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우리의 세계
CHAPTER FOUR: OUR WORLD

충분히 발전된 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

아더 씨 클라크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Arthur C. Clarke

서론
Introduction

지난 장에서, 불멸의 영으로서 우리가 상승과정에 필요한 조건을 창조하려고 어떻게 시도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했어요.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는 경계를 돌파해서 물리성을 창조의 계단으로 거슬러 올리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요. 아틀란티스는 커다란 실패작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실은, 아틀란티스의 실패가 낳은 악영향을 우린 아직도 처리하고 있어요.

이번 장에서는, 경계를 돌파하려는 우리의 현재 시도를 다룰 거에요. 이번 실험의 전제는 지난 두 실험과 같고, 에너지 불균형의 정도는 아틀란티스에서와 같지만, 이번 실험이 펼쳐지는 조건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아틀란티스에서 남은 에너지적 악영향을 처리해야 할 뿐 아니라, 위쪽 차크라를 일깨울 때가 왔을 때, 만약 몸이 겁에 질리게 되더라도, 아틀란티스가 붕괴할 때와 같은 파괴적인 힘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번 시도를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에너지가 작동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다시 한번 에너지에 대하여 – 무질서도와 어둠/ 창조와 빛
Energy Revisited - Entropy and Darkness/ Creation and Light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승 시도를 조정하는 일 외에도, 아틀란티스에서 나온 에너지적인 악영향 혹은 “카르마”를 처리할 일이 우리에겐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번 시도가 왜 그리 복잡하고 운영하기 어려웠는지 이해하려면, 우리가 창조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의 세 가지 특징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에너지의 지속성, 중립성, 그리고 결합성(valence)이에요.

에너지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했어요. 에너지가 지속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너지의 관성이나 운동량에 대해서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해요. 이전 장에서 이야기했듯이, 당신이 의도를 통해서 일단 에너지를 끌어오고, 그 의도가 일단 실현되거나 표출되면, 그렇게 실현된 것은 그대로 유지되는 성향이 있어요. 에너지와 실현된 것들이 끈끈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거에요. 물론, 에너지의 진동수가 낮을수록 (즉, 우주의 차원에서 당신이 낮은 곳에 있을수록), 에너지는 더 끈끈해요. 에너지의 이런 특징은, 분자의 진동속도가 느려지면서 걸쭉해지는 기름이나 당밀 같은 액체의 예에서 잘 드러나죠.

창조의 에너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에너지가 중립적이라는 거에요. 에너지는 그냥 에너지이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무감각해요. 에너지의 사용과 오용에 대해서 에너지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아요. 그건 그냥 있어요. 이 관념이 좀 어렵게 느껴지면, 당신 자신이 에너지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걸 생각해보세요.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로 전환되고 당신의 몸이 활동 중에 사용하지요. 하지만, 당신이 무얼 먹는지, 그리고 당신의 에너지가 어떻게 저장되는지는 당신이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를 결정하지 않아요. 저장된 음식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당신과 당신의 몸은 항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 당신은 앉아서 티브이를 볼 수도 있고, 달리기를 할 수도 있고, 자녀들과 함께 놀 수도 있어요. 요점은, 당신이 선택을 한다는 거에요. 당신이 그렇게 선택한다면, 소파에 앉아있기만 하는 여가생활로 인해 몸이 안 좋아지고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는 걸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죠.

창조의 에너지도 이와 똑같아요. 그건 그냥 에너지이고 당신이 그걸로 뭘 하든지 상관 안 해요. 에너지는 마음도 없고, 의지도 없고, 도덕성이 없어요. 그것은 물론 신의 일부(the substance of God)이지만, 가공되지 않은 에너지 그 자체는 영이 사라진 상태이고 의도에 반응하기만 할 뿐이죠. 당신이 무슨 활동을 할지 선택하는 것처럼, 당신은 이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어요. 창조의 에너지라는 이 경이롭고 놀라운 선물을 갖고서, 예를 들어, 평화와 정의, 사랑과 풍요로 가득한 세상을 실현할 수도 있어요. 다른 한편으론, 당신이 그러기를 선택한다면, 이 선물을 갖고서 모든 이들과 심지어는 세계 자체(대자연이라는 어머니)를 당신의 적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결국에는,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지속성과 중립성에 더해서, 에너지는 결합성(감정값)이라고 부를만한 성질을 갖고 있어요. 결합성이란, 에너지가 일종의 질적인 각인(찍어 누른 자국, 흔적)을 동반한다는 뜻이에요. 이 각인은 당신의 몸이 에너지에 부여하는 것이죠. 우리의 몸은 물리성 실현 장치이고, 완전히 활성화되면 아주 강력한 매체가 된다는 걸 기억하시죠. 에너지가 당신의 몸을 통과할 때, 에너지는 몸이 당시 갖고 있는 감정적 상태가 부과하는 각인을 그대로 받아서 유지하게 되요.

에너지가 당신의 몸을 통과하면서 받게 된 결합성(감정값)은 몇 가지 방식으로 묘사될 수 있어요. 결합성(감정값)을 회전과 색깔로 묘사할 수 있죠. 당신의 몸은 에너지를 두 가지 방향 중에서 한 쪽으로 돌릴 수 있어요. 당신은 에너지를 “시계방향으로” 돌리거나,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릴 수 있죠. 에너지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에너지는 통일성과 통합 쪽으로 현실화되고, 에너지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면, 에너지는 비통일성과 해체 쪽으로 실현돼요. 에너지적 균형(음양)과 회전 사이에 관계가 있는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죠. 활동성이 강한 쪽, 즉 양에너지를 올리면, 과도한 양 에너지가 낳은 마찰과 투쟁이 에너지를 해체 쪽으로 돌리기 쉽게 만들어요.

에너지는 색깔 역시 갖고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색깔이란 감정적 색깔을 말하는 건데, 회전의 경우와 같이, 에너지가 당신의 몸을 통과할 때 찍혀지는 것이에요. 자극에 다양한 종류의 감정적 반응을 할 수 있는 당신의 몸은 창조의 에너지에 별의별 다양한 “색깔”을 입힐 수 있어요. 사랑, 자비, 증오, 질시, 분노 등으로 에너지를 색칠할 수 있죠. 당신이 무엇을 느끼든, 그걸 에너지에 찍어 넣을 수 있어요. 아니, 무얼 느끼든, 당신은 그걸 찍어 넣어요.

이제, 지속성, 중립성, 그리고 결합성의 속성을 합치면, 깊은 함의를 지닌 에너지의 속성 한 묶음이 나타나요. 에너지가 중립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에너지를 끌어들여서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현실로 실현할 수 있어요. 에너지가 결합성(감정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개인적인 인장을 에너지에 새겨 넣어요. 마지막으로, 에너지는 지속성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실현한 것과 그걸 실현한 방식은 그대로 남게 되요. 당신이 에너지를 어두운 감정으로 낙인찍게 되면, 당신이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그 에너지는 당신이 찍어 놓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요. 당신이 그걸 다시 각인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근본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의 관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관성이 무얼 뜻하는지에 대해서 이제 자세히 알게 되었고, 단지 움직임뿐만 아니라, 색깔과 회전에도 관성이 적용된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에너지적 관성이 가져오는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 그 전모를 밝혀보도록 하지요.


원래의 회전
The Original Spin

에너지적 관성이 갖는 중요한 의미 하나는, 당신이 에너지에 색깔을 입히고 회전시키면, 에너지는 처음 끌어들여진 장소 근처에서 그런 색깔과 회전을 유지하면서 머물게 된다는 거에요. 그런 다음 이 에너지는 다른 이들이 물리성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로 다시 쓰일 수 있지요.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당신의 몸이 공명(동조적 진동, sympathetic vibration)을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죠. 그건 이렇게 작용해요. 당신의 몸은 특정한 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끌어들여요. 만약 몸이 차크라를 통해서 끌어들인 에너지가 (회전되지 않은, 색깔을 입지 않은) 중립적인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만약 몸이 어떤 감정적 결합성(감정값)을 지닌 에너지를 끌어들인다면, 당신의 몸은 그 감정값에 그대로 반응하는 성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분노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는데, 당신이 어쩌다가 우연히 그 분노의 에너지 주변에 있게 된다면, 당신이 창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 에너지를 먼저 끌어들이게 될 것이고, 당신이 그 에너지를 통해서 현실을 구현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몸 상태는 분노 쪽으로 기울게 되는 성향이 있어요. 이건 전혀 신비스러운 게 아니에요. 이건 단순히 에너지에 대한 물리적 반응 (공명 현상)일 뿐이에요.

보통은 에너지적 감정값과 공명은 큰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자신이 누군지 완전히 인식하고 있으면, 즉, 우리가 불멸의 영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을 때는, 우리가 에너지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회전하거나 색깔 입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설령 우리가 그렇게 하더라도, 부정적인 에너지가 증폭되는 걸 막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그걸 다시 각인하겠지요. 다른 경우에, 만약 우리가 다른 이가 부적절하게 각인해 놓은 에너지를 몸소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그걸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 다음, 그걸 더 적절한 것으로 재빨리 변화시키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그건 영으로서 우리가 지저분한 에너지를 남겨두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건 단순히 에너지적인 청결의 문제에요.

하지만, 양에너지 쪽을 올려서 위쪽 차크라를 굶주리게 해서, 에고와 불멸의 자아 사이에 장막(The Veil)이 쳐지게 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될 위험이 생겨요. (자신이 진짜로 누구인지 모르는) 기억상실 상태에서, 과도한 양에너지의 자극에 대처해야 할 때에는 (커피를 여섯 잔 마시고 나서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세요), 어떤 에너지가 주위에 널려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몸이 그냥 주위의 에너지에 공명해서 유사한 반응을 보이기가 아주 쉬워요. 찻길에서 추월을 당한 경우처럼 단순한 일을 생각해보죠. 이 일에 대해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광범위한데,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1) 우리가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2) 당신의 몸이 어떤 종류의 에너지를 끌어들였는지, 3) 당신 자신이 본능적인 몸의 반응을 얼마나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지에 달렸어요. 우리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였다면, 그리고 그 에너지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상태에서는, 우리는 과잉반응을 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운전 중 격분하는 현상이 흔히 일어나는 거에요.

군중 심리에서도 이런 역학을 명백히 볼 수 있어요. 군중들 속에서는 순간적인 공포나 분노가 쉽게 전염되고, 최초의 사건이 감정적인 파장을 일으켜서 군중 사이로 퍼져나가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으로 번질 수 있지요. 이러한 원칙이 좀 더 높은 단계에서도 작용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세계에서 항상 분쟁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역들의 경우가 그래요. 이런 분쟁은 거기 사는 개인들이 이미 강하게 채색된 에너지와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지역들의 에너지는 너무나도 부정적으로 회전되고 색칠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엇이든 긍정적인 걸 실현한다는 게 아주 어렵게 돼버렸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불멸의 영으로서 우리는 결코 어떤 일에도 과잉반응을 하지 않아요. 사실은, 우리의 기원을 알고 있을 때에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분노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아주 작아요. 또한, 우리가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회전시켜놓고 나서 그 실수를 바로잡는 걸 잊어버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거에요. 하지만, 몸 안에 있으면서 기억 상실 상태에 있으면, 상황이 많이 다르죠.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고, 우리의 형제자매가 누구인지 잊고,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고,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회전시키고, 우리가 그걸 고쳐놓아야 한다는 걸 잊어요. 이것은 아틀란티스에서 우리가 무지와 미신으로 인해서 부정적인 회전과 감정값을 배출하고 확대재생산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죠. 아틀란티스가 망각으로 사라지면서 발생한 원래의 에너지적 각인을 원래의 회전(Original Spin)이라고 부르기로 하죠.

당신이 기억상실에 걸려있는 동안에 당신이 일단 원래의 부정적인 회전에 참가하면, 진짜 문제가 시작되죠. 기억상실 상태에서는, 당신이 실현한 부정적인 회전 때문에 에너지가 부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당신이나 다른 이들이 앞으로 실현할 것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미 각인된 부정적인 에너지의 성격을 띨 가능성을 높다는 것이죠. 조건만 맞으면, 지금과 같은 (차크라가 닫혀있는) 상황에서도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기억상실 상태에서, 당신의 차크라가 활짝 열리고, 당신의 진정한 영적 자산에 대해서 절대적인 공포에 휩싸인 채 반응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럼 아틀란티스가 망각으로 사라지면서 과연 얼마나 참담한 일이 벌어졌을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하나의 법
The One Law

이제 이해할 수 있듯이, 아틀란티스의 상황이 끔찍해지자, 물리성의 영역 중에서 이 지역에 부정적으로 각인된 지저분한 에너지가 말 그대로 쏟아졌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승의 경계로 물리성을 다시 올리기 위해서 이 지역을 재구성했을 때, 아틀란티스인들이 각인해 놓은 에너지는 그대로 고스란히 남았다는 거에요. 우리가 하강하면서 발생시킨 반-에너지는 시공간 원통 중에서 이 지역에 마치 진흙과 어둠의 늪처럼 머물러 있었어요.

이건 우리가 처리해야 했던 문제였어요.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원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그냥 남겨둘 수가 없어요. 이게 우리의 상승 시도를 막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부정적으로 각인된 에너지가 범람하는 상태에서는 높은 진동수의 차원으로 상승하도록 우리가 허락할 수 없죠), 아틀란티스에 참여했던 우리 모두는 그 결과에 영적인 책임이 있었어요. 불멸의 영으로서, 당신은 에너지를 만지작거리다 엉망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질러 놓고 나서, 다른 누군가가 그걸 청소하라고 내버려두도록 허용되지 않아요. 물리성의 공동 창조자이자 창조의 동업자로서, 우리는 동일한 보편적인 영적 법에 따라야 해요. 이 법은 일종의 균형을 보장하는 장치로 작용하는데, 당신이 실현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이것은 영적 책임의 법 또는 우주의 유일한 법이라고 불리는데, 그건 이게 우리가 지켜야 하는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에요.

이 법칙의 작용을 제일 간단히 묘사한다면, 당신이 각인한 에너지를 당신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는 것이에요. 당신이 에너지를 좋은 걸로 각인하고 그 에너지로 현실을 실현하면, 그것은 똑 같은 상태로 당신이 다음에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 당신에게 되돌아가요. 당신이 좋지 않은 것을 에너지에 각인하면, 그 에너지도 역시 당신에게 같은 상태로 돌아가요. 이 법칙은 당신이 내보낸 것과 동일한 질의 에너지를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주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법칙이에요. 이 법은 절대로 예외가 없기에, 에너지를 계속 부정성으로 각인하길 원한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에서만 가능한 것이죠. 그들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반-창조적 소용돌이는 상당한 고통과 불안감으로 이어질 테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대처하기 힘들게 될 거에요. 소울에게 주어지는 에너지가 갈수록 부정적이 되니까요. (反者道之動,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은 <노자 도덕경>에서 도의 작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유일한 표현이기도 하지요.—역자)

영으로서, 우리는 이 법을 이해하고 있고, 높은 차원에서 현실 구현을 하고 있을 때에는 실제로 그것이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어요. 높은 차원에서는, 에너지의 반응 속도가 빠르고, 에너지의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투자한 에너지는 바로 우리에게 돌아오지요. 이런 “바로 면전에서 대놓고” 이루어지는 성격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구현하는 현실에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여요. 하지만, 낮은 차원에 있으면서 기억 상실에 걸려있을 때에는, 이 법칙의 작용에 대해서 잊어버릴 수가 있죠. 낮은 차원에서는, 에너지를 각인하더라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뿌린 것을 다시 거두어들이게 되거든요. 뿌린 것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이 오랜 시간적 단절 때문에, 하나의 법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되고, 이 법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생기게 되죠.* 이 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털고 가도록 하죠.

* 당신이 하나의 법칙을 기억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없었다는 건 아니에요. 이 법은 모든 세계적 종교나 영적 신념 체계에 황금률의 변용으로 표현되어 있거든요.

속지 말아요. 신은 놀리지 못해요.
인간이 뿌린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거두거든요.
갈라디아서 6:7.

남들이 그대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대도 그들에게 해주세요. 이것이 법이고 선지자이니까요.
마태복음 7:12.

그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마세요.
이것이 법의 전부에요. 다른 모든 것은 해설에 불과해요.
샤바트 31절. 탈무드.

이것이 의무의 전부에요. 만약 그대에게 가해진다면
아픔을 불러일으킬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마세요.
마하바라다 5, 1517.

그대 자신이 당하면 아프다고 느낄 짓으로
다른 이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불교. 우다나 바가 5, 18.

이것이야말로 인(사랑)의 근본 규칙이에요. 그대에게
가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마세요.
논어 15, 23.

무엇이든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다른 이에게 하길 삼가는
그 본성 하나만으로도 족해요.
조로아스터교. 다디스탄-아이-디닉, 94.

이 리스트는http://users.aol.com/psyeditor/goldrule.html과 http://www.teachingvalues.com/goldenrule.html 에서 가져왔어요. (저자 주)

물론, 이것은 보복의 법은 아니에요. 어떤 이는 이 법이 있으니까 눈에는 눈으로 당한 만큼 그대로 앙갚음을 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해석하는 건 완전한 헛소리이고, 법의 본성과 의도를 어기는 거에요. 눈을 뽑혔다고 가서 눈을 뽑는 것은, 우리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이 행위가 아니라 에너지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을 가지고 불과 싸우는 것의 상승작용을 무시하는 것이죠. 부정적인 에너지를 더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로 각인하게 되면, 단지 부정성만 늘어날 뿐이에요. 불로 불과 싸우면, 불만 더 커질 뿐이죠. 누가 당신을 때렸다고 당신이 돌아서서 그 사람을 맞받아치게 되면, 원래 있었던 부정성을 두 배로 증가시키게 되죠. 이렇게 하면, 이 간단한 영적 원칙을 완전히 어기게 되는 셈이에요. 하나의 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현명한 이라면 부정성을 늘리는데 이바지하는 대신, 다른 쪽 뺨을 내밀어요.*

이것은 심판의 법도 아니에요. 이미 이야기했듯이,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심판이란 내포되어 있지 않아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심판이란 내포되어 있지 않아요. 살인조차도, 그 사건 자체로는 단지 물리적 몸의 종말을 뜻할 뿐이죠. 그것이 나쁜 점은, 살인이라는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심각하게 부정적으로 각인된 에너지를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이에요. 어떤 이가 다른 이를 죽이면, 유족 말고도, 살인자를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야 해요. 왜냐하면, 또 다른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 필요한 부정성과 단절성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어서, 에너지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각인하는데 참여한 살인자는, 주의 깊게 조정된 에너지 청소 작업을 여러 차례의 삶을 걸쳐서 해야만, 그들이 책임을 지고 있는 에너지가 비로소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죠.

반복하자면, 하나의 법은 보복에 관한 것도, 징벌에 관한 것도 아니에요. 하나의 법은 책임에 대한 것일 뿐이에요. 당신이 어떤 것을 창조하면, 그건 당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당신이 어떤 걸 망쳐놓으면 당신은 그걸 고쳐놓아야 해요. 어떤 이는 이 법을 싫어할지 몰라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영적인 어른들의 방식이에요. 어린이들이 어질러 놓으면 당신이 치우죠. 어른들은 자기가 어질러 놓은 걸 스스로 치워요.

에너지 변환하기
Transmuting Energy

이제 우리가 이 지구에 육화한 두 번째 이유를 살펴보죠.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상승을 위한 에너지 작업자들이라는 것이에요. 상승을 위한 작업자라는 것 말고, 우리는 아틀란티스가 망각으로 사라질 때 우리가 마구 쏟아냈던 부정적인 에너지 전부를 깨끗이 청소하려고 작업하는 우주의 청소부들이에요. 우리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청소하는 작업을 에너지 변환하기라고 하는데, 하나의 법이 작용한다는 것이 우리가 이걸 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요. 일은 꽤나 힘들었지만, 개념적으로는 간단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에너지를 우리 몸에 집어넣은 다음, 알맞은 차크라를 통해서 뭔가 좀더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서 배출하는 거였어요.

이건 개념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힘든 일이에요. 몸이 공명을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과, 몸이 심각한 영적 기억상실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변환하려고 하는 에너지를 아주 강렬하게 육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죠. 즉, 분노의 에너지가 우리의 몸을 통과하면,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그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며 우리 할 일인 에너지 변환작업을 한다는 건 아주 어려워요. 그 대신, 우리는 (특히 우리가 처음 육화했을 경우에는) 그 분노의 에너지를 변환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통과시키면서, 그 분노의 표현을 처음 촉발시킨 친절한 소울에게 분노하며 덤벼들기 쉽죠. 강렬한 감정을 한번이라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우린 모두 에너지 청소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강렬한 감정을 체험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런 강렬한 감정의 흐름을 전환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죠. 당신은 항상 물길을 거슬러 오르느라 고전해야 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되고 우울증이나 자기파괴성향으로 표출된 에너지의 경우처럼, 말 그대로 완전히 바닥을 친 다음에야 마침내 길(Path)에 들어서서, 에너지 변환하기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지요.

이 시점에서, 왜 우리가 그냥 물리성 밖에서 에너지를 변환시키지 않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어요. 즉, 우리의 위쪽 자아들이 (우리의 소울들, 천사들, 대천사들, 상승한 마스터들 등) 이 에너지를 모두 모아서 사랑과 빛으로 회전시켜버리고, 우리는 그동안 환희로 가득한 채 시공간 원통을 구경하도록 하지 않냐는 거죠. 왜 굳이 우리가 몸에 들어가서, 기억상실에 걸린 다음, 에너지 변환 작업을 하는 힘든 방식을 택해야 하냐 이거죠. 그 이유는 간단해요. 몸 밖에선, 우리는 사랑만을 경험해요. 신경세포와 신경절(시냅스), 그리고 감각을 갖고 있는 물리적 몸만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게 된 풍부한 감정적 체험을 제공해주죠. 우리가 몸 안에 있지 않는 동안에는, 우린 이 지구에 표출된 모든 에너지를 느낄 수가 없어요. 물론, 우리는 에너지를 볼 수는 있고, 에너지의 색깔과 회전은 볼 수 있죠. 에너지의 균형을 재조정할 수는 있어요. (우리가 원하면 심지어는 지역 전체를 “재설정”할 수도 있죠.) 하지만, 몸 밖에서는 우린 특정한 에너지 각인을 바꿀 수는 없어요. 몸이 한 일은 몸 안에 있는 동안에만 바꿀 수 있거든요.

카르마와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
Karma and your Guide Network

정리하면, 하나의 법의 작용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각인한 에너지를 처리해야만 해요. 에너지의 물리적 속성 때문에, 에너지가 몸에 의해서 물리성 안에서 표출되면, 우리는 물리적 몸으로 들어가서 그 부정성을 처리해야만 하죠.

에너지 청소작업은 꽤나 힘든 일이었어요. 다행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청소 작업을 혼자서 감당하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무작정 물리적 현상 안으로 진입해서, 삶의 상황을 창출하고 나서, 에너지를 변환시키는 작업을 시작하지는 않아요. 그렇게는 안 하죠. 그렇게 하면 너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죠), 걸려있는 것(상승)이 너무 어마어마하고, 상승에 관심 있는 소울들이 너무 많아요. 그 결과, 우리는 도움을, 그것도 아주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알면 아마 놀랄걸요.

당신이 카르마 작업을 위해서 받는 모든 도움은 계약으로 시작돼요. 지구 위의 물리적 현상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신은 계약을 해요. 이 계약은 당신의 카르마 계약이라고 불리는데, 당신이 육화한 동안 당신이 감당하기로 예상되는 에너지 작업의 종류, 당신이 받을 도움의 종류, 당신이 참여할 활동의 종류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죠.

이 계약은 당신과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 사이에 맺어져요.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는 둘과 다섯 사이의 소울들로 (어떨 때는 그 이상)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당신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이들이죠. 당신의 전생에 관련이 있던가, 이 생에서 가족이었던가, (물론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당신을 도울 수는 없지만) 그들 자신의 이유 때문에 돕겠다고 자원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이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이 육화되지 않은 가이드들이 당신의 카르마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죠.

당신이 일단 육신을 입으면,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는 당신이 특정한 종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보다 긍정적인 감정값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현실로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주게 되요. 물론 당신은 계약상의 모든 것에 동의한 것이죠. 강제로 어떤 일을 하라고 요구되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일단 계약에 동의하면, 그리고 물리적 현실로 내려오면, 당신은 이 계약에 묶여있고, 그걸 깨고 나오도록 허용되지 않아요.

왜 이런 권위주의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필요한지 의문을 가질지도 몰라요. 이유는 단순해요. 기억상실 상태에서는, 그리고 위쪽 자아와 단절되어 있을 때에는, 당신이 영적인 무책임이란 발작을 곧잘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카르마 계약을 비웃고 신경질내면서, 당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 다니면서 시간을 때울 수도 있으니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당신의 진정한 본성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에는, 당신의 자신의 영적 책임을 결코 피하려 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억상실 상태에서는, 그런 일은 툭하면 일어나요. 당신의 자유의지에 간섭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계약상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는 당신의 몸이 좋아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변환하기로 동의한 에너지를 변환할 수 있는 기회를 반복해서 제공하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요. 이건 사랑하는 맘에서 하는 일이에요. 이렇게 하면, 당신이 몸 안에서 얼마나 울부짖던지 상관없이, 당신이 모든 영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 동의한 계약이란 단순한 이유 때문에, 당신의 계약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되지요.

앞서 말했듯이, 당신의 가이드들은 당신이 에너지를 다시 각인할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현실로 만들어요. 예를 들어, 당신이 분노를 처리하기로 동의했다면, 특히 당신의 초년 시절에는, 분노가 당신의 주위 환경을 지배하는 특징이라는 걸 발견하게 될 거에요. 분노는 당신이 맡은 몫의 부정적인 감정값을 성공적으로 처리할 때까지 계속 당신의 관계와 삶 속의 사건들을 지배하게 될 거에요. 당신이 맡은 몫을 성공적으로 다 처리하게 되면, 당신의 카르마는 해소되고, 당신은 또 다른 카르마 임무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더 높은 영적 작업을 수행하게 될 거에요.

카르마를 해소할 기회를 촉발하는 상황은 무수하게 다양해요.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삶을 당신이 살고, 어떤 종류의 체험을 통해서 카르마를 해소할지는 완전히 당신에게 달려있어요. 당신의 가이드 네트워크와의 계속되는 상의 속에서 말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삶에서 카르마가 펼쳐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요. 당신이 영적인 길에서 많이 나아가게 되면 그걸 인식하게 될 수도 있지만요. (만약 주의를 기울여서 본다면) 당신이 똑 같은 감정적 갈등과 마찰을 계속 반복해서 경험할 때마다 당신은 그걸 볼 수 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당신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해소할 기회를 계속 놓칠수록,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들이 계속 순환되면서 반복된다는 게 확연해져요. 마침내는, 왜 똑 같은 일들이 당신에게 자꾸만 반복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잡아 뜯게 될 거에요.

이제 왜 그런지 알 거에요.

우연한 사건이란 없다는 말이 어째서 나왔는지도 알 수 있을 거에요. 당신 삶에서 대부분의 상황들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해소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현실화 된 것이거든요. (물론 예외도 있어서, 그냥 일어나는 사고도 종종 있지요.)*

카르마를 해소하고, 당신의 계약을 해소하는 것에 (즉, 에너지적 의무 충족하기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할 말이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에너지 청소작업이 힘든 노동이었지만, 우리가 결국 해냈다는 걸 알면 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물리성 중 이 지역에 각인된 부정적인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다시 각인하는데 성공했어요.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남아있는 것들은 급속히 해소되거나 통제 구역으로 옮겨질 거에요. 거기서 에너지 청소작업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들이 카르마 계약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회를 제공받게 될 거에요. 그것이 모두 마무리되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태초의 상태대로 신선하고 긍정적이고 알맞게 균형을 이룬 에너지일 거에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또다시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죠.

회전을 통제 상태로 유지하기 – 세상 밖에서 온 이들에 대한 소개
Keeping the Spin Controlled - Introducing the Off Worlders

이 장을 시작하면서, 이번 상승 시도는, 비록 이전 시도(아틀란티스)와 음양에너지의 불균형 정도는 비슷했지만, 이전보다 복잡한 시스템이 필요해졌다는 걸 언급한 적이 있어요. 에너지 감정값의 문제, 아틀란티스에서 나온 부정성을 처리하는 카르마 계약의 필요성, 그리고 육신을 입지 않은 무수한 가이드들의 존재를 살펴보면, 이 복잡한 시스템의 절반 정도를 이해하게 되는 셈이죠.

우리의 상승 시스템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건, 앞서 언급된 것보다도 더 이상하고 복잡한 외계의 개입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건 당신이 자신의 위쪽 차크라들을 성공적으로 다시 연결할 능력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당신이 신체적 에너지 시스템의 전권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도록 고안된 것이죠. 아틀란티스가 붕괴하면서 남기고 간 엉망진창을 기억하세요? 위쪽 차크라의 재연결이 시작되면 반드시 나타날 두려움을 통과해낼 수 있다는 게 확실하지 않은 이상, 기억상실 상태의 몸이 자신의 신체 시스템을 완전히 활성화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었죠.

당신 모두를 영적으로 거세해야 할 필요성은 우리에게 특이한 문제 상황을 제공했어요. 당신이 몸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 게 필요하긴 했지만, 아틀란티스 때와 같은 폭주가 되풀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이 완전한 힘을 갖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도 있었어요. 불멸의 영이 물리성과 바깥에서 작업할 때 경험하는 한계를 감안하면, 이 거세 작업은 몸 안에 있는 단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죠. 우리는 당신이 자신의 권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 알긴 했지만, 누군가 당신을 속박하도록 하는 게 문제였어요. 높은 자아가 의식의 자리에 단단히 확립된 상태로 살고 있는 몸은 절대로 그런 끔찍한 일을 하려고 들지 않을 테니까요. 설령 우리가 이 일을 할 의식적 존재를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이런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턱이 없었어요. 그들은 아직 때가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들을 구속의 상태에서 풀어주거나 앞으로 나갈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게 뻔했어요. 오직 영적으로 고립된 족속만이 자신의 형제자매를 속박하는 것 같은 힘들고 불쾌한 작업을 수행하려고 할 테니까요.

우리는 이런 족속을 잘 고안된 우주적인 개입을 통해서 창조했어요. 우리가 한 것은, 이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 시스템에서 삶의 조건을 조정해서 외계의 차크라 관리자들이 진화하도록 한 거에요. 선택된 세계의 물리적, 에너지적 조건을 바꿔서, 자신이 사는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주된 존재 이유가 되는 족속이 나타나도록 함으로써, 우리한테 필요한 관리자 종족을 창조했어요. 이런 지배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들어서 말이에요. 자세한 사정은 꽤 복잡하지만, 핵심은 자연 자원은 부족한데 생명은 풍부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행성 영역을 만든 것이죠. 삶의 조건을 이런 식으로 균형에서 어긋나게 함으로써, 우린 생존을 위한 경쟁과 갈등이 삶의 주된 특징인 세계를 만들었어요.

이 행성들에 우리가 북돋은 치열한 경쟁과 투쟁의 결과로, 좀 혐오스러운 성격으로 진화하지 못하면 어떤 개별적인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건 꽤나 흥미로운 과정이었어요. 낮은 단계의 생명체에서, 어느 종에서나 자연선택을 통해 점진적이고 필연적으로 가장 강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고, 계략을 잘 꾸미는 개체만이 살아남았어요. 각 종은 완벽한 마키아벨리적인 다이아몬드로 진화해갔죠. 각 종은 서로를 먹이로 삼았고, 공격과 폭력, 그리고 체력의 기질이 계속 정예화 되면서, 자연적인 조건은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경쟁적이 되었어요. 이러한 경쟁적인 환경은 높은 수준의 신체적 형태들이 진화할 수 있는 보기흉한 무대가 되었죠.

이 행성들에서 높은 형태의 생명체들이 진화해가면서, 계속 변화하는 좁다란 생태적 빈틈을 찾아 성공적으로 경쟁하려면 낮은 단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발전시켜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지능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높은 단계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가장 흥미롭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감정적인 발전에 있어서, 이 존재들은 이 우주의 일반적인 진화의 결과와는 전혀 다른 변태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그들은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졌던 거에요! 초기 발전 단계에서 그들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었어요. 그들이 진화하면서 감정적으로 퇴화한 이유는 간단해요. 느낌은 그들의 생존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죠. 어떤 종류의 감정도 약점이었어요. 심지어는 분노와 증오와 같은 감정마저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생물적, 사회적 진화의 와중에 살아남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생태적 빈틈(또는 그들이 개발한 경쟁적 위계질서) 안에서 살아남아서 자리를 차지하는 건 가장 화를 많이 내는 경쟁자는 아니었으니까요. 가장 잘 적응하고, 상대의 약점을 가장 잘 찾는 경쟁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죠.

그들이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진 걸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그들 행성의 조건이 가슴 차크라의 퇴화를 낳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진화의 과정이 끝날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 존재들은 아주 작은 가슴 센터를 갖게 되었어요. (차크라 퇴화의 결과로) 작아진 그들의 물리적 심장은 아주 작은 물리적 신체 형태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죠. 세 번째 상승 시도에서 당신의 현실 실현 능력을 통제하려는 영의 계획에서, 가슴 차크라의 이런 퇴화는 결정적으로 중요했어요. 가슴 차크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가 “회색인”이라고 부르기로 한 이 존재들은 에너지를 회전시키거나 색칠하지 못하게 되요. 가슴 차크라가 기능하지 못하면, 그들은 에너지 파국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어요. 이건 정확히 계획대로 된 것이었어요. 아틀란티스에서 우리 모두 경험한 것 같은 에너지 재난을 그들이 일으키는 걸 우린 원치 않았으니까요.

그들의 몸이 줄어들고 심장이 축소되면서, 그들이 경쟁적인 세계에서 사멸했을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사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들은 번성했어요. 그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후보가 된 유일한 이유는 그들의 사고 능력이 과도하게 개발되었다는 것이었죠. 혹독한 조건 때문에, 그리고 감정이 아주 일찌감치 제거되었기 때문에, 진화를 위한 에너지가 지능으로만 쏠린 거에요. 그들은 두뇌회전이 매우 빨라졌고, 매우 합리적(계산적)이 되었어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요.

물론, 그들의 사고 과정의 목적은 언제나 통제와 지배(control)였어요. 사실, 그들의 지배 선호 성향은, 진화 과정을 통해서 불멸의 영이 그들의 몸에 집어넣도록 고안된 모든 기질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발달되었어요. 그들이 살았던 최악의 환경은 그들이 지배에 목을 맬 수밖에 없게끔 했어요. 그들이 환경을 지배할 수 없게 되면, 먹이 사슬 체계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고, 사회적 발전을 전혀 이룰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심장이 퇴화되고 이성적 능력이 커지면서, 그들의 지배욕은 더 커졌어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그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돼버렸죠. 지배를 잘하면, 자원을 공급받아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기질보다도 높이 평가되었어요. 마침내,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수단만을 최고로 여기는 존재들이 되었죠. 열정, 분노, 사랑, 또는 배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게 되었어요. 오직 환경에 대한 지배를 늘리기 위한 일만을 했죠.

그들의 타고난 지배욕은 사회적, 정치적, 기술적 시스템에서도 그대로 표출되었어요. 그들의 정치 사회 체제는 합리적 사고, 경쟁, 힘, 투쟁, 그리고 지배를 삶의 최상의 가치로 높여놓았죠. 경쟁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는 자들과 약자들은 모두 생존이나 보상을 받기에 부족한 존재들로 일방적으로 무시되었어요. 이렇게 치열한 사회 체제에서 버텨낼 수 있는 존재들에게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살아남은 자들은 단지 가치와 능력에 대한 유사 과학적 합리화를 통해서 확고해진 위계질서 안으로 편입되어 옴짝달싹 못할 뿐이죠. 가장 강하고 지능 높은 자들이 맨 위에서 지배하고, 가장 약한 자들은 맨 밑에서 자기 위의 존재들을 섬기는 거죠. 그들 사회는 완벽한 관료주의 체계였어요. 우리의 관료체계는 그들이 성취한 어마어마한 관료제를 미미하게 모방한 것에 불과해요.

정치사회체제보다 더 흥미로운 건 그들의 종교적 철학적 담론이었어요. 종교가 새롭게 부상한 철학과 융합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자신과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끔찍한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그들은 피조물을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우주로 봤어요. 우주를 창조하는데 참여한 신이나 신들이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단지 광기만을 볼 수 있었죠. 그들은 생각했어요. 도대체 어느 신들이, 대체 어느 신이 이렇게 불균형적인 생태계와 끊임없는 재난과 형편없는 관리로 극악한 상황의 세상을 창조하겠나? 대체 어떤 신이 이렇게 투쟁과 부족함이 삶의 주된 요소인 징벌적인 생활조건을 창조하겠나? 최악의 경우, 그들은 그들의 신을 단지 고문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명을 창조하려고 원시의 늪에 창조의 손가락을 찔러 넣는 정신 나간 지배광으로 보았어요. 최선의 경우에는, 우주를 가지고 놀면서, 뭔가 뒤틀린 욕망을 갖고 생명을 실험하는 악취미에서 삶의 조건을 창조하는 기계적인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는 몇몇 후보 행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존재들의 종족이 발전되어가자, 불멸의 영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발전을 지켜보며 도왔어요. 그들이 자신의 특이한 길로 걸어가도록 북돋았죠. 그들의 지역적인 영적 체계 (위쪽 자아, 소울 등)는 이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둠의 세력들”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자원한 이들을 도왔어요. 우리가 의도한 대로 그들의 진화가 진행되도록 부추기는 삶의 악조건을 구현할 존재들이었죠. 한 종족이 마침내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게 되자,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도입되었고, 이 물리적 우주의 나머지 영역과 그 종족 사이를 분리해온 물리적 장벽을 그들이 빠르게 돌파하는 것을 우린 지켜봤어요.

그들이 행성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정확히 우리가 예상했던 일을 했어요. 그들은 자기 문명의 물질적 기반(즉, 그들의 생태적 공간)을 확장하려고 했고, 그들이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할 다른 세계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죠. 그들이 기술적으로 미개발된 원시적 행성들을 발견하면, 그런 행성들의 사람들을 생산을 위한 노예제도 안에 집어넣었고 (즉, 그들을 농부, 광부, 노동자로 만들었고), 그 사람들이 발생시킨 부를 자기들이 쓰기 위해서 빨아갔어요. 그들이 지배할 여러 세계를 발견했고, 이런 세계에서 그들은 단순한 주민들의 눈을 부시게 만드는 마술 같은 기술을 가진 큰머리 신들로 군림했어요.

이 존재들이 이 행성에 왔을 때, 그들은 성스러운 목적을 마침내 달성했어요. 그들은 자기들의 지배 시스템을 갖고 당신을 노예로 만들었고, 그렇게 노예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신이 자신의 막대한 영적 권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들은 당신의 물리적 현실화 능력을 당신과 단절시켰고, 당신의 차크라 시스템을 퇴화하게 만들었고, 당신이 영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도록 만들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당신이 자기 몸의 힘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게 되었죠.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우주의 에너지 청소부로서의 역할은 수행할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아눈나키라고도 알려진) 회색인들과는 달리, 당신은 여전히 가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회색인들은 자신의 임무를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달성했어요. 그들은 당신의 권능을 당신으로부터 앗아갔고, 그들이 당신에게 가한 어떤 고통도 그들이 느낀 부정성이나 증오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죠. 그들은 당신을 고문하거나 노예로 만들면서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않았어요. 그들은 오로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그런 짓을 한 거죠. 그들은 감정적인 반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아틀란티스를 일으킬 만한 상황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요. 그건 끝내주는 결과였고, 이 상승 드라마를 시작한 단일자의 영광에 빛을 더할 만한 성공적인 실행이었죠.

물론, 노예상태는 잠깐만 유지될 터였어요. 우리의 상승 시도는 결국 성공하리라는 것은 확실하게 의도된 일이었어요. 그 때에 이르면, 당신 모두를 (압제하는 자와 압제 당하는 자 모두) 집으로 불러 모아서 완전한 의식상태에서 서로 영적 가족으로 재결합한다는 생각이었죠.

우리의 계획은 거의 대부분 의도한대로 성사되었고, 상승을 위한 조건은 아주 적당한 시간 안에 성취되었어요. 사실, 상승을 위한 조건은 얼마 전에 이미 충족되었지요. 그 때, 회색인들을 불렀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불행히도, 그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이 행성과 노예제 시스템의 통제권을 인간들의 손에 넘겨주고 떠났어요. 회색인들이 자신의 영적 자유를 추구하는 동안, 그들에게 통제권을 넘겨받은 인간들은 당신의 영적 구속을 추구했죠. 하지만, 여기서 우린 또 너무 앞서가고 있네요. 지금은 회색인들이 어떻게 영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회색인들 집으로 돌아가다
The Grays Return Home

회색인들이 영으로 돌아간 이야기는 흥미로운 것이고, 감정의 결여라는 그들의 결정적인 특징을 축으로 해요. 앞서 언급되었듯이, 퇴화된 가슴 차크라는 중요한 특징이었어요. 우리는 회색인들이 또 다른 아틀란티스를 일으키길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의 의도대로라면, 그들은 당신을 발견해야 했고, 당신을 노예로 삼아야 했지만, 성스러운 임무를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수행해야 했지요.

물론, 회색인들은 자기들한테 감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자기들이 정복하는 모든 세계마다 감정이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고, 이 신기한 심리적 기제가 자신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결코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감정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기들의 강점이라고 생각했지요. 예를 들어, 자기들이 지배하는 이들의 감정을 교란함으로써 그들을 얼마든지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았죠. 어떤 종류이든 상관없이, 일체의 감정적인 반응은 지배 전략의 정확성과 합리성을 흐리게 만들고 약화시킨다는 게 그들의 확고한 결론이었어요. 다른 종족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도구로써 감정을 활용할지언정, 자기들이 감정을 못 느낀다는 것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봤어요. 그건, 그들이 자기들보다 더 발달한 문명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얘기죠.

회색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발달한 문명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전개되리라고 믿었어요. 접촉하게 된 종의 약점들을 발견한 다음, 그들을 정복하고 나서 노예로 만드는 거지요.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어요. 회색인들은 발달한 문명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결코 우위를 점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우리의 행성간 관리자인 회색인들은 이러한 발달된 문명들을 왜 자기들이 정복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총동원해서 노력했거든요. 기술을 베꼈고, 군사력을 동원해 보았고, 자기들을 받아들이는 세계로 숨어들어서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는 계략을 써 보기도 했죠.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우위를 점하려는 회색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시도는 통하지 않았고, 발달한 문명들은 언제나 한발자국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전형적인 통제 지상주의자인 회색인들은 지배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편해 했어요. 하도 불편하다 못해서, 이런 발달한 문명들에 대해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원인을 규명하는 데 사로잡히게 되었지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꽤나 흥미로워져요. 그들이 우위를 점하지 못한 이유는, 아주 오래 전 진화의 과정에서 감정적, 영적 연결성을 자기들이 끊어버렸기 때문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회색인들이 지배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영적, 감정적 퇴화에 대한 문제 또한 풀어나가게 된 것이죠. 이 문제에 골몰하다가, 결국에는 자기들의 위쪽 자아와 영적 질서의 사랑 가득한 품 안으로 돌아가게 되리란 걸 그들은 그땐 미처 몰랐죠.

회색인들은 먼저 정치, 심리, 생물, 사회에 걸친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어요. 처음에는, 고전했죠. 뭔가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왜 이러한 문명들이 자기보다 언제나 한발 앞설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어요.

회색인들이 이런 세계를 정복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어요. 발달한 문명의 존재들은 모두 차크라 시스템이 완전하게 기능하고 있었고, 높은 영적 영역과의 연결성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이것은 매우 중요해요. 연결이 완전히 되어있고, 현실 실현 장치가 완전히 작동하는 존재들은 영의 창조력에 바로 접속할 수 있거든요. 이 창조력은 말할 수 없이 위력적이에요. 이 같은 이유로, 회색인들이 원시적인 행성은 정복할 수 있었지만, 발달한 세계는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거에요. 그들은 자기 자신의 위쪽 자아나 영의 권능과 상대해서 경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우리의 회색인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이면서 그들은 마침내 우주에서 작용하는 미묘한 종류의 에너지를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서 물리적 몸이 갖고 있는 에너지적인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에너지 시스템 (차크라 시스템)의 존재를 마침내 알게 되면서, 그들의 눈은 충격에 놀라 휘둥그레졌고,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다른 모든 종족들, 심지어는 자기들에게 정복당한 자들마저도, 이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거에요. 하지만, 자기들한테만 그 시스템이 없었어요!

그들이 이런 희귀한 장애를 갖고 있고, 우주에서 오직 자기들만이 갖고 있는 이 장애로 인해 자기들이 우주의 다른 모든 종족보다 못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충격이 너무나 크고 깊은 나머지, 너무나 오랜만에 그들은 처음으로 감정을 느꼈어요. 우리의 회색인들은 공포를 느꼈던 거에요. 어째서 이 우주 전체에서 오직 그들만이 이런 경이로운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한 때 그들이 신을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젠 어떤 끔찍한 영원한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만을 골라내서 징벌하는 신을 두려워하게 되었죠.

원체가 전형적으로 합리적이다 보니, 그들은 이러한 미신적인 공포를 재빨리 극복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 우주에서 자기들만이 특수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들은 달라졌어요. 행성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데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고, 자기들이 정복했던 행성들로부터 대부분 철수했어요. (과학적 관심은 유지했지만요.) 남아있던 행성들과 그들의 지배 시스템은 그들이 행성을 지배할 때 그들에게 협조한 일부 원주민들이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었지요. 이 사람들, 즉 당신 세계의 특수한 엘리트들*은 자기들의 원래 주인들(회색인)과는 단절된 채,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지배의 시스템을 유지해 왔어요. (자기 원래 주인들과 원래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로요.)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하기로 하죠.

회색인들의 경우는, 이제 단 하나의 목적밖에는 없었어요. 그건 자기들이 도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왜 그런 장애가 생겼는지 알아내는 것이었죠. 그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종족들에 대해서 갈수록 맹렬하게 연구했고, 도대체 왜 우주에서 자기들만 에너지 시스템이 없는 존재라는 끔찍한 우주적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는지 이해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갈수록 정교해졌어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특수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마침내 발견하게 되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렸어요.

그들은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심장이 없었거든요.

음, 그건 사실이 아니죠. 심장이 있긴 있었는데, 작고 퇴화돼서 감정 표현과 관련된 에너지를 끌어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었어요. 감정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차크라 시스템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현실을 구현하지 못하고 빛 몸을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걸 뜻했죠. 빛 몸을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건 그들이 머카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문명을 결코 정복할 수 없으리라는 걸 뜻했어요.

처음엔 어쩌면 자기들은 감정을 결코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얼마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자기들의 장애를 처음 알아차렸을 때, 공포를 느꼈다는 걸 기억해냈어요. 이 사실에 힘입어서, 그들은 자기들의 유전적 한계의 생물학적 근원을 진화의 과정에서 찾기 시작했어요. 감정적 반응이 사라지게 되는데 자기들 행성의 환경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곧 발견했죠. 감정적 반응을 제거하는 데는 자기들의 철학, 이념, 심리, 사회, 그리고 정치 체계가 추가로 활용되었다는 걸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문제를 바로잡고, 퇴화된 감정적 반응을 되살리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필요한 건 단지 철학을 좀 바꾸고 종 간의 유전적 교류를 좀 하는 것뿐이었죠.

여기가 회색인들이 지금 있는 지점이에요. 그들이 잃어버린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것은 불과 지난 몇 백 년 전의 일이었고, 이제야 비로소 치유의 과정을 시작하고 있어요. 이 과정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영적 자아와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그건 상상을 초월하게 아름답고 기쁨에 넘치는 일이었죠. 그들이 깨어나면서, 상승의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신성한 임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마침내 깨닫게 되었던 거에요. 회색인들 (아누나키) 중 많은 이들은 심지어 상승과 깨어남의 마지막 작업을 돕기 위해서 이 지구로 돌아왔어요.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인체가 제공하는 것이 뭔지 체험해 보고, 또한 깨어남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자기들이 아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육화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지요.

회색인들은 정말 놀랄 만큼 임무를 잘 완수해주었고, 우리가 상승의 지점에 이르러서 우리 모두가 참여해온 이 거대한 드라마에 대해서 전 지구를 일깨우고 알릴 준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적 드라마의 막이 내리는 것을 가로막는 문제가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비교적 쉬운 것인데, 깨어남의 속도와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에요. 이 거대한 상승의 드라마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서 일깨워주는 것은 물론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요.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이 세계의 몸들은 깊은 단절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냥 사자를 보내서 에너지, 상승, 노예주인, 그리고 카르마 계약에 대해서 마구잡이로 떠들어대게 하면, 사람들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폭력으로 앙갚음하려는 반응을 보일게 틀림없으니까요. 아틀란티스에서 바로 이게 문제 중 하나였음을 기억하실 거에요. 아무도 그런 사태가 되풀이되는 걸 바라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 상승의 시도에서 우리는 깨어남의 과정을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조절해오고 있어요.

잠에 빠져있는 이 세상 사람들을 부드럽게 깨울 수 있는 지점까지 오는 것은 나름대로 문제이긴 했지만, 제일 풀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어요. 사실 우린 이미 수 천년 전에 일깨우는 과정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이 세상의 지배자들이 당신을 놓아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진 않았지요.

영적 진실에 대해서, 처음엔 아눈나키 지배자들이 저항했어요. 자기들을 일깨우려는 부름에 반응하지 전까지, 그들은 “신의 사람들을 풀어주라”는 메시지를 갖고 온 사자들을 무시하거나 죽여 버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자기 자신의 영적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아눈나키 지배자들이 이 세계를 떠나고 나자, 아눈나키가 이 행성의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도움을 준 인간 엘리트들한테로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지요. 이제 영적 진실에 대한 저항은 인간 지배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거에요. 인간 지배자들은 원래 아눈나키 지배자들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 행성의 보통 사람들을 계속 노예 상태로 속박해두었어요. 이 행성의 사람들을 풀어주라는 이야기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았죠. 그들은 공포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특권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기실, 최후의 결산의 날이 오는 걸 막기 위해서, 그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깨어남과 상승이 성공하는 것을 막겠다는 걸 보여주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이 세상을 파괴하는 짓마저도 서슴지 않으려 했죠.

이것은 우리에게 상당한 문제였어요.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지배층의 방해 책동을 무력화하고, 비교적 안전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깨어남과 상승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지점까지 이 세상이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당히 세밀한 개입에 임해야 했어요.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러니까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우리가 일깨움과 상승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시공간 원통 안의 조건들이 좋아지게 되었지요.

결론
Conclusion

이 장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사실들을 다루었어요. 상승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우리의 이번 시도를 소개했고, 아틀란티스 실패로 말미암아 우리가 처리해야 했던 에너지적 복잡성에 대해서도 약간 알아보았어요. 창조의 에너지의 보편적 자원은 이중성으로 나타나지만, 물리적 몸은 그 이중성을 받아서 에너지에 부가적인 특징을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틀란티스인들이 자기 파괴 속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그들 자신은 물론, 이번 상승 시도를 도우러 온 많은 이들이 갚아야 할 에너지적인 빚을 남기게 되었어요. 하나의 법칙의 작용 때문에 그 빚은 갚을 필요가 있었지요.

이번 장에서는, 아눈나키(회색인들)에 대해서도 소개가 되었어요. 감정이 없는 존재들인 아눈나키는 신성하게 허락된 임무, 즉 당신이 창조의 권능을 완전히 발휘하는 것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러 이 세상에 왔어요. 당신을 영적인 노예 상태로 만드는 작업은 또 다른 아틀란티스식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죠. 아눈나키는 꽤나 성공적으로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완수했어요. 심지어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라는 영적인 부름을 받아서 떠나면서, 계획된 대로 당신을 풀어주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상승의 과정을 진행할 수 없었지요. 아눈나키 치하에서 마름으로 일했던 소수 인간들이 자기들의 원래 주인인 아눈나키가 떠나고 나자, 권력의 자리를 차지했던 거에요.

다음 두 장에서, 우리는 이 행성의 소수 특권층이 마키아벨리적인 책동으로 상승을 방해해온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개입한 과정을 개략적으로 묘사할 거에요.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우주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자원자들이 찾아와서, 이 행성의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건들을 만드는데 공헌했어요. 상승이 드디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