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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학혁명의 영웅들이 죽어간 서소문을 가톨릭순교지로 하는 것에 반대하며...
거기에 얽힌 조선 역사는 지워지고? 녹두장군은? 동학은?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4/11/03 [17:44]

서소문에 가톨릭 지하성당을 세운다고 하는 사실에 분개한  어느 분이 지난 10월16일 제게 아래와 같은 트윗을 보내왔습니다. 

 

@ekfmak5 Oct 16  "서소문공원에 나라돈 500 억 들여 지하성당 만들고 가톨릭성지화. 나라땅을 가톨릭이 공짜로 가져가 버리는 건가? 거기에 얽힌 조선 역사는 지워지고? 녹두장군은? 동학은?"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았다는 게 참 부끄럽기도 하고 둔하고 무심했음을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했습니다. 동학혁명 120년을 맞아 역사적인 유적지인 <전봉준장군 처형터>가 사라진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겠지요.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의견을 묻는 문자를 사방에 보냈습니다. 제 문자를 보고 동학유족회 김석태 회장님께서는 이런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 분하고 치가 떨립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겠지요. 더 늦으면 천명, 만 명이 반대하고 길거리로 나서도 돌이키기 힘들겠지요. 우선 서소문 지하성당 건립을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서소문이 동학의 전봉준·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한·이필제 등 수많은 동학도인들이 숨져간 곳이고, 우리 역사에서는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며, 홍경래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죽어간 곳이라는 사실을 가톨릭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이런 역사적인 곳에 단순히 자신들의 신자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까지 부추겨 순교성지 조성에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곳에서 처형된 대표적인 인물 황사영 등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아니면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처형된 인물들입니다. 황사영은 가톨릭에선 순교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본에 나라를 바친 친일매국노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가톨릭에서 이런 사람을 성자로 모신다는 사실 자체도 못마땅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사람을 추모하는 성당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를 업신여기고 모독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0여년 전 조선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한 것에는 무엇보다도 가톨릭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년 전 가톨릭의 한 신부는 18세기 이래 200년에 걸쳐 동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된 결정적인 이유가 ‘조상 제사 금령’이었다며,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에서 서구 제국주의가 함포를 앞세우고 침략할 때 교황청이 '조상제사 금령'을 내린 것은 문화와 종교 차원에서의 '제국주의'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교황청이 교리를 경직되게 해석하여 탄압의 빌미를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8월 중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서소문 가톨릭성지도 들렀지만 2백여 년 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뉴스는 없었습니다.

 

동학의 창도자 수운대신사께서 참형 당하신 대구장대에, 가톨릭에서 ‘관덕정순교기념관’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순교성지로 부각시켜 대구의 역사를 왜곡한 잘못을 저지른 것은 20여 년 전인 1991년입니다. 당시 우리 천도교단에서는 어떠한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50년 전 대구 달성공원에 수운대신상 동상을 세울 때, 가톨릭에서는 기를 쓰고 반대했었습니다. 가톨릭의 반대에 기가 질려 당시 신용구 교령께서는 백년 후에는 가톨릭이 망할 것이라는 악담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동학의 창도자 수운대신사께서 참형 당하신 대구장대를 침탈하고, 이제는 이필제,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이 처형당한 곳이고 김개남이 효수되었던 동학혁명의 현장까지도 접수하여 생매장하려는 가톨릭의 욕심과 만행에  분하고 치가 떨립니다.

 

지금도 서소문 근처에는 그들의 순교자를 기리는 가톨릭성지가 잘 조성되어있습니다. 여기에다 다시 무엇을 세운다는 것은 무모한 욕심입니다. 이곳에서 죽어간 동학혁명의 영웅들, 사육신이며 홍경래 등 우리의 역사를 생매장하고자 하는 가톨릭의 처사를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기고자 - 심국보

 

                             동학당의 공판, 전봉준의 처형 자료

위 사진과 아래기록은 [동학혁명백주년기념 특별전시회 자료집] 전봉준의 생애 중에서 전봉준 장군의 사형일은 4월23일로 잘못 알고 있다가 일본측 신문기사를 통해 4월 24일로 정정하게 되었다.

 

 

전봉준·손화중·성두한 이하 20여명의 동학당 괴수들에 대하여 법무협판 이재정, 동 참의 장박 및 우리 영사 등은 여러 번 법무아문에서 만나 하나한 심문을 마치고 이제까지 법적용에 대하여 때때로 이견이 있었는데 오늘로서 권설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나도 3, 4명과 함께 방청이 허락됨을 그 실상을 대략 기록한다.

 

동 재판소는 그레또하우스(閔族 정부의 법률고문으로 고용되었던 자)씨의 설계에 의한 것으로 중앙 높은 곳에 이협판, 장참의, 內田영사가 열석하고 그 아래를 서기석으로 하여 좌측을 피고인석으로 했다. 외관은 약간 화려하고 또 장엄했다.  

 

당일 오후 2시부터 개정할 예정이었는데 죄수들이 늦게 도착하여 오후 3시반에 개정하였다. 한 사람씩 피고인을 데리고와 장박이 선고문을 낭독했는데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笞杖 徒刑 또는 유배에 처해졌다. 그리고 세인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등 세사람은 ‘不待時處刑’의 선고를 받고 기타 惡漢으로 이름난 성두한도 戮刑이 내려졌으며 김덕명도 또한 육형을 선고 받았다. 이 세사람은 왼쪽 감옥에 호송되어 교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전봉준·손화중 등의 담력과 배짱 이미 짐작은 한 바이나 사형을 선고받으면 대개는 정신이 혼비백산하고 사지가 떨리는 법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조선사람은 배짱이 좋다. 동학의 수령으로 자임하는 전·손·최·성 등 같은 사람은 매우 대담한 데가 있다.   먼저 성두한은 사형을 선고받자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야 평범한 얼굴고 정내(廷內)를 걸어 나갔으며,  

 

다음에 전봉준은 십 수 분간 긴 선고문을 듣고 천천히 말하기를 “정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바치는데 굳이 아까울 것이 없다. 삼가 목숨을 바치겠다”고 대답하자 장박(張博 )이 다시 문의(文意)를 부연하여 여러 가지를 진술하는 것을 듣고 난 끝에 개연히 말하기를, “나는 바른 길을 걷고 죽는 자다. 그런데 역률(逆律)로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고 개탄하며 아리(衙吏)에게 안겨 정내를 나갔다. 단 그는 부상이 아직도 아물지 않아 한발자국도 옮겨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손화중이 정내를 나가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말하되 “내 백성을 위해서 힘을 다하였는데 어찌 사형에 처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말하였고  

 

최경선은 사형을 선고받고도 불평의 소리 한마디로 없이 유유히 활보하며 정내를 나갔다.   그들의 추정을 살피건데 매우 가련하다. (京城特報 4月23日 특파원발, 時事新報5月7日)

 

사형집형 작일 사형의 선고를 받은 전봉준 손화중 崔永昌의 3명은 오늘 아침 2시에 교형에 처하여 졌다. (京城特報 4月24日 특파원발, 時事新報5月7日)

 

고종실록 전봉준 처형 允之기록 법무대신 서광범이 전봉준 외 4인의 재판을 끝내고 사형을 시키겠다는 보고에 대한 고종의 윤지기록(1895.4.23). 이 기록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사형을 시켰다는 기록이 없는 점을 들어 이 날을 사형당한 날로 알고 왔다.

 

 

그러나 [시사신보]1895.4.23 특파원 발 기사에 의하면 실제 사형은 윤지를 내린 이튿날 새벽 2시에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전봉준 장군 외 4인의 처형일은 4월24일(음3.30)인 것이다. 일본인 사형집형 總巡의 전봉준 장군 평가 / 오지영 [동학사]   “나는 전봉준이 처음 잡혀 오던 날부터 끝내 형을 받던 날까지 그이 전후 행동을 잘 살펴보았다. 그는 과연 보기 전 풍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돋보이는 감이 있었다. 그는 외모부터 천인만인의 特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청수한 얼굴과 정채 있는 미목으로 엄정한 기상과 강장한 심지는 세상을 놀랠 만한 대위인, 대영걸이었다. 과연 그는 평지돌출로 일어서서 조선의 민중운동을 대규모적으로 대창작으로 한 자이니 그는 죽을 때까지라도 그의 뜻을 굴치 아니하니 본심 그대로 태연히 간 자이다” 19대대 南소좌와 전봉준의 대화   작일 전봉준이 생포되어 아국 공사관에 호송되어 드디어 영사관에 인계된 것을 서울 장안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진기한 위인을 보고자 서로 뛰어나와 한때 일본영사관 문전에 새까맣게 모여들어 인산을 이루었다.  

 

전녹두는 족부에 총사이 아물지 않은데다 병이 나서 위독함으로 내전영사는 곧 경성수비대 大野一等군의에게 치료를 부탁.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대로 조선사람에게 넘어가서 잘 돌보지 못하면 위험할 염려가 있어 당분간 영사관내에 유치하고 치료를 하여 건강을 회복한 후 인도케하여 어제부터 전녹두는 누운채로 취조를 시작하였다. 아래는 남소좌가 전녹두를 취조한 기록으로 동학당 진상을 엿보는데 목하다.  

 

문; 하월하일 어디에서 잡혔는가

 

답; 12월26일(韓曆)순창피노리에서 민병한테  

 

문;그대는 사민을 선동하여 난을 도모한 이유를 상세히 말하라

 

답; 나는 시골에서 생장하여 세상일에 어두워 일본정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정략방침을 잘 알지 못한다. 本年六月 이후 일본병이 계속 우리나라에 건너와 이는 반드시 우리나라를 병탄하는 것이라. 옛날 임진왜란이 생각되어 국가가 멸망한다면 국민이 어찌 하루라도 편안할 수 있는가. 백성들이 疑懼의 念이 생기어 나를 추대하여 수령으로 하고 나라와 멸망을 함께 할 것을 결심하고 이 거사를 도모한 것이다.

동경조일신문 명치28년3월5~6일  

 

동학당의 영수 전녹두는 아직 일본영사관에 구치하여 병을 치료하는 중이나 이제는 회복의 기미가 뚜렷하므로 오늘 법무아문에 인솔할 모양이며 심판할 때 우리 내전영사도 배심할 것이라 한다. 이미 법무아문의 심판에 회부된다면 사형을 면치 못할 것으로 다만 그 용모만이라도 찰영하여 두고싶다는 어느 신문사의 청에 의하여 촬영이 허가되었다. 

 

어떤 사람이 몰래 전녹두에게 말하기를 일본공사에게 청원하여 목숨을 건지는 것이 어떠나고 묻자 그는 분연히 듣지않고 말하기를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 그와 같은 비굴한 마음을 내 가질 것인가. 나는 죽음을 기다린지 이미 오래다” 

 

 

경조일신문 명치28년3월12일 [전봉준이 체포된 직후 서울가다 촬영했다고 알려진 전봉준이 가마탄 사진은 이 신문의 기사가 맞다면, 일본영사관에서 촬영한 것.]

 

이미 경성에 호송됐던 비괴 成在植·崔在浩·安敎善 등은 그후 여러번 취조를 받은 결과 참형에 처하여 본일 오후 4시 성밖 남벌원에서 효수되었다. 또 호송 도중 참살된 비괴 김개남의 수급은 이제 경성에 도착함으로 이것 역시 본일부터 3일간 서소문 밖에 매달 것이라고. 개남 재식에 두 수급은 畿營에 보내어 作擾지방에서 警示할 것이라고. 시시신보 명치28년2월2일  

 

거괴의 首實見 먼저 체포된 동학당의 거괴 최재호 안교선 두사람은 지난 19일 참형에 처하여 삼일간 효수됐다. 효수의 장소는 서대문과 남대문 중간의 소의문 밖 盤石坊으로 인가가 조밀하고 통행이 빈번한 시가에 있는데 지키는 사람도 없고 표말도 없이 방치된 채로 세 개의 작은 나뭇가지에 동여매어 두발을 모시끈으로 매어 아래로 늘어졌다.  

 

가서보니 건조한 핏자국이 얼룩져 검푸른 얼굴모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鈍刀로써 여러번 내리친 형적은 양쪽 귀밑에 여러개의 살조각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두발 또는 안면에는 흙과 먼지가 묻어있어 참살할 때 땅 위에 놓고 짓밟은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왕래하는 남녀아동은 근처에서 며칠간 보아서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놀고 있다. 안교선은 평범한 상을 보이고 있으나 최재호는 코가 오뚝 솟고 눈썹이 일자로 올라간 인상으로 원한을 구천에 호소하는 얼굴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시신보 명치28년2월9일  *반석방은 염천교 근처

 

김개남 관련 자료

 

1. 도재 (전라감사 이도재)는 마침내 난을 불러오게 될까 두려워 감히 묶어서 서울로 보내지 못하고 즉시 목을 베어 죽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냈는데 큰 동이에 가득하여 보통사람보다 훨씬 크고 많았다. 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다투어 내장을 씹었고, 그의 고기를 나누어 제상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이 머리를 상자에 넣어서 대궐로 보냈다.   황현 , <오하기문>   

 

2. 동학은 1월 초 전멸하여 교주의 머리(김개남)가 충성스런 관리에 의해 서울로 압송되었다. 나는 그것을 가장 부산한 거리인 서소문 밖의 어느 시장 거리에서 보았다. 마치 야영장에서 쓰는 주전자 대처럼 나무기둥 세개로 얼기설기 받쳐놓은 구조물에 다른 사람의 머리 하나가 그 아래로 늘어뜨려져 매달려있었다. 그 두 얼굴 모두 고요하고 엄숙해 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같은 구조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들이 무게를 지탱할 수가 없어 무너지게 되면 먼지 수북한 길바닥에 그냥 나뒹굴도록 내버려져 개들이 몰려와 물어뜯기에 안성마춤이 되었다. 그곳에 고장난 회중시계가 떨어져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그것을 조각조각 분해하여 개에게 물어뜯긴 시체의 입속에 장난으로 처넣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이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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