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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박근혜 이래도 대통령 후보자격이 있는가?
글쓴이   우리민족끼리 

요즘 한국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주자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및 안철수 원장과의 지지율이
휴대폰 70%가 감안한 여론조사 결과 초 박빙 상태로 조사되고 있다.

박근혜는 순전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인데
박근혜의 정치 업적이라곤 별로 내세울게 없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과연
한국민의 지지를 받을 자격과 능력 업적이 훌륭한가 생각해볼 일이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격이 있었는가?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 기세를 몰아 부정선거를 도입
3선 대통령을 하더니 선거가 귀찮았던지 유신헌법을 만들어 제멋대로
18년간 대통령을 하다가 김재규한테 총을 맞아 죽은 사실은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이 박정희의 친일행위를 잘 알고 있다면
박근혜 지지 따위는 없을 것인데 참 안타까은 일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박정희 친일 행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박정희의 일본이 세운 만주군관학교의 입학과정 등
친일행위와 김산의(본명 장지락) 조선 독립무관학교 입학과정을
비교해 보자.


박정희의 친일행위(한겨레21 발췌내용)

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데 대해 박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민족문제연구소가 5일
일본에서 최근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사본을 전격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신문인 기사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하자,

1939년 재차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함께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편지를 제출하며 재응모했다.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라며"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지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라며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이라고 덧붙였다.
이 내용은 만주신문에 실리어 확실한 증거자료가 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세 차례의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3월 우등생으로 졸업하면서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恩賜賞)으로 받았다.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했고
이때 창시개명한 이름 “다카기 마사오”란 일본이름을 버리고
“오카모토 미노루’란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다카키는 “밀양박씨”라는 뜻이고 마사오는 "정희"란 이름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오카모토 미노루”는 조선인의 뿌리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일본식 이름이었으므로 조선의 자존심마저 팽개친 것이다.

1944년 4월 일본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했다.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국군 보병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보병 8단 단장의 부관실에 부임해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을종(乙種) 부관 겸 부대의 단기(團旗)를 책임지는
기수로 근무했다. 1945년 7월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했다.
철저히 조선 독립군 사냥에 관여된 업무에 종사하였던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자료 공개 이유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지난 10월 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며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연구소에는 욕설전화가 폭주했다.

독립혁명 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만주 신흥무관학교 입학 내용)

하니허에 있는 조선독립군 군관학교 이 학교는 “신흥학교’라 불렀다.
아주 신중한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군관학교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람들은 겨우 15세 밖에 안된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최저 연령이 18세였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엉엉 울었다.
내 기나긴 순례여행 이야기가 알려지자 학교측은 예외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지리 수학 국어에서는 합격하였지만,
역사와 엄격한 신체검사에서는 떨어졌다.그럼에도 3개월코스에 입학하도록 허가 받았고
수업료도 면제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상기 내용을 잘 비교해 보시라!.
차이가 나도 어떻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현재 독립혁명 열사 후손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친일파 후손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고 하니
우리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야만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박정희는 철저하게 기회주의자로 일관된
삶을 살은 인격장애자였다.그는 젊은 시절을 철저하게
친일행위로 보냈고, 해방이 되고 군인이 되더니 그 당시 정세가
많은 인민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걸 보았다. 입신양명을 위하여 남로당에 가입하였다.

애당초 사회주의적 사상과 혁명의지가 전혀 없었음에도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 증거는 이렇다. 그가 특무대장 김창룡한테 붙잡히자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군대 내 남로당 당원명부를 건네 주었다.
그리하여 군대내 남로당 당원은 일망타진되어 죽음을 맞았다.

셋째, 그가 경제를 일으킨 한국근대화의 아버지란 이야기는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것은 정치에서 승리한자만이 누리는 언론매체 등 혜택을 총동원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도 남북 경제대결에서 북쪽이
훨씬 윤택하였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평가이다.
필자도 6.70년대 아침은 고구마,점심은 굶고,저녘은 보리밥으로 연명하였는데
그래도 다른집보다 사정이 더 나은 편이었다.

1990년대부터 공산주의 러시아가 망하며 자본주의로 돌아섰고
중국마저 자본주의로 돌아서 북쪽은 외국 지원이 길이 막힌데다 미국의 경제 금융
제재강화로 힘을 쓰지 못하여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하여 남쪽은 올림픽 및 월드컵 개최등 으로 인지도를 높였고
반도체 자동차 정보산업이 발달되어 경제가 성장하였지
박정희 치적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객관적 평가이다.
IMF로 망한 한국을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정보산업’에 치중하여
무역이 급신장한 결과이다.

요즘 경제가 좋아졌다 하여 민족의 계승 정당성 정통성면에서 조선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넷째, 박정희는 도덕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일본식 사무라이 섹스관"을 갖고 있는자
라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다. 다음글 박정희의 가학적 섹스관과

연예계 여성편력 등 내용을 읽어 보시라. 그가 취한 여성은 700여명이 넘었고
임신한 여자들은 밝혀진 것만 20여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의 그릇된 여성관으로 한국은 섹스공화국이 된지 오래이다. 박정희 통치시절
일본인의 한국 기생관광은 너무도 많이 알려진 바,박정희 작품인 것이다.

현재5만여명의 젊은 처녀들이 일본에서 매춘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세계곳곳에서 한국여성의 매춘으로 매스컴이 연일 시끄럽다.

도대체 강제로 끌려간 정신대 수십만명과 일본인에게 자발적 성적욕구를
채워주는 행위는 무엇이 다른지 묻고싶다.박정희 작품인 기생관광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런자의 후손을 대통령으로 뽑을려고 안달인가?
혹시 그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소통이 안되는 불통 대통령은 아닐까?

불통 대통령은 이명박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생각하여 결정할 일이다.

한국에 그렇게도 인재가 없다는 말인가?
그 애비처럼 피를 이어받아 언제 변절하여
일본에 또는 미국에 팔아먹을지 알 수 없으니 참 불안하다.

그가 조선의 김정일 장군님과 회담한 경력이 있다 하여
민족화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과 동거하면서 이명박과 항상 함께
동족대결에 광분한 역적 패당에 불과한 자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다섯째 박정희 집권기간동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고 생명을 잃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A4용지로 트럭 한대분이 소요될 것이다

박근혜는 이에 대하여 제대로 사과한적 없으며
사과하고 싶다면 당장 대통령 후보를 사퇴한 다음 사과해야할 것이다.
그가 단순히 박정희 딸 때문만은 아니며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이래
퍼스트 레이디 역할로 국정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인 및 해외 동포 여러분!
현재 사정이 이러하니 모두 정신차려
조국을 구하는 길에 모두 앞장서고 힘을 내야 할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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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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