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 : 시간, 우주, 그리고 모든 것

CHAPTER TWO: TIM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춤춰요, 그럼, 당신이 어디 있든,
나는야 춤의 제왕, 그는 말했어요,
그럼 난 당신들 모두 이끌겠어요, 당신이 어디 있든,
그럼 난 이 큰 춤판에서 당신들 모두 이끌겠어요, 그는 말했어요.

시드니 카터, 춤의 제왕

Dance, then, wherever you may be,
I am the Lord of the Dance, said he,
And I’ll lead you all, wherever you may be,
And I’ll lead you all in the Dance, said he.

Sydney Carter, Lord of the Dance

서론
Introduction

지난 장에서, 우린 차원상승의 개념을 소개하고, 그걸 에너지적 용어로 설명했어요. 차원상승이란, 차원의 단계 사이를 나누고 있는 에너지적 경계를 통과해서 물리성을 위로 올리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적 사건이란 걸 짚어봤어요. 차원상승이 진행되면서 의도를 실현시키는 우리 능력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에, 차원상승은 바람직한 사건이란 걸 발견했어요.

아쉽게도, 차원상승을 이루는 것은 어려워요. 이 행성과 이 우주를 안전하게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확실한 곳까지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우리가 그동안 했던 실패한 시도와 이번에 이루어낸 성공한 시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게 될 거에요. 하지만, 그걸 얘기하기 전에, 먼저 이 물리적 우주의 본성에 대해서, 특히 시간의 본성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에요. 이렇게 우회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몸 안에 있는 동안 갖고 있는 제한된 시야에 의해서 물들어 있거든요. 우리가 몸 안에 있으면서 깨어있는 동안은, 우린 마치 주철로 만든 어항 안에 들어있는 물고기와도 같아요. 우린 어항 밖을 볼 수 없고, 심지어 본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해한 걸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주 어렵죠.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이유는, 예를 들어 전생이나 차원상승 같은 영적인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시간에 대한 이해 없이,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간단해요. 시간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린 물리적 우주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공간처럼, 시간은 이 우주의 물리적 속성이고, 차원상승이나, 육화, 환생 등과 같이 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거의 모든 영적 현상은 이 물리적 우주 안에서 운용되고, 따라서 물리성의 법칙에 영향 받기 때문이죠. 당신이 만약 물리적 우주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것들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비논리와 미신으로 가득 차게 될 거에요.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쉬워요. 우리 모두는 물리적 공간을 삼차원 좌표상에 표시된 두 점 사이의 거리로 이해해요. 당신과 이 페이지 사이, 그리고 이 페이지와 건물 바닥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걸 우린 알아요. 당신 주위의 공간에 삼차원 좌표를 그린다면, (당신, 종이, 바닥) 세 점을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표시할 수 있을 것에요. 우린 공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편안한데, 그건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육신을 입은 이래로 “그 안에” 있어 왔기 때문이죠. 공간의 경우에는, 우리가 살면서 겪은 체험이 높은 영적 이해를 방해하지 않아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어요. 시간은 이해하기 더 어렵고 혼동에 빠지기 쉬워요. 그건 우리의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시간이란 개념이 원래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에요. 시간은 사실 제대로 된 시각만 유지하게 된다면 상당히 이해하기 쉬워요. 아쉽게도, 올바른 시각을 갖는다는 게 처음에는 꽤 어려울 수 있는데, 그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시간에 대한 체험이 우리를 가둬놓는 일종의 상자 노릇을 해서, 그 상자 안의 제한된 시야 밖에서 바라보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이 장에서 지적이고 이론적인 뇌관들을 많이 건드리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의 사고를 가둬놓고 있는 상자를 해체해서, 다양한 물리적, 영적 현상을 하나로 묶는데 도움이 되는 시간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보려고 해요. 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일반적인 영적 현상과 특히 차원상승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갖게 되길 빌어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먼저 고려해 보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죠. 우리가 몸 안에 있으면서 갖게 되는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물리적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우리가 물리적 몸 안에서 활동할 때, 우린 물리적 시간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인상을 갖게 되죠. 예를 들어, 몸 안에 있는 동안, 우리는 시간이 피할 수 없이 직선적인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느껴요. 과거는 우리 뒤로부터 빅뱅이 이 차원의 물질이 처음 존재하도록 진동했을 무렵의 우주 끝에 이르기까지 쭉 뻗어있죠. 우리의 몸은 현재 또는 시간의 첨단에 존재하고, 첨단을 넘어가면 우리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미래가 있어요. 우리에게 미래란, 과거와 현재 행동의 결과로 펼쳐지는 것으로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잠재성으로 남아있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물리적 시간에 대한 우리 경험은 제한적이에요. 시간에 대한 우리의 무제한적 경험을 “영적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우리의 육체적 시각과는 달리, 영적 시간은 일반적으로 당신이 몸을 갖고 있지 않을 때에만 알려지고 이해돼요. 그러니까, 물리적 우주의 밖에 있거나, 아니면 몸 안에 있는 동안 그런 시각을 갖도록 배울 경우에만 영적 시간을 이해할 수 있어요. 물리적 우주 밖의 시각을 갖는다는 건, 언뜻 생각되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사실은, 불멸의 정신으로서, 이건 우리 존재의 자연스런 상태에요. 우리의 소울 단계에서, 우리 모두는 집을 물리적 우주의 밖에서 찾고, 따라서 시간 밖에 있어요. 오직 몸 안에 있을 동안에만 우리는 물리적 우주의 안에 있고, 시간과 공간에 둘러싸여 있죠.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그것이 시공간 원통으로 시각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이 그림에서, 기둥은 사차원적 물리적 우주를 가리켜요. 이차원적 선 그림 안에서 사차원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수평의) x축이 (x, y, z) 공간의 세 차원을 나타내고, (수직의) y축이 네 번째 차원인 시간(t)을 나타낸다고 상상해볼 필요가 있어요. 원통이 어떤 식으로 공간의 세 차원으로 왔다 갔다 펼쳐져 있고, 시간의 네 번째 차원으로 오르락내리락 펼쳐져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또한, 원통 안에서 이 모든 차원들이 어떻게 다 담겨있는지를 살펴보세요. 이 차원들은 원통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림 2: 시공간 원통

다른 한편,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는 물리적 우주의 “밖”*에서 분명히 존재하지요. 밖에서 보면, 그건 정말 장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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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정신(Immortal Spirit)으로서, 우리가 물리적 창조물의 밖에 있다고 말하긴 했어도, 그건 완전한 진실은 아니에요. 우리가 보다 높은 시점에서 보고 있긴 하지만, 우린 언제나 물리적 우주와 닿아 있지요. 이 접촉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요. 한편으로는,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의 구조 안에 창조물을 담고 있어야만 해요. 이건 여태까지 비밀스레 전달돼온(esoteric) 것이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렵진 않아요. 정신이 끊임없이 물리적 현실을 의도의 붓으로 쓰다듬고 있지 않으면 물리적 현실은 바로 해체되기 시작한답니다. 이 위대한 영적 진리는, 다른 많은 위대한 영적 진리들처럼 간단한 상징적 도형으로 표상되어 왔지요. 아래 있는 이미지에서, 정신(스피릿, 동그라미)은 물리적 우주(네모)를 안에 담고 있지요. 이것이 네모난 동그라미(天圓地方—역자)에요. 이는 기억을 되살려서 깨어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상징으로, 이걸 오용하는 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에요.

물질을 싸고 있는 정신



물리성과의 접촉은 우리가 물질 안으로 들어갈 때에도 일어나는데요. 그건 본문에서 이야기되고 있어요. (저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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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우주가 다양한 차원으로 뻗어있는 것 전체를 볼 수 있죠. 우리는 공간의 세 차원과 시간의 한 차원을 동시에 모두 볼 수 있어요! 우린 심지어 (다양한 진동수의) 차원의 층들이 겹겹으로 쌓여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우리가 원통 안에 있는 에너지적 조건들을 꽤 쉽게 조절하는 걸 가능하게 하죠. 기원전 만년의 에너지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으면 바로 거기 있죠. 기원후 백년에 높은 진동수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요. 당신의 앞에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직물처럼 펼쳐져 있어요.

불멸의 정신으로서, 물리적 우주에 대한 우리의 시야가 장관이라면, 우리의 경험은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물리적 우주 밖에서는, 우린 시간이나 공간을 전혀 경험하지 않아요. 당신의 머리가 이해하는 그런 시간은 원통 밖에서는 아예 존재하질 않아요. 시공간 원통에 대한 위의 간단한 도형에서도 이건 분명하지요. 원통 밖에서는, 물리적 또는 시간적 차원이 없어요. 이걸 되풀이해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직선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지속의 형태로의) 시간은 우리가 몸 안에 있는 동안에만 우리한테 존재해요. 몸 안에서는 시간이 피할 수 없이 고정된, 직선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밖에서는, 그러니까 불멸의 정신의 시각으로 보면, 시간은 원통 안의 두 점 사이의 거리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에요.

물리성을 밖에서는 제대로 경험할 수 없는 건, 몸 안에 들어가지 않은 정신에겐 결정적인 한계 하나로 작용해요. 물리성 안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우린 (몸 안에 있는 정신인) 당신이 보는 것처럼은 못 봐요. 물리적 눈은 이 물리적 우주의 한 부분이기에, 우리가 물리적 우주 안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린 당신이 보는 걸 못 봐요. 우린 단지 색깔이 있는 에너지 패턴만을 볼 뿐이죠. 당신이 분노와 증오를 보는 곳에서, 우린 밤색, 검은색, 그리고 어두운 빨강색을 봐요. 당신이 사랑과 보살핌과 자비를 보는 곳에서, 우린 흰색과 금색과 쪽빛을 봐요. 우린 (다차원적인) 여러 겹의 물리적 우주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소용돌이치는 에너지 덩어리로 봐요. 다양한 색깔을 한, 다차원적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신적 반죽(mind mush)이 우리의 생각과 의도에 반응하는 걸 봐요.

그림 3: 물리적 우주




우리가 물리성과 에너지적 패턴의 형태로만 상호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개입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어요. 여기서 바로 당신이 등장하는 거에요. 많은 다른 당신의 불멸의 동업자들(Immortal Brethren)과 함께, 당신은 물리적 현실의 내부로 들어가서 안에서부터 밖으로 작업하기를 선택했던 거에요.1) 이걸 우린 체험하고 창조하기 위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하죠. 2)

정신은, 바위부터 시작해서 별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창조물의 모든 측면에 들어가서 체험해 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오로지 두뇌를 지닌 실제 몸 안에서만, 정신의 의식이 물질 안으로부터 현현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물리적 몸이 아주 중요한 이유이고, 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용기 있는 이들이 아주 중요한 이유이죠. 물리적 몸이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우리가 물질화 장치로서의 몸의 위상을 이야기할 때 분명해 질 거에요.

1) 몸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이 이 길을 택하는 건 아니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여기 이 지구에서 몸으로 들어온다는 건, 길 잃은 영혼(lost soul)이 될 가능성 때문에 꽤나 위험한 일로 여겨지죠. 길 잃은 영혼이란 뭐냐 하면, 심지어 죽음 이후에까지도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우주의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개인적 의식이에요. 이런 의식들은 이 세상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여기서의 경험의 한 부분이었던 제한된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걸 거부하죠. 이러한 영혼들이 스스로 부과한 무지로부터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주 힘들어요. 그들은 너무나 겁에 질려있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거든요. 섬세한 죽음의 전환과정에서 그들이 놀래 자빠지지 않도록, 우린 그들의 환상에 부드럽게 맞춰줄 필요가 있을 때가 많아요. 새 시대(new age)가 오면, 이런 영혼들은 자신의 환상이 조심스럽게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차원간 재활 센터에 보내질 거에요. (저자 주)

2) 실제로는 물질로 들어가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최근까지는, 우주의 이쪽 부분에서 물리성으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길은 자기 자신의 의식을 갖고 실제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이 방법보다 (길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없기 때문에) 더 안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자기가 들어오도록 허락해줄 의향이 있는 어떤 이에게 업히는 것이죠. 우린 이런 의식들을 '업힌 의식들'(PBC: Piggy back consciousnesses)라고 불러도 되겠죠. 업힌 의식들은, 몇몇 중요한 한계는 있지만, 몸이 제공하는 경험을 할 수 있죠.

육신 없이 업힌 의식들은 두 가지 일반적인 부류로 와요. 좋은 부류, 그리고 그리 좋지 않은 부류로요. 좋은 부류는 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당신이 영적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에요. 그리 좋지 않은 부류은 그냥 길 잃은 영혼이나 망가진 영혼인데요, 이 길이나 저 길로 가기를 거부하고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이죠. 그들은 보통 자기들 삶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종류의 에너지를 찾아 다니기 마련이죠. 길 잃은 영혼들은 생전에 좋은 것을 그리 많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부정적인 것들과 같은 종류를 찾아요. 그들이 부정성을 발견하면, 그것에 달라붙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확대 재생산되도록 해요. 어떤 것들은 심지어 자신이 선택한 자들의 의식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조정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죠. 이걸 보고 교회에서는 악마에 씌웠다고 말하는 거겠죠. 이건 분명히, 심각하게 부정적인 에너지 장 안에서 존재하기로 선택함으로써 그런 일이 자신한테 일어나도록 자초한 거에요.

이런 존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좋은 부류과 나쁜 부류 중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죠. 좋은 부류는 당신이 말로 확실히 허락하지 않는 한, 당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결코 침범하지 않을 거에요. 좋은 부류를 활성화시키려면, 당신의 영적 가이드들을 상기하도록 하세요. 당신에게는 당신의 영적 발전을 도와줄 의사가 있는 (어떨 때는 더 많지만) 둘에서 다섯 사이의 그런 가이드들이 준비하고 있어요. 이들은 지극히 소중한 자원이에요.

나쁜 부류는 흔히 주변에서 배회하면서 에너지를 얻어먹거나, 더 가까운 차원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허락을 해주도록 속일 방법을 찾아요. 이런 나쁜 부류를 떼어버리고자 한다면, 그냥 그들에게 냉큼 사라지라고 말하면 되요. 그들은 당신의 개인적 공간과 의사를 존중하도록 강제되어 있답니다. (저자 주)

시간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을 적당히 파악했다면, 어쩌면 모든 게 “영원한 지금’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고 싶어 할 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해도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죠. 하지만, 영적 시간을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마치 물리적 우주 바깥에서는 지속성이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문제가 있어요. 그렇지는 않거든요. 순수한 정신의 영역에서 지속성은 있어요. 하지만, 정신이 알고 작업하는 지속성은 시공간 원통 안의 두 점 사이 거리와 관련된 지속성과는 달라요. 물리적 시간과 영적 시간을 구별하기 위해서, 정신으로서 우리는 창조적 계기/순간(creative moments)를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 (순간이란 원래 시간 밖에 있는 어떤 것을 가르키긴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짧은 시간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여기서는 움직이는 국면이란 뜻의 "계기"가 더 잘 어울리긴 하는데, 좀 전문술어 같아서 일단 순간으로 번역해 놓았어요. 하지만, 순간이란 말이 자꾸만 물리적 시간의 일부로 느껴질 경우에는 순간을 "계기"나 “사건”(occasion, event)으로 바꿔보시길 권할게요. 요점은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라는 시간의 특수한 구속성이 없는 창조적 동작의 지속이 바로 모멘트라는 것이죠.—역자 주)

창조적 순간(계기)이란 말이 무슨 뜻이냐구요?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에겐, 순간(moment)이란 단순히 의도가 현실이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에요. 영적 순간과 정확히 똑 같은 “순간들”은 물리성 안에도 있어요. 우리가 직선적 시간이란 환상에 빠져서 보통 잘 인식하질 못하고 있지만요. 물리성 안에 있는 동안, 순간이란 우리 의도를 물리적 존재로 만들기까지 걸리는 사이클로 구별돼요. 우리가 의도를 표현할 때 순간은 시작되고, 의도가 어떤 식으로든 현실화될 때 끝나요.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인 아침밥 하기를 예로 들어보죠. 일어나서 아침을 하기로 결심(의도)할 때, 당신은 아침 순간으로 진입해요. 베이컨을 잡고, 가스렌지를 켜고, 달걀을 부치고, 치즈를 갈고, 우유를 따르고, 커피를 타요. 아침 하는 과정과 먹는 과정을 마치면, 당신의 아침 순간은 끝나는 거죠. 아침밥을 현실로 만들기까지 다른 많은 일들을 하는 걸 살펴보세요. 다른 행위 하나하나 역시 당신에게 하나의 순간을 나타내요. 치즈를 갈 때, 당신은 치즈의 순간을 갖고 있어요. 달걀을 부칠 때, 당신은 부치는 순간을 갖고 있죠. 화장실에 가러 멈추면, 당신은 화장실 순간 (또는 상황에 따라서 움직임)을 갖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면, 첫 시도는 어색할 거에요. 이런 저런 할 일이 많고, 그걸 다 함께 조절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실습과 함께 당신은 나아질 거에요. 일련의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하게 되고,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땅콩버터를 잡기 전에 잼을 먼저 집게 되요. 그게 더 가까이 있으니까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커피를 먼저 타게 되고, 거의 마무리가 되기 전까지는 토스트를 굽기 시작하지 않아요. 마침내는 당신이 집중하지 않아도 현실화가 자동적으로 되는 상황에 이르죠. 이제 위험은 (타는 토스트처럼) 예측하지 않았던 사건이 당신의 순간을 방해하는 거에요. 당신은 물론 그걸 원치 않죠. 당신의 순간에 너무 빠져서 자신이나 남에게 위협이 되기를 원하진 않을 거에요.

영적 세계에서도 아주 비슷해요. 우리는 물리적 우주를 창조하기로 결심했고 우린 그걸 상승시키기로 결정했어요. 당연히, 물리성을 창조하는데 들어가는 순간들은 아침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순간들보다 크죠. 하지만 개념은 같아요. 매번 새로운 사이클(또는 순간)마다 우리는 “깨어나서” 우리 활동을 조직하기 시작하죠. 결국에는 우주를 상승시켜 놓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 즐기기 위해서요. 우린 육신들을 잡아서 진화시키고, 특정한 에너지 균형을 창조하고, 그 균형을 여기 저기 맞추고, 어떤 소울들은 현실로 보내서 특정한 임무를 하도록 하는 식이죠. 아침밥을 만들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시도에서 우리가 완벽한 결과를 얻지는 않아요. 사실, 처음 몇 번은 받아들일 만한 결과도 이룩하지 못해요. 그래서, 우린 쉬고, 다시 생기를 얻어서 또 시도해요. 모든 걸 완벽하게 맞춰서 차원상승이 신적으로 허용된 제대로 된 순간 안에서 진행될 때까지요.

우리의 창조적 순간들에 대해서 중요한 것들 몇 가지를 살펴볼 게 있어요. 예를 들어, (당신이 매일 반복하는) 아침밥 만들기의 순환적 성격을 보시고, 당신이 어떻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지 보세요. 이것이 창조의 방법이에요. 모든 것은 사이클이고 모든 현실화된 것은 순환적이고 점점 좋아져요. (비틀즈가 전에 말했듯이, 사물들은 “항상 점점 나아져요.”) 이건 우리가 차원상승 시도를 여러 번 했던 물리적 우주에서 특히 사실이에요. 우리가 과거에는 (어떨 때는 꽤나 비참하게) 실패했지만, 매번 우리가 시도할 때마다 우린 차원상승이라는 영광스러운 목표에 점점 다가갔어요.

순간들과 차원상승 시도들에 대한 이 모든 얘기가 아마도 비밀 종교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건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순간” (그리고 순간들의 무한한 집합인 물리적 우주 역시)을 하나의 큰 뱀이 스스로의 꼬릴 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아래 그림의 상징을 아마 본 적이 있을 거에요. 우로보로스 뱀은 창조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고, 물리적 우주란 것은 영적 순간들의 집합이니까, 물리적 우주를 묘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림 4: 우로보로스 뱀 - 우주적 순간



이제 이해할 수 있듯이, (크든 작든) 순간은 정신이 표현하는 의도의 총합이에요. 아침의 예에서처럼, 순간들은 순간들 안에 존재하고, 우리의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의도가 현실로 나타나는 동안 순간들은 생겼다 없어졌다 해요. 걸쭉하고 다양한 색깔을 한 액체로 된 정신적 반죽으로 그득한 시공간 원통을 그려보세요. 원통을 손으로 흔드는 걸 상상해 보세요. 크고 작은 공기 방울 거품이 일어나는 걸 보세요. 이런 공기 방울들이 이 물리적 우주와 (안과 밖에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이 모든 의식들이 창조한 모든 순간들이에요. 그 속 한 가운데 있는 어떤 이에게는 혼란처럼 보일지 몰라도, 더 높은 시야에서는, 혼란처럼 보이는 것에서 질서가 하나로 합쳐져서 나타나는 것을 보기 시작할 거에요.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고, 공기 방울들이 연결되어 더 큰 방울들을 형성하고, 원통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창조의 춤을 추는 것을 말이에요. 초기 혼란 단계에서도 그건 말로 다 하지 못하게 장관이었지만, 우리가 최상의 의도를 표현하는 걸 돕기 위해서 창조물 안에서 함께 작업하는 걸 조금씩 배우면서, 원통은 말 그대로 약동하는 생명으로 비약했어요. 이제는 지적이고 조화된 순간들로 숨쉬고 있죠.

요약하자면, 몸 안에 있는 동안 당신은 물리적 시간을 경험해요. 시간이 당신 뒤로 이 우주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봐요. 시간에 대한 이런 이해는 물리성 내부에서는 타당하지만 정신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에요. 정신은 시간을 사건의 위치를 구체화하는 또 하나의 물리적 좌표로만 봐요. 다른 한편으로, 정신은 순간들로 자신의 행위를 측정하죠. 이런 영적 “순간들”은 순환적이고, 의도가 성공적으로 실현될 때까지 반복적이에요. 특정한 창조적 의도가 실현되면, 새로운 의도와 새로운 순간들이 생기겠죠.

이쯤해서 당신의 머리가 빙빙 돌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러니 당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한 잔 마시면서 지금 본 내용을 곰곰이 되새겨 볼 수도 있겠죠.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는데 처음에 좀 힘겹다고 해서 답답해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기억하세요. 이게 어렵거나 우리 이해력이 부족해서 이 개념들과 씨름하는 게 아니니까요. 육체적 의식의 제한된 시각에서 벗어나 더 높은 단계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 것이 없어서 힘들어 할 뿐이에요. 실습을 하다 보면, 정신의 무제한적 시각을 받아들일 능력이 자랄 거에요.

이 장의 남은 부분에서는, 몇 가지 주요한 영적 개념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얽힌 신비를 풀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해요.

당신이 살면서 한 경험부터 시작해보죠.


순간에서 살기  Living in the Moment

뉴 에이지, 비밀종교, 영적 서적 또는 요술에 대한 서적들을 찾아보는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냈다면, 당신이 수도의 길에 들어서면서 순간에 살라는 조언을 꼭 듣게 된다는 걸 알 거에요. 이제 왜 그런지 알겠죠. 만약 당신이 직선적 시간은 환상이고 순환적 순간들이야말로 지속성의 측면 중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훨씬 빠르게 나아갈 수 있고,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당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어요. 더 좋은 아침밥을 만들고 싶다면, 그리고 그걸 효율적으로 하게 되고 싶다면, 관심을 갖고 아침밥 순간 속에서 사세요. 마찬가지로, 당신 삶에서 어떤 특정한 것이 실현되기를 바란다면, 의도를 갖고, 그걸 유지하면서 그 순간 속에서 사세요. 그러면 (새로운 정보나 배움을 포함해서) 당신의 의도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날 때, 그걸 알아볼 수 있을 거에요. 당신이 자신의 창조적 의도를 의식하지 않고, 창조적 순간들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다면, 토스트가 타서, 벽에 불이 붙고, 집이 불에 타서 무너진다고 해도 불멸의 정신한테 뭐라 그러지 마세요.

순간들은 순환적이라는 것 또한 기억하세요. 당신의 의도가 현실이 되거나 의도를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할 때까지 순간들은 당신의 삶을 통해서 존재하고 돌고 돌 거에요. 당신이 그동안 의도해온 모든 순간들과 당신이 참여하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의식하게 된다면, 당신은 몸 안에 있는 동안 창조력을 가다듬을 수 있고,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에요. 거대한 창조의 춤 속에 있는 당신의 공간을 순간들이 들락날락 돌고 도는 것을 의식할 수 있도록 하세요. 어떤 순간들은 물론 당신이 의도한 것이고, 어떤 순간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당신(또는 당신의 몸)이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긴 탓에 접하게 된 다른 이들의 의도로 나타난 순간들이에요. (무엇을 하든지) 당신의 삶을 정신이 마음껏 쓰도록 바친다면 당신의 삶 전체는 창조적 의도가 실현되는 춤이 될 거에요.

동시다발적인 삶들  Concurrent Lives

이쯤 되면, 전생이란 건 없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지점까지 올만큼, 당신은 시간에 대한 이해가 생겼을 거에요. 과거라는 게 실제로는 없는데, 어떻게 전생이 있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다면 자기들의 전생에 대한 강하고, 많은 경우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인상을 갖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은 뭐냐고 당신은 묻겠죠? 그들이 꿈을 꾸고 있거나 망상에 시달리는 건가요?

대답은 아니, 당연히 그들은 꿈꾸는 것도 망상을 보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전생을 기억하는 것도 아네요. 그들은 자기들의 동시다발적 삶들에 잠깐 접근한 것이에요. 아마 당신이 직관할 수 있듯이, 동시다발적 삶들은 당신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영원한 순간 안에서 살아지고 있지만, 단지 시공간 원통 안의 다른 시간적 지점에 위치해서 살아지고 있는 당신의 삶들이죠. 자기 전생을 기억하거나 심지어 “보는” 사람들은, 시공간 원통 안의 다른 지점에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베일을 걷어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일 뿐이에요.



그림 5: 시공간 원통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동시에 하나 이상의 시간적 또는 공간적 위치에 있을 수 있나 아마 궁금할 거에요.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영적 존재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당신은 단지 의식의 한 점에 불과한 것이 아니거든요. 당신은 실제로는 다층적인, 다차원적인, 위계적 영적 구조 안에서 존재하고, 이 영적 구조는 당신의 개별적 의식부터 당신의 상위자아, 당신의 소울을 거쳐서 천사의 영역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신에까지 이르는 구조이죠.

당신의 영적 자아 전체를 상상할 때, 무수히 많은 가지들이 모두 연결돼서 하나의 뿌리 구조로 통하는 나무를 상상해 보실 수 있어요. 각 나무의 맨 끝에는 잎들이 있어요. 이 잎이 당신이에요. 개별적 의식으로서의 당신은 (신의) 의식 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에요. 개별적 의식으로서의 당신을 우린 우주적 단자(cosmic monad)라고 불러요. 물론, 당신은 전혀 우주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높은 영역에 연결되어 있다고 전혀 느끼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단자가 비록 쪼개지고, 다시 쪼개지고, 또 다시 쪼개진 신을 의미하긴 하지만, 여전히 신의 능력과 잠재의식을 온전하게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지구가 상승하기 전까지는, 당신이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 지금 현실로 들어오지 못해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몸이 미쳐버리거나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당신의 일부를 감춰두어야만 해요. 당신과 이 세상이 더 높은 의식을 맞이할 준비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당신이 물리성으로부터 숨겨둔 당신의 이 부분을 우린 당신의 더 높은 자아(상위 자아)라고 불러요. 당신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 지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것과 연결하려고 해 보세요. 그게 당신의 진정한 단자에요. 당신의 에고 의식은 진짜 당신을 창백하고 멀겋게 반영하는 것에 불과해요.*

* (그렇다고 당신의 에고 의식이 가짜 당신이라거나, 없애야 할 어떤 것이라는 얘긴 아네요. 에고 의식은 지금까지의 지구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영적인 에너지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상태일 뿐이기 때문에, 몸의 활성화를 통해 차크라가 열리면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되고, 세상의 에너지장과 지구환경이 바뀌면서 완전한 에너지 공급이 이루어지게 되면, 에고 의식은 더 높은 의식의 유입을 통해서 원래의 진정한 자아 상태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거에요.--역자 주)

비유해 보자면, 당신의 에고 의식을 잎의 끄트머리라고 한다면, 당신의 높은 자아는 잎 전체에 해당해요. 당신의 단자인 잎을 상상하면서, 잎이 다른 많은 잎들과 함께 어떻게 나뭇가지에 연결되어 있는지 보세요. 같은 가지에 연결된 모든 잎들이 당신의 소울 가족(soul family)라고 부를만한 것을 이루어요. 나뭇가지 자체는 당신의 소울에 해당돼요. 당신은 아마 소울이 마치 단자적인 의식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익숙하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아요. 소울은 단자가 아니에요. 소울은 수백 또는 수천의 개별적 단자들을 포함하는 영적 존재에요. 소울은 당신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단계의 의식이에요. 소울은 자신이 설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단자들을 육화를 통해 물리적 세계 안으로 보내는 기본적인 가이드이죠.

물론 가지들 자체도 나뉘어 있고 나무의 몸통에서 모두 합쳐지고, 뿌리 구조 아래까지 내려가죠. 이 나무 비유는 의식들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꽤 잘 묘사하고 있어요. 당신의 높은 자아(잎)은 당신의 소울(가지)로 연결되고, 소울은 천사의 영역(몸통)으로 연결되고, 천사의 영역은 근원(뿌리 구조)까지 연결되지요. 이걸 상상해 보시면, 당신이 모든 것과 모든 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당신이 근원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될 거에요.

당신은 이제 동시다발적 삶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갖게 되었을 거에요. 그리고 그런 삶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각하게 되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에 대해서도요. 동시다발적 삶들은 단지 나무에서 당신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다른 단자적 의식들(당신 자신의 소울의 일부)이에요. 조건이 맞으면, 그러니까 당신이 스스로의 영적 연결들을 억압하지 않으면, 밀접한 단자적 의식들로부터 당신의 단자적 의식으로 정보를 끌어올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은 (아직 영적 연결을 끊지 않은) 어린이들한테 제일 자주 일어나고, 베일을 뚫고 자신의 높은 의식을 쳐다볼 수 있는 어른들한테도 일어나요.

이건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당신의 다른 동시다발적 삶들에서 당신이 무얼 하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순결파 수도사*로서 삶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들판의 농부, 권좌에 앉은 왕, 출산하는 여성, 또는 고대 사원의 높은 여사제일지도 모르죠. 이 모든 게 이 창조적 순간에서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거에요.

만약 이게 흥미롭다고 생각하면,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다른 육화의 삶 모두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당신이 있다는 걸요. 순결파 수도사로서 당신이 얻은 경험은, 당신이 허용하기만 한다면, 지금 이 삶에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도울 수도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요. 당신이 지금 겪는 경험들이 순결파 수도사로서 사는 당신의 삶을 도울 수도 있지요. 소울은 이 모든 육화로부터의 경험을 한꺼번에 얻거든요. 상상력을 동원해서, 당신이 한 생에서 영적 돌파구를 통과했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려보세요. 당신이 잘 생각해본다면, 어느 한 단자적 육화에서 하는 선택이 생각보다 훨씬 의미심장하다는 걸 알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의 경험이 당신 소울의 다른 모든 육화에게 배움과 통찰을 제공하니까요.

(*순결파: 중세 프랑스에서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카톨릭의 한 종파로, 이단으로 몰려 교회와 국가의 박해를 받았음--역자 주)




시간의 끝 / 최후의 시간(종말)
The End of Time/The End-times

시간의 본성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 봤으니까, 불멸의 정신으로서 우리가 시공간 원통 전체를 환히 볼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을 거에요. 하지만, 시공간 원통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면 안되요. 정신, 즉 영(Spirit)이 무한해요. 물리적 우주는 유한하죠. 물리적 우주에는 경계선들이 있어요. 우주의 맨 아래쪽 경계선이 존재하는 시점은, 물리성 중에서 여기의 차원이 빅뱅과 함께 처음 진동하기 시작하며 존재하게 된 때이죠. 거기가 이 우주의 물리적 한계점이고, 망원경은 그 한계를 넘어서 볼 수가 결코 없을 거에요. 물리적 우주의 산물인 망원경은 물리적 우주의 경계선을 넘어서 볼 수가 없으니까요.

우주의 맨 위쪽 경계는 문자 그대로, 가능성의 가장자리 또는 시간의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지요. 흥미롭게도, 맨 위는 그 아래 있는 모든 것의 영향을 받아요. 터널의 끝에서 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상승 같은) 창조적인 일들은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이르는 원통 전체의 컨디션에 아주 크게 좌우되지요. 마야인들은 이걸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원통의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려고 온 영적 사자들이었어요. 그들은 (원통의 가장자리인) 시간의 끝이 2012년이라고 우리에게 말했어요. 마야인들은 2012년이 지나서는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 그것은 2012년이 지나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죠. 2012년이 지나면, 시간은 끝나요. 이건 우주가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 낡은 에너지를 가진 낡은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2012년을 넘어서는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 그것은 2012년에 우리의 창조 기차가 우주적 트랙을 말 그대로 점프해서 전혀 다른 시간의 선으로 옮겨가기 때문이지요. 즉, 마야인들이 예언한 이 가능성의 거대한 도약은 사실은, 상승과 대규모적 깨어남의 시점을 말한 것이죠. 기존의 시간 트랙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많은 이들이 일곱 번째 창조라고 불러온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시점 말이에요.

안타깝지만, 일곱 번째 창조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다루기로 하구요. 여기서는 단지 “종말”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지요. “종말”을 지나쳐가는 것이 창조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당신은 이제 알았어요. 하지만, 2003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변화는 점차적으로 미세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가속화될 거에요. 새로운 지구가 몇 년 후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는, 개연성을 측정해보는 것으로 추정해볼 따름이지요. (예언에 대한 아래 부분 참조). 하지만, 우린 창조의 대체적 방향은 알고 있는데, 매우 높은 수준의 이상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것만큼은 확실해요. 상황이 마침내 정리되고, 자신의 3차원 악마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 깨어나면, 새로운 세상은 사랑과 풍요, 그리고 평화로 가득한 놀라운 세상이 될 거에요.

예언자들과 예언   Prophets and Prophecy

시간과 종말, 그리고 순간 안에서 살기를 이해한다면,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예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걸 먼저 짚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첫 번째 종류의 예언은 우리가 시간의 끄트머리에 서있을 때 일어나죠. 시간의 끝부분에 있으면, 미래를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미래는 없고, 일어나는 일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미래는 볼 수 없다고 해도, 이런 저런 대체가능한 미래들의 개연성을 추정해볼 수는 있어요. 이런 일에는 상당히 복잡한 영적 과학이 등장하고, 기호, 순환, 에너지 패턴 같은 것들과 관련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단순해요. 원통 전체에 걸친 컨디션을 보고, 에너지적인 혼합의 상태를 검사해본 다음에, 혼합이 그 지점까지 확장되어 도달할 때, 에너지적인 혼합의 상태가 특정한 지점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미리 예측해보는 것이죠.

예측은 물론 매우 정확하고 고도로 발달된 영적 수학과 추정을 바탕으로 해요. 이 단계에서의 예언은 사실상 개연성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구체적인 사건들을 미리 보진 못하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 구할 수 있는 에너지의 수준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예측해볼 수는 있어요. 이런 종류의 예언을 개연적인 예언(probabilistic prophecy)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에요.

또 다른 종류의 예언은 비전을 보는 예언(visionary prophecy)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에요. 이 종류의 예언은 우리가 시간의 끝이 아니라, 그 전에 있는 시공간 원통의 어떤 한 시점에 서있을 때 일어나지요. 예언자들은 아카샤의 기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아카샤는 이 우주에서 일어났고 또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기록한 것으로, 어떤 거대한 영적 전당에 보존되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해요.

물론, 기록의 전당이나 아카샤 같은 건 없어요. 창조의 동굴이란 건 있지만, 이 동굴은 단지 당신이 이 지구에 있는 동안의 삶을 진동수로 요약한 기록을 저장할 뿐이에요. 그건 정보의 보편적인 저장소가 아니지요. 예언과 관련해서,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개별적 삶을 이해하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그것 말고는 활용도가 제한적이에요.

비전을 보는 예언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그것 말고 시공간 원통을 쳐다볼 필요가 있어요. 시공간 원통의 어느 한 곳에서 비전을 보는 예언자가 되려면, 영적 세계와 강력한 유대관계를 발달시킨 다음, 당신의 (육신이 없는) 친구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되죠. 그게 다에요. 정신(Spirit, 영)은 원통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니까, 문제는 단지 정신의 관점을 얻는 것일 뿐이에요. 정신으로서, 우리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기원전 1012년이나 기원후 2000년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우리가 몸 안에 있을 때 원통의 앞 쪽의 어느 한 순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 알고 싶으면, 우리가 할 일은 불멸의 정신의 눈으로 보는 것일 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원통을 밖에서부터 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부분과 연결하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시공간 원통 안의 언제든, 어디서든,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그림을 얻을 수 있어요.

예언은 시공간 원통 안에서 아주 중요한 이유로 몇 차례 쓰인 적이 있어요. 원통 안의 상황이 혼란으로 치달으면서, 원통의 맨 위쪽 끝에 위치한 시간의 끝(종말)이 마치 아틀란티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극심한 자연재해, 전쟁, 질병과 죽음이 뒤섞인 혼합으로 나타나는 순간, 상승 시도가 실패할 듯한 증후를 보이는 순간, 노스트라다무스가 왔어요. 노스트라다무스는 당시 진행중인 상황에 대한 일종의 경과 보고서를 들고서, 상황을 통제하라는 요청을 하려고 온 특수한 영적 사자였지요. 노스트라다무스가 와서 한 말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았어요. “ 지금 당장 정신적 반죽을 제대로 통제하세요. 당신이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이 지금 시간의 끝에서 일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다행히도, 우리는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운항하는데 가까스로 성공했어요. (비록 육십 년대와 칠십 년대 초기에 경고가 또 한번 필요하긴 했지만요.) 노스트라다무스의 선견지명으로 무장하고 나서, 그리고 하나의 순간이 다음의 순간으로 넘어가면서, 우린 상황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바꾸는데 성공했어요. 그 변화는 상당히 대단한 것이어서, 지금 우린 재난 대신에 영광스러운 미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죠.

그럼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뭘 했냐구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우리가 전폭적으로 상황에 개입했다고 말하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노스트라다무스가 심각한 경고를 하던 바로 그 때에, 지구에 대한 도움과 개입을 우주 전체에 요청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 요청에 응답해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starseeds)은 창조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나타나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지요. 지구의 상승과 일깨움에 필요한 조건들을 창조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이들은 다양한 개입을 했어요. 이들 별에서 온 존재들의 개입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죠.

결론
Conclusion

이번 장에서는, 이 책의 주된 목적인 상승에 대한 설명에서 좀 벗어났어요. 그 대신 우린 시간의 본성에 대해서 배웠고, 육체적인 시간 이해가 갖는 직선적이고, 주관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들은, 불멸의 정신으로서의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우린 또한 정신(영)이 이해하는 지속성, 즉 의도가 주어지고 나서 현실이 되어가는 순환적 순간과 직선적 시간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어요.

이번 장에서 우린 상당한 개념적 기초에 대해서 다루었어요. 물론 우린 시간과 영적 순간에 대해서 단지 짤막하고 제한된 이야기만을 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이 당신의 생각을 안에 넣고 가두는 개념적 상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정보는 제공되었어요. 이제 아시다시피, 이 물리적 우주를 당신이 이해하는 방식은 당신의 몸이나 육체적 감각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런 이해의 문제점은, 당신은 당신의 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몸이라고 너무 강하게 규정하고 있으면, 이 우주를 보다 영적으로 향상된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당신이 영적인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육체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영(정신)의 더 높은 이해로 자신의 마음(mind)을 열어가는 것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당신이 차지한 위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우린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전생, 예언, 종말의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 등,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 개념  몇 가지에 적용해 보았어요. 이러한 영적 개념들은 물리적 우주를 육체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한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장에서 소개된 시간에 대한 새롭고 높은 개념을 통해서 명확해지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원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가서, 상승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룰 거에요. 우리가 창조의 과정에서 이 행성을 어떻게 해서 지금의 찬탄할만한 위치로 끌어올렸는지 자세히 다룰 거에요. 하지만, 별에서 온 존재들의 개입, 시간의 선들, 예언, 심지어는 당신 자신의 상승 및 깨어남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 항상 지구보다 높은 위치에서, 불멸의 영의 관점 안에서 머무르려고 노력해보세요. 예를 들면, 별에서 온 존재들이 시공간 원통의 모든 위치에서 개입하는 것은, 상승이라는 이 거대한 순간(moment, 움직임, 계기)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시간과 물리성*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념을 당신이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 이 지구에서 펼쳐질 변화가 갈수록 기적적인 성격을 띠게 되더라도 당신은 그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