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있다면 소리쳐라.  


1. [곧 지혜가 네 마음으로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惡魔(악마)의 欺瞞(기만)과 暴力(폭력), 그런 어둠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모든 삶은 어둠의 행동이 된다. 그야말로 어둠의 子息(자식)이 된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악마의 어둠을 가진, 악마의 자식들과는 더불어 살 수 없게 된다. 그들과 함께 하면 최소 아주 심각한 고통에서 최고 死亡(사망)을 당하고 겪게 된다. 그런 어둠의 자식들이 권세를 잡으면 그로인해 세상은 피에 굶주린 악마에게 시달리게 된다. 어둠의 자식들이 권세를 잡으면 착취의 행동을 露骨的(노골적)이게 하고 그런 노골적인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亡(망)하게 한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인 밝은 빛이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빛의 아들이 된다. 빛의 아들들은 세상의 모든 인간의 삶을 생명 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보람차게 하고 의미 있게 하고 밝고 화창한 삶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삶의 모든 고생을 극복하게 하고 오히려 행복하게 하여 그런 행복을 늘 영위하게 한다.  

2. 빛의 아들들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힘에 의해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된다. 사람은 그 속에 가득한 것으로 인해 自他(자타)의 幸(행)不幸(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가면 그 사람은 만물을 살리는 태양빛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모든 인류를 살리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마적인 기만과 폭력의 흑암의 세계에서 살 수 없다. 그런 연고로 인간은 늘 하나님의 빛을 指向(지향)하고 소망하고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있는 줄 모를 때는 인간의 힘으로 그 빛을 만들어서라도 살려고 노력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갈급한 것이다. 악마의 어둠은 기만과 폭력으로 달성하는 인간에 대한 증오와 착취이다. 이런 증오와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둠은 상상할 수 없는 혼돈의 언어들로 가득하게 한다. 韓半島(한반도)는 그런 기만적인 언어와 폭력적인 언어 집단에게 시달리고 있다. 저들이 권세를 얻어 북한주민의 呻吟(신음)을 만들어 내고 탄식의 눈물에 沈沒(침몰)하게 한다.  

3. 흑암이 짙어 질수록 混沌(혼돈)의 言語(언어)들은 북한주민을 더욱 깊은 압제로 몰고 간다. 거기서 북한주민들은 더욱 큰 신음과 탄식으로 淹沒(엄몰)되고 있다. 북한주민은 지금 그 심각한 어둠과 혼돈함과 눈물에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구원은 아주 절실하다. 그것이 곧 사람의 속에 악마의 기만과 폭력의 어둠이 들어갔을 때, 어둠의 자식들의 행동으로 전개되는 내용들이다. 이런 것은 흙의 창조 또는 흙의 구원의 과정에 얽혀진 原初的(원초적)인 기억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런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고유본능적인 내용이다. 태초의 흙은 혼돈하고 물에 빠져있어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하셨다. 흑암 속에 갇힌 흙은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에 빠져 있었다. 혼돈이 치료된 흙이 되려면 흑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흑암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셔서 절망에 빠진 흙을 흑암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빛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비로소 빛은 있게 된다.  

4.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지는 빛이 나오자, 흙은 비로소 치료되었다. 그것이 흙이 겪은 桎梏(질곡)이고 흙 속에 담겨진 아픈 기억이고 그 치유스토리이다. 모든 흙은 하나님의 빛을 가져야 비로소 그 혼돈에서 벗어나게 된다. 빛을 머금은 흙이 될 때 비로소 물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얻게 된다. 흙(인간)은 악마의 어둠 속에 묶이게 되면 혼돈함(각양 기만의 언어들)에 짓이겨진다. 혼돈함에 짓이겨지면 탄식의 고통으로 눈물에 빠져 버린다. 흑암(악마의 기만)속에 갇힌 흙(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알아보는 또는 알아내는 개념이 없다. 진리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없다. 눈에 잡히는 것은 온통 혼돈함 뿐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의 개념이 없는 흑암이 가져온 것은 欺瞞(기만)찬 혼돈뿐이다. 그런 혼돈이 그들 위에 잔혹한 압제자의 走狗(주구)가 되어 군림한다. 이에 흙(인간)은 처절하게 시달리게 된다. 흙(인간)은 흑암으로 인해 시달리게 되고 그렇게 운다. 울어도 울어도 탄식해도 벗어날 길은 없다. 절망 그 자체가 흙(인간)을 시달리게 한다. 아무도 그 눈물에 잠겨 呻吟(신음)하는 흙을 건져낼 자가 없다. 그때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빛을 만들어 흙(인간)에게 소망을 주신다.  

5. 그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흙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눈물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빛은 깊은 절망에 빠진 흙(인간)에게 確信(확신)에 찬 희망을 준다. 그 빛은 흙(인간)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그에게 ‘곧 지혜가 네 마음으로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라는 말씀을 이루게 한다. 빛을 갈급하게 받아들이는 눈물은 혼돈에게서 벗어나는 흙(인간)에게서 비로소 물러가기 시작한다. 흙은 그제야 구원된다. 흙(인간)은 비로소 거기에 뿌려진 모든 씨들에게 생명을 주기 시작한다. 그 품에 자라나는 수많은 生命體(생명체)를 안아 기른다.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번성하게 하고, 수많은 생명체의 어미가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으로 인해 깊은 탄식과 신음의 눈물에서 벗어난 大地(대지)의 꿈은 그렇게 이뤄지게 된다. 참으로 흙(인간)은 하나님의 빛의 도움을 입어 악마의 흑암에서의 자유와 혼돈함에서의 자유와 깊은 눈물과 신음에서의 자유를 찾아낸 것이다. 그런 흑암에서 벗어난 흙(인간)이 비로소 참혹한 고통의 눈물에서 구원된다. 참혹한 눈물에서 구원된 흙(인간)은 하나님의 손길에 선택되어 인간의 육체가 된다.  

6. 그 흙(인간)은 지혜와 사랑의 빛을 공급하는 자의 손에 의해 인간의 魂(혼)이 된다. 그런 연유로 인해 흙(인간)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와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빛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원칙이 되었다. 때문에 인간은 그 원칙을 따라야 한다. 때문에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있어야 한다. 物質界(물질계)의 빛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필요하다. 모든 만물과 더불어 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빛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빛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때문에 하나님에게 공급받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진다. 즐거워진다. 喜樂(희락)과 喜悅(희열)에 잠겨 모든 만물과 더불어 살며, 이웃을 이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로만이 악마의 미움과 지혜인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이 이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인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행복을 가질 수가 있다. 어둠이란 악마의 欺瞞(기만)이고 악마의 暴力(폭력)이다.  

7. 기만과 폭력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인간 속에서 온갖 혼돈을 일으키고 거기에 흑암이라고 하는 미련함의 극치 속에 빠지게 한다. 인간이 그런 미련(악마)에 노예가 되면 그때부터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된다. 그런 눈물에 빠지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절망으로 파괴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고 어둠에 지배받게 하는 것은 혼돈이다. 그런 것의 결과는 심각한 눈물이다. 북한에 김정일의 어둠이 짙게 내리 누르고 있다. 거기에 각양 혼돈된 언어들이 북한주민위에 君臨(군림)한다. 그런 속에서 짓이겨지는 북한주민의 삶에는 온갖 탄식과 아픔과 신음과 고통과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북한주민은 흐르는 눈물에 잠겨 고통 받고 있다. 거기에 구원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둠의 자식들 곧 김정일은 날이 갈수록 핵무장을 하고 더욱 떼 法(법)으로 남한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따라서 적들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빛이 있어야 한다. 전능자의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빛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빛을 마음에 담아 그곳에 빛을 전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마음에 담아 그곳에 빛을 뿌려줄 자들이 필요하다.  

8.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사랑의 빛을 북한 온 누리에 뿌려주어야 한다. 흑암의 混沌(혼돈)의 언어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빛의 언어들이 가득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빛의 언어들로 혼돈된 언어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 그런 것으로 인해 북한주민은 비로소 행복은 언어의 속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둠의 언어는 혼돈만이 가득하고 그 혼돈 속에서는 눈물이 바다같이 자기들의 삶을 침몰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빛의 언어는 모든 혼돈을 바로잡고 마침내 신음과 탄식과 절망의 눈물에서 건져내 주고, 온 땅으로 풍요를 더불어 나누는 세상을 연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세상을 여는 것이 곧 빛의 言語(언어) 사랑의 言語(언어) 지혜의 言語(언어)임을 알게 된다.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혼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빛이 필요하다. 눈이 있는 자들은 보라. 귀가 있는 자는 들어보라. 마음이 있는 자는 통감하라. 입이 있는 자는 말해보라. 북한주민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자들아, 눈에 빛이 있다면 이를 확인해 보라. 북한 주민의 혹독한 인권유린의 고통을 알아보는 눈과 귀에 빛이 없다면 어둠의 子息(자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