 단지 신이 우리 안에 깃들어 있을 뿐이죠. 우리는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한 절차를 밟았을때 그랬을때 우리 나름의 차원에서 신이 되는 겁니다. 신을 흉내낸다고 신인척 망상에 싸인다고 신이 되는게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예수가 아누나키가 되고 아눈나키가 예수가 될수 있습니까? 아누나키라면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지마 예수라면 단호히 거부할것입니다. 그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눈나키들이 하는 말이 자신이 예수라는 겁니다. 예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눈나키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본질을 가리는 일입니다. 근원에서는 너와 내가 하나이지만 여기선 네가 되고 내가 될수 없습니다. 님들의 어린 감상어린 자비와 연민과 사랑으로는 아누나키를 당할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엔 그 댓가가 너무도 크며 당신은 그 결과를 당할수가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겪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실질적 일을 함에는 분별과 지혜와 실질적 협동이 필요한 겁니다. 너와 내가 가진 것이 서로 다릅니다. 자연에서 나와 자연에 맞게 진리에 맞게 근원신의 뜻에 맞게 사회를 이루고 무리를 이루고 질서와 조직을 사회를 이루며 삶을 사는 일을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친하지 마십시요. 그들에게 영혼(강인한 생명력)이 없는 것으로 그것은 그들이 못하는 일로 정직한 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내가 거울의 에너지 법칙으로 끌어들인 상대라 할지라도 근원에서 나온 생명이나 영혼은 환상이나 가짜가 아닙니다. 단지 서로의 자각과 발견을 위해 상대를 네 에너지에 관여할 뿐인것이죠. 그타인의 영혼은 내가 만든 환상이 아니고 근원이 만든 실체입니다. 우리가 단지 내가 만든 환상이야 내가 나의 깨달음을 위해 불러온 환상이야라고만 말하지 않고 같이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영혼이 만든 환상을 보고 있는게 아니라 근원으로 부터 나온 타인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영혼이나 생명조차도 환상이고 가짜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가 됩니다.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반생명 비생명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원에서 나온 영과 혼은 창조되었을뿐 가짜가 아닙니다. 단지 창조되었을 뿐 그 후에는 가짜가 아닙니다)

이 현실을 만든 것은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실을 어떻게 무엇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까. 왜 하필 여러분들은 이러한 현실을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것이 아니며 외부의 타의로부터 교육받은 겁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하지만 여러분이 선택해서 행하고 있는 행동이나 사고들은 전부 외부의 학습받은 겁니다. 그 배우고 있는 학습은 또한 여러분이 만든 그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나옵니다. 즉 여러분은 이 악순환의 고리로 여러분이 만든 상황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거죠. 이것의 악순환의 고리를 끝는 것이 바로 자립이고 마스터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자면 그 사고를 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원인을 자아내는 자신의 사고의 원리를 알고 다룰줄 합니다. 일부 극단적인 불교쪽에서는 마음을 비움으로서 해결을 보려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요소일뿐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저 악한 상황에서 머물기 위해 머리와 가슴를 거세한것에 불과합니다. 수동적으로만 소극적으로만 현상 유지만 하려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 플러스가 있어야 합니다. 비운것은 동시에 채워야 합니다.

자신이 왕이 되었으면 그런자는 이제 자기 위에 자기와 같은 노력으로 더 큰 왕이 된자가 존재할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뛰는자 위에 나는자가 있습니다. 상승마스터는 스스로 중심이 된 자들인데 그들도 신을 공경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승마스터들을 우리는 어둠의 스승들이라 부른 겁니다.

최초에 여러분 것이 아닌것으로 원래의 근원의 뜻에 맞았던 여러분 창조 행위를 변질 시켰던 것이,  신을 공경하지 않고 신은 없다 말하며 창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존재들의 개입이었습니다. 이것들은 근원신이 창조한게 아닙니다. 근원신이 창조했지만 그 자유의지와 창조력을 가지고서 근원신에 반란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선과 악이 근원에서 하나다 아무것도 잘못된게 없다라는 뉴에지적 소리들은 이 시점에서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데 데, 또한 사태를 호도하고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일수 있습니다. 최초의 근원신이 바라던 바가 있습니다. 이 지구를 누가 지배하는 것인지 이 지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관심도 없고 분노하지 않는 자들이 나아가 좋게만 말하는 자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자인지를 우리는 쉽게 간파할수가 있는 겁니다. .근원신은 우주가 송두리째 망해도 그 자신은 어떤 데미지를 입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눈물은 흘립니다. 이 모두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것은 근원이 바라는 일은 아닙니다. 근원이 각자 영혼에 깃들어 삶을 체험하는 것도 영혼이 있기때문이지요. 그들은 스스로  신과의 단절을 시킨자들입니다.

모두가 기다면 모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만 강조하면 결국 신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악을 행하는 근원신이 있다면 거기서 고통받는 다른 근원신이 즉 생명이 있다는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창조가 이루어진 후에는 사회와 무리와 조직과 법이란게 필요한 것이고 그 법을 창조 법칙에 맞게 만드는게 필요한 겁니다. 이것이 창조되어 나온자들 사회를 이루고 법을 만드는 것이 근원신에 봉사인겁니다.

그 어떤 것도 근원신이 체험하는 것이니까 다 옳다 그 어떤 가치든 근원신이 체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가치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을 주의하십시요. 인간이 짐승이되고 짐승이 인간이 되는 피의 제사를 올리며 야만적이고 미개한 식인종들처럼 좋아하고 기뻐하며 그냥 그런 것들이 나에게 감상의 교훈을 준다, 구경하고 놔두라가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혼란과 무질서가 아닙니다.
나아가 근원신 자체가 혼란과 무질서와 파괴를 바라신다 근원신 자체가 어둠이다 말하는 자도있습니다.

설령 신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더욱 원점은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자신의 본연의 느낌 그것이 정답일수 있습니다. 성부성령성자 천지인 삼위 혹은 삼신의 신은 인간을 통해 통합되는데 천지일 합일된 인간이 입니다. 하느님이 자기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이 별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에 부합되는 법이 신에 부합되는 법일수 있습니다. 휴머니즘입니다. 어떤 것은 영혼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휴머니즘을 가볍게 여기고 그 중요성을 모를것입니다. 영혼이 없이는 우리는 근원 신과의 연결이 안됩니다  근원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나와 각 행성에서 사회를 이루고 무리를 이루며 사는 것 자체를 무슨 궁전에서만 사는 우열한 피를 가졌다고 우기는 왕족이나 귀족이 피가 다른 열등한 종족을 보듯이 타락이라 여기는 자들이 있는데 그 자들도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봐서는 안됩니다. 이 하위차원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을 실제 현실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자각하지 못하지만 여러분 자신과 파동 맞는 것을 여러분의 현실로 우주로부터(많은 가상의 다차원 평행우주와 시간선)여러분 자신에게 끌어옵니다. 그 수많은 꿈 중에 여러분이 선택한 것을 바로 여러분은 현실이라고하는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누군가로부터 지배받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끌어온 현실일수가 있는 것으로 절반은 여러분 책임입니다.
이것을 각성하는 것이 최초의 해결책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초입이 바로 '앎의 지혜'를 성취하는 겁니다.
그 책임을 알고 각성을 통해 변화라려고 노력 하는 자가 있는 반면 그것이 그 책임이라며 그렇게 한것은 내가 불러들인거라며 오히려 그러한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배받고 있는 자와 네가 나고 내가 너라고 식으로 말하며 술에 술 탄듯 물에 물탄듯 모든 것을 무마시키려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공짜는 없다라는 제 일가는 법칙중의 하나인데,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무마시키고 공짜로 만들려는 시도이지요. 그것은 어리석은 것인데, 그것은 님들이 책임만이 아니며 그렇게 지배하는자의 교묘한 술수가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들의 교묘한 술수로부터 그러한 죄책감을 가지고는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책임을 갖되 죄책감을 갖지 마십시요. 그렇게 하고 있는 이상 그것이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려는, 여러분이 스스로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위치는 약하기에 그들의 도력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도력으로서 그들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인질로서 잡고 있는 인질법와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스톡홀름 증후군관 같은 것인데 먼저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변화의 필요성을 아는것이 앎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것은 원래의 여러분들 모습으로서 한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단지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개입의 있었고 그들에 의해 여러분이 조작되었으며 그후로 여러분 파동과 그 지배자의 파동이 맞았을 뿐인것입니다. (거기서도 배워가는게 있다고 제가 누누히 이야기 했을 겁니다) 그럼으로서 변화를 원한다면 생명에 대한, 신의 공경에 대한 앎의 지혜부터 성취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후 어떻게 자기 파동을 바꿔야 현명한것인지 알고 거기에 맞게 선택하십시요.

이 모든 환경이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며 유유상종의 법칙에 의해 내가 끌어 온것이고 내가 만든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것이 나의 책임고 자각을 아는 것입니다.내가 끌어온것은 내 행위임으로 내가 끌어온 것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다음으로 그것을 다룰줄 아는 방법입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참 나인지를 알고 변화하는 겁니다. 이제 까지 무의식적으로 타율에 의해 선택했던 것을 벗어나 옳은 것을 알고 자기 주체로서 그것을 선택하는 겁니다.

뭐 대단한 영적 원리라고 말하지 않아도 보통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위인이나 스승들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자질로서 하나로서 압니다. 중요한것은 나의 내면이 지금의 나를 둘러싼 현실을 창조하긴 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 다음으로 무엇을 창조하느냐입니다. 그 다음으로 내면으로 창조하긴 하는데 내면을 선택하긴 하는데  무얼 선택해서 외부 세계를 창조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프랜드님도 하늘나라의 뜻과 법칙에 맞게 하는 것이라는 것는데는 동의 할것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입니다. 5차원에선 생각만으로 순식간에 환경이 바껴버리는 체험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무질서하고 위험한것이기에 따라서 자기기 현실을 창조한다는 이러한 책임이나 자격도 없이 자기 생각에 대한 책임 그것을 제대로 다룰줄 모르는 자는 5차원 진입이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든 3차원에서의 그과정은 최초 내면에서 나오지만 여전히 시간에 지배를 받으며 생각과 행동이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결국 본래 말하던 바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통 사는 문제입니다. 근원의 뜻에 맞게 그 창조의 법칙을 활용하느냐입니다. 그것은 나 혼자 마인드와는 조금 다른 것이며  마인만으로 되지 않으며 내가 끌어온 현실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혹은 나 혼자 하늘의 뜻게 사는 것만으로 작각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으며 지혜와 신체와  기술과 행동과 협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내가 변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것과는 범위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가 5차원이 아닌 이상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내가 변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만이 가득찬다면 좋겠지만 나말고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하는 존재들의 인위적인 노력이 있기에 그렇게 된다는 것은 현재로선 염원합니다. 이 노력이란 집단 학습입니다. 권력입니다. 여러분 목숨을 부여잡고 있는 법이나 과학 경제 산업의 틀과 같은 눈에 보이는 제도입니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면 그들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선택한자들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 사이트에 누군가 광고성 글을 올린다면 제제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것도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봐주어야 할까요. 존중할땐 존중받는 곳에서 가야 존중받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변하는 것과 비인간적 반생명적 현재의 경제과학산업시스템이 자연에 맞게 진리에 맞게 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지혜와 신체의 의지 기술과 각자 재능이 다른 이웃들(우호적 외계 생명체를 포함해서) 협동을 필요로 한느 겁니다.
그것은 공평하게 보고 평화롭게 보는 것은 마인드 차원이나 마인드을 그렇게 갖는 것은 좋으나 일을 함에는 또 다르며 마인드를 견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지혜외 행동이 필요한 겁니다.

내가 변한다고 해서 실체의 대상이 그른것이 옳은것이되고 옳은 것이 그른것이 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로 있읍니다. 정마로 내가 변한 사람은 그 행복을 알거나 그 힘을 쟁취한 사람은 이제 공동 관심사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봉사하고자 할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의 영혼이나 외부 환경이 그것이 내가 끌어들인것이라는 것만 말하거나 그것을 더 이상 선택하려 하지 않는자는 그러한 것이 자기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떠나면 그만이지만 거기로부터 나 혼자 떠나버리는면 되는게 과연 해결 책이냐 이겁니다. 내 머리속에 인지 되지 않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천만에 입니다. 그것을 선태한 선인들도 많습니다. 예수나 부처처럼 남을 도와주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놀고만 있는 깨달은 자도 많습니다. 그런자는 그냥 퇴보도 하지 않지만 상승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고만 있는 자가 뭔가 좀 더 수행을 하고 하면 좀더 신을 위해 봉사하고 긍정적인 일좀 해보겠다고 하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그곳은 나말고도 근원이 거하고 생명이 거하는 곳이기도 한겁니다.         바로 나와 마찬가지로 근원에서 나온 것이 거기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죠.  진급을 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일을 하고 보상을 받아야 하죠.

이 모두가 내가 끌어온 것이라고 책임을 아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그것이 게속해서 그 것을 추구하라고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옳지 않다면 옳지 않은것이라는 것을알고 변화를 위한 실질적이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은 지혜와 의지와 기술과 협동이 필요합니다.즉 하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선 삽을 들고 호미를 들고 밭을 가는 것과 같이 실질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이 모두가 내가 끌어온것이니 받아들여라 도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가만히 앉어서 다른 현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나 혼자 천국으로 가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누군가 저 혼자 하늘로 끌어올리는게 아니라 하늘을 이곳에 끌어내리는게 근원이 원하는 바였습니다.

프렌드님이 말한 이것은 개인의 일입니다. 그런 개인들이 하나둘 많아지면 뭐라 말할것없이 자연히 해결되겠지만 문제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내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지요. 공동의 관심사나 공동창조의 문제에 대해선 다릅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신이 깃들어 사는 일입니다. 신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좋아할때 나에 깃든 신이 거기서 좋아합니다. 내가 슬퍼할때 나에게 기든 신이 슬퍼합니다.

이런 가상현실에서 서로 다른 목적과 성향이 만나 상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일종의 도력의 싸움이 됩니다. 누구의 가상현실이 더 세고 누구의 가상현실에 포함되며 더 영향을 받는가...간달프(백마술)와 사우론(흑마술)의 싸움처럼 말이죠.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신을 위한것이다 고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거나 할때는 그것에 상응해서 정말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나만큼 다른 성향의 창조를 행하고 있는 다른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을 만나는 문제에 부딛힙니다. 집합의식은 어떻게 형성됩니까...그것은 일종의 집단의 선택입니다. 현재 우리 행성에서 우르르 몰려가는 성향의 집단이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형성됩니까...하늘나라의 뜻과는 다른 이 세계에서의 인기와 권력입니다...보통 사회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하늘나라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앎과 지혜가 필요한 일이죠.

내가 변한다고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 경제 산업시스템이 옳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내가 변한다고, 그걸 좋게 생각한다고 보는 시각이 좋게 변하는 것이죠. 좋게 생각한다고 그른것이 옳은 것이 됩니까 그것만으론 해결될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나 혼자 가상현실안에 틀어박혀서 앉어서 하늘나라로 떠나면 되는 것일까요. 그것도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으로 칭찬받을 것이 없습니다. 성숙하려면 이타적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지혜와 의지와 기술과 행동과 협동이 필요한 일입니다. 실질적인 일은 실질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님들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붓다나 예수 또한 당신이 변화하였는데 왜 지구에 와서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어떤 목적을 지니며 가르침을 주었을까요. 그것이 근원신(생명)의 법칙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님들도 그것을 알것입니다. 내가 변한다고 창조의 법칙에 맞지 않은것이 맞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하나의 구원이기 때문이죠. 그러한 구원도 좋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구원 받은 자라면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갖고 같이 걱정하는 문제이고  영혼과 생명을 존중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서 혼자서 상승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행의 한 과목이기때문이죠.내면에서 나온 근원의 원래 목적에 맞게 옳은 것을 행야한다는 목적에는 동의 할것입니다.  일을 함에는 마인드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지혜와 위지와 기술과 각자 재능에 맞는 협동이 필요합니다.

공동창조의 문제지요. 그 과정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선택한 사람들끼리는 화도 내고 성토도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게 나 하나를 위한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단지 너와 내가 다르다고만 마는 수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데 밖에서 퍼질러 잤던 제자들을 꾸짖었던 것은 그저 자기 거울대고 자기 욕을 한겁니까. 선택한자들에겐 그것을 감당하도록 묵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여전히 성토를 하는 것일까요. 거울은 거울이런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실한 통제와 자각하에서 일이며 무의식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영혼들을 나의 거울로서 이용하는게 아니라  거울을 떠나서 상대방의 그영혼들을 바라보기 있기 때문입니다.그 영혼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의 관심사'에 맞게 그른것은 그른것이고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영혼은 환영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들이 서로에 작용하고 서롤를 끌어오는 파동이 환영이라면 환영이고, 사람이 영혼이 환영이 아니고 거기서 배워가는 것도 환영이 아닙다. 서로 간에 만든 외부 환경이 환상입니다.

이 세계는 일종의 가상현실인데 그 가상현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가 만듭니다.
그 원리는 사고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이 바로 우리의 현실을 자아냅니다. 삼라만상을 자아내는 광자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연동하기 때문이죠. 근원신 또한 광자를 통해 우주 창조를 행한다고 합니다.우리 수준에서 창조는 이것은 정확히 유유상종의 법칙에 따릅니다. 나의 생각이나 성향과 파동이 그와 같은 외부 환경을 나의 현실로 끌어온다는 것이죠. 그것이 거울이라는 이유입니다. 우주은 매우 넓음으로 각자가 자유롭게 살되 자유롭게 살려면 그 책임을 자기가 져라 이 방식이 관리하기에 효율적입니다. 카르마 또한 그 원리 이상은 아닙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누군가 나에게 왼뺨을 때렸을지라도 오른뺨을 내놓는 식으로 선업을 쌓고 은혜를 베풀면 인광응보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수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서로 이용하는 에너지 환경은 환상이지만 그 에너지로 서로에게 이끌려 오는 영혼은 우리가 만든 환상이 아닙니다. 그러기엔 영혼의 진동수가 너무 높습니다. 영혼은 근원이나 그에 준하는 자만이 창조할수 있습니다.

일부 불교 추종자들은 그것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아예 그 마음이라는 것 자체를  제거하려 하지만 그것은 극단적이고 소극적인겁니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데 내부세계의 존중과 더불어 외부세계 그 있는 것을 존중하면서  해결책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 거대한 사업을 위해서 수백억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근원이 보기에 합당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상대는 나의 거울이다 이것을 아는 것도 중요한 법칙을 아는 것이지만 문제는 서로 쌍방간에 사랑과 협동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여전 원점으로 돌아와 그 내용이 뭐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저 너도 나으 투영에 불과하다고 마는 것일까요? 그건 그냥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중요한 영적 원리 일뿐 그러한 원리도 게임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무대 실질적인것(삶)에 봉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원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라는 배움을 얻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내용을 선택합니다. 그 내용은 아무거나 선택하는게 아니라 그 내용대로 가치가 있고 거기에 따라서 상과 벌이 정해지는 게 있습니다. 그저 자기 발견을 위해 개인 대 개인으로서 이용만 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내용은 그 무엇이라도 괜찮다 이건 아닙니다. 그 내용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것 공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설령 공적인 일이라는 것 조차도 자기가 만든(아무거나 선택) 환경이고 자기 발견을 위한 굴레라 할지라도 그것이 공적이라면 잠재적으로 크게 성장할 어떤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거기서도 상을 받을 성스런운 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가 지상에 와서 십자가에 매달린것이 단지 그 자신의 성장만을 위한 그 개인의 취향이고 가상현실(거울)에 싸인 굴레였을 까요? 나의 성장이 타인의 성장에 맞는 것이면 좋습니다. 내가 신이나서 좋아하는 것이 신이 원하는 바이면 좋습니다.
그 내용이 각자 선택한 목적이 다를뿐이야. 라고, 개인의 자유로운 취향이 다를뿐이야 라는 말로 공동사회의 것에 반한느 것을 존중하라고만 하는게 아닙니다. 생명으로 난자가 생명을 진리를 받아야 하듯이(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듯이) 공통의 목적이 있고 관심사가 있습니다.  자유주의만을 위한 자유주의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주의만을 위한 사회주의 또한 한계 있습니다. 신은 정확히 그 둘다이며 그 양자의 균형을 찾는 일입니다. 개체를 만들고 자유의지를 준 것도 신이고 그 것을 전체로 통합하고 있는 것도 신이기 때문이죠.

생명을 창조한 관리하는 진리는 보편적인 시스템이며 각자 천태만상이 하급 아스트랄 꿈의 세계가 보편적인 공통의 진리가 아닙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개체 자유의지를 갖지도 않고 신도 갖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안 좋은 것은 개체 자유의지를 갖지 않고 신을 갖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개체 자유의지를 갖었지만 신을 갖지 않는 것이며
가장 권장할만한 좋은 것은 개체 자유의지를 갖되(자기 중심을 갖되) 이 개체 자유의지를 이왕이면 '신'의 의지에 맞게 합치시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와 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