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어리석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중요한 부분을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일부의 영적 스승들은 실제로 학생들에게 생명이 없는 물체 위에서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것을 체험할 때까지, 명상을 하게 합니다. 의식적인 자아가 자신의 상위 존재 그리고 근원인 창조주 자체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는데 있어,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 대해 참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여러분은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의식적인 자아가 그것과 동일시하는 상태에 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영적인 스승으로부터 온전한 지식을 받고자 한다면, 스승과 하나가 됨으로써, 스승의 의식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자 한다면, 법칙을 정의하는 마음, 즉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작용하고 있는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과 하나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야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의식을 성취하고 난 후,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요한복음 10:30)”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고 여기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온,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어떠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견해가 그렇다고 해서, 결코 진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의 전반적인 요지는 여러분과 - 아는 자 - 인식의 대상(the object of knowledge) 사이에 분리가 존재하는 한, 의심이 생겨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 사이에 하나됨을 이룰 때에만,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로 통합하는 요소로,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제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주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반-그리스도의 마음 간에 핵심적인 차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하나됨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반-그리스도는 분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목적은 창조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물질의 빛으로 창조된 형태들이 반드시 창조주의 의도와 법칙들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존재들이 창조주의 의도 및 법칙들과 하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순수한 사랑의 발로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이며, 서로 간에도 하나라는 의식으로부터, 창조주께서 정해놓으신 테두리 내에서 자신들이 지닌 창조력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여러분이 스승 및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다거나, 혹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을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해, 여러분은 정신적인 이미지를 뛰어넘어, 하나됨을 체험하려는 것이 - 신비적인 직관 - 아니라, 정신적인 이미지에 집착할 수 있다거나, 집착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

 

진실로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각을 지닌 존재들에게 언제나 진리를 알게 하는 방법을 제공해주도록 고안되어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의 창조적인 노력들은 언제나 모든 생명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으며,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스스로 그리스도의 의식에 이르는 길을 걸으심으로써, 그 본보기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었을 까요? 그것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도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이 아버지, 즉 창조주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리스도의 의식이 아버지에게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식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며,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지구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이며, 예수님께서 그러한 하나됨의 상태를 성취하셨을 때, 위에서와 같은 유명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이 많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잘못 해석되어 왔다는 것이며, 그 이유는 기독교라는 외적인 종교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해석은 오로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한 외적인 종교에 속한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마음 그 자체와 하나가 됨으로써만, 구원받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금까지 모든 참된 영적 스승들이 지구에 제공해온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됨의 길을 시범을 통해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추종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여러분도 지구에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타마 붓다께서도 하나됨의 길을 보여주셨으며, 붓다를 따르는 참된 추종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 역시도 붓다와 하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여러분도 지구에서 살아 있는 붓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길은 하나됨의 길입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자신의 상위자아와 하나됨을 이루고, 그다음 여러분의 창조주에게 이르는 영적인 계층구조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상위자아와 창조주를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 여러분이 현재 보고 있는 외적인 스승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에덴동산은 영적인 학습장이었으며, 이 학습장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학생들이 하나됨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나, 마이트레야는 그 학습장의 교장이었으며,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상위자아와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먼저 나와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길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앞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오로지 대상(객체)과 하나가 됨으로써, 대상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스승이 학생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학생이 스승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됨을 통해서만, 학생은 스승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이 되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 즉 이 말을 즉시 신성모독이라고 낙인을 찍을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극적인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것은 창조주와 언제나 하나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이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반대이며, 따라서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과 - 차라리 하나님에 대한 우상 - 언제나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점은 여러분은 진실로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은 현재의 의식 상태에서부터 온전한 하나님의 의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 여러분은 먼저 자신의 상위자아와 하나가 되고, 그런 다음 자신의 근원과 하나가 되게 인도하는 길을 반드시 걸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여정은 내적인 과정이며, 이것은 오로지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하나님 간의 문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형태의 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힘도 여러분의 의식적인 자아와 의식적인 자아의 상위자아 및 창조주와의 직접적이고, 내적인 관계 사이에 절대로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하게 말해, 이러한 이유로, 첫 번째 계명이 하나이신 참된 하나님 앞에 기타 어떠한 신도 있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 계명은 의식적인 자아가 자신의 근원과 직접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체험하는 것 사이에 어떠한 우상도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성경에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시록 3:11)”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면류관, 여러분의 가장 귀중한 재산은 여러분의 상위 존재와 직접적으로 내적인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나요? 그것은 의식적인 자아가 자신의 근원을 직접적이고, 내면적으로 체험을 하지 못하도록 분리시키는 어떠한 이미지입니다. 우상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있는 어떠한 이미지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에서 여러분을 분리시키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모든 / 이미지는 오로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만 나올 수가 있으며,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상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하나님, 세상,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이러한 이미지가 지닌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이것으로 인해, 여러분이 창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자신의 신성한 잠재력과 자기 자신인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신성모독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모든 정신적인 이미지는 거리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거리감이 사라지게 될 때, 참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제 지식의 대상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모든 신성모독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반-그리스도의 마음은 신성모독이라는 이원성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신성한 근원과 잠재력을 인정하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임(Divinity)을 밝혔을 때,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발했던 이유를 이것이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성모독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서, 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이 우상을 정말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이미지를 의심하는 것이야 말로 신성모독이며, 지옥으로 가게 될 거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책을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낙인을 찍을 거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반-그리스도라는 거짓된 스승을 따르는 추종자라는 것을 진실로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가 에덴동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단지 하나됨의 길을 떠나, 분리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했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전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학생들은 참된 영적인 스승들과의 - 에덴동산에서 나 자신으로 상징되는 - 연결이 끊어지게 되었으며, 이들은 거짓된 스승을 따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스승들은 이미 눈이 멀어, 반-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됨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며, 분리의 길은 영적인 죽음의 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아담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죽게 될 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분리의 길에 들어선 이상, 중력의 힘은 아담을 죽음의 의식으로 점점 더 깊숙이 내려가게 했습니다. 그의 참된 정체성은 죽었으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죽었으며,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분신으로서의 자의식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영적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왜 동산에 뱀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뱀이 누구이며 그리고 뱀이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게 되겠지만, 나는 먼저 여러분이 반-그리스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실체와 연결된 생명의 줄을 잃게 되면, 왜 고의적인 무지라는 베일을 꿰뚫어보기가 어려운 지에 대해 그리고 반-그리스도의 의식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자의식을 지닌 존재가 모든 것을 안다고 여기는 눈먼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