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의 빛이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지구에 빛을 방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빛이 물질세계로 유입됨으로써, 전 우주의 진동수가 상승하게 되는 것이며, 물질세계를 빛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또 다른 구체가 영적 세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며, 계획입니다. 여러분은 지구의 특정한 상황들을 확대하고, 가속화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들 속으로 하나님의 빛을 유도함으로써, 현재의 불완전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지닌 빛을 주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궁극적인 성취감을 가지게 되는 것도 여러분이 지닌 빛을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닌 빛을 주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떠한 방식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바라는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지닌 빛을 차단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빛이 여러분을 통해 흐르는 것을 차단하게 되면, 여러분 역시도 성취감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만약 빛을 완벽하게 차단한다면, 결국 어떠한 성취감이나, 목적의식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의 삶은 지속적인 투쟁이 될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빛이 희석되거나 방해받지 않고, 여러분의 하위 4개 몸체들을 통해 흐름으로써, 빛이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풍요로 둘러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아래에서 풍요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빛이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풍요를 만들어내고자 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재능은 증식될 것이며, 여러분을 통해 빛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여러분은 궁극적인 성취감, 즉 궁극적인 풍요감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빛이 단절될 때, 다시 말해 이원성적인 믿음들, 즉 여러분이 주기 위한 조건들을 정의하는 믿음들을 받아들이게 될 때, 여러분은 풍요로운 삶뿐만 아니라, 성취감과 온전하다는 느낌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행복과 풍요의 열쇠이기도 한, 빛의 흐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정말로 궁핍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위 4개 몸체들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빛이 차단되면, 풍요로움에 대한 에너지적인 자극을 우주의 거울 속으로 보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거울은 풍요로운 삶을 물질적인 상황으로 여러분에게 되돌려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을 물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선 여러분이 누리도록 되어 있는 풍요로운 삶을 영적으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義)를, - 하나님의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함 - 먼저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보태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 왜냐하면 물질 우주는 여러분이 보내는 풍요를 여러분에게 되돌려주는 것 이외에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하나로 연결된 전체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당초계획 속에는, 각각의 개별적인 영혼(lifestream)과 전체 간에 어떠한 갈등이나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에서 일어났던 것은 이 행성을 고향이라 부르는 대다수의 영혼들(lifestreams)이 이원성적인 의식으로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리 의식을 통해, 영혼들은 개인과 그룹, 그리고 국가 간에, 심지어 인류와 어머니 지구 사이에 엄청난 숫자의 갈등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갈등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이 지닌 하나의 주된 속성, 즉 이기심으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이기심은 개별적인 영혼(lifestream)이 자신의 근원과 분리되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됨으로써,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근원과 의식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형제자매들이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즉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라고 하셨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섬이 아니며, 외부와 단절(in a vacuum)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중요한 유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자신이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확장하신 분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 밖의 모든 것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확장하신 분신입니다. 이러한 확장된 자각을 지니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 몸체의 다른 모든 부분들과도 연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 진실로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우주가 여러분이 보낸 것을 되돌려주는 거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주는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하는 것이라도 이야기했습니다. 정말로 이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더 고차원적인 이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차원적인 이해란 다른 사람들과 여러분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몸체의 일부이며,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몸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을 우주가 여러분에게 행하게 될 거라는 말을 뛰어넘어, 여러분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인들도 여러분의 더 큰 자아(greater Self), 즉 하나님 몸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물질 행성도 하나님의 창조물들 가운데 일부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구 어머니에게 행하는 것 역시도 자기 자신에게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부가 이 행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 전체에게 일어나는 것은 현재 여러분의 정체성의 중심인 개별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여러분은 세속적인 자아와 동일시함으로써, 에고중심적이 될 수가 있으며, 아니면 하나님의 모든 것(Allness)과 하나인 영적인 존재로 여김으로써, 하나님중심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정체성을 정화함으로써, 얻게 되는 최고의 효과는 세속적인 자아가 지닌 이기심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으로부터 유래된 분리 의식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별적인 존재로서,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마저 뛰어넘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개별적인 영혼(individual lifestream)은 더 큰 전체, 즉 하나님의 전체의식의 일부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개별적인 영혼보다 더 큰 것이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그러한 전체의 표현이며, 아주 큰 우주의 매우 작은 행성에 존재하는 육체에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아주 많은 기독교인들은 “너희가 곧 신(神)이다. (요한복음 10:3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여러분이 하나님인 전체(All)와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진실로 여러분은 신들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궁극적인 온전함, 궁극적인 기쁨, 궁극적인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지 못 할 것이며,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도 알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 후, 여러분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비적인 직관(gnosis)”이라 불렀던 것을 성취하게 되었으며, 이 말의 의미는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 사이에 어떠한 거리감과 차이 그리고 분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깊이 숙고해 왔습니다. 많은 영성인들과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삶에서의 목표가 되었지만, 안다는 개념은 거리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체험하고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개념은 여러분은 여기에 있고, 하나님께서 저 어딘가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 멀리 있는 하나님과 접촉하려고 하는 것이며, 마음속으로 저 멀리 있는 하나님이 어떠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여전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그리스도의 핵심이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것을 여러분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욕구조차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진지한 영적인 구도자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욕구마저도 초월하고, 여러분이 아닌 것을 알고자 하는 개념도 초월해야 하는 때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실로 알 수가 없으며, 하나님이 무엇과 같으며, 하나님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곰곰이 숙고해보아야 할 과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