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노동 ‘택배 배송사원의 하루’


세계일보
기사입력 2008-07-25 12:19 |최종수정2008-07-25 16:41  

[이허브] 택배 수배송물량은 하루 평균 300만개. 물량이 증가하면서 고객들의 서비스 불만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택배관계자들은 “당분간 서비스가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단언한다.

개당 2500원의 택배비로 하루 16시간 뛰어야하는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서비스 질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일선 배송사원들의 하소연이다. 본지는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물류 종사자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는 택배 현장을 동행 취재해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들어 봤다.
<편집자 주>

올 들어 가장 더웠던 지난 7월 15일, 낮 최고 32.1도.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날씨에 아스팔트도 녹일 만큼 햇볕은 강렬했다. 이날 취재는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이하 세덱스택배) 택배 은평영업소 배송사원을 소개 받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 동안 진행됐다.


수건 한장을 땀으로 흠뻑 적실만큼 하루 16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택배배송 사원.
올해로 34살인 김종수(가명)씨는 택배를 한 지 1년 정도 되었지만 마포터미널에서는 베테랑 총각 직원으로 통한다. 김 씨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 터미널로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각 터미널에서는 밤새 대전 허브터미널에서 분류되어 간선차량에 실려 온 택배화물이 배송지역 별로 다시 분류해 하차 중이었다. 김 씨는 배송지도를 보며 오늘 자신이 배송할 은평구 갈현동 지역과 중간에 들를 진관동의 상품을 확인하여 순차적으로 싣고 운송장을 정리한다.

기자가 마포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 센터장의 소개로 만난 김 씨는"오늘 날씨가 더워 고생을 좀 할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씨는 "오늘 배송물량은 100개로 평지 쪽 갈현동 33개는 오전에, 이 후 진관동은 8개, 다시 갈현동 골목지역 빌라촌은 59개를 배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김 씨의 머릿속에 배송순서와 지역 안배가 모두 끝나있었다. 오전 10시 20분 터미널 출발, 차량 내부는 벌써 가만히 있어도 숨 막힐 듯 뜨거웠다. 에어컨도 켜지 않아 배송 시작 30분도 지나지 않아 바지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첫 서비스 고객은 택배가 도착했다는 말에 문도 열어보지 않고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했다. 김 씨는 예전엔 택배가 오면 손님이 온 것처럼 반가와 했는데, 요즘은 고객 얼굴을 대면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흔한 서비스가 됐고 택배를 가장한 흉악범도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100개의 상품을 배송하려면 차에서 100번 내렸다 타는 일을 반복한다. 배송지에 최대한 가까이 차량을 세우지만, 100번이나 평균 50M를 차에서 내려 뛰는 반복적인 일은 일이 몸에 밴 김 씨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장거리 구간의 컨테이너와 일반 운송과는 또 다른 노동의 강도를 느끼게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차에 타고 내리기를 수백 번, 배송이 끝날 즈음엔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찜통 더위 속 100여개 배송, 하루 250층 오르내려


김씨는 계단을 하루에 250층 정도 오르내린다고 했다. 택배 중 가장 고마운 고객이 누구냐는 질문에 “배송을 갔을 때 직접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운송장에 주소와 연락처, 그리고 부재 시 맡길 곳을 정확하게 기재해줄 때 가장 고맙다"며, "통상 100개의 화물 중 얼굴을 마주하는 비율은 30%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도 화물을 직접 받는 고객은 드물었다.

전반부 평지인 갈현동 33개의 배송이 끝난 시각은 오후 1시 30분.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김씨는 오늘은 배송직원 1명이 출근을 안해 진관동 은평 뉴타운 지역 배송을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로 15분 이상 떨어진 뉴타운 배송이 끝나자 오후 2시 30분을 넘겼다.
"날이 이렇게 무더운데 왜 에어컨을 틀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기름 값도 기름 값이지만, 1~2분 주행 후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 배송에서 에어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연신 땀을 닦아 냈다. 오후 4시를 넘기면서 갈현동 빌라지역은 굴곡과 오르내림이 심한 골목길의 연속이었고, 4~5층 배송이 서너 번 반복되자 김 씨도 지치는 듯 잠시 쉬자고 했다. 이날 배송과정에서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계단에 앉아 음료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16시간의 중노동, 한 달 수입은 50~60만원 불과

김 씨는 이 일을 하기 전엔 제빵기술자로 10년간 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밀가루 알레르기로 일을 할 수 없어 쉬고 있던 차에 생활정보지에서 월 250만원을 보장한다는 지입차량 광고를 보고 찾아가 택배 일을 시작했다.
택배나 운송 일을 전혀 몰랐던 김 씨는 지입 운수회사 말만 믿고 계약금 100만원과 나머지는 캐피탈회사에서 차입해 총 16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2004년 생산된 지금의 차량을 받았다. 김씨는 "월 평균 270만원을 벌지만 여기서 70만원은 기름값으로, 차량 할부금 60만원, 하루 용돈 1만원을 빼면 남는 비용은 100여만원, 이 돈에서 다시 보험료, 지입료, 휴대전화 요금, 세금, 차량유지비 등을 제하면 실제 남는 돈은 50~60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씨는 "돌이켜 보면 월 250만원 수입 보장이란 광고에 속아 참 바보 같은 일을 했다"며 허탈해 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놓지 못하고 계속 하냐고 묻자 "사회 전체가 실업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일마저 관두면 무슨 일을 하겠냐?"며 되물었다.

고된 업무 참을 수 있어도 미래 희망 없어 더 절망

택배 일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을 물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다. "현재 지입한 운수회사가 부도를 내 차량이 압류 당하면 할부금을 꼬박꼬박 낸 차의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어 불안한데다 기름 값 등 운영비는 자꾸 오르는데 택배가격은 떨어져 수입이 제자리인 현실 때문에 앞날의 구상을 전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김씨는 또“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업체 간 출혈경쟁으로 해마다 가격을 하락시키는 택배기업들을 이해 할 수 없다”며, “언제까지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택배사원들도 파업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배송과 내일 수송할 고정고객 화물을 모두 픽업해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20분. 터미널 소속 배송사원 중 가장 빨리 수·배송을 끝낸 김 씨는 사무실로 돌아와 연락이 안 된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품 맡긴 곳을 설명하는 마무리 작업을 했다. 그러나 오늘 배송 중 사람이 없어 계단 밑에 놓아뒀다는 연락은 받은 고객이 배송물건을 직접 와서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이런 고객이 꼭 한 두명 있다며, 고객이 없어 안전한 곳에 물건을 놓아두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찾아내라는 소비자들 때문에 더 힘들지만 어쩌겠냐"며 쓸쓸히 터미널을 나섰다.


배송이 끝나갈 무렵 남아 배송차량에 남아 있는 택배화물
이번에 동행 취재한 김 씨는 하루 100개를 배송했지만, 이날 만난 다른 택배업체 사원들의 경우 하루 150개까지 배송한다고 했다. 그래도 일요일 하루는 쉴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 씨는 일 하는 동안은 잡념이 안 생겨 좋다며, 하루 빨리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루 16시간의 열악한 근로환경, 바닥으로 추락한 택배가격.
고작 10시간을 동행 취재하며 지켜본 택배 현장은 고객의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업계와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제라도 정부의 조정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정우 기자 jws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