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에덴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아주 중요한 신화들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사람들과 이들의 스승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유익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뛰어넘는 것을 보려고 할 때에만, 이것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백하게 모순되는 것들 혹은 이야기를 통해 제기되는 의문들은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로, 성경에서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에덴이라 불리는 학습장의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했던 영적인 스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주께서는 모든 형태를 초월하여 존재하시므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는 인간들과 교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일을 우주의 계층구조에 속해 있는 적당한 직책을 가진 존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하나님(God)”이라는 용어는 지금과는 다르게 사용되었으며, 종종 영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 마이트레야는 아담과 이브의 스승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어떠한 인간이나 단체보다도 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에덴동산에는 많은 학생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을 단순화하기 위해, 아담과 이브에게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담과 이브는 상징, 즉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이 에덴동산에 있던 많은 학생들에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중요한 문구들 가운데 한 가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창세기 2:16) 주께서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의문사항은 왜 영적 스승이 학생들에게 과일을 먹지 말라고 말해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동산에 금단의 열매가 있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혹이 없는 동산을 창조하시지 않았을까요? 이제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앞에서 이야기한 자유의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학생들이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따라서 자유의지에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고자 하는 유혹이 항상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 어떠한 의식 상태, 즉 마음자세를 상징한다는 것을 이제 알 수가 있으며, 이러한 마음자세로 인해, 학생은 고의적인 무지로, 하나님의 법칙들을 거스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실체를 인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 더 큰 자신 (모든 생명)을 해치는 거란 사실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여러분의 더 큰 자아(Self)를 의식적으로 해치고자 하는 선택을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어떠한 마음의 상태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 그러한 마음 상태란 여러분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 상태로 인해, 자신이 정말로 다치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오지 않을 거라고, 설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피해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왔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정말로 알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할 수가 있으며, 아니면 하나님의 법칙들을 고의적으로 위반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지 못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어떠한 환상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실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확한 비전과도 단절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비전은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나오는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으며, 환상으로 대체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의 의식보다 더 제한된 관점을 가지는 의식 상태로 들어갈 때에만,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실체는 보지 못하고, 제한적이거나, 왜곡된 정신적인 이미지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불분명한 중간지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상, 거짓말, 의심 혹은 해석이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환상과 의심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마음의 틀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자기 자신을 해칠 수가 있으며, 이 말은 상황이 확실하지 않은 불분명한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실체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과 실체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실체를 분리시키는 사고방식은 물론 반-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실체를 볼 수 없으며, 다만 “실체”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용어가 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실체와 관련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와 관련하여 정의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상대적인 것이 될 때, 그러한 방식으로 진리를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비록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닌 관점으로 인해, 이러한 위반이 허용될 수 있으며, 정당화될 수 있고, 도움이 되거나, 심지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영적인 학교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학생들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전에, 직접 부딪치고,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어떠한 수업이나, 입문과정이 이 학교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입문과정의 하나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학생은 하나님의 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식을 지니고 있지 못 합니다. 새로운 학생이 그러한 법칙들을 위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수한 무지로 인해 그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법칙들을 알고 있다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법칙들을 거역하는 선택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지시에 따름으로써, 새로운 학생들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 스승과 연결되어 있다면, 스승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의 분별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학생들은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지 않고, 피해 가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숙해짐에 따라, 학생은 하나님의 법칙들을 알게 되므로, 이제 학생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학생은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고자 하는 유혹에 반드시 직면하게 되며,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생은 반-그리스도의 마음과 반-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상대적인 논리를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점을 알 수 있나요? 새로운 학생은 단지 순수한 무지의 상태, 즉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뿐입니다. 무지는 반-그리스도의 마음과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무지는 지식의 부재로 인해 생기게 되는 수동적인 의식 상태입니다.

캄캄한 방 안에 불을 켜면, 어둠은 즉시 사라지게 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무지 속에 있는 학생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순수한 무지가 아니라, 고의적인 무지입니다. 학생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합니다. 왜냐하면 학생은 실체에 대해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서, 이 각인된 이미지(우상)를 유일한 참된 하나님으로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치 어두운 방에 어떤 존재(force)가 숨어 있어, 불을 켜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학생은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불을 켜고 난 후, 드러나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학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감도록 만들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눈이 멀게 될 때, 이들은 스승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반-그리스도 마음의 논리를 이용하여, 이것을 정당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마음은 학생의 세계관이 이러한 마음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승은 학생들이 순환논리(circular logic)를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더 이상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영적 스승의 참된 목표는 학생들을 끌어올려, 영적으로 자립하게 하는 것이며, 이 말은 학생이 그리스도의 의식을 성취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립은 외부로부터 학생에게 강요될 수 있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자립은 창조적인 과정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반드시 내면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절대적인 진리와 하나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진리”를 정의하고, 또한 성장과 자기 초월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유혹을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외적 및 내적인 스승으로부터 분리되려는 유혹도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여러분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용하여 현재의 의식 단계를 초월하지 않고, 심지어 스승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서, 스승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문구, 즉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거짓말을 하셨는가?”라는 문구로 인해 생기는 핵심적인 의문들 가운데 하나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 갈 수 없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일부의 사람들은 이 문구를 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옆으로 제쳐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의문은 학생-스승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상황들은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 혹은 오히려 영적인 스승 -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되면, “확실히” 죽게 될 거라고(창세기 2:17)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아담과 이브는 과일을 먹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낙원에서 추방되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승은 이것을 알고 있어야 했으므로, 스승이 아담에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것을 심지어 뱀은 인류를 해방시키려고 하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지식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속박하려 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법칙들을 위반하기 전에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성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했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학생이라는 존재의 중심은 의식적인 자아입니다. 이 자아는 영적 자아가 확장한 분신으로, 물질 우주로 보내졌습니다. 목적은 제한된 자의식을 지니고 시작하여, 그 이후 완전한 깨달음을 향해 성장해가는 것이며, 깨달음이란 하나님께서 확장하신 분신이 여러분이며, 여러분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는 지구를 다스리고, 지구를 끌어올려, 지구가 하나님 왕국의 충만함이 되게 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질 우주에서 어떠한 것을 공동으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분의 정체성을 통해 창조해야 하며, 따라서 의식적인 자아의 역할은 여러분이 지닌 물질적인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학습장에서 시작하게 되므로, 지구의 갓난아기처럼, 발달되지 못한 초보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됩니다. 하지만 빠르게 정체성을 구축할 수가 있으며, 여기에는 두 개의 주요 요소들이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한 가지는 여러분이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한 체험과 이해이며, 나머지 하나는 영적 스승으로부터 받게 되는 지시입니다.

첫 번째 요소는 처음에는 당연히 제약적이며, 따라서 주로 무지에 기초한 정체성을 쌓아가게 됩니다. 심지어 스승의 지시사항을 이해하는 것도 제한적입니다. 왜냐하면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스승이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도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고급적인 지식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핵물리학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몇 개의 뚜렷한 단계들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각각의 단계들은 의식적인 자아가 구축해온 독특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학생도 그러한 단계들을 거치게 되며, 각각의 학생들은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하여,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이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 이전 단계에서 쌓아온 정체성은 원칙적으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