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극장에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이들은 스크린에 있는 이미지를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고, 이미지들이 스크린에 비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들은 유물론적인 과학자들이기 때문이며, 단지 스크린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크린에 비치는 이미지들이 스크린의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즉 더 높은 실체로부터 스크린에 투사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전혀 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크린 그 자체와 구조를 조사하고, 이미지들이 바뀌는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이미지와 이미지의 모양들을 조사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이미지들이 변하는 방법을 이해한다면, 이미지들이 특정한 형태를 지니게 되는 이유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크린만을 살펴본다고 해서, 스크린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정말로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스크린의 단계만을 살펴본다고 해서, 스크린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바꿀 수가 있나요? 스크린을 검은색으로 칠함으로써, 이미지들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스크린에는 아주 밝은 이미지들을 나타낼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영사기에서 스크린으로 투사되는 것은 전혀 바뀌지가 않습니다. 정말로 스크린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바꾸고자 한다면, 영사실로 가서, 영사기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을 교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존재, 즉 육체, 감정체, 정신체 그리고 정체성의 몸체 속에는, 4장의 필름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몸체들은 서로 이어져서 작용하게 됩니다. 물질적인 이미지들은 정신적인 이미지들의 결과물인 감정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난 산물입니다. 영원히 정신적인 이미지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감정적인 이미지들을 변화시키고자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죄인이라고 믿으면서, 성장해온 것처럼, 여러분이 태생적으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긴다면, 여러분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떠한 사고(생각)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생각들은 여러분의 정체성의 틀 속에 갇히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외적인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죄인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여러분이 어떠한 틀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져, 무능하거나,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되며, 언제나 자신을 구해줄, 혹은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하라고 말해줄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여러분의 행동에도 제약을 주게 되므로, 외적인 지도자 혹은 교회를 따르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구속복과 같은 것에 갇힌 채, 전 생을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진보는 거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항이므로, 한 번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기로 결심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러한 결정은 군사행동을 전개할 전반적인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군사작전을 수립하는 전략가들의 손에 전달됩니다. 그 후, 이러한 전반적인 계획은 공격할 시기와 장소에 대한 세부사항, 즉 어떤 부대와 장비가 투입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장군들에게 전달됩니다. 마지막으로, 개별적인 부대의 차원에서, 명령이 실행되며, 따라서 우리는 한창 큰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군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군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이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명령체계상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결정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군인이 처해 있는 상황은 그 군인의 차원에서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상황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람이 변해야만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정체성의 몸체에 해당하며, 군사작전을 수립하는 전략가는 여러분의 생각이며, 장군들은 감정이며 개별적인 군인은 여러분의 의식적인 마음입니다. 이제 한 개별적인 군인이 죽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정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확실히, 그는 적들이 자신을 죽이기 이전에, 적을 무찌를 수 있도록,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힘으로 상대방을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의 차원에서의 활약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차원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장군들과 다음의 전투를 대비한 계획 혹은 군사작전을 수립하는 사람들과 전반적인 군사행동에 관한 이들의 비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대통령과 맨 처음 전쟁을 하기로 한 대통령의 결심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 합니다. 군인은 곤경에 처하게 되며,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상황을 바꿀 수가 있을까요? 이론적으로, 군인은 지휘체계를 통해, 위로 올라가고자 노력할 수가 있습니다. 그 군인이 장군을 만나, 전투에서 부대를 빼내도록 요청할 수는 있지만, 장군들은 전반적인 계획을 집행할 책임이 있으므로, 자신의 부대를 필요로 한다면, 그 군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다음, 군인은 군사 계획을 수립하는 사람을 만나, 전략을 바꾸도록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간섭하게 된다면, 그 군인은 다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 군인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고, 생존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서,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결심을 하면, 군사전략가와 장군들은 이에 복종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군인은 부담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적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구성원들 속에서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군인이 전장에서 이탈하여, 대통령궁을 찾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대통령의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사전략가와 장군들은 단지 단순한 이유로 계속 싸우고 있으며, 누구도 싸움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있지만, 그러한 명령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대통령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명령체계상에서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존재들에 대해, 절대 의심하지 않으며, 또한 처음에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그 군인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게 되지만, 그 후, 대통령의 의자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군인은 가까이 다가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게 됩니다.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면, 당신이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당신은 반드시 지휘하려고 해야 합니다.” 만약 구성원들 속에서 싸움이 멈추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기꺼이 위로 올라가, 자신의 4개 몸체들을 지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상황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하위의 몸체들에 대한 모든 집착과 분리되고, 그러한 모든 단계들에서 자기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을 일반 군인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곧바로 정체성의 몸체로 가서, 그리스도의 진리에 기초한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존재의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전쟁을 멈추게 해야 하며, 그래야 부대가 고향인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그리고 최대의 성장을 원한다면, 여러분이 세속적인 인간에 불과하며, 불쌍한 죄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정체성에 대해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자아에 의해,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가족에 의해,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의해, 길들여져 있는 모든 제약들에 대해, 여러분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의심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무한한 영적인 존재이며,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영적인 중요한 사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각도 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깊은 목적의식, 더 깊은 의미감, 그리고 진실로 삶이 자신의 창조력을 표현하고, 창조주께서 계획하신 존재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여러분의 삶의 모든 측면들은 극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법이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변화를 거치게 되면서, 여러분은 점차적으로 투쟁의식이 사라지게 되고,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삶이 여러분에게 강요되고 있는 짐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이 엄청난 기회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혼(lifestream), 즉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물질세계로 들어가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보다 높은 완벽한 비전을 물질세계로 가져오고자 하는 참된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 행성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물질 우주라고 하는 이 구체를 빛과 진리로 채움으로써, 어둠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이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간직된 완벽함만을 표현하게 하려는 장대한 계획에 참여하고자 원했기 때문에, 정말로 여러분이 이곳에 오고자 소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정체성의 핵심, 즉 물질적인 정체성을 뛰어넘어, 영적인 정체성으로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이 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참된 자신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로서, 참된 자신을 함께 나누고자 소망했기 때문에,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은 짐이 아니며, 하늘에 계신 분노하고, 부당하신 하나님께서 삶을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여러분을 벌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씌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삶은 기회이며, 선택입니다.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여러분은 이 물질세계로 내려가, 어둠 속으로 빛을 가져오겠다고 선택을 했습니다. 시공간 상에서, 그러한 아득한 시점과 현시점 사이에서, 여러분이 여기로 오기로 했던 이유를 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제약적인 정체성을 거부하고자 노력한다면, 자신이 누구이며, 여기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놀랄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여러분은 당초의 자각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태양이 떠오르면, 이슬이 사라지듯이, 투쟁의식은 소멸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자신의 상위 존재, 즉 신적 자아라는 태양이 마음의 모든 층을 통해 빛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태양이 하위의 4개 몸체들을 통해, 비추게 될 때, 어둠과 제약들은 용해되고, 어둠과 함께 투쟁의식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둠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며, 여러분의 삶은 전혀 새로운 의미와 목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여러분은 삶의 진실, 즉 삶이 기쁨이라는 진실과 다시 연결될 것이며, 진실로 삶은 여러분의 마음의 하위 4개 몸체 속에 지니고 있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 뒤로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흐름 속으로 뛰어들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전체(Allness)와 연결되어, 창조계를 펼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에 참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이며, 이 태피스트리는 너무나 웅장하여, 이 웅대한 계획이 펼쳐지는 것을 자신들의 특정한 개인적인 관점에서 증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과 감사함을 느끼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이들이여, 삶은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행성의 모든 인간적인 투쟁 뒤에 가려져 있는 진실입니다. 나는 이 행성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투쟁의식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상위 존재라는 태양이 비치게 하여, 투쟁의식을 몰아냄으로써, 자기 존재의 본질인 참된 기쁨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의 현재 마음 상태에서 보면, 이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여러분의 신적 자아라는 태양이 여러분의 마음이 지닌 4개의 몸체 속에 저장된 불완전한 이미지들과 부적격한 에너지들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따라, 하위의 4개 몸체들을 정화할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한다면, 언젠가는 여러분의 의식을 통해 정말로 빛나고 있으며, 이 행성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보다 삶에는 더 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한 줄기의 햇살을 실제로 보게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따라, 여러분과 내가 함께 태양을 향해, 더 높이 오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