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




생명의 서
(The Book of Life: Ascension and the Divine World Order by Michael Sharp http://www.michaelsharp.org/books/bookoflife/)

서문

사람들은 그대를 막으려 하리
그대가 신의 빛을 보면.
그대가 틀리지 않았다면,
모든 게 다 괜찮으리.
자 우리는 걸으리,  좋아!
창조의 길을.
우리 세대는
위대한 시련을 헤쳐나가리.

밥 말리, 엑소더스 (대탈주)

Men and people will fight ya down
When ya see Jah light.
Let me tell you if you’re not wrong,
Everything is all right.
So we gonna walk - all right!
Through de roads of creation.
We the generation.
Trod through great tribulation.

Bob Marley, Exodus

안녕하세요? 새로운 지구에서 오신 걸 환영해요.

우주 역사상 최고로 영광스러운 대사건에 참여하신 걸 환영해요. 아니, 창조의 모든 역사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건에 참여하신 걸 환영해요.

아직 모르시는 분도 많겠지만, 지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창조의 역사상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대사건을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답니다. 지구 안에서, 위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존재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수많은 세월동안 물리적인 진화와 영적 노력을 통해서 이룩한 업적이 완성되려고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요. 이번 창조가 시작될 때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신성한 계획이 드디어 위대한 절정으로 치닫고 있거든요. 지금 이 순간, 천상의 모든 영적 존재들은 물론, 창조의 모든 존재들이 이 엄청나게 장엄한 대사건,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대사건에 참여하려고 준비하며 지켜보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지상천국에 관한 예언들이나 우리가 꿈꿔왔던 잃어버린 파라다이스조차도 이 대사건의 어마어마함을 다 표현하지 못한 답니다.

굉장하게 들리나요?
굉장한 일 맞아요!

모든 이들이 이렇게 흥분해 하고 있는 이 대사건이 뭐냐구요? 자, 이건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지요. 기독교 전통에서는 지상에 천국을 창조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어떤 동양의 종교, 특히 티벳 불교에서는 샴발라 왕국의 재현으로 알려졌지요. 마야인들은 이것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이것이 마무리될 무렵까지만 달력을 만들어 두었죠.

아마도 뉴에이지 운동에서 제일 잘 표현했는데요, 거기에선 이 대사건을 어센션(ascension, 오름, 차원상승, 승화)이라고 했죠. “어센션(오름)”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위로 올라간다는 뜻인데요, 이 과정을 완벽하게 나타내는 말이죠. 왜냐하면, 근원적으로 어센션, 즉 오름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거든요. 이 물리적 우주 전체를 창조의 계단(또는 생명의 나무) 위로 다시 들어 올려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의식의 바로 윗단계, 의식이 고도로 순화된 차원으로 되돌리는 것이죠.

좋은 소식은, 그게 바로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다는 거에요!

아직 모르실지도 모르지만, 별과 흙과 먼지, 그리고 당신의 육신을 포함해서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물리적 우주 전체)는 지금 양자적 차원 경계를 지나서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어요. 물리적 우주가 생명의 나무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죠. 이것은 정말 좋은 소식인데요, 왜냐하면 이제 이 과정이 드디어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우리의 역할을 기억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건 우리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오름(차원상승)과 이 지점에 오기까지 지금껏 우리가 해온 일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에요.

이 책의 목적이 바로 그거랍니다.

당신이 해 온 일을 기억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생명의 서가 바로 지금 당신의 손에 있는 거에요. 이 책을 통해서 바로 지금 당신의 삶과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배경 정보를 접하게 될 거에요.

중요한 건 자세를 제대로 하는 일이에요. 지금 진행중인 과정은 강력한 과정이거든요. 우린 지금 우리의 온전한 영적인 힘을 되찾아 가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르지만, 우린 우리가 그간 속아서 믿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를 똑바로 하고 스스로의 막강한 능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현실을 만들어가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에 우리가 걸려 넘어질 거에요.

핵심은, 우리 주변의 세계를 창조하는 우리 능력이 너무 강력해지고 있어서, 우리가 지금 당장 깨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거에요.

이게 좀 극적으로 들릴지 알지만, 사실인걸요.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깨어나야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또 내가 여기서 도와줄 테니까요.
당신이 깨어나도록 도와줄게요!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 책을 깨어나는 길의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책에서, 이 행성에 대한 기본적인 진실을 알게 될 것이고, 여기서 우리가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알게 될 거에요. 창조의 다차원적인 본성에 대한 기초적 상식을 알게 될 것이고, 이 특정한 단계의 물리적 우주가 갖는 본성에 대해서, 그리고 창조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될 거에요. 육신 안에서 존재하는 동안에는, 당신은 창조의 가장 아래 쪽 물리적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이 낮은 단계의 물리성이 갖는 한계를 (더불어 그 매력도) 알게 될 거고, 왜 오름(차원상승)이 그렇게 좋은 일로 칭송되는지도 알게 될 거에요. 또, 오름이란 물리적인 과정이며, 지금 당신이 의식하고 있는 물리적 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양자 차원의 비약적인 대사건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이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이 아네요.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오름은 단지 물리적 물질의 진동 에너지를 끌어 올려서 나타나는 물리적 결과일 뿐이죠. 그건 마치 죽 한 그릇이나 밀랍 한 덩이를 가열하는 것과 아주 비슷해요. 밀랍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갈수록, 즉 더 따뜻해질수록, 분자들이 빨리 진동하고, 모양이 변하기 쉽게 되죠. 바로 이게 목적이에요. 그러니까, 물리적 우주를 데워서 형태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요.

자, 우리가 물질을 차원상승 시키는 지점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사실, 밀랍을 딱 알맞게 만들려는 시도가 몇 번 필요했거든요. 이제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오래 걸려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에요. 이 우주를 끌어올리기 위한 지난 시도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될 거에요. 지난 시도들(레무리아, 아틀란티스)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이번 시도(테라)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고, 왜 이번 시도,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현재 살면서 통과하고 있는 바로 이번 시도가 어째서 성공적인지 알게 될 거에요.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시간의 끝자락”인 이제 와서야, 불멸의 정신(Immortal Spirit)으로서의 우리가, 물질을 딱 맞는 온도와 압력으로 요리해서, 지금 당신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전개를 받쳐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선언할 만한 상황이 된 거죠.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 당신은 이 대사건이 갖는 깊은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될 거에요. 그리고 왜 우주 전체의 모든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당신이 지구에서 이룩한 업적 때문에 들떠있는지 알게 될 거에요. 앞으로 이해하게 될 거에요. 당신이 성취한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지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는 것을. 핵심을 말하자면, 오름(차원상승)이 성공적으로 완결되면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가 물질 우주를 체험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거에요. 한편으로는 물질의 진동수를 올림으로써, 정신의 창조적 의도에 물질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주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현실을 차원상승시킴으로써, 불멸의 정신으로서의 우리가, 우리의 어마어마한 의식을 온전히 간직한 채, 물질(육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지요. 합쳐서 말하면, 이 두 가지 현상은 물질 창조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롭게 전개되는 굉장한 결과를 낳게 되는 거에요.

자, 이제 <생명의 서>가 차원상승이 갖는 물리적 속성과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언지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겠지요.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차원상승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에요. 이 책은 차원상승 드라마라는 거대한 수난극에서 당신이 위치한 자리에 대한 책이기도 해요. 삶과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 이 행성에 육신을 입고 태어난 이유, 그리고 당신의 삶이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까닭이 차원상승의 맥락 안에서 설명될 거에요. 어쩌면 아주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 행성에서 당신의 존재 전체가 이 차원상승 이벤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즉, 이 행성에 육신을 갖고 태어나서, 차원상승을 촉발시키기 위한 영적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당신이 여기 온 유일한 이유라는 것이죠. 다른 이유가 없어요. 당신은 여기 학생으로 온 게 아니에요. 벌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당신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당신은 (하늘 맙소사!) 선과 악의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냥 에너지 작업자에요. 당신의 형제자매들에게 이 우주가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우주의 물리법칙을 바꾸려고 열심인 에너지 작업자.

이제 이걸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공유되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최소한 열린 자세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부는 아마 여기서 보게 되는 관념들을 불편해 할지도 몰라요. 벌 내리는 신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영적 보호와 지도 아래서 산다는 관념도 버리고, 선악의 우주적 갈등에 대한 관념도 떠나보내고, 단 하나의 우주적 사건, 우리가 긴 세월동안 작업해온 단 한 가지 일이 당신의 삶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죠.

어려움을 이해하고요. 왜 일부가 어려움을 느끼는지 알고 있어요. 그건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래요.

그건 당신의 사회화 때문이죠.

당신이 뭔가 열등하고 타락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거짓말을 어떤 이들이 조직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이지요. 왜 이런 거짓말을 듣게 되었냐구요?

거기엔 충분한 이유가 있지요.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요. 중요한 것은 만약 여기서 내가 얘기하는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생각하는 걸 컨트롤 하세요. 당신은 세상을 보는 어떤 일정한 패턴의 고정관념을 받아들였고, 그러한 고정관념이 이 책에서 나오는 말에 의해서 자극받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세요. 그런 고정관념의 사고방식들이 당신의 시야를 흐리고 집중력을 방해하고 있는 거에요.

혹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마음을 안정시킬 방법이 하나 있어요.
이걸 알아두세요. 여기서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는 걸요.

그냥 기존의 사고방식들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래도 되요. 그런다고, 지금이나 나중에 (무슨 지옥 같은 데서) 아무런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냥 지금 사는 것처럼 삶을 살 거에요. 언젠가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육신을 벗게 될 것이고, 어쩌면 여기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육신을 입게 될지도 모르죠.

그거에요.
그게 다에요.
그게 전부에요.

잘못 선택했다고 “심판”받지 않을 거에요.
여기에 잘못된 선택이란 없거든요.
당신이 원하는 어떤 식으로든 살 자유가 있고, 신은 당신이 뭘 하든 당신을 사랑할 거에요.

하지만 이건 말할게요.
이 3차원세계의 거대한 환상의 저편에는 더 좋은 길이 있어요. 선악 사이의 우주적 전투와 생존을 위해서 서로 싸우는 치열한 투쟁의 다른 쪽에는 더 좋은 길이 있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이 있고, 그건 바로 길 모퉁이 저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좋은 건, 거기 가기 위해서 의자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다는 거죠. 일자리를 바꾸거나 가족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떠날 필요도 없어요. 약속된 땅은 당신 안에 있고, 그걸 당신 바깥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즉 당신 주위의 세상에서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간단해요. 앞서 말한 고정관념과 사고방식을 잠시 통제해서, 당신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내가 길을 보여줄 때까지만 버티는 거에요.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 기억하게 된다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삶에 대한 컨트롤을 더 잘 할 수 있게 될 거에요.

그건 바로 모퉁이 돌아서 있어요.

준비가 되었다면, 앞으로 나오세요.
영적인 길에 발을 딛고, 기억을 되살리세요.

*****

자, 아직도 여기 계시다면, 축하드립니다. 일반적인 교회와 과학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다면, 첫 번째 장애물, 그러니까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가슴과 마음을 여는 일이 가장 힘든 첫걸음이지요. 그걸 넘어서고 나서는 단지 쭉 과정을 거치면 되거든요. 그럴 시간은 많으니까 느긋하게 하면 되요. 앞서 말했듯이, 이 행성에 대한 기초적인 영적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할 것이구요. 책이 차차 진행되면서, 우리가 믿었던 신념과 가치,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지혜와 진리의 상당수가, 좋게 말하면 뜻 깊은 환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릴 무지와 어둠 속에 머물러 있게 만든 조직적인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보게 될 거에요. 아마 흥미로운 개인적 과정이 될 거에요.

당신의 영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배경에 따라서, 어쩌면 그건 당신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면, 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사실 제가 당신이 아직 모르는 걸 가르쳐주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은, 당신의 제 삼의 눈 챠크라가 조금이라도 열려서 돌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여기 있는 이야기들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이 들 거에요.

진짜 알고 있었거든요!

이 책은 당신에게 새로운 지식을 소개하려고 쓰여진 게 아네요. 이건 정말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상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일종의 소환장이랍니다. 이 책은 이곳에서의 당신의 목적을 기억하도록 당신 스스로 일깨우는 소리에요. 당신이 타고난 권리를 되찾아서, 완전한 창조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당신 스스로의 초청이에요.

때가 되었거든요!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되살리세요.
당신의 목적을 기억해내세요.

기뻐하세요. 그리고 굉장한 영적 파티로 가는 이 초대장을 받으세요.
당신이 지금껏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당신은 이 파티에서 환영받을 거에요.
신뢰해도 좋아요. 당신은 준비가 되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무런 위험도 없어요.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내고, 당신이 개인적 힘을 되찾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될 거에요. 그러니 지금 발걸음을 내딛으세요.

어둠 속에서 살던 시절은 끝났어요.
힘없이 살던 시절은 다 되었어요.
성직자들 앞에 무릎 끓고, 권위 앞에서 고개 조아리던 시절은 끝났어요.

이제 공동 창조자로서, 그리고 태초 창조의식의 불꽃으로서 당신의 진정한 영광을 되찾을 때가 되었어요.
지금 문 앞에 서 계신 거에요.
여기까지 길을 찾아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1 장 : 차원상승의 에너지

CHAPTER ONE:
THE ENERGY OF THE ASCENSION

태허가 기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면,
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재

When one knows that
The Great Void is full of chi,
One realizes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nothingness.

Chang Tsai


차원상승
The Ascension

아마 당신은 이 책을 그냥 우연히 발견했거나, 또는 사람들이 차원상승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듣고 더 많은 걸 알고 싶었거나, 아니면 이미 뉴 에이지 분야에 익숙한 편인데, 차원상승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명을 찾고 있거나 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 글을 읽고 있을 거에요.  이런 이유들이든, 아니면 그냥 뉴 에이지란 게 뭔지 궁금해서 오셨든, 올 곳에 오셨어요.

어센션, 그러니까 차원상승은 요즘 인기 있는 주제고,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요.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 차원상승의 과정을 겪고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뜻하는 건 이 행성에 사는 모든 생명체(인간과 비인간)죠. 심지어 지구 자체도 상승 중에 있어요. 이 일을 기대하고 있던 이들은 이 사실과 이것이 창조 전체에 의미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해서 꽤나 흥분해 있죠. 흥분할 만도 해요.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일은 우주적 차원이니까요.

만약 뉴 에이지 분야에 처음 입문한 거라면, 차원상승이 새로운 화제라고 생각할 지도 몰라요. 근데 그렇지는 않아요. 차원상승은 그에 대해 토론할 인간이 존재하는 내내 지구상에서 화제의 대상이었답니다. “차원상승”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모든 주요한 종교 체계들은 그에 관해서 뭔가 할 말들이 있었죠. 심지어, 아니 특히, (때가 무르익기 전에 지식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진실을 일부러 가려놓는) 비밀스런 교의에서도 이를 논하고 있죠. 사실은, 당신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차원상승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논의하는 걸 접한 적이 있을 거에요.

모든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차원상승이란 화제를 접해 본 적은 있겠지만, 영적으로 관심이 많은 편인 이들은 차원상승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을 해왔을 거에요. 그것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본 많은 이들은 차원상승을 아마도 개인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거에요. 이건 그들 잘못이 아니죠. 이 과정에 대해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교의가 그렇고, 이에 대해서 가르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차원상승을 마치 개인적 과정인양 말하거든요. 당신은 깨달음을 얻기로 되어있다. 당신은 의식의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도록 되어있다. 당신은 열반을 얻기로 되어있다.

당신. 당신. 당신.

“당신의 차원상승”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는 부분적으로는 맞아요. 차원상승은 개인적인 차원상승이고 거대한 의식(우린 그걸 크라이스트 의식이라고 부르죠)이 몸 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일컫죠. 하지만, 차원상승은 개인적 차원상승 훨씬 이상의 것이죠. 핵심적으로는, 차원상승은 사실은 물리적 우주 전체에 대한 거에요. 차원상승에 관한 이 부분, 그러니까, 차원상승이 우주적 과정이란 것은, 비교 교의를 제외하면, 모든 교설에서 다 빠져있는 이야기죠. 이건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가 있는데요. 차원상승이란 정말로 우주적인 사건이랍니다. 이것은 우리와, 이 행성의 모든 생물과, 행성 자체와, 태양계 전체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포함하는 이야기에요. 그 웅장함의 전모를 말하자면, 사실은 이것은 이 우주의 경계마저도 초월하는 대사건이지요. 하지만, 그건 이 책에서 논할 건 아니구요.*

이쯤에서, 도대체 땅 위에 (또는 하늘의) 어느 사건이 그렇게나 영광스럽고 우주적인 수준이라 칭할 수 있는지 아마 궁금할 거에요. 왜 차원상승이 그리도 굉장한 사건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차원상승이 당신에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가 우주 안에서 어떻게 창조하는지에 대해서 좀 알아 두어야 해요. 우선, 우리는 우주의 본성을 밝힐 거에요.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이 작업, 이제 막 경험하게 될 이 거대한 우주적 깨우침은, 알고 보면 별로 어렵지도 않고 그리 거대하지도 않아요. 우주(그리고 창조의 모든 것들)이란 사실은 에너지라는 것, 그리고 차원상승이란 단순히 에너지적 사건이란 것을 알고 나면 말이죠.

우주란 에너지다
The Universe is about Energy

에너지의 어떤 면이 차원상승 과정에 그렇게 중요하냐구요?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우주가 에너지로만 이루어져있다는 거죠. 에너지는 모든 물리적인 구체화의 근간이 되는 재료에요. 그걸 “빛”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맞는 말이겠죠. 빛 역시 에너지니까요. 하지만, 에너지란 용어가 더 자세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마치 생활 속에서 힘을 컨트롤하듯이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에너지는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 지시에 따라 춤추죠. 우리가 원하는 어떤 거든지 우린 에너지를 통해서 만들 수 있어요. 우린 에너지에 형태와 모양을 줄 수 있고, 에너지를 바꿀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어요.

테이블을 만드는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데 전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빤히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우린 에너지를 사용하기도 하죠. 그것보다는 눈에 잘 안 보이는 영적인 방식으로도 에너지를 사용하구요.

영적으로, 에너지로 창조를 하는 과정은 간단해요.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뭔가를 생각하고 그걸 창조하기 위한 의도를 갖지요. 우리가 의도를 가지면, 우린 창조적 에너지의 우주적 자원에서 에너지를 가져와요. 우리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면, 에너지는 움직이고 변화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우리가 무엇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간에, 우리 의식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던지 간에, 그건 물리적인 현실이 되죠. 에너지가 점점 느려지면서 물질로 딱딱하게 굳어지는 게 그 과정의 전부죠. 이건 사실 새로운 소식이 아니에요. 물리학자들 스스로 물질은 단단해진 에너지일 뿐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오로지 새로운 것은, 우리가 에너지가 물질화하는 방식을 우리의 의도를 통해서 컨트롤한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것도 사실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닌 것이, 과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기 시작했어요.—예를 들어, 프린스턴 대학의 글로벌 의식 프로젝트 (GCP) 참조 http://noosphere.princeton.edu/)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것이 그대로 된다는 아주 간단한 얘기에요.

물론, 지금 당장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왜 바로 그런 식으로 당신이 원하는 바를 현실로 만들 수 없는지 반문할 거에요. 내가 말하는 대로라면, 당신은 바로 이 순간 맛있는 커피 한잔이랑 시나몬 데니쉬 빵을 물질화할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면서요.

사물들이 이 차원에서 즉시 현실화되지 않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건 왜 그런가 하면, 몸 안에 있는 동안, 우린 창조 중에서 낮은 단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낮다 못해, 창조 중에서 아주 제일 바닥인 단계(또는 차원)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과학자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듯이, 창조(에너지 변환)의 과정은 단지 하나의 단일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창조란 다양한 차원에서 동시에 일어나지요. 이 말은, 당신이 알아차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당신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뜻해요. 사실은, 당신 눈에는 안 보이지만, 당신 주위 전부에 걸쳐서 엄청난 생명의 줄기들이존재하고 있어요. 그들이 우리에게 (예를 들면 크롭 서클의 경우처럼) 의사를 소통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지만, 우린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것을 인식할 정도로 높은 진동수에 도달하지는 아직 못했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날은 다가오고 있고, 그날이 오면, 그동안 다양한 신화학적 유산으로만 접하던 것을 직접 눈앞에서 대면하게 될 거에요.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 다양한 차원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해요. 왜냐하면, 에너지는 항상 우리의 창조적 의도에 반응하기는 하는데, 그게 모든 차원에서 다 똑같은 식으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 가장 높은 차원에서는, 우리가 쓰는 에너지는 아주 반응이 빠르죠. 에너지는 에너지로 충만해서, 달리 말하면 “진동”이 빠르고, 근원에 가깝죠. 그래서, 물리적 세계 역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우리의 창조적인 의도에 매우 빠르게 반응해요. 우리가 물 한 잔을 생각하면, 바로 거기 있게 되죠. 수정 궁전을 상상한다면, 짠~하고 나타나요. 반면에, 단점도 있어요. 가장 높은 차원에서 물리적 세계는 의도만 갖고 순식간에 창조되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지속성이 거의 없어요. 당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멈춘다면, 그건 그냥 사라져버리죠.

우리가 생명의 나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창조의 속성은 변하죠. 우리가 근원으로부터 에너지와 물리적 창조를 멀리 끌고 갈수록 에너지의 진동은 느려지고 에너지의 충만함은 떨어져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의도에 반응하는 게 느려지게 되요. 에너지는 점점 걸쭉해지고 굳어져요. (밀도가 올라가서 끈적끈적해지고, 딱딱해지죠.) 어떤 특정한 차원에서 물리적 밀도와 반응속도는 진동의 영적 속도에 따라 결정되죠. 진동의 속도는 근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차원이냐 하는 것으로 결정되구요. 우리가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반응속도는 떨어지죠. 근원과의 거리를 D라고 하고, 물질의 반응도를 R이라고 하면, R=1/D, 반응속도는 근원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즉 멀어질수록 반응속도가 느려진다고 할 수 있겠죠. 반대로, 밀도(D)는 근원과의 거리와 정비례하구요. D=D라고 할 수 있겠죠.

자, 그거에요. 창조에는 여러 차원의 단계가 있고,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는 각기 다른 진동수를 가진 단계를 쭉 내려가면서 물리적 창조를 해나가다가, 당신 주위에 보이는 물질세계가 짠!하고 존재하게 될 때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내려온 것이죠. 개념적으로는 단순한 과정이고, 우리 주위에서 그런 과정과 유사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죠. 에너지의 진동수가 느려지면서 물질이 딱딱해지는 예로, 기체가 액체로, 액체가 고체로 변화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이게 창조의 과정이죠. 창조의 에너지를 점점 늦춰가면서 물리적인 물질을 얻게 되고, 다양한 차원을 계속 그렇게 진행하다가, 에너지가 느리고, 조밀하고, 딱딱해서 의도에 잘 반응하지 않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죠. 당신 주위의 물리적 세계는, 모든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하지 않은 채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진동수를 갖고 있는 세계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더 이상 아래로 갈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창조(움직임)이 멈출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우린 그걸 원치 않죠.

이런 창조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유대 카발라 전통에서 그건 생명의 나무라고 알려져 있어요. 창조의 과정을 여러 단계(나무 중간 몸통)에서 볼 수 있는데, 창조의 과정이 맨 꼭대기(케데르)에서 티파래드와 예소드를 거쳐서 이 지구(말쿠드)가 있는 맨 아래에까지 이르고 있죠.

이 생명의 나무는 다차원적인 창조의 과정과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창조의 본성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하지만, 맨 꼭대기가, 많은 이들이 추측하듯이 하느님은 아니라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건 단지 창조의 첫 단계일 뿐이에요. 정신(신)은 전체로서 존재하지, 다른 어떤 단계와도 분리되어 있지 않거든요.

내려가면서 한번씩 멈추는 것을 창조의 양자 단계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각 단계는 안정된 상태로 운용되고, 각각 에너지적인 테두리를 갖고 있는데, 창조의 과정이 계속되려면 그 테두리를 통과해야 되죠. 각 단계 사이를 통과해서 지나간다는 건, 여세를 몰아서 울타리를 뚫고 넘어갈 에너지를 비축해 둔다는 걸 뜻하죠. 이런 과정은 가없는 시간동안 계속되어 왔어요. 하지만, 이건 진도를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네요. 창조의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명의 나무에서 말쿠드로 표현된 마지막 단계에 대해서 먼저 자세하게 짚어보죠.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물리적 세계 말에요.


그림 1: 생명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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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과정은 문자 그대로 되는 과정이라는 걸 짚어보는 게 중요할 거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얻게 되니까요. 이건 당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할지라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어, 당신이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 생각을 실제로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상황을 자신에게 끌어오게 될 거에요. 당신이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그걸 실제로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에너지를 끌어오게 될 거에요. 원하는 것에 짜증날 정도로 문자 그대로 반응하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생각해 보면 되요.

인류의 입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는 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자기 개발 책들을 보면, 의도하는 것의 힘, 의도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몸과 마음의) 치유에 갖는 영향을 자기개발도서를 쓰는 사람들이 알아차렸다는 걸 알 수 있죠.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든가, “나는 가치 있다”는 것 같은) 긍정적인 인정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개인이 바뀌는데 엄청나게 강력한 촉매가 되죠. 당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그냥 당신의 의사를 표현하세요. 당신의 의도를 말로 하면 훨씬 더 잘 되니까, 의도를 목소리로 표현하세요.

물리적 세계
The Physical World

혹시 짐작하셨듯이, 여기 아래쪽에 있는 세계는 흥미로워요. 우리 모두 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죠. 슬프게도, 이런 생각 중에선 꽤나 왜곡된 것들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예를 들면, 일부 사제들과 과학자들)은 이 세계는 가치 없고, 사악하고, 의미 없고, 영적이지 않아서, 우린 단지 여길 지배하려 왔을 뿐이라고 당신에게 말할 거에요. 이런 신화는 특정한 종교적 시스템들(신이 “인간(man)”에게 지구를 지배할 권리를 주었다)에서 활개를 치고 있고, 그리고 다윈의 과학적 이론에 대한 특정한 해석들에서도 역시 활개를 치고 있어요. 진화에 대한 논란(물론 우린 진화했죠)이나 우주의 나이에 대한 논란(물론 그건 여기 오랫동안 있었죠)에 빠지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아셔야 할 것은, 이 단계의 창조를 모욕했고, 이제는 그 권위를 잃어버린, 성서 속의 창조신화를 세속적으로 대체하는 대안으로 쓰기 위해서, 다윈의 진화론은 왜곡되었다는 것이죠.

이 세계를 모욕하는 어떠한 신화적 이야기도 진실을 담고 있지 않아요. 인간의 몸이 동물의 왕국보다 우월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 지구와 이 세계가 (예를 들어, 우리의 통제를 필요할 정도로) 저열하거나 타락하지도 않았어요. 마찬가지로, (뻔한 얘기지만) 우리와 이 지구가 단지 진화의 우연한 산물인 것도 아니죠. 지구와 우리의 몸이 다른 모든 것들처럼 단지 구체화된 에너지일 뿐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 중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구체화된 에너지라고 여기는 건 말이 안되죠. 지구와 이 같은 낮은 차원이 높은 차원보다는 뭔가 타락한 것처럼 여기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매한가지구요. 우리가 낮은 진동수로 지금 여기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원래 우리가 있던 높은 영역보다 이곳이 조금이라도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광스럽지 못하거나, 우리가 존중할 만한 것이 못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건 그렇지 않다구요. 지배와 위계질서에 관한 모든 말들은 이런 사물들에 대한 세속적인 관념들을 반영하고 정당화할 뿐, 불멸의 정신의 진실은 아니에요.

진실은 간단해요. 당신 주위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단지 불멸의 정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거죠.

그건 우리가 만든 것이고, 우린 그에 대한 책임이 있어요.

하지만, 물리적 세계가 우리가 창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서, 물리적 세계나 우리의 몸을 (일부 금욕주의자들이 그러하듯이) 낮게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게 정말 물리적 우주에 “불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 차원에 있는 물리적 세계는 우리가 창조한 것 중에서 정말 가장 훌륭한 것이고, 우린 그것의 보호자니까요.

정말로, 이 물리적 세계는 모든 창조물 중에서도 독특해요. 우리가 이제 알듯이, 물리적 세계는 우리가 만든 창조의 모든 차원 중에서 제일 “물리적”이죠. 바꿔 말해서, 이곳은 모든 차원을 통틀어서 가장 오래가고, 단단하고, 가장 “현실적인” 우주라는 말이요. 물리적 세계의 밀도 덕분에, 그리고 수많은 시간동안 영적으로 창조적인 실습을 한 결과 덕분에, 그것은 우리가 여태 창조한 것 중 가장 놀랍도록 아름다운 것이죠. 별, 은하계, 행성, 꽃, 동물, 새, 바람, 맛, 향, 그리고 심지어 민달팽이와 달팽이까지,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높은 진동수 단계에 있는 어떤 것과도 달라요. 우리가 여태까지 창조한 어떤 것도 정신을 위한 놀이터로 여기보다 좋은 데가 없어요.

다른 어떤 데 보다 더요!

이건 기가 막힌 보물이에요.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물리적 세계가 열등하다는 신화가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알 수 있을 거에요. 또한, 그걸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심한 범죄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낮은 진동수 단계인 이 아래쪽에서 창조하는 데 유일한 “문제”는 벌써 언급된 점이에요. 여기서의 창조는 제한적이죠. 이곳의 잠재성이 제한적이란 의미는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여기서 창조할 수는 있어요. 제한성이란 다른 의미죠. 이 단계에서 창조는 밀도(또는 관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듯)때문에 제한되고 있죠. 이 아래는 아주 딱딱하고 차가와요. 이렇게 걸쭉한 스프에서 에너지를 움직여서 사물을 창조하는 건 마치 긴 기차를 트랙에서 출발시키는 것과도 같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차가 움직이도록 하려면 강렬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해요.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당신이 트랙에 계속 집중하는 한, 기차는 비교적 쉽게 움직이죠. 하지만, 당신이 방향을 바꾸고 싶다거나, 다른 트랙으로 옮기고 싶다면, 당신은 기차의 속도를 줄여야 하고, 기차를 옮겨서 다시 출발시켜야 하죠. 낮은 차원의 매트릭스 안에 있을수록, 기차는 무거워지고,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여기 아래쪽에서의 창조는 여기의 민감도 때문에도 제한되죠. 이 우주를 구성하는 아원자 입자는 아주 약해요. 아주 쉽게 생겼다 없어져서, 정신(Spirit)이 끊임없이 묶어놓고 있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려요. 동시에, 정신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의 창조적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발휘해서 물질에 전부 담을 수는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면 물질은 그냥 폭발해버릴 거에요. 그래서, 우린 참아야 해요. 우린 기차를 천천히 시동 걸어서 움직이고 방향을 조심스럽게 바꾸죠. 우린 물질에 정신의 온전한 빛을 다 발휘해서 담지 않은 채 일을 하죠.

최소한, 이게 과거에 했던 방식이에요.

근데 재미있는 사건 하나가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에너지의 진동수를 낮춰서 물질을 얻을 때까지 단계적으로 내릴 수 있다면,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한다면 진동수를 다시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는, 우리가 딱딱하고 차가운 물리적 우주를 이 아래서 일단 창조한 다음에는, 그걸 높은 진동수의 차원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생명의 나무(그림 1)을 살짝 다시 보면, 말쿠드를 예소드(그 다음에는 예소드를 티파레드)로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으로 묘사되죠.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루어질 수 있어요.

이건 흥미로운 현상이죠. 우리가 여러 차원을 거쳐서 물질의 진동수를 높이는데 성공할수록, 물질은 우리의 창조적 의도에 쉽게 반응해요. 물론, 이건 파이프를 자르려고 쇠톱을 쓴다는 것 같은 얘기는 아니죠. 원자의 물리적 배열을 바꿔서, 마치 우리가 진동수가 높은 영역에서 하듯이, 우리의 심원한 창조적 의도가 물질에 쉽게 반영되도록 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 우주가 다음 진동수 단계(그리고 나서는 그 다음 단계)로 차원상승하면서, 우리는 훨씬 더 빠르고, 쉽고 우아하게 우리의 생각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해요. 여기서 좋은 점은, 우리가 물질의 진동수를 올리면서 이 낮은 단계에서 이룬 창조의 가장 중요한 혜택들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즉, 물리 세계의 지속성과 밀도, 그리고 아름다움을 계속 가지게 된다는 거죠.

아무튼, 물질성의 진동수를 올린다는 게 목표랍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이에 대해서 뭔가 할 말들이 있을 것이고, 그걸 보다 분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말할 거에요. 지상에 천국을 창조하는 거라고 부르거나, 또는 정신으로 물질을 되돌리는 것이라고 하거나, 샴발라의 등장이라고 하기도 하죠. 하느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구요. 뭐라고 불리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개념은 다 같으니까요. 물질이 차원의 단계들을 뛰어넘도록 끌어올려서 우리의 창조적 의도가 쉽게 실현되도록 하자는 거죠. 이런 식으로, 우리는 물리적 세계를 정신세계로 되돌리는 거에요.

흥분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싶은 지는 말 안 해도 뻔하죠.
이건 재미있을 거에요.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겁나거나 위험한 일이기도 하죠.

물론 당신의 소울한테는 이게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소울은 불멸하고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단, 몸에는 꽤나 위험할 수도 있죠. 만약 당신이 세계와 소통하는 지배적인 방식이 부정적이라면, 그러니까 당신이 증오, 분노,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안에서 존재하거나, 균형이 깨어진 상태로 존재한다면, 상승되는 우주와 함께 가면서 이 부정성과 불균형을 당신 바로 주변과 몸 안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현실로 실현하게 될 테니까요. 이는 당신이 만약 병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더 빨리 진행되고 활성화될 수 있다는 걸 뜻하죠.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정리하지 않으면, 당신의 삶이 스스로 현실화한 혼란과 혼동, 병,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끊임없는 연속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이게 겁나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건 당신 몸이 지닌 엄청난 능력에 당신이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 안에 박혀있는 신념들 때문이죠. 나중 장에서 알게 되듯이, 당신을 두려움과 환상 속에 남아있도록 하려는 조직적인 노력이 존재했거든요. 일단 당신이 여기서 육신을 얻게 된 이유에 대한 진실에 눈뜨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당신은 당신 안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거에요. 당신을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묶어놓기 위해서 고안된 시스템에 의해서 당신 안에 놓여진 두려움을 말이에요. 당신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극복해서, 이 물리적 우주의 공동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다시 찾아야 해요.

이게 많은 이들에게는 쉽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걸어서 지나가야 할 두려움은 꽤나 깊거든요. 반면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자부심은 당신이 지구에 온 첫날부터 항상 공격을 받아왔죠.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은근하게, 당신은 끊임없는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어린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런 지도는 당신 삶에 권위를 가진 인물(사제, 보스, 또는 부모)한테서 나온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죠. 당신은 또 권위적 존재가 내리는 심판에 대해서 경고 받아 왔어요. 당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고, 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란 소리를 들어왔어요. 그동안 당신한테 주입된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소리는 당신이 스스로를 쳐다보는 걸 겁내게 만들 정도로 두려움을 켜켜이 쌓아왔어요.

불행히도, 당신이 스스로를 안 쳐다보면, 당신은 당신이 진짜로 누구인지를, 당신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슬프게도, 당신은 스스로의 빛을 겁내도록 교육 받았기에, 스스로의 빛을 접할 때마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피하곤 했죠. 당신을 영적인 구속에 처하도록 하는 이유가 만약 신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태는 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거에요. 당신이 영적으로 스스로를 거세하는 것이 어째서 신적으로 허용되었는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지금으로는, 차원상승이 진행될수록,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두려움과 잘못된 개념들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걸 알아두는 게 필요해요. 우린 더 이상 이 문제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사랑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고 또 글로 써보고 하는 게 공포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신은 사랑이기에, 신은 심판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고, 무슨 정신 나간 고문 게임 같은 걸 위해서 노예 같은 존재를 창조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아무튼, 얘기하던 걸로 돌아가자면, 먼저 말했듯이, 이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의 목표는, 물질의 진동수를 올려서 그걸 높은 차원의 진동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거에요.

우린 이걸 차원상승이라고 불러요.

자, 차원상승은 개념적으로는 복잡하지 않은데, 실제로는 좀 미묘한 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창조된 것이 금방 사라질 정도로 유동적인 고차원에서도 창조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요. 생명의 나무를 따라 아래 차원으로 내려갈수록, 필요한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요. 이 아래에서는, (수소나 헬륨 따위의) 가벼운 물리적 원소를 창조하는 것 같은 가장 간단한 일마저도 많은 양의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창조하는데 드는 에너지와 노력은 원소의 주기율표를 따라 올라갈수록 더 커져요.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소들은 간단한 수소 원자를 창조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더 조직적인 영적 의도가 필요하지요. 사실은, 지금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보다 더 무겁고 복잡한 원소는 만들래야 만들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남아돌지 않아요. 우라늄 같은 높은 원소들은 불안정해서, 그들을 하나로 묶는데 쓰인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안정된 형태로 분해 되죠. 이런 에너지적 요구사항에다, 진화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창조한 것을 계속 유지하는 추가적 어려움이 더해지죠. 단순한 생명체는 에너지와 의도가 적게 필요하지만, (어떤 형태든) 복잡한 생명체를 만날 때쯤에 이르러서 필요한 에너지의 수준은 정말 엄청나거든요.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에 필요한 에너지는 차원상승이 이루어지는 경계선상에서 더 많아져요. 이런 경계선상은 창조된 것이 내려가고(descension, 하강) 올라가는(ascension, 상승) 과정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양자 단계와 같은 것이에요. 경계선은 창조를 진행하는데 일종의 저항선으로 작용하죠. 마치 물 잔의 표면장력을 깨야 하는 것처럼요. 장막을 투과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통과한 다음에는, 최소한 그 다음 장막을 만날 때까지는 일단 순항이 계속되죠. 또, 일단 장막을 통과한 다음에는 (일종의 운동에너지가 쌓여있어서) 약간의 추가적인 에너지를 얻게 되죠.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고 지구에 육신을 얻어서 왔는지 명백할 거에요. 우리 앞에 놓인 기본적인 영적 문제가 뭐였냐 하면, 물질을 차원상승의 지점까지 끌어올릴만한 에너지를 어떻게 발생시키느냐 하는 거죠. 이 우주가 다음 단계의 높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것을 막고 있는 양자적 경계선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바로 그 에너지 말이에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보편적인 에너지 덩어리로부터 에너지를 충분히 끌어와서 크라이스트의 몸(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세계 전체, 민달팽이를 포함한 모두)를 차원상승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즐기기 위해서 이렇게나 지겹도록 힘들게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물론, 불멸의 정신이자, 단일자의 불꽃들(Sparks of The One)인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어요. 어려운 건 그걸 실행하는 세부적인 사항에 있었죠. 하지만, 이것이 실행되는 역학과 우리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적 에너지의 보편적 덩어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지요.

에너지의 음과 양
The Yin and the Yang of It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이거에요. 어떻게 하면 물리적 창조를 양자적 경계막을 통과해서 차원상승 시킬 에너지를 끌어 모을 것인가? 답은 꽤 간단해요. 우린 창조 에너지의 양극성을 증가시켜서 그렇게 하지요.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요. 이만큼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단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죠. 창조 에너지의 성격과,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쓰이는 방식에 대해서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더 완전하게 이야기하려면, 에너지가 통합된 이원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짚어줘야 하죠. 아시아 문화에서는 에너지의 이런 측면을 음양이란 상징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음양의 이미지를 잠시 생각해 보죠. 원 전체는 창조의 에너지를 표상하고 있어요. 그건 구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의 전부죠.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동안 에너지는 중립적이거나 균형이 잡혀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창조의 에너지를 중립적인 형태로 사용하지 않아요. 우린 그걸 양적인 측면과 음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사용하죠. 이런 에너지가 구체화되면, 우리는 창조의 양극성을 갖게 되요. 암수, 부모, 양성자와 전자, 항성과 행성, 흑백, 주야를 비롯한 거의 무한한 수의 대립하는 쌍을 갖게 되죠. 즉, 이원성을 갖게 되요.

이런 이원성은 아주 중요해요. 왜냐하면 대립하는 것들이 갈라지고 합쳐지는 데서만 창조가 구체화되니까요.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지만, 우린 양적인 요소를 “앞으로 나아가고 팽창하는” 에너지적 원동력 또는 스파크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음적인 요소는 그런 스파크를 잡아서 뭔가 흥미로운 것으로 형태를 갖추게 하는 형성의 틀로 사용해요. 이 두 에너지를 함께 모으는 것이 바로 에너지가 구체화되는 길이죠. 이런 생각은 음양이란 기호에 상징적 형태로 잘 드러나 있어요.

우리가 차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창조는 진동수가 다른 단계마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기억할 거에요. 낮은 단계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죠. 높은 차원은 적게 필요하구요. 낮은 단계에서 현실화된 것은 오래 가요. 높은 단계에서 현실화된 것은 곧 사라져요. 높은 차원에서는, 우리의 의도가 에너지를 보다 균형 있게 사용해서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에너지가 근원에 가깝고, 빨리 진동하고, 생각에 대한 반응이 빨라요. 작은 양의 양적 에너지로 작업을 시작하고, 같은 양의 음적 에너지로 형태를 만들면 되죠. 하지만, 필요한 양극성은 부차적이에요. 우리가 쓰는 에너지는 음과 양이 대충 비슷한 에너지 공간을 차지하는 균형 잡힌 것이죠.

알다시피, 물리적으로 창조하기 위한 조건은 창조의 단계를 내려가면서 달라지죠. 진동이 느려지고 창조가 갈수록 단단한 형태를 취하면서, 창조에는 전체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지고, 그 중에서도 음에너지보다 양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지죠. 이건 직관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에요. 물 위로 배를 밀려면, 많은 힘이 필요 없어요. 하지만, 똑같은 배를 땅 위에 놓고 밀려면, 즉각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우리가 하는 창조도 마찬가지에요. 진동수가 낮은 차원으로 이동할수록, 점점 땅에서 배를 미는 것처럼 되는 거죠.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힘이 필요해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배를 미는데 필요한 추가적 힘을 얻기 위해서, 우린 에너지의 균형을 조정해야만 해요. 음에너지보다 양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우린 추가적인 힘을 발생시키죠.

우리가 에너지를 구체화시킬 때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 하는 건 각 차원마다, 그리고 창조의 각 단계마다 다른 요구사항에 따라서 결정되죠. (낮은 차원에서 그러하듯이) 양적인 추동력이 좀 더 필요하다면, 우린 남성적인 쪽을 더 많이 올릴 것이죠. (예를 들어, 양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난 다음, 에너지를 전체적으로 다시 균형 잡을 때처럼) 여성적인 쪽이 더 많이 필요하다면, 우린 여성적인 에너지 비중을 올리죠. 균형 잡힌 양극성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그냥 그렇게 하구요.

간단하죠?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에너지의 균형을 바꿀 수 있기는 하지만, 쓸 수 있는 전체 양은 바꿀 수 없다는 거죠. 끌어 올 수 있는 전체 에너지는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정해진 양의 에너지에서, 음과 양의 비율은 달라질 수 있지만, 원래 있던 전체량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따라서, 양 쪽을 높이면, 음 쪽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오죠. 총량은 여전히 같지만요. 음양 상징에서 이건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죠. 양 쪽(추동력이 되는 쪽)이 강해질수록, 음 쪽은 작아지죠. 하지만 음양의 총량은 여전히 같아요.

이게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이 큰 물통에 담겨있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에요. (흰색, 검은색 아니면 회색 같이) 물통 안에 든 물의 색깔은 상대적인 에너지 균형을 나타내요. 양을 강화하고 싶으면, 흰색 물감을 물에 더하고 물 색깔(또는 균형)이 바뀌죠. 음으로 균형을 잡고 싶으면, 검은색 물감을 더해요. 물통 안 물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물의 색깔은 변하죠.

한가지 중요한 첨언을 하자면, 물통과 음양 상징의 비유를 생각해본다면, 에너지를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위계질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에너지 그 자체는 그냥 에너지이고, 그걸 어떤 식으로 균형 잡든 간에, 에너지는 동일한 뿌리의 부분이에요. 흑백, 암수, 부모, 이건 모두 똑같은 에너지에요. 인종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들은, 이걸 귀담아들으세요. 다 똑같은 에너지라구요!

알아들으셨나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거에요. 이 차원에서 우리의 영적 숙제는, 차원상승의 경계를 뚫고 넘어갈 추동력을 충분히 발생시켜서 물질을 생명의 나무 위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것이죠. 이제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우리는 양에너지를 높여요. 그렇게 하면, 과도하게 많아진 양에너지가 발생시킨 추가적인 힘으로 인해 우리의 영적인 손끝에서 말 그대로 스파크가 튀게 되죠.

불행히도, 문제가 있어요. 창조의 에너지는 하찮게 볼 것이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에너지를 사용하다간 깜짝 놀랄 만큼 어려운 상황을 낳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에너지 균형을 조정할 때 우리는 조심스러워야 해요. 에너지의 균형을 다시 바로잡는 것이 갖는 보다 넓은 함의는 3장에서 다루게 될 거에요.

결론
Conclusion

자, 이제 당신은 삶의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함께, 차원상승 과정의 물리적 역학에 대한 개념적 요점을 알게 되었을 거에요. 창조란 단순히 양자 에너지 층 차를 거쳐서 높은 진동수 상태에서 낮은 진동수 상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에너지적 과정이란 걸 알았죠. 진동수 단계를 내려가는 것(descension, 하강)의 혜택은 우리 의도를 갈수록 물리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그런 만큼 창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현실이 우리 의도에 전처럼 편하고 신속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죠.

다행히, 우린 이 낮은 차원에서 물리성이 보이는 느린 반응과 관성에 영원히 묶여있지는 않아요. 제대로 노력하면, 우린 우리가 물리적으로 창조한 것을 차원의 계단 위쪽으로 올릴 수 있어요.  물리적으로 창조된 것의 진동수를 올려서 차원 사이를 나누고 있는 양자적 경계를 통과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창조물에 더 많은 에너지를 돌리면 되요. 이게 차원상승이지요. 차원상승의 혜택은, 물질이 단단한 물리적 성격은 유지하면서도, 현실화하는데 전처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차원상승이 진행되면서, 우린 높은 차원에서 창조할 때의 혜택과 낮은 차원에서 창조할 때의 혜택을 동시에 누리게 되는 거죠.

우린 두 세계의 장점만을 취하게 되요.
케잌을 먹어도 케잌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을 즐기는 거죠.

기술적으로는, 이러한 차원상승의 과정은 이미 일어났어요. 물리성을 자극해서 가장 낮은 양자적 경계를 넘어서게 하는데 이미 성공했어요. 당신의 의도가 현실화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증거를 당신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이걸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간의 물리적 차원을 고려해보는 것이죠.

시간이 빨라진 것 같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요. 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들이 생기고, 많은 발견이 이루어지고,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시간이 압축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죠. 이런 압축은 꽤나 현실적인 것이고, 지금 우리의 물리적 우주가 전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의 증상이에요. 시간은 앞으로 좀 더 압축될 거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상승하는 지구를 따라잡으면서, 사는 게 전보다 힘이 덜 든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면,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갖는 느낌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거에요.

지금 우리에게 진짜 큰 도전은 차원상승이 아니라 깨어나는 거에요. 차원상승이 진행되면서, 당신의 무지와 공포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당신에게 왜 무지와 공포가 부과되었는가 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의 차원상승 시도들과 연관된 문제들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다루어질 거에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이 정말 누군지 기억하는 걸 방해해온 공포와 환상을 하나씩 없애는 작업을 시작하는 게 소중해요. 다른 이유는 고사하고서라도, 만약 공포와 환상을 없애지 않는다면, 차원상승하고 있는 우주의 새로운 상황에서는, 당신의 환상과 공포가 물리적으로 빠르고 상당히 강력하게 현실 속에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만약 당신이 이 영광에 참여해서 공포와 부정적 결과 없이 차원상승하고 싶다면, 앞으로 나가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당신의 의도를 말로 표현하시기만 하면 되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긍정을 하루에 여러 번씩 반복해서 말하세요.

“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난 생명을 선택한다. 난 차원상승을 선택한다.”
그러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화끈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 시작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