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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각주1

이글은  예수그리스도를  불러서  예수님이 직접 그리스도 사명에대하여  설명한것입니다  일본종교라서 그렇치만 감명깊은

글입니다  길어도 끝까지 읽어보면  예수님이 뭘 전하려하는지 알수가 있습니다  
  

   
 

 

1. 나자레의 예수
 

  내가 나자레 땅에 육체를 가지고서 벌써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2천 년을 생각할 때 길다는 감회도 있지만, 또한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2천 년의 세월은 어느 때는 길고 어느 때는 짧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지상에 육체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깊고 깊게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에 한 번밖에 지상에 육체를 갖지 않습니다만, 그 불과 수십 년의 인생이 자신의 운명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해 깊고 깊게 책임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인간의 삶이 후세 사람들의 삶을 결정한다」고 하는 커다란 임무를 생각했을 때 당신들의 인생도 또한 대단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나는 나자레에서 태어나 33세에 그 인생을 닫은 사람입니다만, 이 33년의 인생은 아마 1억 명분, 10억 명분이나 되는 인생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아직 현대처럼은 활자가 발달해 있지 않고 서적도 나돌지 않고 테이프도 없는가 하면 비디오도 없는 시대였습니다만, 그래도 나의 인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만큼의 것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마음 속의 하나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 할까, 청량감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삼십 수 년간의 인생을 실재계에 돌아와 2천 년 이래 생각해 보니 아직이라는 마음은 많습니다.
  나로서는 아직 부족한 인생이라도 후세의 사람이 보면 그것을 완전한 인생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도 또한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있는 어느 일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이상도 전, 아니 3천 년 정도 전이 될까요, 내가 지상에 육체를 가지기 천 년 정도 전에는 내가 지상에 내려온다는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레미야도 그렇고 혹은 이자야도 그랬으며, 여러 많은 예언자들이 지상에 내려와 머지않아 내가 태어난다는 것을 예언하고 갔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그와 같은 서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빛의 지도령이란 어느 시대에도 자신의 뒤에 오는 자의 예언을 하고 지상을 떠나갑니다.
  나자레의 당시 법(法)을 설했을 때 나는 갖가지 고난, 어려움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나는 구세주라는 것을 자신이 내세우기는 했지만, 내가 구세주라는 것에 대한 예언이 애매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세에 그와 같은 구세주가 나온다는 것은 예언되었지만, 그것이 예수라고 일컬어진 나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의 십자가가 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예언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목숨도 줄어듦과 동시에 나도 갖가지 박해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30세라는 연령으로 법을 설하지 시작했다는 것이 역시 세상의 율법학자라는 대가들이 보면 무엇보다도 더 샘이 나게 보였던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그들의 증오와 노여움을 증폭시켰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2.  십자가의 의미
 

  한편 나는 2천 년 전에 골고다라는 언덕, 「해골의 언덕」이라는 의미입니다만, 이 작은 언덕에서 죄인들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이윽고는 이 사건도 신화처럼 되어 가겠지만, 그러나 현시점에서 당신들이 느끼듯이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에 관하여 기독교회에서도 오랜 세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무엇을 위한 십자가였는가?」라는 것입니다.
「왜 구세주가 죽음이라는 현상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왜 죄인과 함께 책형을 당한다고 하는, 이 세상적으로는 최악의 방법으로 죽어야만 하는가?」에 관한 의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속죄설(贖罪說)에 관한 의문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다」는 사고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속죄설에 관해서는 두 가지 면에서 검토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나라는 인간이 그 생명을 버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정신을 먹고, 나의 생명의 물보라를 마시며 정신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그 의미에서는 나는 커다란 자기희생 하에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면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 면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인류의 죄가 속죄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것 자체는 인류가 그만큼 죄 많은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 자체를 생각하는 입장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토록 죄 많은 행위를 한 인간이기 때문에 커다란 참회를 하여 마음을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이 의미에 선다면, 이 견지에 선다면 속죄설은 어느 의미에서는 맞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또 하나의 의미로서 내가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인류의 죄가 그대로 용서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용서되었다는 사고, 「신이라는 매우 흉포한 분이 있어서 그 분에게 인신공양을 바치면 그 노여움이 가라앉았다」는 식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은 잘못합니다.
  나의 죽음은 천상계에서는 커다란 슬픔으로 맞이하였습니다. 그것은 후세에 모차르트라는 사람이 「레쿠이엠」이라는 곡을 작곡했던 것처럼 그와 같이 커다란 슬픔으로 고급 여러 영은 나의 죽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결정되어 있던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커다란 슬픔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지상에 나오기 천 년도 더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자레의 왕 예수, 유태인의 왕으로서 정말로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삶의 방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찍이 나는 그런 일을 몇 번이고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상에 육체를 가졌을 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왕으로서 사람들을 통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최하층의 신분으로서 나왔습니다. 한 푼의 자산도 없이 그 날의 양식도 곤란하고 잠자리도 없이,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서 돌을 맞으며 가시나무의 관을 쓰고 그리고서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죄인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런 인생을 선택했습니다.
  몇 번이고 하는 전생윤회 가운데에는 그런 입장에 설 필요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또한 커다란 겸손의 미덕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했던 일입니다.
  신이란, 혹은 고급령이란 결코 사람들의 위에 서서 크게 뽐내면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난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괴로움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2천 년 지난 지금 나의 출탄(出誕) 자체가 처녀강탄(降誕)이라는 것이 되어 여러 가지 신화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다만 나의 진정한 삶, 인생은 그와 같이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역시 속인과 섞이면서 속인과는 다른 것을 차츰 발휘해 간다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33년의 생애를 돌이켜보았을 때 나 스스로도 이런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없겠지」하고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자신이 진리를 설하면서 그와 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그 후 세계가 대체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는 역시 미지수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정말로 전세계가 이윽고 변해간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육체를 가진 몸으로서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고 자신의 가르침이 부정된 채가 된다면 무엇을 위한 생애였는지를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가치가 어느 정도 정해지는 데는 내가 죽고 나서 역시 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 진실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무래도 너무 서두르는 면이 있어서, 「동시대에 동시기에 자신들이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경우도 그 가치가 굳어지기까지 역시 백 년은 걸렸습니다. 백 년 정도 걸려 많은 제자들의 힘에 의해 점차 세상에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며, 살아 있을 때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군중도 수없이 나를 지지해 주었지만, 내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나를 지켜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가 득의의 절정에 있을 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준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나에게 왕의 권력의 칼날이 향해졌을 때 몸으로 나를 지켜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3. 스승과 제자
 

  그러면 여기서 나의 제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두고자 합니다.
  성서 속에서는 열두 제자라고 하여 유명한 제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최후일 때 나를 지켜준 사람은 없었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이것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입니다.
  그토록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베드로조차 자기 몸이 아까워서 나를 배반했다는 것이 성서에 남겨져 있습니다. 세 번까지 나에 대해 「모른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예언했습니다. 「베드로여, 너는 닭이 새벽이 왔음을 두 번 고하기 전에 세 번 나에 대해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예수 따윈 모른다는 것을 너는 말하리라」고 나는 예언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아니, 선생님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체포되는 날 밤 군대가 나를 습격하러 왔을 때 나를 보호하려고 칼을 빼어 싸웠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정도였던 베드로가 내가 이미 붙잡힌 몸이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보려고 침입하여 간수에게 발견되자 「나는 모른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연약함과 나의 드라마의 비극성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체포되었을 때 많은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배반했다고 되어 있는 유다라는 인간이 있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에 의해 「왜 예수는 자신을 배반할 자를 제자로 삼았는가?」,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 자를 제자로 들였는가?」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유다라는 자도 나의 귀여운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의 입으로 이런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열두 명의 제자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했지만, 나 자신이 그들을 강하게 하고 그들을 진정한 높이까지 인도할 수 없었다는 점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내가 지상을 떠난 뒤 많은 제자들이 젊은 목숨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관해 대단한 슬픔을 느낍니다.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많은 성공을 주고 싶었다는 마음입니다.
  기독교 속에는 아무래도 슬픔이라는 것, 비극성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인류의 기억에 남는 드라마로서는 그런 비극은 어느 시대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순풍에 돛 단 이야기, 석세스 스토리는 그 당시는 인구에 회자되지만, 후세에는 그렇게 오래 남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비극의 드라마는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올라 기억 속에 많이 남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극도 전도에서 중요한 면은 있습니다.
  다만 나의 흐름을 이어받은 자 가운데 비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후세의 사람들도 수없이 십자가에 매달려 화형에 처해지고 돌로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입니다만, 결국 제자란 스승을 흉내 낸다는 것입니다. 스승이 그만큼 격렬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결국 제자들이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 자신의 타협을 싫어하는 성격이 후세의 제자들이 죽는 방법을 결정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 의미에서는 스승과 제자란 언제나 일련(一連)의 사고방식 속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평화를 좋다고 했다면 그런 제자도 많이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과 조화는 설했지만 결국 그 실천으로서는, 그 실행으로서는 역시 싸움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마(魔)는 창궐하고 진리의 불은 꺼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평화를 가져온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너희들 속에 검을 던지기 위함이니라.
  내가 던지는 검에 의해
  부부는 헤어지고 부모자식은 헤어지고 형제는 나누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검을 던지기 위해 나는 왔노라.」
  이런 말을 나는 했습니다.
  즉, 진리를 믿음으로써 커다란 위난(危難), 어려움이 와 그것과 싸울 때 이미 인간으로서의 인연을 단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인에게 설명해도 반드시 이해를 얻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그 시대환경을 현대인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말하자면 권력에 의한 압정이 펼쳐지던 시대였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타파하는 하나의 에너지는 그들에게는 대단한 위협이었습니다.
  이런 위협을 막기 위해 온 나라가 거국적으로 그 권력을 결집하여 나를 박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내 편은 대체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이거나 세금 걷는 사람이거나 창녀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세상사람들에게서 박해받는 사람들이 나를 지켰습니다.
  그와 같이 약한 자, 이 세상적으로 박해받고 학대받는 자를 위해 나는 일어섰으며 그들이 나를 도와 주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도 또한 실효가 있는 것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설했습니다. 「사랑이란 결코 남의 위에 서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처럼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커다란 조신(操身) 속에 있으며, 커다란 겸허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선택한 제자들도 이 세상적으로는 학문도 없고 교양도 없고 신분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주여,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 이것만이 스승과 제자를 잇는 한 가닥의 길이었고, 한 줄기의 길이었고, 한 줄기의 맹세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이익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 마음의 양식이 되는 말을 토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젊은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4. 유다에 대하여
 

  그런데, 이 제자 속에 유다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나를 배반했다는 것으로 유명해진 인간입니다. 이 유다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로 갈라져서, 현재도 정설(定說)이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유다에 대해 나는 진실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이란 기본적으로는 없습니다.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서 태어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갖가지 악습에 물들거나, 여러 가지 나쁜 사상에 사로잡히거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현혹되거나 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본래 훌륭한 존재이지만, 또한 약한 존재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 약한 존재라는 증거로 마음속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금전에 궁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식량에 궁하면 식량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한다는 면이 인간에게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궁지에 몰렸을 때 인간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는 한 권의 철학 서적보다도 한 줌의 쌀 쪽이 고마운 법입니다. 오늘 빵을 살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서 한 권보다도 역시 천 원짜리 한 장 쪽이 고마운 법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약함을 보았을 때, 알았을 때 나는 이것을 한 마디로 부정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것을 가지고, 약함을 가지고 악인이라거나 악마라고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지금 유다라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겁이 많은 인간이기도 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느 쪽인가 하면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무엇보다도 자기 생명의 위험이나 스스로의 약함을 충분히 알고 있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누구라도 예를 들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이 위험에 처해서도 자신의 스승을 위해 살 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현실에 놓였을 때에 자신이 유다가 되지 않는다는 확약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나의 목숨이 노림 당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또 내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일 년 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예수를 죽여라」는 소리가 거리 구석구석까지 넘쳐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지명수배된 사람처럼 동료의 집에서 동료의 집으로, 은신처에서 은신처로 도망 다녔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들이 모여 있는 회합에 어디선지 모르게 나타나서는 가르침을 설한다는 형태였습니다.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나의 죽음은 이제 바로 가까이 와 있는 상황이며, 또 나의 제자들도 대부분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상황에 있으면서, 과연 세상사람들이여,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자신이 유다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모두 제각각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유다라는 자가 소액의 돈을 위해 나를 배반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돈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겠지요. 다만 돈 때문에만 그가 나를 배반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나를 배반한 진정한 이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제자들에게 공평하게 접한 셈이었지만, 아무래도 제자들에 대한 사랑에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베드로라는 제자를 사랑했습니다. 또 『요한 복음서』를 쓴 요한이라는 제자를 사랑했습니다. 또 열두 제자는 아니었지만, 마르코[마가 복음서의 저자]라는 청년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인간은 비교적 초기 무렵부터 나의 제자가 되어 있었지만, 내가 그와 같은 후진(後進)의 제자들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질투에 괴로워했습니다. 결국은 그런 것입니다.
그도 나에 대한 사랑은 있었지만, 그 사랑이 더해져서 미움으로 변해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남녀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이야기입니다. 너무나도 상대를 사랑했기 때문에 상대가 자기를 생각해 주지 않을 때에 그 사랑은 언젠가 미움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다라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던 것은 결국은 이 질투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수제자(首弟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수제자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영리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영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맑지 않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그에게 지적했습니다.
「그대는 더욱 더 강해지지 않으면, 신앙으로써 청동(靑銅)의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진정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엄하게 그를 지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베드로, 다소 단순한 면도 있고, 혈기에 치우치는 인간이었습니다만, 이 베드로와, 또 충실하게 나의 마음을 보아주는 「요한 복음서」의 요한, 이런 자들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배반한 진정한 이유는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질투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다는 또 하나의 불만을 나에 대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대단히 귀족취미적인 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귀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와 같이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진작부터 내가 세상에서 신분이 낮다고 일컬어지는 세리(稅吏)와 침식을 함께 하거나, 창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자(聖者)에게는 성자로서의 삶의 방식이 있을 터이다. 세리라든가 창녀와 같은 자를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역시 법을 설하는 사람은 그만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말을 언제나 유다는 했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정론(正論)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는 나에 대해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은 아니지만, 「권력자, 윗사람의 눈은 엄격한 면이 있어서, 창녀나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과만 상대하고 있으면 상대하는 자를 보고 판단됩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은 멀리 하십시오」 라고 언제나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유다의 나에 대한 불만의 두 번째였습니다.
더욱 사랑하는 제자가 달리 있었다는 점과 그가 말하는 하층계급의 자들과도 내가 상대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들을 항상 그는 불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무렵에는 그의 마음속에도 자주 마(魔)가 들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엄하게 지적했습니다.
나의 제자들 대부분은 이미 영능력자(靈能力者)와 같은 상태가 되어 있어서 선령(善靈)도 악령(惡靈)도 때때로 몸을 지배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속에도 자주 악마가 들어있었으므로 나는 모두의 앞에서 공공연히 그를 질책한 적이 몇 번인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 자신도 상당히 감정적이 되었던 면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이 말하는 구세주라면 더더욱 큰 힘을 발휘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마음입니다. 즉, 나를 시험하려는 마음이 그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40주야 황야에서 사탄이 나를 시험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대 배고프면 이 돌을 바꾸어 빵으로 만들어라」, 「그대 신의 자식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도 죽는 일은 없을지니, 뛰어내려라」, 이런 식으로 사탄이 나를 시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속에는 나를 시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는 구세주다』라고 하는데, 구세주인데 비해서는 그만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세상을 구하지 못하지를 않는가?
구세주가 왜 목숨을 노림 당하는 건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세상사람들은 납득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나를 시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구세주라면 그만한 기적을 일으키겠지.
저 엘리야가 지상을 떠날 때에는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엘리야 이상의 사람이라면 그만한 기적을 일으키겠지.
모세가 이집트 땅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에 신은 홍해를 두 동강으로 갈라 그를 달아나도록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왕의 군대가 본격적으로 예수를 향했을 때에 뭔가의 기적이 일어날 터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의 신앙에, 거기에 먹구름이 있었습니다. 신을 시험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뭔가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고 하는 데에 약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법(法)만을 듣고 믿는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가? 이런 것입니다.
법만을 보고, 듣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 소질에 있어서, 가능성에 있어서 매우 뒤떨어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다는 그 기적을 보려고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홍해를 갈라 모세를 도망치게 한 것처럼, 엘리야에게 불마차를 준 것처럼 신은 무언가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추격대를 나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죄인과 함께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 나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까지 기적을 기대했던 유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신을 심판하려 했다」고 그는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악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불과 몇천 원의 돈 때문에 나를 배반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알고, 그도 내가 죽은 다음날 목을 매고 죽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는 대로입니다.
  그런 가엾은 역할을 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다는 어느 시대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약한 사람의 상징이며, 기적을 보지 않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가운데에도 법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말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기적을, 증거를 구하는 사람들은 이제부터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 유다가 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 약한 사람입니다. 신앙이 약합니다. 아직도 신앙이 약합니다.
  밖에 있는 유다를 책하지 말고 안에 있는 유다를 책하십시오. 자신 속에도 그런 유다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것이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입장이며 사고방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유다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아직 지옥에 있지만, 다만 나는 미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지옥에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자기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과 후세의 수천 만, 수억의 사람들이 유다를 계속 미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나라가 그만큼 많은 시련을 겪고 또 많은 박해를 받아온 이유는 유태인인 유다가 나를 배반했다는 사실, 구세주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의 비극성을 보았을 때 그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지옥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올 수는 없습니다.
  이윽고 그 죄가 용서되는 일도 있겠지요. 인류의 기억 속에서 내가 지상에 살았던 시대가 신화의 시대가 되고 기억의 밑바닥 속에 침전되어 과거세(過去世)의 기억으로 흘러 사라져 갔을 때에, 그의 죄도 이윽고 용서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5. 부활
 

  한편, 십자가에서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결코 나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경우 홍해를 갈라 모세를 도망시킨 신이, 엘리야의 경우 불마차를 주어 엘리야를 승천시킨 신이, 나의 경우 그 십자가를 보면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나의 게세마네 기도에 대해서도 응답하지 않고, 아무런 기적도 일으켜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 뒤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 나의 인생 속에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던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병을 고친 일도 아니고, 내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일도 아니며, 내가 부활을 했다는 이 사실입니다.
  내가 부활을 했다는 사실은 몇 백, 몇 천 사람들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그 부활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나의 부활은 물론 영적(靈的)인 부활입니다. 육체가 되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부활하고 그리고 그 육체를 물질화현상으로서 나타냈던 것입니다. 생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제자들에게 설하며 걸었습니다.
  이 부활이 있었기에 제자들은 그 후 그토록 결속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죄인과 함께 죽었을 뿐이라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그대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저 뿔뿔이 흩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결집하여 성전(聖典)으로서 성서를 남기고, 각지에 전도하고 다녔다는 것은 나의 부활이라는 행위가 방아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단지 죽었을 뿐으로서는 현재의 기독교는 없었다고 생각하십시오. 현재의 기독교가 있는 것은 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그리스도의 본질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만,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두고자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었을 때의 이름은 임마누엘. 그리스도란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후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도 또한 지상에 있을 때 「나는 그것이니라. 나는 그리스도니라. 나는 구세주니라」라고 명확하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에 대한 박해의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것을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나의 이름은 현대에까지 전해져 오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나는 구세주니라」하고 선언했던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소리 높이 「나는 구세주니라」하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나는 예언서 속에 나오는 메시아니라」하고 나는 말했습니다. 「예언이 성취되기 위하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세주란 결코 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도 그와 같은 구세주는 있습니다. 그 대소(大小)는 묻지 않습니다. 그 영향력의 대소는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란 어느 시대에도 있습니다.
  불타도 구세주였을 것입니다. 혹은 모세도 그럴 것입니다. 혹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도 구세주였을지도 모릅니다. 구세주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온 위대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호메트도 구세주라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있지만, 단순한 사상가를 구세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구세주가 구세주인 이유,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세계의 본질을 가르치고 인간의 본실을 가르쳐서, 진실로 인간을, 이 물질세계의 삶에서 눈뜨게 하여 정신적인 삶으로 전환시켜야만이 비로소 구세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의 인간 모습과 혼(魂)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고 단순한 사상가나 단순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어서는 구세주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영적(靈的)인 본질과 영적 세계를 설하는 일은 이 지상에서는 상당히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편한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이 지상에 있는 물질을 물질로서 설명하고, 이 세계를 세계로서 설명하여 그것이 대체 무엇이 되는가? 그런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들에게 중요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신앙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물체를 물체로서 인정하는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눈앞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눈앞에 선생님이 있어서 「선생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있다」고 믿고, 이 세계를 좋은 것으로서, 신이 창조한 세계로서 믿을 수가 있기에 거기에 커다란 혼(魂)의 비약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거기에 커다란 혼의 비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거기에 커다란 혼의 향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결코 물질이 안된다거나, 돈이 안된다거나, 이성이 안된다거나, 지위나 명예가 안된다거나, 그런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는 필요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 사로잡히는 것은 진실한 세계에 대한 눈을 흐리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세계의 존재를 알아라. 영(靈)의 존재를 알아라. 신의 존재를 알아라. 신이 창조한 세계임을 알아라. 그것을 아는 것이 커다란 용기의 원천이 되고, 커다란 지력(知力)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알아라.
  진정한 세계관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것. 사람들을 일어서게 한다는 것. 참된 의미에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이 동시대에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후의 사람들도 구제하게 된다는 것. 이러한 것이 어느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본질이며 구세주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의 마음에 물으십시오. 자신들의 일이 대체 무엇인가를.
  이 세상의 상식에 영합하는 것을 가지고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지식인에게 환영받는 것을 가지고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실한 세계를 진실 그대로 전한다는 것.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단연코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진실한 세계를 살아가십시오. 진실대로 살아가십시오.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세상의 풍파에 져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욕설이나 악담, 혹은 비판이나 비난, 이런 것에 져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진리를 모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가르쳐줄 뿐입니다. 진리를 펼쳐갈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져서는 안됩니다. 당신들은 신의 대리인이며, 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힘차게, 힘차게 진군 나팔을 불고 가십시오. 행진해 가십시오.
  적탄(敵彈)에 맞을지언정 생명은 불멸(不滅)입니다. 불사(不死)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입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다면 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보신(保身)을 생각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신을 위해 끝까지 연소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입니다.
  부디 그런 삶을 소중히 하여 앞으로의 인생을 개척해가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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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2.09.02
17:29:53 (*.79.23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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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oulist

2012.09.02
19:21:35
(*.221.203.182)

기독교인들 깊이 있게? 생각해 보셔야 하고요, 다른 분 들도 읽을만한 글입니다... 

어느분 내용의 진실성 제게 물어 보십니다.... 예리 하세요.....!!! ㅋㅋㅋ 

글세염, 이글의 메신져,.... 그닥 신성과의 연결이 못 느껴집니다... 약간 더럽습니다??? 

하지만 내용.....  중요도가 느껴 집니다... 

유다 부분.... 제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둘다 지옥 간다고 했습니다.... 사유해 보시길...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상황 ... 잘 지적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최후......  ㅋㅋㅋ 웃어서 죄송합니다.;;; 일종의 쇼죠? 그 부분도 깊이 있게 성찰 하셨습니다.

그외 부분도 ....... 제 의식관? 유사하네요..... 

기독교 분들 제가 예수님 기다리시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UFO 타고 하늘에서 짜잔~~~ 이런일 없숨돠......ㅎㅎ

영적으로 나타나세요... 이 세계 우리가 주인공 이예요... 우리가 이끌어야 합니다~~~ 


좋은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조약돌님. ♡.♥ 

TheSoulist

2012.09.02
19:31:10
(*.221.203.182)

이 글 메신져 저 공격해 댑니다... ㅠ.ㅜ 토하고 난리 났습니다... ㅋㅋㅋ 

저 괜찮냐고요? ㅋㅋㅋㅋㅋ 늘 있는 일인데요..뭘..

여러분 바른말 하고 살지 마세요! 장수 하시는데 지장 있으세요.... ㅋㅋㅋ 구름처럼 사십시오 ~~~

조약돌

2012.09.02
19:50:15
(*.79.239.148)

제가 현재 그리살다가 왕따 비슷해졌습니다  다른사람들 상관한테 아부성 발언 행동들 잘하는데 난 기관장이 주는술도 거절하는

바람에  인간성이 않좋다는 평을 받는데  요새 한단계 업그레이드 됬는지  쏠림처럼 변해갑니다  역시 바른말하면  사회에선

왕따 되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사랑합니다  가장중요한것은  반성  그리고 사랑이죠  반성없는사랑은  앙꼬없는

찐방과 같아요   모든것을 사랑할수 있는 그날까지~~~

 

쏠림 사랑합니다~~~~~~~~~~~~~~~~~~~~~~~~~~~~~~~~~~~~~

TheSoulist

2012.09.02
20:43:23
(*.221.203.182)

ㅎㅎㅎ 멋있으세요. 이미 모든것을 사랑하고 계신건 아닐까요? ^^& 


요즘, 스마트폰 참 좋네요... 라디오 들으면서 인터넷도 하고... 티비도 볼수 있네요.. +_+ 와~

컴텨다 컴텨.... ㅋㅋ  우리의 스티브 잡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천국 가셨죠?  

영혼 가족들이 잡스가 벌써 환생했데네요... 빨리도 하셨네요..? 시골 농부 가정에 태어 났답니다... 

제가 직접 확인을 못하니 정확도는 떨어 지네요... (제 파동이 낮아서 그래염 ㅜ.ㅜ 핑계죠? ㅋㅋㅋ)

암튼 농부라..... 아이러니 하네요.... 아니죠, 그를 위해선 올바른 선택일수 있겠네요...... 

잡스가 보고 싶어 지네요......  멋있으셨죠? 카리스마~~~ 

재밌는 질문 들왔습니다.. 애플과 삼성의 미래? 어떻게 진행 될까요? 참고로 천상 삼성 지원합니다.

이건희 회장님이 잘했다기 보다 삼성 영혼 그룹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어요 ...... 요즘 한국, 경제, 정치, 문화 적으로 

급부상 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ㅋㅋㅋ 한국이 영적으로 빽그라운드가 쌔요??? 강증산 때문일까요? ^^ㅋ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ㅎ 암튼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 우시죠? ^^ ^^ ^^ 

물론 애플도 지원 한답니다.ㅋㅋㅋ 당연한가요? 히히히 횡설 수설 하네요...^^ 술 안 마셨숨돠.ㅋ

풀아퍼

2012.09.02
21:13:12
(*.115.188.101)

조약돌님이 올려주신 글에는 그리스도의 에너지가 느껴지는듯하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TheSoulist

2012.09.03
09:07:01
(*.221.203.182)

올바른 판단 이십니다... 이 글의 에너지 바꼈습니다...?? ^^ㅋㅋㅋ 

TheSoulist

2012.09.03
08:59:11
(*.221.203.182)

^^♡ 좋은 아침 입니다~ 여기는 일어나 보니 안개가 자욱 합니다~ 전 안개도 좋아합니다. 신선된 기분이예요..

(저보고 물으 십니다. 싫어 하는건 머가 있냡니다.? ㅋㅋㅋ 비린거 싫어 합니다. ^^;) 


아침 신문을 보니 애플의 삼성 제소건이 나오네요.(천사들이 보라기에 봤더니... 논평? 해달라네요...)

제가 미래예측 삼성에게 유리하게 했습니다.(한국인 이라서?) 자~ 함 볼까요....

스마트폰 애플이 개발한거나 다름없죠? 그리고 계속해서 이끌 었습니다... 그들의 특허? 창의성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간 애플이 소송에서 많이 이겼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죠? 그러나......   여기 까지죠? 왜? 

애플그룹에서 신제품 개발에 힘쓴다기 보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좋아 할가요? 

삼성, 막말로 아이폰 통째 배꼈습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에게 다양성을 제공해 줬어요... 세상에 아이폰만 

있다면? 지옥? 애플이 독과점? ...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되는데(특히 기술 선도 기업일수록) 진흙 

탕전 벌이고 있습니다. 애플 소비자(특히 미국인들)들도 더 이상 애플을? 지원하지 않게 되겠죠?

(물론 애플이 정신 차리면 양상이 달라 집니다... 그게 신의 의도 이기도 하고요...) 암튼 지금 에너지 흐름이 그래요.

요즘 세상 고객이 최우선 입니다~~~ 당연한가요? ^^ㅋ (애플 영혼 그룹 저 또 공격해 댑니다. ㅜ.ㅡ ㅋㅋㅋ)


또다른 뉴스... S3 가격이 다운 되었다네요.? 좋은 소식이죠? 그런데 초기 구매자들 난리가 났답니다. 경찰 출동도 했데요.

보통 남 잘되는거 보면 배 아프죠? 최신기술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수 있다? 넓게 보면 박수 쳐 줘야죠? 삼성 잘하고 있슴돠.

저도 초기 구매자 예요. 바가지 썼죠? 삼성 영계가 걱정 말랍니다. 다 보상 해준답니다....ㅋㅋㅋ 

이상 삼성맨 이었습니다~~~ ㅋㅋㅋ 


LG 영혼 그룹들 저를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ㅋㅋㅋ 울산으로 전입하면서 LG영혼 그룹에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ㅋ

(역시 전 박쥐랍니다. ㅋㅋ 앙마죠?) 

전통적으로 LG제품이 디자인이 우수해요... 기술 vs 아름다움 ...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아름다움이 더 높은 의식이예요.

그런데요? 사람들이(특히 한국, 외국에서 LG 디자인 호평받고 잘 팔렸습니다.) 몰라 봐요... 삼성에게 홀렸죠?(마인드 콘트롤?)

그간 엘쥐 키워 줄려고(영적으로) 많은 노력 했어요... ^^; 삼성의 자본줄이 엘쥐보다 거대해요... 바위에 계란치기 예요.

요즘, 삼성이 정신 차렸어요. 디자인 무지하게 신경써요...(물론 수년전 부터 경영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만 크면 안되죠? 애플꼴 나요... 선의의 경쟁? 모든 기업들 골고루 성장 해야해요... 왜? 소비자들을 위해서.(다양성) 

즉, 자신에게 맞는 제품 사시면 돼요... 중소 기업 이든... 애플이든.......  국가주의?? 안돼요XXX 진정한 애국심이 아니예요.

외제차? 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상 천상의 앙마였슴돠 -

Noah

2012.09.03
09:13:44
(*.159.32.25)

음... 인간이 쓴글이 그대들에게는 큰 감명을 불러 일으킵니까?

예수님은 항상 창조주에 대해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행하는 모든일은 창조주의 뜻이기 때문이지요^^*

이글에는 창조주를 말하거나 그분을 느낄 그무엇도 없습니다.

채널링처럼 보입니까? 제 눈엔 목사가 자신의 영안으로 본 예수님의 모양만 말하고 있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2:50

"그들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의 뜻대로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21:31

 

성경을 정독하면, 저윗글 정도의 지혜는 기본으로 나오며,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고, 남들에게 예수님을 전달하고자 하는 신앙심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들 요한계시록에서 막히기 때문에, 다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해야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아무 목사나 신부나 신실한 성경학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해보십시요^^

윗글보다 더 많은 감동과 뭉클함을 느끼시게 될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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