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자 물리학자들이 몇 십 년 전에 처음으로 비국소성(non-locality)을 증명했을 때, 우리의 세계관이 왜 여기에 맞게 조정되지 않았을까요? 내 말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란 말입니다. 우주는 150억 년 전에 발생했던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의 1/1000 초 동안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법칙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난 것들 중의 일부는 우리가 아원자 입자라고 부르는 것들이었으며, 따라서 이것들은 한동안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150억 년이 지나서야, 인간이 나타났으며, 우리가 높은 수준의 의식을 지닌 최초의 존재였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진화론적인 면에서 보면, 아원자 입자의 출현과 우리의 의식 사이에 다소 큰 간격이라 할 수 있는 150억 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말입니다.


비국소성(non-locality) : 3차원 공간에서 입자는 한 개의 개별적인 존재로 활동하지만, 다차원의 미시적인 공간에서는 일종의 파동처럼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며, 입자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 간에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한다고 함.
  

양자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의식이 아원자 입자와 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의식이 아원자의 입자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했으며, 이 말은 역사가 아주 짧은 우리의 의식이 150억 년이나 오래된 “실체들(entities)”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내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물질이나 에너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밑바탕이 되는 실체는 의식입니다.


아원자 입자가 창조될 때, 존재했었던 것은 어떤 형태의 의식이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입자”들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리되어 있는 입자들과 상호 작용을 실제로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러한 입자들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있는 마음과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의 모든 남성의 하나님 그리고 7일만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이 밝혀낸 것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보다 더 큰마음을 지닌 존재에 의해 빅뱅이 계획되고, 시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와 지금 사이에, 점진적인 진화의 과정이 있었지만, 유물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작위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하나 이상의 보다 큰마음들에 의해, - 육안으로 보이는 단계에서는 - 부분적으로 자연의 법칙들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 제3의 요소에 의해 유도된 과정이었습니다. 이 신비적인 요소가 무엇일까요? 글쎄요, 우리의 마음이 아원자의 입자들과 그리고 이 입자들을 형성하는 것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낼 가능성에 대해,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이것이 뭐라고 말하나요?


불확실성의 수수께끼 (The uncertainty enigma)


전통적인 물리학에 따르면, 전 우주는 마치 거대한 시계와 같은 기계라고 합니다. 모든 것들은 레버와 기어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 법칙들에 따라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표시로서, 어떻게 우주가 기능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주가 시작된 위치와 자연의 법칙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일어날 모든 사건들을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리학자들이 양자의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변하지 않는 법칙들에 따라, 당구대 위를 지나는 소형 당구공과 아주 흡사한 입자들을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입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입자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이들이 발견했던 것은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또 다른 수수께끼였습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전자처럼 입자의 움직임을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전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양자의 세계에서는 근원적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법칙들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실제로 전자를 측정하기 전에는, 전자의 위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측정할 때조차도, 여러분이 측정한 것은 독립된 전자가 아닙니다. 측정을 통해,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은 그 위치에 있는 전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측정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관찰하기 전에는 그곳에 존재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양자의 세계에는 어떠한 형태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입자들을 공동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위에서 말한 것을 토대로, 우리는 또 다시 간단한 설명을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 과학은 양자의 세계에는 어떠한 형태의 의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양자의 실체와 상호 작용할 수 있으며, 우리가 관찰하는 입자들을 공동으로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적어도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에게, 의식이 지니고 있는 주요한 특성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식이 기계적인 법칙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식은 창조적이며, 이전에는 어떠한 마음도 하지 못 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창조력의 토대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유의지입니다.; 이전에는 결코 하지 못 했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다음 그것을 처음으로 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케이, 이제 토대를 구축했으니, 자아의 힘을 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스스로 힘을 불어넣어 주는 세계관 (A self-empowering world view)


현대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 중에는 중세 시대의 종교적인 개념들, 실제의 과학적인 관찰, 유물론에서 생겨난 개념들,그리고 감각인 관찰들이 이상하게 혼합되어 있는 세계관을 지닌 채, 성장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계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 물질은 “단단하다.” 이것은 물질이 실체와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물질은 변하기 어렵다.

▶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분리된 단위들로 존재한다. 그러한 단위의 하나인 행성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행성은 태양의 영향을 받지만, 행성은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로 인해 행성은 분리되어 있다. 우리의 육체도 마찬가지로 분리된 단위이다.

▶ 물질은 마음과 분리되어 있다.

▶ 우리의 마음은 물질을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물질적인 몸과 물질에 기초한 기술을 통해서만,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 물질세계는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창조적인 능력에 많은 제약을 가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힘(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본질적으로 외적인 물질세계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우리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이 밝혀낸 것들을 토대로 하면, 우리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요소들이 맞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피층(外皮層)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다시, 아인슈타인의 공식, 즉 E=mc2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공식에 따르면, 물질은 유동성이 적은 형틀(matrix) 속에 갇혀 있는 에너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이 공식에 따르면, 실제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세상이 실재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 인간이 마음으로 우주를 창조했으며, 따라서 마음으로 우주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은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을 양자 물리학이 증명했다는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각각의 요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에너지들로 만들어진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를 우리는 “물질”이라고 불러왔습니다.


▶ 물질이 "단단하다"라는 의미는 물질이 실체와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물질이 전혀 단단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에너지로 만들어졌으며, 에너지는 어떤 형태의 진동입니다.


▶ 물질은 변화하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에너지의 파동들은 변하기 아주 쉬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어떠한 형틀 속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파동들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물질은 파동이며, 변하기가 쉽습니다.


▶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것들은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것들은 분리된 단위들로 존재합니다. 실제로는, 분리되어 있는 “것들(things)”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만, 만물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보다 깊은 양자의 관점에서 보면, 국소성(locality)이라는 것이 환상이므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 물질은 마음과 분리되어 있다. 양자 단계에서는 실제로 마음과 물질은 직접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양자라는 “재료(stuff)”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 우리의 마음은 물질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의 마음이 양자 물질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것이 양자라는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마음은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물질을 구성하는 양자라는 재료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물질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능력은 더 높은 가능성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물질세계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는, 양자라는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세계는 우리가 물질세계에 부여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거시적인 관념의 틀이라는 필터를 통해 삶을 바라보게 되면, 물질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상호 연결된 전체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존재하며, 우리의 진정한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는 고립된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whole)인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물질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너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에너지는 진동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진동에도 많은 층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의 눈은 오직 어떤 형태의 빛만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빛의 형태, 예를 들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적외선, 자외선과 같은 빛이 존재합니다.


이미지 1 : 전자기적인 빛의 범위

  

보랏빛 가시광선과 보이지 않는 자외선 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약간 더 높은 진동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말은 보라색 광선과 자외선을 분리시키는, 침투할 수 없는 장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자외선의 진동수를 떨어뜨려, 보라색 광선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따르면, 심지어 이 물질 우주가 정확하게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동일한 수학공식을 두 가지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오른쪽의 공식에는 c2가 위와 아래에 두 개가 있으므로, 이를 상쇄시키면, 다음과 같은 공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새 공식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요? 이것은 물질세계가 물질이 아니라, 순수한 에너지라는 요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 즉 E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에너지라 부르는 햇빛이나 전기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서 진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파동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러한 파동들은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서 진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 양자 에너지는 진동을 어떠한 범위로 떨어뜨려야만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감소 계수(reduction factor)를 빛의 속도 제곱(c²)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며, 그것을 제곱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원래의 에너지, 즉 E가 물질 에너지로 바뀌기 위해, 엄청나게 큰 요소에 의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소가 일어나게 되면, 물질 에너지는 이제 형틀(matrices) 속에 갇힐 수가 있으며, 따라서 단단하고 국소화된(localized) 입자들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자들은 그 후, 원자, 분자, 행성, 전기식 커피 기계(espresso machines). 은하, 인간의 몸과 같은, 국소화된(localized) 구조들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 진동들로 이루어진 연속체인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2 - 여러 진동들로 이루어진 연속체

  


이론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점점 더 높은 진동들을 향해 영원히 갈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물질의 영역 속에 존재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더 높은 진동의 형태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과 대부분의 과학적인 기구들을 사용하여,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 있는 것들을 감지할 수 없는 이유를 이것이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영역 범위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것 너머에는 관찰 지평선(observation horizon)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양자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영역 너머를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발되면, 아마 마음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