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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저자] "한국 남자는 '집단 자폐증' 환자들"
입력 : 2009.04.11 03:10 / 수정 : 2009.04.11 10:41
《남자 심리학》 펴낸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

이 남자,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수렵사회에선 힘 좋은 남자가 최고였죠. 하지만 이제 그런 남성다움은 굴레가 됐어요." 우종민(42)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최근 한 세대 사이에 우리 사회는 여성적 코드를 가진 '공감형' 남자가 성공하는 사회로 바뀌었다"며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는 최근 정신과 의사로서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남자들의 '심리코드'를 분석한 《남자 심리학》(리더스북)을 펴냈다. 제목은 '남자 심리학'이지만 우리 사회에 던지는 비판적 메시지는 강력하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집단 자폐증'과 '탈진 증후군'을 앓고 있다. 한국의 남자들은 폭탄주 마시고 술에 취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못하는 자폐증과, 경쟁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액셀레이터를 너무 밟아 기름이 다 떨어진 탈진 상태라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력은 샘물과 같아요. 바가지로 바득바득 긁어서 바닥을 드러내면 다시 생명력을 되찾기 어렵죠. 샘물은 어느 정도 남겨 두어야 계속 샘솟게 됩니다."

정신과를 찾는 이들의 70%는 아직도 여성들이지만 최근에는 중년 남성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아내와 자식으로부터의 소외, 은퇴 후 생활에 대한 걱정 등을 호소한다. 우 교수는 상담할 때 "당신의 마중물은 뭐냐"고 반드시 묻는다고 했다.

"펌프에서 물을 솟게 하려면 물을 세 바가지는 부어야 하는데 이게 '마중물'이죠. 친구·가족·취미라는 세 가지 '마중물'이 없으면 에너지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더 잘 보이려고 자신을 소진하는 '상사병(上司病)'도 한국 남자들이 갖고 있는 난치병이다. 우 교수는 "상사에게 어떤 야비한 일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저런 인간도 있구나' 하면서 인간성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자료를 하나 더 얻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 남자는 자존심만 세워주면 되는 단순한 동물이에요. 상사도 부하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아야 충성을 끌어낼 수 있어요.”우종민 교수는“상처받고 있는 30~40대 직장인들을 위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우 교수 자신도 한때는 남자다운 성공을 꿈꿨다.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전공을 선택할 때 그는 '남성적인' 신경외과를 지망했다. 하지만 레지던트 시험에 낙방했다. 군의관으로 군대에 다녀온 뒤 '여성적인' 정신과를 택했다.

"제 동기들이 '너는 정신과로 갈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저 자신도 저를 잘 몰랐던 거죠. 정신과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필요한데 제가 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그때 저를 떨어뜨린 교수님들께 감사해요."

우 교수에 따르면 여성성을 가진 '공감형' 남성은 1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 소수의 비주류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다"고 했다.

우 교수는 밥 먹는 일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남자다워야 하고, 남자답게 성공과 권력을 거머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내대장부 콤플렉스'가 오히려 남자를 감옥에 가두는 심리코드라고 진단한다.

불독형 상사를 애완견으로 길들이는 방법,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비결,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에 대한 대처법 등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 맞닥뜨린 여러 문제도 사례를 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
'남자답게' 보다는 '나답게' 살라는 주문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10/2009041001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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