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상승한 마스터들은 여러분의 독특한 개체성을 담아두는 저장소로서, 신적 자아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지닌 개체성이 물질세계에서 체험하는 것에 의해 훼손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확실하게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살펴본 것처럼, 이 때문에 신적 자아는 스스로 물질세계로 내려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적 자아가 자기 자신을 확장하여, 분신을 내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살펴보게 될 내용은 바로 신적 자아가 확장한 이러한 분신입니다.


그러면, 신적 자아가 자신의 분신을 어떻게 육화하여, 내려보내게 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존이 이렇게 하고자 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 하나는 자의식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 또 하나는 가장 최근에 창조된 이 구체를 끌어올려, 영적 세계의 일부가 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존은 이러한 목적들을 어떻게 달성할 수가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현존은 내부로부터 물질세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세계에 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이 세상의 내부에 있는, 즉 이 세상의 여러 제약들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존재가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신적 자아는 내부의 시각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하며, 이 세상을 초월함으로써, 현존이 자기감을 확장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존은 자신이 지닌 창조적인 잠재력을 이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행위가 포함되며, 하나는 영적인 빛을 여러분이 지닌 독특한 개체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여러분의 개체성을 통해 초점을 맞춘 채, 현존의 영적인 시각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단지 적은 양의 빛만을 지닌 상승하지 못한 구체는 어두운 방에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신적 자아가 자신이 지닌 빛을 구체 속으로 방사함에 따라, 구체는 상승 지점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존(Presence)은 구체의 내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자아(self)는 자기 자신을 현존이 들어올 수 있는 열린 문으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자아의 창조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위에서 말한 목적들은 오직 신적 자아가 자신의 분신을 창조하여, 물질세계로 보낼 때에만 충족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려오는 자아가 어떻게 이 세상 속에 영원히 갇히지 않을 수가 있느냐 하는 우려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직선적이고 분석적인 마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미묘한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신적 자아는 두 가지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식, 자의식 혹은 현존. 이것들은 형태가 없다는 측면들입니다.


개체성 - 형태를 지니고, 형태의 세상에서 표현되고 싶어 하는 측면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부의 과학자들은 전체의 우주가 거대한 마음을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신비주의가 오랫동안 말해오고 있는 것에 따르면, 오로지 하나의 마음, 즉 창조주의 마음만이 존재하지만, 이 하나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많은 개별적인 존재들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서 중요한 점은 신적 자아는 첫 번째 측면을 확장하여, 분신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적 자아는 자신의 자의식을 확장하여, 분신을 만들어내게 되며, 이 분신이 물질 우주로 내려오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개체성은 영적 세계에 안전하고, 접촉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의식은 실제로 형태의 세계를 초월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의식은 형태도 없고, 어떤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속성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체성은 형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실제로 다른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자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요지는 여러분의 개체성은 내려오지 않고, 영적 세계에 안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순수한 자의식이 확장하여, 무엇인가가 내려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아는 개체성이 내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자아는 신적 자아를 위한 열린 문이 될 뿐입니다.


시각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경찰들이 유연한 튜브를 지니고 있으며, 이 튜브의 끝에는 렌즈가 달려 있어, 이 튜브를 방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튜브는 비디오카메라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경찰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다시 개괄적인 설명으로서, 신적 자아는 “빛으로 된 튜브(tube of light)”를 물질 우주 속으로 확장하게 되며, 튜브의 끝에는 맑은 유리로 된 렌즈가 달려 있습니다. 렌즈는 양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신적 자아는 렌즈를 통해, 빛을 물질 우주로 보낼 수가 있으며, 또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내부로부터 물질 우주를 체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렌즈 그 자체는 단지 순수한 의식이며, 렌즈는 결코 물질 우주 속에서 잃어버려질 수가 없으며, 물질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의해 왜곡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렌즈는 확장될 수가 있으며, 여러분의 의식 상태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이러한 확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린 문이면서, 동시에 더 넓은 문이 되는 것입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통한 앎 : 신비적인 직관(Gnosis:영지주의)


상승한 마스터들은 우리가 앞에서 신비적인 체험이라고 불렀던 것을 여러분이 체험해야만, 이 가르침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생각들에 마음이 온통 집중되어 있거나, 몰입되어 있습니다. 생각들은 용기에 담긴 내용물들에 비유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용기(容器) 자체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용기(容器)는 순수한 형태의 의식입니다.


전 시대에 걸쳐 신비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가라앉으면, 생각 속에 몰입되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면, 의식을 순수한 형태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맞아, 하지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현존,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는 존재해(I AM), 따라서 나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어, 내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의식 때문이야.”라고 바꾸어 말할 수가 있습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은 자아가 개체성 혹은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개념이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믿어 왔던 모든 것과는 반대가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은 분석적인 마음을 사용하여, 이러한 자아에 대해,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분석적인 마음은 어떠한 제약, 즉 형태를 지닌 것만을 다룰 수 있다는 제약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해, 우리가 어떠한 제약들을 초월할 수 없는 물질적인 존재라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분석적인 마음이 지닌 이러한 속성 때문입니다. 분석적인 마음은 자신이 자체의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알고 있는 것과 모든 것을 비교해야만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을 초월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문제를 만들어냈던 의식과 동일한 의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물질세계의 제약들에 기초하여, 정의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강한 자아가 자신을 그러한 분리된 자아와 동일시하게 되면, 자아가 보는 모든 것들은 제약들로 채색될 것이며, 따라서 자아는 이러한 제약들을 표면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딜레마, 즉 실존적인 진퇴양난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합니다.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이러한 세속적이고, 분리된 자아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오로지 여러분이 의식적이고, 살아 있으면서도, 이와 동시에 일반적인 생각들을 뛰어넘는 존재라는 것을 체험할 때뿐입니다. 여러분은 일반적인 자기감을 자각하거나, 동일시하지 않는, 의식적인 존재입니다. 정확히 말해,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신비적인 체험이며,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분리된 자아와 점차적으로 동일시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강한 자아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아는 자신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신적 자아를 위한 열린 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영성인들이 이미 이러한 신비적인 체험을 했으며,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더 큰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여러분이 더 큰 실체, 모든 것 혹은 심지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나, 일반적으로 머리에 가득 차 있는 생각들을 인식하지 않고도, 알게 되는 체험을 한 적이 있나요? 물질세계를 뛰어넘는 세상이나, 현실에 대한 비전을 가진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자신의 육체보다 훨씬 더 큰 존재 거나, 더 큰 몸에 있는 세포와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이러한 신비적인 체험에는 많은 형태가 있으며, 순수함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인간의 “정상적인” 인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모든 체험은 여러분 존재의 핵심, 즉 하강한 자아가 진실로 어떤 형태의 순수한 인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부적격한 에너지로부터 정화될 때, 여러분은 당연히 그리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이미 살펴본 것처럼, 상승한 마스터들은 고차원적인 의식 상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많은 도구들을 전해주었습니다. 마음의 4개 층이 부적격한 에너지들로부터 정화되면, 당연히 그리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강한 자아에게는 순수한 의식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니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점은 하강하는 자아가 순수한 의식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자아가 어떠한 형태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자아는 물질세계의 어떤 것에 의해 훼손되거나, 죽임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떠한 형태 속에 영원히 갇히거나, 한정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자기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는 자기감의 모든 측면들을 초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체험했건, 아니면 체험하고 있건 관계없이, 여러분은 자신의 자기감을 새로이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열린 문이 될 수가 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여러분이 지닌 참된 영적인 개체성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아라는 렌즈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여러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게 되는 문제는 남아 있으며, 이 장의 남은 부분에서 여기에 대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하강하는 자아”에 대해 이름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사용될 수 있지만, 상승한 마스터들은 이 이름을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라고 정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의식하거나,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되기 위해, 여러분은 물질세계와 이 세계 속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형태를 공동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여러분이 정말로 존재할 현존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