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원성적인 상황으로 인해,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여러분의 진보를 가로막는 위험 요소들이 잠복해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속임수도 사방에 존재하게 됩니다. 사실은 적(敵)이지만, 거짓말로 친구인 척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마태복음 7:15)"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속임수는 지구 행성에서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 수 없게 하는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 갇혀 있는 한, 사람들은 속임수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상승하게 되면, 지구에서 속임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권력과 특권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와 같은 날이 오는 것을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역사를 통틀어서, 권력 엘리트들은 항상 존재해왔으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사회가 커다란 진보를 이룩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는 사실을 어려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세요. 미국이라는 신생 식민가 출현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설립되는 것을 영국의 왕이 반대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진보를 반대하는 세력이 실제로 이 지구 행성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세력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띠지 않으며,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세력들은 오직 어둠 속에서만, 혹은 다른 어떤 것인 양 가장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력들이 노출되어, 정체가 탄로 나게 되면, 이 행성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과 분리되려고 할 것이며, 이들에게 권력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언제나 숨으려고 하거나, 자애로운 인물로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향해 진보해가는 것을 눈에 드러날 정도로 명백하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대는 눈에 잘 띠지 않을 정도로, 어둠 속에 숨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두려움 자체를 제외하고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라는 맥락 속에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벗어나고자 하는 어떤 것에 의해, 여러분이 억눌리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공포가 지니고 있는 심리적인 효과는 어떤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외면하게 되거나, 도망가려고 하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속임수에 기초한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진보를 방해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진보조차 가로막을 수 있는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두려워하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은 무의지로 인해, 이러한 사람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갇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방법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원성에 기초한, 즉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거짓말과 속임수에 기초한, 제약적인 자기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계단을 내려갔던 방식으로, 즉 의식적으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계단 위로 다시 오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그리스도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세력이 조장해온 거짓말들을 살펴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면, 그러한 거짓말에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게 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영적으로 진지한 아주 많은 구도자들이 개인적인 진보를 성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어, 자신들의 마음을 계속 거짓말 속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진보를 반대하는 세력들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거짓말들이 교묘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그리스도의 진실을 성취하고 나면, 그러한 거짓말들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그리스도의 거짓말들을 밝혀내기에 앞서, 이러한 거짓말들을 반드시 살펴보려고 해야 합니다. 뒤에서 여러분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을 정도로 두려움에 갇혀 있다면,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산을 오르는데, 뒤에서 뭔가가 끌어당기는 것을 느끼지만, 뒤를 돌아다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면, 그러한 무게감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가 있겠습니까?


영적인 길에서 진보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여러분을 뒤에서 끌어당기고 있는 반-그리스도의 거짓말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여러분의 의식 속에, 즉 자아라는 용기 속에 남아 있도록 여러분이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즉 전혀 실체가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환상들이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들 속에는 진리가 없으며(요한복음 8:44), 따라서 여러분을 지배할 실질적인 힘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개념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이러한 개념이 여러분을 지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개념이 환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 개념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상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할 때에만, 그러한 환상은 힘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진실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의 방법이 있으며, 그것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두려움이 지니고 있는 효과는 마비이며, 이것은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것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두려워하는 상황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러한 상황이 반-그리스도라는 이원성으로부터 생겨나며, 실체가 없는 거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실재하지 않는 상황이 여러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환상을, 어떻게 여러분이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아이들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에는 어둠과 직면함으로써, 그리고 밤에 밖으로 나가거나,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며,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박테리아에 의해, 많은 질병들이 유발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두려워했던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마시는 물에도 위험한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 사람들은 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으며, 따라서 콜레라를 비롯하여, 기타의 질병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많은 질병들을 박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을 계속 묶어두는, 계속 빠져 있게 하는, 계속 가두어놓는 힘입니다. 여러분을 인간적인 감옥 속에 계속 가두어놓고 있는 주요 요인은 정확하게 말해,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것은 진리이며, 이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요한복음 8:52) 그러한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이 지닌 두려움과 기꺼이 대면하려고 해야 하며, 기꺼이 두려워하는 상황들을 살펴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상황들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그것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아주 두렵게 보였던 상황들을 이해하고 나면, 여러분은 그러한 상황들을 극복하고, 이러한 상황들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며, 다시 말해 여러분이 지닌 두려움과 대면함으로써, 두려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상황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핵심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심리 속에 들어 있는 상황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또 한 걸음을 내딛거나, 아니면 어떠한 제약들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두려움부터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러한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無知)에서 생겨납니다. 방어하거나,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은 오직 여러분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며, 그것은 무지 혹은 부정확한 정보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를 극복하고 나면,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길은 무지를 극복하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이원성에서 생겨나는 무지를, 나누어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진리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향해 가는 것을 반대하는 반-그리스도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2000년 전에 예수님을 죽였던 세력입니다. 새 시대의 선구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는 눈먼 지도자들을 더 이상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종국에는 이원성과 상대성이라는 구덩이 속으로 빠지지 않도록(마태복음 15:14) 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닌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예수님을 살해했으며, 이어지는 세기(世紀)들에서, 이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기독교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이길 수 없으면, 한 편이 되라(If you can’t beat ‘em — join ‘em.)”라는 좌우명에 기초하여,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반-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자들, 즉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올 거라고 말씀하셨던(마태복음 24:5) 거짓된 설교자들이 이제 기독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무기가 있으며, 그것은 분리해, 정복한다는 전략입니다. 기독교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이들은 기독교를 스스로 분열된 집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분열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우상으로, 즉 잘못된 이미지로 대체함으로써, 예수님을 본보기가 아니라, 우상으로 변질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운 삶을 향해, 여러분이 진보해가는 것을 반대하는 외적인 세력이 실제로 지구 행성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을 계속해서 무지한 상태에 가두어 둠으로써, 풍요로운 삶과 그리스도의 의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세속적인 자아를 극복하여, 영적으로 거듭나개 되는 것보다, 오히려 세속적인 자아를 미화(美化)하는 거짓된 길을 따르도록 할 것입니다.


참된 길을 찾아내는 것을 막을 수만 없다면,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스스로 분열되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의심하게 하거나, 영적인 길을 따를 가치가 없다고 의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에 대해, 여러분이 모든 측면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영적인 길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영적인 길을 완성하는데 영원히 몰두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반-그리스도의 세력이 여러분의 삶에, 그리고 여러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뱀이 이브의 마음속에 심어놓았던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놓기 위해,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여러분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들 중에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스스로 분열된 집이 되도록 하기 위해,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아라는 영역 속에, 즉 자아라는 용기 속에, 여러분은 반-그리스도의 거짓말, 즉 교활한 거짓말에서 생겨나는 어떠한 믿음들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 오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 (요한복음 14:30)”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할 것이 없다”라는 말은 반-그리스도의 모든 요소들, 즉 모든 교활한 거짓말들을 제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의식적 및 무의식적인 마음을 완벽한 상태로 정화하여, 상승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 속에 어떠한 거짓말도 지니고 있지 않으셨으므로, 이 세상의 왕은 예수님과 관계할 것이 없었으며,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분열된 집이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하나님 혹은 영적인 길에 대해, 예수님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자아와 다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곧바로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거짓말들과 속임수들을 몰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