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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저는 그동안 서양의 번역된 메시지들 접하며 동양에 대한 언급으로는 간혹 동양에 뛰어난 존재들이 입식했다는 정도의 정보 밖에 접할 수 없었습니다. 올해 초 한단고기와 부도지를 보았으나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곤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 회원님 댁에 놀러가서 여인왕국을 얻어 보게됩니다. 한국에서 체널된 내용으로 초반부에 북두칠성을 알리며 비교적 소상히 관련 역사가 체널되어 있었습니다. 민족종교에서 선민사상을 가질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 본다면 신선의 길을 가던 부분은 아직도 수련과 방편이라는 부작용을 포함하고 있고 플레이아데스인들의 도움을 받았음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시타나님이 북두칠성을 언급한 메시지를 전하였기에 첨부해서 참고하시라고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시타나님의 메시지에 나오는 '사자인'에 대하여서는 '다차원세계' 564,565번글(우주와 지구의 역사)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더불어 나오는 '조인'들의 메시지는 크라이온넷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인들   - 여인왕국 중에서 -

밤하늘의 많은 별들 중에서 이상 하리만치 우리와 친숙한 별이 있다. 매일 밤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 특별한 빛을 발하는 별이있다. 어린시절 할머니 무릅에서 옛날 이야기속에 등장하고 전설 속에서도 항상 우리들 기억속에 가까이 떠오르는 별이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는 별이다. 우리의 의식(意識)을 별속으로 빼앗기듯이 고향과도 같은 그 별은 학명(學名)으로는 큰곰(Ursa Major)이며 지구에서의 거리는 약 100광년 거리에 있다.

우리 한인(桓人)들은 바로 이 북두칠성에서 왔다. 북두칠성에서 지구로 온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였으며 북두칠성에서 지구로 오게 된 배경은 일곱 별중에서 제3성과 제7성의 영혼들이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의 길 보다는 신선(神仙)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북두칠성의 일곱 의식들이 이 영혼들을 바른 길(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자, 은하계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진화가 빠른 별중의 하나인 지구를 선택해서 윤회를 거듭하는 수행을 시키며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몇 만년에 이룰 수 있으므로 우리 한인들은 지구로 오게된 것이다.


여기에서 나머지 별들(북두칠성 1,2,4,5,6행성)의 영혼중에서도 지원자를 모집하여 거대한 모선(U.F.O)에 태워서 지구에 입식(入植: 지구인으로 태어남)을 시작하였다.

지금의 중국 천산산맥 밑에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 지역에 최초의 무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반(아담)과 아만(이브)이 탄생했다. 이것은 BC약 64000년전의 일이다. 지구성에는 18만년 30만년 50만년 150만년 3백만년 그 이전에도 인간과 같은 존재들의 역사는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무우인 나반과 아만이 탄생했을 때 그전부터 있었던 지구인은 흑인들이었다.(그들은 18만년전부터 지구에서 생활) 북두칠성에서의 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린채로 나반과 아만은 최초로 만난 인간인 흑인들에게 어느정도 지구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을 받았으나 선과 악을 너무도 명확하게 구별하는 그들의 종교관이 싫어서 미지의 땅으로 이주를 하게되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태평양상에 위치한 무우대륙이다.

세월은 말없이 흐르고, 인구는 늘어나고 (북두칠성에서 온 영혼들은 모두 나반과 아만의 자식으로) 또한 죽어가며 자신들이 북두칠성인 이라는 사실을 망각한채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끝없이 돌고 돌며 선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번뇌하며 그렇게 살아갔다.



나반과 아만의 자손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분열되었고, 여러 나라로 나뉘게 되었다. 같은 핏줄이었건만 사소한 일에도 전쟁을 하였고 서로가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럴즈음 북두칠성인에게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푸레데아드#1)인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때가 나반가 아만의 자손들의 역사가 펼쳐진 지 1만 5천 년이 지난 무렵이었으니, BC 49000년경이었다.

푸레데아드인들은 삶의 전문가였고 역사의 흐름을 뒤집어버리는 혁명가적 인물들이었다. 드넓은 뮤대륙 전역에 여섯 나라로 나뉘어진 나반과 아만의 자손들 속에 푸레데아드인들이 차례대로 태어나 어느 시기에 이르렀을 때에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게 되었다. 그것은 혁명이었고 희생과 고통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었다.

#1) 지구에서 약 400광년의 거리에 있으며, 동양의 28숙(宿)의 앙(昻)으로 알려져 있다. 일명 7자매로도 유명하다.


푸레데아드인들은 몇 번에 걸쳐서 나반과 아만의 자손으로 둔갑하여 태어나 오랜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그들의 희생은 곧 사랑이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나반과 아만의 수많은 자손들은 전쟁을 하지 않는 역사가 되었고 점차 미소를 머금는 나날이 되어갔다. 이것은 푸레아드인들이 역사를 그렇게 유도시킨 것이었다.#2)

#2) 우주에는 불간섭 원칙이 있다. 지구인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구인으로 태어나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자재신의 법을 전파하여 뮤대륙 인 전체를 사랑으로 유도했다. 뮤대륙 인들의 역사가 성숙해지고 사랑에 눈을 뜨는 존재들이 늘어가자 푸레데아드인들은 더 이상 나반과 아만의 자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이제 나반과 아만의 자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삶 그 자체가 자제신으로 가는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수행자를 존경하며 귀족과 왕족보다도 더 놓이 평가하였다.

이렇듯 모든 뮤대륙 인이 전쟁을 하지 않게 되고 자재신의 이름을 부르게 되자, 푸레데아드 역사작전은 성공리에 끝이 나고 곧 철수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나반과 아만의 역사가 2만 4천 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번창하고 또 쇠퇴하기 마련이다.

창조가 시작되고 유지가 된 다음 소멸하는 것을 1주기라고 한다면, 뮤대륙 인들은 2주기 끝말에 살아가고 있었다. 1주기는 나반과 아만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푸레데아드인들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때에 엄청난 싸움으로 인하여 수없는 사상자가 있었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어 오랜 세월 동안 번창되어갔다. 2주기는 결국 나반과 아만의 자손들의 역사라기 보다 푸레데아드인들이 이끌어가는 역사였다. 뮤대륙 인들이 드디어 2주기에서 3주기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우주적인 일이었으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는 BC 40225년,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에서는 우주 창성이래 드물게 보는 대대적인 신들의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회의에는 8천억에 달하는 각 태양계의 대표의식과 12성좌의 의식, 그리고 밝음의 의식과 어둠의 의식이 함께 자리하는 뜻깊은 회의였다. 이때에 회의의 주제는 욕망에 몸부림치는 우주인간들을 어떻게 교화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신들은 이 주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하게 되었다. 드넓은 우주공간, 수많은 행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태였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행성들에 침입하여 무자비한 살생과 폭력을 휘두르고 우주적 재물을 약탈하는 파괴적인 우주인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성좌와 성좌 사이를 왕래하며 인간들을 납치하여 팔아먹는 인신매매범들이 우글거리는 가 하면, 고도의 과학지식을 훔쳐내어 무기를 만들고 행성을 위협하는 무리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특히 각 행성마다 성좌마다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인신매매범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모르고 있었고 정당하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그들은 깊은 혼돈 속에 있는 존재이며 자신을 망각한 존재였다. 회의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우리 2세계 2우주 내#1)의 중성 우주권 내에 있는 전쟁광들, 인신매매범들, 그리고 흉악범들 모두를 총력을 기울여 잡아들여 그들을 지구성에 가두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구성이었다. 북두칠성 네 번째 별에서 존재의 의식들이 정해 놓은 지구성의 삶, 그것은 눈앞이 캄캄한 삶이 아닐 수 없었다. 우주의 저편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쪽 편에 이르기까지 온갖 건달들만 축출하여 지구성에 몰아넣었을 때 그 역사는 과연 어떠하겠는가? 아아- 그것은 비극적인 삶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세월에서 더할 수 없는 극악한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 역시 잠자는 자재신이 아닌가. 수많은 건달들은 '사리(비)아토 바바'라고 명명된 우주의 경찰들에 의해 속속 잡아들여졌다. 경찰은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며 건달들의 뿌리를 뽑는다는 결의를 하였고, 그 작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1) 1세계에는 12우주가 있으며, 3세계 12우주 의식의 체를 초월하여야 깨달은 존재라고 볼 수 있으며, 깨달음에도 차원이 있으리라. 우리가 속해 있는 지구성은 2세계 2우주 의식의 중심권에 있다. 이스틴 은하계의 '야르한(슬픈 목마라는 뜻임)' 태양계이다.



사리아토 바바들에 의해 잡혀온 수많은 우주계의 건달들은 BC 40000년경부터 지구인으로 태어나기 시작하였다. 나반과 아만처럼 전생의 모든 기억을 상실당한 체 육체인간으로서 지구성에 태어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당초에 북두칠성의 수행인들이 지구성에 태어나 지금은 뮤대륙 인이 된 존재들에게는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뮤대륙 인의 근기와 사리아토 바바들의 조치로 태어난 자들의 근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신통력을 발휘하는 사회가 되도록 유도했다. 일시적인 방향전환이었다. 새로 태어나는 존재들과 뮤대륙 인들을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같은 새로운 역사가 뮤대륙 인들에게는 3주기에 해당되는 때였다.
사리아토 바바들의 안내로 태어난 수많은 인간들의 새로운 삶은 애틀랜티스 대륙에서 시작되었다.#2)

#2) 현재의 대서양상에 존재했던 사라진 대륙 중 하나이다. 이미 플라톤의 저서인<티마이오스>와 <크리티어스>의 두 대화편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가 개성이 독특하고 또한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었다. 욕망에 몸부림치며 자신을 상실한 자들이었으니, 이들의 삶은 그 출발부터가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광폭한 시리우스 계열의 영혼들과 사자좌의 영혼들이 가장 먼저 육체인간으로 환생되었다. 이들의 모습은 지금의 백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고 파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사랑이 망각된 상태였지만 지혜는 놀라웠다. 아니, 지혜라기보다 타인을 괴롭히고 더욱도 흉악한 삶으로 가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달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성숙하지 않은 깊은 잠 속에서 헤매이는 우리들의 마음,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건달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을 팔아먹는 이들의 흉악한 마음, 그들은 지금 너무나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깊은 잠속에서는 잘잘못을 가릴 수가 없다. 조금이나마 깨어 있어야만 잘잘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수많은 흉악범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팔아먹는 자들, 그들은 우주 저편에서도 그와 같은 행위를 하였고, 그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잠꼬대하던 자들이었다. 얼마나 잠에 취해 있으며, 얼마나 꿈을 꾸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들도 잠에서 깨어나기만 한다면 자재신이 아닌가. 만약 지구성이 잠에서 깨어난다면 우주는 분명 해탈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수양과 깨달음을 얻기위한 삶을 사는 무우인들과는 달리 역사적 1주기의 삶을 시작하는 아틀란티스인(백인)과 레무리아인(흑인)들은 전쟁만을 일삼으며 살아갔다. 마치 전쟁을 위해 태어난 종족같이 전쟁을 수행하기에 모든 삶을 살아갔다. 그결과, 문명이 창궐하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또 창궐하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하는 순환을 반복해나갔다. 그러한 전쟁의 순환속에서 삶에 지친 아틀란티스인들 중에서 무우대륙으로 건너와서 무우인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게 되었고 이를 알고 있는 무우인들이 무우대륙의 한 귀퉁이에 그들의 국가를 세우고 살기를 허락했다.

이때에 무우인들은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영혼을 인도할 스승이 없이도 진리를 깨우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 성숙이 완성)에 있었으나 마음의 눈으로 머나 먼 미래를 볼 수 있었던 무우인들은 백인과 흑인들 모두가 무우인과 같은 상태로 되기까지는 수없는 나날의 삶과 윤회를 거듭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우인들 만의 해탈이 아닌 전 인류가 똑같이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비(慈悲)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그 행위는 무우대륙에 살던 아틀란티스인들과 무우인들이 하나의 삶속에서 어우러지는 것이었고 그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게 하는 일이었다. 깨달음의 직전에 있던 무우인들이 행한 이런 행위에 대하여는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깊고 깊은 마음의 눈으로 바라 본 다면 이때에 무우인들이 행한 이런 행위는 분명 자비의 행위였던 것이다.


수업겁의 윤회를 통하여 치러야 할 고통을 그나마 단축시킬 수 있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으로서 선택한 이 행위는 윤회의 고통을 무우인이 분담 함으로써 업장을 빨리 소멸시킬 수 있는 업장소멸의 길이었다.

태어난 자식들은 당연히 반신반인이었다. 즉, 반은 신(무우인)이고 반은 인간(아틀란티스인)이었다.

반신반인(半神半人)들은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신통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비애를 느끼기 시작했다. 즉, 무우인도 아니고 아틀란티스인도 아닌 것이 그들을 괴롭혔으며 그들은 점점 더 경거망동해지고 방자해져갔다. 그러나 무우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후면 지구에 파멸이 올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우인은 지금의 만주, 시베리아, 고비사막, 백두산등지로 흩어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무우인이 사라지자 반신반인들은 본국 아틀란티스에 가서 정권을 가로채 버렸다. 그리고 모진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천년동안 백인들은 반신반인들의 지배하에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 이때 안드로메다 별에서 온 사파엘라라는 위대한 성자의 영혼이 백인들을 이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으나, 그동안 반신반인들에게 당한것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던 백인들은 수많은 세월을 기다리다 급기야는 반신반인들과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전쟁의 피해로 무우대륙과 아트란티스대륙, 레무리아대륙이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게 되었다.(BC 약 1만여년 전으로 추정됨)

그 후에 피신해 있던 무우인이 세계의 역사를 유도하기 위하여 12연방(聯邦)의 국가를 건설하고 신시개천(神市開天) 시대를 시작한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영혼을 빨리 진화시키기 위한 역사를 유도하기 위하여 업을 같이 쌓기로 결정한 환웅시대(약 BC 4000년전)를 거쳐 세계 각지에 한인들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전해주기 위한 단군왕검(檀君王儉) 시대 (약BC2300년전)가 이어졌다.

그 옛날의 한인들은 신선과도 같은 존재들 이었으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업을 쌓기로 결정한 뒤 자신들의 능력을 점점 낮추어 갔다. 그 과정이 신시개천시대와 환웅시대를 거쳐 단군왕검(檀君王儉)시대에 이르러 비로서 중생들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즉, 단군왕검(檀君王儉)시대에 이르러 제3의 눈이라고 하는 송과체를 막아 버렸던 것이다.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한인들은 세계의 모든 종족과 국가들에게 문화를 전해주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높은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일들을 시작했던 것이다.


여러 부족의 형태로 살던 한인들은 지금의 인도, 중국, 유럽, 소련의 종족들에게 정신적 가르침을 전해 주었으며 즉 지구상의 모든 종족이나 민족의 기초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한인들의 국가는 점점 축소되고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업들은 한인들 스스로가 짊어지길 원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개념이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진 부분적인 역사가 필요치 않았었고 다른 종족들이 그들의 현란한 역사를 세워갈때마다 한인들은 그 역사에 버금가는 침략과 박해를 받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업이 모두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우주의 또다른 계획아래 새로운 지구를 창조하는 일만이 남았다. 이것이 우리 한인들이 알아야 할 기록된 역사이전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세계 모든 민족 역시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선 윤회를 통해서 진정한 자기 본 모습을 찾기 위해여 왔음을 알아야 하는데 너무 저급한 의식들의 소유자이기에 수많은 윤회를 통해서만 알 수 있으리라. <깨달음을 찾기 위하여 취하여 온 여러 방법중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가장 값진 댓가를 지불하면서 까지 그토록 매달려온 종교라고 이름 되어진 것의 뿌리는 바로 무우대륙으로 부터 즉, 한인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이다.>






12연방과 12성좌(p85)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지상으로 내려온 아스라 7세는 눈앞이 캄캄한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지구 어느곳을 보아도 첨단과학장비라고는 그들이 타고 있는 몇 대의 비행정이 고작이었다. 식량도 먹을 물도 사라져버렸고, 방사능과 죽음의 재로 인하여 어느 것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들이 비행정에서 내린 곳은 지금의 북아프리카였다. 이들이 북아프리카에 내린 이유는 전에 이곳이 지진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죽음을 통감한 듯 드넓은 북아프리카의 대지 위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모든 것이 후회와 절망감뿐이었다.
이들이 죽음의 기로에 서서 비탄에 빠져 있을 무렵, 시리우스의 성자 '토토'를 대장으로 한 수십 척의 비행정들이 아름다운 음악소리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신비한 음악은 주저앉은 백인의 마음을 황홀경 속으로 이끌었다. 이윽고 UFO가 지상에 착지하자 초록색 문이 열리며 성자 토토가 밖으로 나왔다. 토토는 백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질서를 모르는가. 마음에 이끌려다니는 그대들은 누구인가…… 들어라! 보아라! 앞으로 다시 이같은 어리석은 말로를 걷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잠시 이곳 지구성에 머물 것이다."


토토가 지상에 내려온 직후 저 우주에서 수십 척의 또 다른 UFO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지구성의 환경을 순화시켰다. 극도로 오염되고 파괴된 지구성의 구석구석을 모두 재창조했다. 공기를 정화시키고, 바닷물을 자연의 수준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UFO의 지구성 개조방법은 현대과학 수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극도의 오염상태에서 자연의 상태에 이르도록 꼭 한 달이 걸렸다. 눈 깜짝할 사이 지구성이 자연의 상태로 돌아오자, UFO는 지체함 없이 사라져버렸다. 자연의 상태로 돌아온 지구성에는 다시금 새로운 역사(役事)가 진행되었다. 피라미드가 건축되기 시작했는데, 비행정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돌들이 손쉽게 운반되자, 정교한 시리우스의 과학이 북아프리카에 펼쳐졌다. 그리고 토토의 지시에 의해 비밀의 문과 #1)비밀의 장소가 만들어졌다. 그곳은 신비의 장소로서 이해의 차원을 초월한 곳이었다. 토토의 지시로 만들어진 비밀의 문은 실상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결코 알 수 없으며, 알았다고 하여도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드의 존재를 알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알아야만 피라미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드디어 시리우스의 건축 #2)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토토는 500여 명의 아틀란티스인에게 말했다.



#1) 이곳에는 UFO설계도와 아틀란티스인이 타고 온 비행정, 그리고 4만 2천년 전부터 피라미드 완성때까지의 시리우스 역사가 기록 보관되어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모든 비밀이 밝혀질 것이다.
#2) 피라미드는 시리우스 건축물을 모방한 것으로 4차원 기가 모이는 곳이며, 4차원 인간에게는 5차원의 기가, 5차원의 인간에게는 6차원의 기가 모이는 특수중력장이다.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나 토토가 함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대들이 나를 볼 수 없다 하여도 나는 그대들과 함께함을 잊지 말라. #3)멀지 않은 훗날 그대들은 또 다시 어리석은 마음에 현혹되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나는 이 장소에 나타나 그대들의 마음을 죽여버릴 것이다. 그때에 내가 이곳에 나타나면 그대들은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3) 물질만능으로 인하여 자아를 상실해 가고 있는 극치점에 놓여 있으니, 극에 달하면 바뀌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21세기에는 정신과학문명이 태동할 것이다.



은백색 휘광에 감싸인 시리우스의 육체인간 모습을 한 토토에게 아틀란티스 주민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모습 그대로 오신다면 알겠나이다."
"아니, 그대들은 결코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찾지 않는 한 그대들은 나를 알 수없을 것이다. "내 지금 너희들에게 미래의 열쇠를 주노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후세에 이 말을 하는 자는 이 토토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대답하는 자는 이자리에 있는 그대들뿐 이리니, 이것은 하나의 약속이며 #4)열쇠이니라."
"......"
"......"
"......"
"......"

그후 토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때가 BC9315년이다.
애틀란티스 후예들도 일부만 남고 각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토토의 열쇠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애틀랜티스 후예들은 세 파로 나누어서 보존하기로 약속한 후에 떠났는데, 셋중 어느 한쪽이라도 보존되어야 미래에 토토를 다시 볼 수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500여 명은 세무리로 나눠 향하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의 이집트에 남게 되었다. 다시 원시의 씨족사회로 돌아간 애틀란티스의 후예들은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4) 이것은 하나의 약속된 언어이며 피라미드를 푸는 열쇠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토토뿐이며, 토토 앞에 주민들이 환생한여 토토를 만나야만 알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건물마다 자동개폐식 문이 있는데, 그와같이 토토가 옛 기억을 되찾을 때 토토만이 아는 상념의 비밀의 문이 열릴 것이다.



레무리아의 흑인들은 전멸되었고, 진작에 아프리카로 이주했던 흑인들도 엄청난 지각변동과 지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인명의 손실 또한 너무나 컸다.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흑인들의 예술사회는 하루아침에 원시사회로 탈바꿈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무렵 흑인들의 사회에 우주의 존재들이 등장하였으니, 그것은 미래의 인류들을 파멸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찾아온 음흉하고 간사한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우주의 흑색군단이었다.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제왕인 아스라 7세의 왕비 부리나는 #5)흑색군단의 맴버였고, 그래서 지구의 파멸을 유도한 것이었다.

지진으로 지구의 완전 파멸이 실패로 돌아가자, 흑색군단에서는 아프리카에 또다시 미래에 지구 파멸의 위기를 초래할 악의 씨앗을 뿌렸다. 흑색군단이 뿌린 씨앗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미생물이었고, 기묘한 모습으로 둔갑할 수 있는 곤충들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묘한 #6)생명체를 뿌린 후에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5) 우주의 질서를 무시하고,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각 성단에 다니면서 파괴와 살상을 일삼는 무리(일명 '수몬드 알파'라고 한다.)

#6) 이것이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인간들 스스로가 나쁜생각을 갖지 말며 조화를 찾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 흑인과 백인들은 여지껏 누리던 고도의 문화와 예술사회는 망각의 뒤안길로 잊어버리고 원시의 농경사회로 퇴행하여 지극히 소수의 씨족을 이룬 채 흩어져 살아갔다.


한편, 진작부터 대전쟁과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을 예상한 무우인들은 지금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바이칼호, 그리고 중화대륙, 시베리아와 백두산 등지에서 무리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무우인들은 모두 12족으로 나뉘어 살아갔는데, 그 가운데는 흑인도 백인도 함께 끼여 있었고, 반신반인도 한족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무우인들도 그 엄청난 재앙으로 인하여 많은 수가 압사하여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있었고, 그들 역시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으므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하는 세월이 온 것이었다.
바로 이 무렵, 북두칠성의 일곱 의식이 무우인들 모두를 완전한 실상의 세계로 이끌고자 찾아오게 되었으니, 이분들이 안파첸·혁서리·고시리·주무양·석제리·구을리·지위리였다. 이때가 BC 7197년이다. 지고한 일곱 의식이 무우인을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니, 이가 곧 '한'인의 사회고 12연방의 사회였다.
세상 천지의 요동이 사라지자 고요한 가운데 지구의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인들이 살고 있는 '한국(桓國)'은 모두가 옛 무우인이었고, 나반과 아만으로부터 비롯된 핏줄이었다.#1)



#1) '한'이란? '밝다. 크다. 많다. 절대적 하나. 극소의 하나'라는 뜻이 있으며, 육체인간이 진정한 진리와 하나된 깨달음의 본질이다. 인간이 물질계의 삶을 거친 후 영계·상념계·신계를 넘어서고 지구성의 신계조차도 뛰어넘는 지구성의 하느님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한의 삶이란 때론 바람으로 때론 빛으로, 또는 비로 변하여 대지를 적셔주기도 한다. 온갖 지혜와 힘과 사랑이 충만된 지구성에서의 육체인간이 진화해야 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 핏줄은 검지도 희지도 않은 황색이었다. 황색 12연반국은 스스로를 한국이라 이름하였고, 각 나라의 이름을 '양운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객현한국', '사납아국', '독로국', '구막한국', '선비국', '비리국', '일군국', '우르국', '수메르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인들이 이같은 이름을 갖게된 것은 국명이기도 하였지만, 이들이 별세계에서 왔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12연방을 대표하는 황제국이 없었다. 아니, 황제국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깊고 오묘한 정신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기에 황제로서 다스려야겠다는 욕망이 없었다. 그들 모두 성숙한 존재였고, 무지스런 삶의 때가 묻어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각 나라라고 말하지만 나라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고, 왕의 존재가 있다 하여도 왕이라 말할 수가 없었다. 각 나라의 책임을 맡은 존재는 모두가 저 깊고 깊은 정신을 넘어선 실상의 세계에 도달한 존재들이었다.


신시개천 이전 한인들의 사회(12연방과 12성좌)

한인들의 삶은 지극히 풍요로웠으며, 갈등과 방황이 없는 사회였다.
12연방의 정치·경제·사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한 바로 그것이었다.
민주주의가 '선'을 표현한 사회라면 공산주의는 '악'을 표현한 사회이다. 그런데 인간이 깊은 수련을 통해서 선과 악의 개념을 초월한다면 그 인간에게는 선도 선이 아니요 악도 악이 아닌 것이다. 이미 그런 인간은 고요할 뿐이며, 보다 실상의 세계에 가까운 존재이며, 삶 그 자체가 '명상의 상태요' '공의 상태'인 것이다. 12연방국은 초월의 사회였다. 이같은 12연방의 역사를 필설로는 다 적을 수 없다.
우리 지구상의 인류도 미래의 어느 날 반드시 12연방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방사회를 향하여 조금씩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1)



#1) 한국을 주측으로 하여 아시아에서 연방정부가 탄생될 것이다. 이것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때 5대주에서도 각각의 연방이 설립되어 언젠가는 세계연합정부가 이루어지고, 지구상의 인류가 하나의 의식으로 조화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인'의 뜻이며 하늘의 뜻이 아니리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련도 함께하리라 보나, 역사란 흐름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리라.
필자도 같은 뜻을 갖고 있기에 권태훈(權泰勳) 할아버님의 말씀을 옮겨본다.
"가까운 중국이 보수파와 개혁파로 양분되어 보수파가 북방으로 밀려나 힘을 잃어갈 때 한국의 북방진출이 가능할 수도 있으며, 소련 또한 소수민족의 내분으로 인하여 국력이 축소되어 태평양 연안국으로 행세하리라 보며, 미국도 국내의 사회악과 경제적 문제와 주변국가들의 자율적인 정책의 흐름으로 국가의 위상이 축소되어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힘을 점차 잃어갈 것으로 본다.(<丹>, 정신세계사 258쪽)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깨우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는 방법뿐이다.



12연방의 사회를 '삼성의 시대'라고 이름한다, 그 뜻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라는 뜻이며, 사랑과 지혜와 힘이 하나가 되는 사회라는 깊은 뜻이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인들의 마음은 실상의 세계로 사라져갔다. 더욱더 완성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수많은 한인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진리와 계합된 존재들의 출현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BC 4000년이 조금 못 되었던 때였다. 본격적인 깨달음의 시대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한인들의 사회는 축복 그 자체였다. 얼마나 기다리고 헤매였는가? 실상의 세계를 향해 가고있는 한인들의 마음은 실상의 빛에 녹아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제 실상의 세계를 목전에 두고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바라다보니, 지구성의 미래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못해 암흑으로 가리워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 물질계·영계·신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가 암흑으로 가려져 있는 것이었다. 한인들은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실상의 세계에 이르는 문턱에 서서 욕망의 무리들을 돌아다보았다.
한인들 사회에서 점차 실상의 세계에 이르는 존재들이 태어나고 있던 어느 날, 저 하늘 북두칠성에서 날아온 일곱 의식들께서는 한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한인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실상의 세계에 이르는 목전에 와 있다. 마음이란 덧없는 것…… 그러나 저 아래 수많은 마음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이 곧 자기 자신인 줄 착각하고 있으며, 육체가 자기인 양 오인하고 있다. 저들은 욕망에 물들어 있으며, 진실의 세계를 바라볼 줄 모르는 길 잃고 헤매는 존재들이다. 한인들이여! 저들은 미래에 지구성을 대파멸 속으로 끌고 가기에 충분한 욕망의 씨를 품고 있는 자들이다. 저들도 언젠가는 연방사회를 이룰 것이고, 또한 언젠가는 실상의 세계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한인들처럼 되기까지는 너무도 긴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저들이 실상의 세계가 있음을 눈치채고 관심을 갖기까지는 수십, 수백 아니면 수천 번을 윤회해야 하며 그때마다 지구성은 끝없이 새로운 대파멸과 창조를 반복할 것이다. 지구성이 암흑으로 수천, 수만 번 반복된다 하여도 감히 말할 수 없다. 저들은 지금 잠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이여! 다시 한번 삶의 역사를, 인생의 연극을 저 무리들과 함께 꾸며보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마음의 세계로 내려와 저들을 한인의 사회로 이끌어 함께 실상의 세계로 가는 것이 우리 일곱 신의 뜻이니라. 한인들이여, 다시 한번 저 중생들과 춤을 추도록 하자. 저들의 마음을 돌려 실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한다면 어려움 없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재신께서는 분명 그대들을 굽어보시고 도울 것이다."
이에 한인들은 대다수가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한인들의 뜻이 다시 한번 중생놀이를 해야겠다는 것으로 정해지자, 그로부터 일곱 신과 한인 12연방의 대표자들의 천지공사#1)가 이루어졌다.
또한 때를 맞추어 지구성의 동굴속#2)에서는 신들의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때가 육체적인 삶의 시간으로는 한웅대성존이 신시시대를 열기 이전이었다.



#1) 하늘·땅·인간의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
#2) 지구성을 움직이는 일종의 관제탑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신들은 12성좌에서 온 최고의 선의식들을 비롯하여 지금의 태양계를 대표하는 신도 참석했고, 지구의 수호의식과 시리우스의 의식도 참석했다. 그리고 일곱 신들과 각 나라를 대표하는 12연방의 왕들, 그 둘레에는 한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회의의 주최자인 동시에 중생들을 실상의 세계로 이끌어가야 할 책임자는 일곱 신들이었기에 단상 앞에는 일곱 신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뒤로는 12성좌의 선의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태양계의 수호신이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태양계의 각 행성을 대표하는 신들이 참석하였다. 신들은 은하계의 파동권 속에서 회의가 이루어지도록 그 파동권을 고파동 속으로 인도하였다. 은하계의 파동 속으로 들어가니 지혜의 여신 '옴'께서 반겨 맞이하였다.
회의가 진행되었다. 일곱 신들은 차례대로 발언을 하였다. 맨 먼저 지위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미래에 최초의 "옴"#1)을 알리는 인간으로 환생하여 옴의 참뜻을 알릴 것입니다. 나의 옴 소리를 들은 이후라야 우리의 계획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옴 소리를 들어야 잠자던 여러 신들이 깨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일곱 신 중에서 내가 최초로 옴을 외면 여섯 신의 눈이 열리고,
여섯 신이 하나가 되어 옴을 내게 되면 12성좌의 선 의식들의 눈이 열릴것입니다. 12성좌의 선의식들이 옴을 하게 되면 한인들은 잊혀진 옛 기억을 되찾을 것이며, 한인들 전체가 그들의 심성인 삼성의 힘으로 옴을 발할 경우 지구가 요동칠 것이며, 한인들이 발음하면 중생들은 따라할 것입니다."



#1) 마음의 문이 열린 자가 "옴"경문을 물에 들려주면 이때부터 물은 생명자장을 띤 물로 변하며, 그물을 장기간 복용할 때 몸과 마음의 조화를 되찾을 수 있다.



이때에 시리우스 의식께서는 ,
"옴을 알리기 위해서는 특별한 제동이 있어야 할 것 갔습니다.
그 제동을 시리우스에서 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잠시후 안파첸께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옴#2)이 세상에서 울리기 전까지는 모두가 꿈을 꾸면서 덧없는 삶을 살아가보도록 해야 할 것이요. 우리 목적은 저 아래의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요. 꿈을 꾸면서 중생들이 무수한 갈등속에서 살아가도록 한 후에 옴이 세상에 알려질 때 드디어 꿈에서 깨어나도록 일은 이미 시작 되었소."

그러나 세분하여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무"이다.



#2) 시간·공간·물질·비물질을 포함하여 그 중립파동이 옴의 파동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즉, "선"에도 그 중심은 옴의 파동이며, "악"에도 중심은 옴의 파동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혁서리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한인들을 세상에 내보내 새로운 인연을 만들며, 어린 신들과 선악의 업을 쌓도록 이미 시작되었소."



다음으로 고시리께서,
"한인들의 마음을 나누어 본마음은 이곳에 두고 몸을 대표한 마음만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을 이미 시작하였소."

라고 하자 주무양께서는,
"저들이 꿈을 꾸면서 싸움과 평화를 갈구하는 행위가 이미 시작되었소."
하였다.



이를 받아서 석제리께서는,
"저들 중생과 한인들의 뒤섞인 삶이 이미 시작되었고,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의식주의 필요가 이미 시작되었소." 하였다.

구을리께서는
"인간을 비롯하여 천지만물의 생식의 시작과 끝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인간의 행복의 척도가 이곳에서부터 시작됨이 이루어졌소."
라고 말하자.



지위리께서는 자재신께 가장 슬픈 마음을 전달하면서 이같이 말씀하셨다.#3)
"자재신님! 저 어린 신들의 망각의 세월을 안타까워 볼수가 없나이다.
자재신의 능력과 힘이 후세에 저와 함께 이루어질수 있도록 하옵소서.
나는 이 순간부터 둘로 나뉘어 하나는 인간의 남성을 움직이는 신으로 살것이며, 하나는 여성을 움직이는 신으로 살 것입니다.
후세에 내가 하나로 이루어질 때 인간은 육체에서 해방되어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며, 음양이 하나가 되어 우주의 의식에 눈을 떠 본래 왔던 저 세상으로 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곱 신들은 각각 인간의 삶에 직접 관여하는 신이 되었는데................



#3) 7곱신 중 지위리신만이 육체적인간으로 태어나 3301년 동안 한인들을 이끌어 오셨다.


이렇게 해서 일곱 신들은 각각 인간의 삶에 직접 관여하는 신이 되었는데, 안파첸께서는 지구성의 옴의 주관신이 되었고, 지구성의 모든 종교의 신이 되었다.#4)



#4) 이는 다시 말하면 믿는 사람의 성품에 따라서 신의 존재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뜻이다. 즉, 사기꾼이 믿음을 가질 때에는 사기를 치는 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소극적이 인간이라면 소극적인 신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부처의 마음으로 신앙을 갖는다면 부처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혁서리께서는 선신과 악신으로 나뉘시어 선악을 주관하시니,
선을 행하는 사람은 더욱 선을 행하도록 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더욱 악을 저지르게 하여 선악을 일깨워 주는 일을 관장하게 되었다.

또한 고시리께서는 인간의 "한"을 영과 혼으로 분리시켜 "영"이 머무는 곳과 "혼"이 머무는 곳을 따로 두개 하여 영계 전체를 관할하게 되었다.

주무양께서는 전쟁의 신과 평화의 신으로 나뉘시어 전쟁과 평화를 주관하시니, 전쟁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어떻게하든 전쟁을 일으키도록 유도시키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더욱 평화를 누리도록 유도하셨다.

석제리께서는 인간의 의식주를 주관하시어, 그 업에 따라서 개인과 집단,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초와 시련, 혹은 반대로 부와 욕망을 갖게끔 하셨다.

구을리께서는 인간을 비롯하여 천지만물의 성을 주관사는 "성신"으로서
특히 인간들의 복잡한 성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일곱 신들 중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을 주관하는 신일 것이다. 성과 성의 만남에서 가장 깊은 삼매에 들어간 자들은 구을리 성신의 편안한 상태와 만날수 있으리라.

그리고 지위리께서는 둘로 나뉘시어 한 분은 여성의 마음을, 또 한 분은 남성의 마음을 주관하시니 남성은 여성 알기를 자기의 분신같이 여기고, 여성은 남성 알기를 자신의 분신같이 여길 때 지위리께서는 더이상 지구성에 계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곱 신들은 지구성에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하고 계신다. 이렇게 일곱 신이 만물을 주관하시게 되니 12성좌의 선의식들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 지구성이 속해 있는 태양계의 수호신께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신들을 관장하는 신장이 되셨고, 은하계의 의식께서는 모든 것이 자신의 파동권 내에서 이루어질수 있도록 하였다.

신들의 회의는 이렇게 끝이 났다.
수많은 사랑의 의식들과 한인들의 자비의 심성으로 비롯된 새로운 역사가 드디어 막을 올리게 되었다. 저 깊고 깊은 심연의 세계에서 다시 중생의 삶으로 내려와, 중생과 함께 춤을 추며 역사를 이끌다가 어느 날 다시 중생들을 이끌고 심연의 정신세계에 도달코자 출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심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중생의 차원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니 한인들의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한인들의 변화, 그것은 딱히 무엇이라고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의 변화였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변화의 흐름이었다. 보다 육체적이고 보다 마음적이고 보다 감정적인 상태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서 보다 인간적으로 되어가며 물질적인 사회로 되어갔다.

따라서 영혼의 스승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위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바로 이 무렵, 저 하늘에서는 그 옛날처럼 사리아토 바바들에 의해 엄청난 수의 우주인간들이 지구성으로 실려갔다. 그들은 저돌적인 인간들이었고 마음의 존재도 망각한 채 육체가 곧 자신인 줄 착각하는 무리들이었다. 지극히 미숙한 영혼들은 UFO모선 속에서 깊은 가사상태를 이룬 채 지구의 육체인간으로 개조되어 모든 것을 망각당하고 그 옛날 나반과 아만처럼 소행정에 실려 지구성의 대지 위에 내려 놓여졌다.
이들은 오리온좌, 북두칠성, 사자좌, 염소좌, 천칭좌, 그리고 카시오페이아좌에서 온 문제영혼들이었다.
오리온좌에서 온 인간들은 지금의 유럽의 대지 위에 내려졌다. 이들은 백인의 모습이었다.
사자좌와 천칭좌, 그리고 북두칠성에서 온 인간들은 황인종의 모습으로 아시아대륙으로 내려왔다.
염소좌와 카시오페이아좌에서 온 인간들은 흑인의 모습으로 아프리카에 내려지게 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한웅 천황이 강림하기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던 일이었다. 이들은 나반과 아만처럼 언어도 없었고, 생소한 지구성에서 과거의 모든 기억을 망각당한 채 뱀, 곰, 여우, 범 등을 우상으로 섬기며 원시인으로서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BC3897년에 이르니, 새로운 신시개천의 역사를 열고자 영혼의 스승이 강림했다. 많은 무리의 한인들은 새로운 영혼의 스승 한웅 천황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미 몇 세대 전부터 흔적도 없이 떠나버린 많은 스승을 안타깝게 여기던 한인들은 서로 약속한 바도 없이 한웅 천황을 만나기 위해 모여들었다. 누가 모이라 말한 것도 아니며 목표를 정한 것도 아니지만, 한인들 모두는 새로운 스승을 보기 위하여 찾아갔다.


한인들은 드디어 위대한 영혼의 스승 한웅 천황을 만났다. 스승을 찾아 모여든 한인들의 숫자는 90만#1)이나 되었다. 천황은 한인들을 이끌고 넓은 평야로 나갔다. 그곳은 멀리 동쪽으로 백두산#2)이 위치에 있는 곳이며, 매우 기름진 땅이었다. 90만이 운집한 가운데 위대한 스승은 한인들을 위하여 고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1) 3천 단부(團部)라는 기록이 있다. 1단부가 300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2) 이 당시의 백두산은 지금과 같이 왜소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고지(高地)도 지금보다 높았을 것이다. 지구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구가 있길 바란다.


한웅 천황과 선군 왕검의 개국

"한인들이여! 나는 너희들 모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왔다. 바로 이 순간부터 그대들의 마음속에는 스승인 내가 깃들일 것이다. 그대들은 이제 오랜 세월 윤회의 수레바퀴를 타고 돌며 지구성의 온갖 곳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먼 미래에 이 땅의 많은 무리가 그대들과 같은 "한"의 상태에 이르는 날, 나는 여기 모인 그대들을 저 아름다운, 그러나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대들은 이제 역사의 주역들이다. 인종을 넘어선, 이념과 사상을 넘어선 주역들이다. 사람의 무리가 머물며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대들이 태어날 것이다. 백색의 인종으로, 흑색의 인종으로, 황색의 인종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대들은 이미 나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어느 곳에 태어나든, 어느 인종으로 태어나든, 그대들은 성숙한 마음을 잃지 말지어다. 그러나 방관하지 마라. 그대들이 태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그대들과 반대의 뜻을 가진 자들도 함께 하느리라. 신의 뜻은 곧 나의 뜻이니 이 자리. 이 순간에 나는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비의 마음으로 저 미숙한 인격을 지도하라. 그대들은 곧 나의 뜻과 함께하게 되리라. 그대들이 힘써 행함으로써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인들이여, 후세에는 반드시 나의 축복을 받으리라. 하늘의 뜻이 그대들과 함께 하리라……."
이것이 환웅 천황의 말씀이셨다.#1)



#1) 이때 한웅 대성존께서는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너희 어린 신들에게 묻노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고?
바로 '자신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로다. 아~(와) 하-라-."
그런데 여기서 '아-하-라-'라고 외치는 순간 그 소리가 그저 몇번에 걸쳐서 공허하게 메아리쳐 올 뿐이었는데 이윽고 천지의 물이 요동을 치면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이로 소용돌이치며 치솟기 시작하더니 그 물기둥이 천지에 널려 있는 물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바닥에는 한 방울의 물도 남기지 않고 모두 끌고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회오리치듯 물기둥의 끝이 바닥에 닿으면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눈부신 휘광에 휩싸인 한웅 대성존께서는 물기둥의 조화를 보며 곰족과 범족 앞에 나타나게 된다.
대개 "곰족"은 전갈좌의 어린 신이며, "범족"은 북두칠성과 오리온좌에서 온 어린 신들이었다. 단군신화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말은 이어졌다. 오랫동안 쉼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동서양에 걸친 아득한 미래세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때 서로 다른 모습, 남자 혹은 여자, 흑인·백인·황인…… 이념을 달리하며 체제를 달리하는,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한 한인들의 그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 아……! 그러나 그것은 눈물이 앞을 가려 눈뜨고는 볼수 없는, 우리 모두를 비애 속에 몰아넣는 지구성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성이 걸어야 할 길, 드디어 새로운 역사의 막은 올랐다.
BC 3897년, 한웅 천황께서는 드디어 90만의 한인들을 이끌고 신시개천 시대를 열었다. 신시개천시대, 이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역사였다.
이때에 한인들은 역사를 남기기를 거부하였다. 아니, 기록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제 마음이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지스런 마음의 존재들을 위하여 시작하는 그 순간순간을 그들은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 한인들이 신시개천시대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그 배경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밝히기를 원치 않고 있다. 그것은 역사라기 보다 역사 시작 이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기간이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지식…… 천문, 지리, 의술, 문자 그 밖에 정신추구에 관한 수많은 이론들, 쇠를 다루는 연금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도 시작되던 시대였다.
모든 이론이 신시시대에 이미 정립되어졌다. 이같은 방대한 이론과 실체는 모두가 한인들의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한인들은 이와 같은 것이 필요없었지만 그래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지식의 이론은 다의발 한웅 이전에 완성이 되었다. 그 후 한인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인들은 대륙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너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은 어디에든 찾아가 그들의 머리를 일깨워웠다. 신시시대의 한인들은 모두가 신통력의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신으로 추앙받기도 하며 신화로 남겨지기도 했다.#2)



#2) 다의발 한웅시대에 복희 태자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뱀족과 범족·곰족의 시조가 되어 중원으로 건너가 중원의 역사를 열었으며, 그와 함께 그들의 문화도 일어서게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의 여신 헤라를 비롯하여 제우스 신·지혜의 여신 미네르바·태양의 신 아폴로 등의 신화는 한웅시대의 초인들이 이주하여 그들에게 문자를 심어주고, 지식을 주고 의술을 베풀면서 오직 신화로 남겨지게 만들었으며, 그 밖에도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의 대부분 한웅시대의 초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각국의 신화에 대하여 진실된 역사가 드러나리라.



이것이 신시개척시대의 한인들의 발자취이다. 신시시대의 모든 일들,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열쇠라고 이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인들은 밝히기를 거부한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들 스스로가 말하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많은 세대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한인들의 마음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신시시대의 한인사회에서 마지막 한웅이자 영혼의 스승이신 단웅시대에 이르자 한인은 더 이상 한인이 아니었다. 고요한 한의 의식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이들은 이제 명상 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이 흐를수록 고요했던 마음은 파도가 밀려오듯 번뇌와 방황의 감정이 한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신시시대가 끝나는 바로 그 시대에 크나큰 신통력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들이 믿었던 단웅에 의해 제3의 눈과 능력에 일순간 흑막이 쳐진 사태는 한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승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저마다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세우고 있었다. 고요하였던, 그리고 위엄스러웠던 한인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를 좋아라한 민족이 있었으니, 그것은 중원의 민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넓은 강역과 기름진 옥토는 모두 한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인들에게 새로운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이 이 땅위에 태어나셨으니, 그가 곧 왕검이다. 그가 BC2453년에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시니 그 이름을 삼한 조선#1)이라 하였다. 왕검은 위대한 영혼의 스승이었다.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한웅 천황도 황제라기보다는 만인의 스승처럼 행동하였다.



#1) 조선이란 말의 참뜻은 곧 '하늘나라'를 이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 안에서, 마음 밖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 푸른 하늘 밝은 빛은 본래의 우리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 할 나라이다. 당시의 언어로는 '섯타'라고 불렀다. 광명, 그리고 하늘,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검께서는 한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그대들 앞에 왔다. 지금 그대들에게는 번뇌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내가 왔으니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라. 이 드넓은 강역 속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하여 9나라로 나뉘었는데, 혈통과 민족의 얼을 잊지 않고 지키기 이전에 그대 자신을 잊지 말라. 그대 자신을 망각한다면 민족의 얼은 사라지며, 내가 그대들의 가슴속으로 깃들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노니, 잊지 말라. 그대들의 몸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몸이며, 그 몸을 이루게 한 부모 또한 하늘로부터 내려온 몸이니라. 부모를 공경함은 하늘을 모시는 길이요 그대 마음을 올바르게 닦는 길이니, 수많은 우리 천민(天民)들이 모두가 그와 같이 한다면 하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뜻과 같을 것이며, 그 어떤 화도 미치는 일이 없을 것이니라. 각 나라와 무리들, 그리고 개인 모두에게 이르노니, 서로가 미워하지 말 것이며 지극한 사랑을 이루며 살아가야 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니라. 저 곰족의 무리를 보아라! 언제나 힘만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범족의 무리들은 얼마나 포악스러운가. 그들은 언제나 싸움만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그대들과 같이 신령스러운 데가 없다. 그대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이 있지만 저들은 그 어느 것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저 무리들도 그대들과 같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왕검께서는 개국과 함께 조선민족 모두의 통치자로서, 영혼의 스승으로서 조선의 역사를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한웅시대처럼 그렇게 따르는 무리가 없었다. 더 이상 위대할 수 없는 스승이 되어버렸다.
모든 나라들도 한웅시대 때와는 달리 나라마다 그 색깔이 분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통치자로서는 더 나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 한인들은 그 옛날의 한인들이 아니었다.
한웅시대의 한인들은 타민족에게 땅을 내주었었다. 아니, 내주었다기보다는 타민족이 들어와 경작하며 살아도 조금도 탓하지 않았었다.
실제로 한웅시대에는 거대한 시베리아 대륙과 지금의 티벳 고원지대, 그리고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타민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들의 마음을 일깨워주기까지 하였다. 때론 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들어가 부족을 다스리는 족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에게는 한인들이 신과 같은 존재였다.
왕검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 한인들은 이미 나라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 옛날 12연방에서 조금씩 변화하여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스승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리자 한인들은 서로가 협조하며 단결하고, 지키고 지켜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바로 왕검의 등장을 전후하여 이 땅 위에는 너무나 많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만주에 거주하던 민족을 내쫓음

한인들의 땅에서 이민족을 강제로 몰아내는 일이 벌어졌다. 백두산을 근거지로 하여 만주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이민족을 설득이 아닌 강제로, 지금의 중원의 삭막한 땅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남만주 일대에 있던 이민족까지 모조리 밀어냈다. 이 밀어내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서로간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고, 이민족들은 강제도 내쫓기게 되니 분노를 느꼈다. 기름진 만주 전역은 이제 오로지 한인들만의 땅이 되었다.
만주 전역에서 쫓겨난 이민족들은 모두가 동쪽으로 바다를 낀 기름진 옥토로 이동을 했다. 그곳은 바로 번한의 땅이었다. 그러나 번한땅으로 몰려온 이민족들은 그곳에서 또다시 한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매우 불안하였다. 또한 번한땅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던 이민족들도 한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던 판국인데, 갑자기 만주 일대에 퍼져 있던 이민족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번한땅에 있던 한인들은 이민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만주에서 쫓겨난 이민족들을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무저건 또다시 저 삭막한 내륙으로 쫓아낸다면 그들에게 굶어죽으란 말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민족의 이동과 함께 한인들의 이동도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바로 이때에 한인들간에 최초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너무나 무서운 전쟁이었다. 그러나 칼이나 그 어떤 무기도 들지 않은 무술의 싸움이었다. 이것이 한인들간에 치러진 최초의 전쟁이며 영토 싸움이었다. 그러나 한인들 사회에 있어서는 치욕적인 일이기도 하였다.

때는 BC 2513년(왕검 개국 60여 년 전) '모가에테 의식'#1)이 시작되기 전 독로국이 있을 때이다. 독로국 하면 어느 나라 보다도 무예가 특출난 나라였다. 이때에 무예에 있어서는 남방보다는 북방쪽 한인들의 무예가 강하였는데, 꼭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무예라기보다 정신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방편이었다.



#1) 한웅의 집도 아래 제3의 눈과 능력을 지워버리는 의식. 이것은 '각자(覺者)', 깨달은 자만이 행할 수가 있다. 모가에테 의식을 치른 목적은 '한인'과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이민족과의 의식수준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북방쪽에서도 만주에 있었던 한인들이 가장 강하였다. 독로국인들의 무술은 주로 발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었고, 매구여국은 주로 손을 많이 사용하는 무술이었다. 이들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한 발단은 매우 사소한 일이었다.
어느 날 독로국 일대성(성이라고는 하지만 별로 높지 않은 성)에 매구여국 성주의 아들이 찾아와 무예의 시범을 보였다. 발보다는 손기술의 우월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두 나라는 자신들의 무술을 서로 수출하려고 이른바 경쟁했다고나 할까? 일부에서는 양국의 무술을 합친 새로운 무예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그들은 싸움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일에 있어서도 협조가 잘 이루어졌다. 양국은 한 해에도 몇 차례씩 서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무술시범을 보이는 등 마치 자매국같이 지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0여 년 후 모든 나라에 스승의 집도 아래 모가에테 의식이 치러졌다. 의식이 치러지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독로국과 매구여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제 한인들은 보통인이었다.
의식이 치러진 얼마 후 한인들의 마음은 매우 삭막하게 변해 버렸다. 아! 그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심성은 변해 갔다. 그들은 외쳤다.
"스승이시여! 무엇 때문에 우리의 능력을 지우셨습니까?"
그러나 독로국과 매구여국 사이는 그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았다. 양국의 특산물은 전과 다름없이 교환되었고,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사랑하였으며, 하루의 일과와 그 모든 삶에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한 것은, 바로 마음이었다.
독로국과 매구여국의 싸움은 마음의 변화로써 시작되었다.


어느 날 독로국의 사절단이 매구여국으로 오게 되었다. 친선대회가 시작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무술이 전개되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손발은 공기를 가르는 등 시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움직였다. 그것은 정말 고도의 기술이었다.
그런데 무술대회를 치르는 동안 매구여인 몇 명이 독로인에게 급소를 맞아 죽었다. 이것이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그 다음번에는 매구여인들이 독로국에 친선사절로 갔다. 그리고 독로인에게 당한 것보다 좀더 강도 높게 되갚았다. 그러고는 독로인에게 자신들의 행위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 후에 서로 사과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구여국 무술인들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음번에 독로국의 사절단이 매구여국에 왔을 때 그 이튿날 시비를 걸어 사절단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왕검시대가 열리기 25년 전 드디어 한인들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10만에 달하는 독로의 젊은 무술인들은 매구여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매구여국은 독로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여 마침내 무술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도로 숙련된 양국의 무술인들은 지금의 내몽고 벌판에서 그 기량을 발휘했다. 아! 그것은 상상을 뒤엎는 묘기였다. 처음에는 매구여국이 우세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독로국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독로인의 승리로 싸움은 끝이 났다. 독로인은 승리한 조건으로 매구여인들에게 그들의 땅을 버리고 물러날 것을 강요했다. 싸움에 진 매구여인들은 독로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어 지금의 소안령산맥 너머로 이주했다.


왕국 개국 25년 전 한인들 간의 최초전쟁

바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몽고 남쪽 전역을 차지하고 있던 구막한국인들도 분열하여 두 편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들이 분열된 배경은, 같은 한인들이라도 많은 수가 이미 비리국과 선비국·청구국과의 혼인에 의해 이루어진 자들이 많았으므로 혈통을 지키지 위한 방편으로 순수 구막인들만이 분리됐다. 순수 구막인들은 전통을 보존키 위하여 북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지금의 캄차키와 파바로프스크 지방이었다.
그들은 훗날 또다시 이동을 시작하여 북미대륙으로 가게 되는데, 북미대륙으로 이동할 때에는 구막한국인 외에도 객현한국, 그리고 일군국의 일부와 독로에게 패한 매구여국의 일부도 함께 포함되었다. 이들은 후세에 '인디오'라 불리게 되었는데, 인디오 종족이 여럿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왕검이 이끄는 조선국은 그 모체가 처음에는 객현한국이었다. 그 후 독로국은 북옥저가 되고, 객현한국과 청구, 일군국의 일부가 건너와 남옥저를 이루게 되었다. 양운국의 일부는 지금의 인도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메르인과 우르국인들이 함께 인도로 가게 되었다.
인도 역시 정신의 나라였다. 인도인이 정신의 나라가 된 배경은 시리우스의 토토의 영향이 컸지만, 그 옛날 무우 대륙에 있었던 정신문명의 일부가 대륙 붕괴 이후 살아남게 되어 하나는 인도로 가게 되었고, 또 하나는 마야문명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 전체가 정신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수메르인과 우르인, 그리고 양운인의 이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에 양운인들은 내륙의 땅을 이민족에 넘겨주고 더욱더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때 미리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이민족과 충돌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이 훗날 구려국이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무려 셋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흉노국의 모체가 되는 이민족을 돕게 되었고 일부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게 되었다.


왕국 개국 20여 년 전 분열

우르국 역시 메소포타미아와 티벳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때에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인보다는 조금 늦게 가게 되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티벳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티벳으로 가게 된 것은 전통을 보존키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비국의 일부는 이민족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지만 대부분이 북부여로 이동을 하게 된다.
또한 비리국의 대다수는 매구여국이 차지하고 있던 내몽고로 이동을 시작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이 정착하게 되자 남아 있던 구막한국인들도 찾아오게 되었고, 사납아국에서도 찾아오게 되었다.
선비국은 북부여 외에도 부여국으로도 이주를 했다. 구모액국은 옛 치우천황이 세운 청구로 이동을 하였고, 이민족들이 모여 사는 남국으로 이동하여 양운국의 후예들이 세운 구려국으로 이동을 했다.

남 · 북옥저국 형성

남옥저에는 객현한국과 일군국이 모여들어 나라를 세웠다. 이들은 결국 한인들의 나라이기는 하였지만 순수한 연방국이었을 때의 전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왕검시대에 이렇듯 사회상이 복잡하였던 것은 민족이 이동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그들과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쪽으로 언제나 두 패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비리국인이 부여로 이동하고 독로인이 옥저를 세웠어도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반대쪽이 있어 선군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도 비록 강력한 세력은 아니었지만 12연반의 전통국은 오랬동안 지속된다.

이미 나라는 이루어졌다. 왕검께서 다스리기 이전에 벌써 부여국이 탄생되었다. 북에도 거대한 북부여가 있었고, 옥저라는 이름의 두 나라가 있게 되었다. 동으로는 숙신국이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매구여국인과 사납아국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상당수가 혼혈이 이루어지게 되니 조선국에서는 한인이기를 거부하게 되었다. 남으로는 청구와 남국과 구려가 있었지만 왕검시대가 이루어졌어도 혼혈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이국인들은 한인들을 가리켜 "예맥"이라 부르기도 했다.


왕검시대가 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나라의 형태는 크게 셋으로 분할되었는데, 그것은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12연방의 전통을 지키는 나라와 이동하여 새롭게 세운 나라까지 합하니 왕검이 직접 다스릴 수 없는 너무 분산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왕검은 '진한', '마한', '번한'의 삼황제를 두고 모든 나라를 제후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삼황제를 만든 것은 세 황제국마다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군시대를 통하여 진한이 해야 할 일은 수많은 나라로 분열된 한인들을 통합하는 일이었고, 더욱더 큰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다. 마한의 황제국이 해야 할 사명은 드넓은 북방의 이민족들의 싸움을 평정함과 동시에 모두 교화하여 제후국으로 만든다는 정책이었다. 그것은 역사를 뒤엎을 엄청난 선군들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선군들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성공할 수가 없었다.


<출처: 여인왕국/桓人>  출처 : pinix님 블러그에서 퍼옴

시리우스를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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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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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04.11.18
22:25:55
(*.229.229.225)
아담과 이브 부분은 입식한 종족들마다 존재한다고 보아야함을 첨언 드립니다.

나물라

2004.11.18
22:40:33
(*.221.52.155)
시타나님께서 제 질문에 답을 주셨는데 북두칠성계는 시리우스와 같은 은하연합 소속이 아니라 우주연합 소속이라고 했어요. 또 내 가슴(또는 내면)의 직관이 맞았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오더군요.
사실은 저도 예전부터 한민족의 기원이 북두칠성계라고 알고 있었고 또한 내면에서 북두칠성은 은하연합이 아닌 우주연합 소속일 거라는 느낌을 줄곧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여인왕국 그 책 내용 일부를 어느 사이트의 게시판서 읽어봤는데 넘 재밌어서 사 읽으려고 했는데 절판되어서 결국 못 사 읽었어요. 대신 자칭 심령능력자인가 하는 안동민 씨의 업장소멸이란 책이 있어서 6권 전권 다 사 읽었는데 우주연합인지 은하연합인지는 몰라도 외계인 세계에 대해 짧으나마 언급되어 있었고 괜찮은 책이었어요. 저자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빙의령 퇴치한 경험담이 내용의 대부분이었어요.

소리

2004.11.18
22:50:59
(*.229.229.225)
그러셨군요..^*^ 제가 부산모임에서 나물라님을 처음 보고 여인왕국과 연관이 있는 분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여인왕국 책은 지금 다른 분이 가지고 계시는데 알아보고 보내드리도록 할께요..^*^ 꼭 읽어보세요..^*^

나물라

2004.11.18
22:52:45
(*.221.52.155)
여인왕국에 단군왕검 시대에 대한 내용만 있고 백제에 대한 내용은 없나보네? 하긴 백제 역시 부여인의 후손이 남으로 내려와서 세운 나라지.
내 전생이 백제인이었던 적이 있다고 느껴지기에...

허천신

2004.11.19
10:06:57
(*.232.42.2)
이 글의 진실여부를 떠나, 그 동안 연결이 잘 되지 않던 부분들이, 이 글을 읽으므로 해서 조금은 연결이 되었습니다. 무우와 한민족의 연관성입니다. 아직은 명확히 깨우친 것은 아니지만.

유영일

2004.11.19
18:21:04
(*.162.76.16)
미스터리 문화유적 답사

양반마을 안동에‘여인 왕국’있었다?

경북 안동의 한 산골마을에 「이상한」유적들이 발견됐다. 한국 최대의 돌거북상 6개와 6각형 모양의 주춧돌, 인공축대 등이 지금도 방치돼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외진 산자락에 「소왕국」을 건설했을까? 이 유적지를 처음 발견한 이는 전설의 여인왕궁터라고 주장하는데….

안 영 배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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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초(운영자 주 : 97년 8월을 가리킵니다.)대전에 사는 한 기공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경북 안동에 왕궁터가 발견되었는데 같이 가서 확인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전공」과는 별관계가 없을 법한 전혀 엉뚱한 제안이었지만 귀가 솔깃해졌다. 평소 빈말을 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왕궁터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무언가 역사적 의미가 담긴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일 이어지는 서울의 찜통 무더위 속에서 반은 피서삼아, 반은 문화유적 답사삼아 주말 동행을 약속했다.

전화의 주인공은 올해로 26년째 기공사로 활약, 우리나라 기공계의 선구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金炅甫씨(김경보·49). 대전의 약속 지점에서 그를 만난 뒤 바로 안동으로 직행했다. 경북 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광평리(안동시 서후면)로 접어들어 10분 남짓 달렸을까, 「가야」라는 팻말이 서 있는 마을 입구가 오른쪽에 나타났다. 차를 바로 꺾어 10m쯤 진입했더니 오른편 논 한가운데에서 버티고 앉아 있는 아기거북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잘 생긴 돌 거북상이다. 초록빛 벼이삭 틈에 웅크려 있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이 논의 주인은 거북을 옮기기가 귀찮았던지, 아니면 거북상을 신령스럽게 생각했던지 논에 그대로 모셔두고 있었다.

『왕국의 번영을 기원하던 거북들이지요. 여기 말고도 왕궁터 입구 곳곳에 아기 거북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씨는 씩 웃는다. 아예 우리 일행이 가는 목적지가 왕궁터라고 단정하고 있는 말투다. 아기거북을 만난 곳에서부터 다시 5분여 겨우 차 한대 통과할 정도의 시멘트 도로를 달리는데, 차창 좌우로는 산쪽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전형적인 두메산골 풍경만이 펼쳐진다. 이런 외진 곳에 무슨 왕궁터 같은 것이 있으랴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다.

그러나 좁은 도로 하나만을 가운데에 남겨두고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야산을 통과하자마자 경치가 갑자기 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5만평 정도 되는 평지가 나타난 것이다. 도로가 난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분지형이었다. 아기 거북상이 있는 마을 입구에서조차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내부 풍경이다. 김경보씨는 평지에 들어서자 차에서 내린 다음 아담한 규모의 콩밭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손짓하는 곳에는 산자락 아래에 파묻힐 듯 웅크리고 있는 바위 덩어리가 있었다.

『무엇처럼 보입니까?』

역시 거북이었다. 그것도 좀전에 본 아기거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크기였다. 정면에서 바라볼 때 거북 머리에서 밑바닥까지는 높이가 5~6m, 양발 사이의 거리는 4~5m쯤 되는 거대한 돌거북상이었다. 그리고 거북의 입에는 지름이 대략 1m 되는 둥그렇게 생긴 「구슬 돌」이 물려 있었다. 마치 거북이가 여의주를 입에 문 것 같은 형상이다. 그러고 보니 바로 전설상의 「금구(禽龜)」였다. 즉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북」을 묘사한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금구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터였다. 실제로 돌거북은 두 발(날개)로 땅을 딛고 얼굴을 하늘쪽으로 올려다보면서 비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거북바위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콩밭을 건너 바위앞까지 다가갔다.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조성했음이 분명했다. 커다란 돌덩이를 어디선가 가져온 다음 도구로 다듬은 표시가 남아 있었다. 아쉽게도 거북바위의 왼발은 일부가 떨어져나가 바로 밑에 방치돼 있었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한반도 땅에 이처럼 거대한 거북바위가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다. 더 나아가 전세계에서도 그 정교한 모양새나 크기에 있어서 이곳의 거북바위와 견줄 만한 것은 없을 성싶었다.

6개의 돌거북과 6각형의 왕궁터

김경보씨는 또 거든다.

『지금 거북바위가 앉아 있는 산은 왕국 사람들이 천신제(天神祭)를 지내던 곳이고, 거북바위는 왕국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산 자체가 6각형 구조로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거북바위도 모두 6면을 따라 6개가 있었지요. 이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여의주(둥그런 돌)를 잃어버린 거북바위가 1개 더 있고, 또 그 밑으로는 논에 잔해가 흩어져 있는 거북바위가 있습니다. 나머지 3개의 거북바위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의 말은 척척 맞아떨어졌다. 김씨는 이미 완벽하게 사전답사를 해두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산자락 아래로 산을 둘러싸듯이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다른 거북바위가 있는 곳으로 옮기는 동안 의외의 수확을 거두었다. 수풀 속에 살짝 숨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인공축대였다. 축대는 김경보씨도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지 신기해했다. 그것은 3~4단으로 축성된 바위들이 산 둘레를 2백m쯤 둘러싼 형태였다.

누가, 왜 그랬을까? 사방이 산으로 둘어싸인 외진 산골 마을에서 유독 이 산에 돌거북상을 만들고 축대를 쌓았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이 산 자체가 왕궁터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왕궁 터는 지금 논으로 변한 이쪽 평지입니다. 이곳저곳에 돌무더기들이 보이지요. 그것이 왕궁의 주춧돌입니다. 그런데 널려진 주춧돌들도 그 선을 따라가다보면 역시 6각형 구조입니다』

주춧돌은 여름 태양을 한껏 받아 푸르게 자란 벼이삭들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너무 방대하게 흩어져 있어 6각형인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김씨는 논이 텅 빈 겨울에 와서 보면 분명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6자가 들어가는 이상한 모양의 구조물들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다. 결국 호기심 삼아 김씨를 따라 나섰다가 의외로 수수께끼의 문화유적 현장을 만난 셈이다. 마치 고고학자가 최초로 전인미답의 유적지를 발견해냈을 때 느끼는 희열감까지 들었다.

이곳 유적지에서 마치 고대에 살아본 적이 있다는 듯이 말하는 김씨의 「일방적인」 해설은 일단 접어두고 마을촌로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행정지명으로는 광평 1리와 2리, 일명 제전부락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50호 정도가 사는 아담한 산골마을. 먼저 노인회관을 찾았다. 마침 이곳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유건기씨(68.광평2리)를 만났다. 거북바위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대뜸 『아, 그 용바우(바위)요? 그것은 아마 땅 생기면서부터 있었지요』하면서 매우 오래됐다고 말한다. 그는 거북 입에 들어 있는 여의주 때문에 금구상을 용상으로 본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다 「용바우」라고 부른단다.

『용바우 밑에는 거북바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77년도쯤에 새마을 사업을 한다고 길을 내면서 바우들이 깨져버렸습니다. 깨진 돌들이 아직 거기에 남아 있어요』

유씨는 논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이 거북바위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아주 먼 옛날 조상 때부터 있어 왔다고도 증언했다. 다른 마을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터전이 그 옛날 왕궁터였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듯했다.

미스터리 고대사

이곳이 왕궁터든 아니든 누가 이 첩첩산중에 어마어마한 거북상을 세우고, 산에다 인공적인 축대를 쌓고, 들에다가는 주춧돌로 건물을 세웠단 말인가. 그것도 마을 입구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도록 아주 은밀한 곳에 감추듯이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한반도의 왕궁은 대부분 평지에 세워졌다. 신라의 경주가 그렇고, 백제나 고구려의 수도도 마찬가지였다. 왕족과 신하들이 있고 일반 백성들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평지가 적격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김경보씨의 주장과는 달리 다른 용도로 쓰인 유적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역사서 혹은 문헌 중에서 경상북도 안동과 관련해 어떠한 왕국이 존재했었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신라가 일어나고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백제가 태어나고, 한강 이북에 고구려가 있었고, 그 후에 경상남도 쪽에 가야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 시기에 안동에 어떤 왕국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고대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 흔적이나마 기록해두었을 텐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원후 7세기에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 이어지는 고려와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찾는다는 것은 더 무리한 일이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역사, 고고학적 용어로는 「원삼국시대」때의 일이 아닐까. 실제로 김경보씨도 이 유적지의 건설은 한반도에 신라와 백제가 들어서기 이전인 BC 100년 전후의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김씨의 「가설」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은 안동과 거리가 멀지 않은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사벌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일명 「사량벌국」이라고도 하는 사벌국은 BC 1세기 이래 경주의 사로국(신라)과 대등한 교역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토착 지배집단이 경주의 귀족으로 흡수되기까지 4~5세기 이상 독자적인 정치집단으로 성장한 소국이라고 전한다. 상주 지방에서는 BC 2~3세기 이래의 청동기 유물도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

이제는 본격적으로 김경보씨를 「심문」할 차례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 왕궁이라고 주장하는 이곳의 유적지를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으며, 그 존재했던 연대를 원삼국시대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는가. 그는 고고학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던 아마추어 아닌가.

김씨는 먼저 일부러 이곳을 안내한 것에 대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양해를 구한 다음 장황하게 그 배경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몇해전 박모라는 청년이 「심령 기치료사」로 소문난 김씨를 찾아왔다. 박씨는 단전(배꼽 밑의 경혈) 아래 부분에 심한 습진이 생겨 낫지 않는 데다가 밤만 되면 악몽에 시달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병원을 찾아도 그의 습진과 악몽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박씨에게는 남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도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은 원래 여자로 태어나야 했는데 남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해 유년시절에는 여자아이처럼 소꿉놀이를 해왔고, 철이 들어서는 여성들의 소지품을 수집해 몰래 간직하는 것으로 여인이 되지 못한 한을 풀어왔다. 그런 한편 자신의 이런 모습을 극복해보려고 일부러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된 기합과 훈련 속에서도 박씨의 내면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내 팔자는 여성으로 살아야하는 것이구나』하고 체념하고 마지막으로 돈을 모아 성전환수술을 받으려고 하던 차에 습진이 생긴 것이다.

본론은 지금부터다. 찾아온 박씨를 처음 본 순간 김경보씨는 박씨가 여왕의 후생(後生)이라는 것을 투시(초능력의 일종)로 알아냈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2천년도 훨씬 넘은 오랜 옛날 한반도 땅에서 남자들에게 핍박받는 여인들을 구해 그들만의 왕국을 세운 「사라」라는 여왕이었다. 박씨가 여인이 되고 싶어했던 것도 전생의 기억이 현생의 잠재의식까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박씨는 여인 왕국을 건설하면서 당시 수많은 남자들을 죽인 업으로 인해 현생에 태어나서는 질병과 악몽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 김씨는 자신의 기로써 박씨의 압성습진은 물론 악몽까지 말끔히 고쳐냈다.

과거를 투시해 찾아낸 역사유적?

김씨로부터 치료를 받은 후 박씨는 자신의 전생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고 그런 능력을 배우고 싶어했다. 김씨는 그가 자질이 있어 보여 「자동서기」라는 영능력 개발 훈련을 시킨다. 자동서기는 외국 말로 「아캬샤 레코드(akasha record)」라고 하는데 미국의 유명한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와 프랑스의 노스트라다무스가 이 방법으로 수많은 예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술은 한마디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날아오는 과거 혹은 미래의 메시지를 영적으로 수신해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 이리하여 박씨는 자신의 전생의 역사, 곧 여인 왕국의 역사를 자동서기로 기술해나간다.

그러는 한편으로 김씨는 전생에 여인 왕국과 관련된 환자들의 방문을 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울산에 사는 황명숙씨. 수년 전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임파선에 암이 재발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황씨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김씨를 만난다. 황씨는 김씨로부터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게 된다.

황씨의 전생은 여인 왕국 시절의 여자 무사. 이 여자에게 무예를 가르친 스승이 바로 김씨 자신이었다는 것. 말하자면 전생의 스승과 제자가 현세에서 기공사와 환자로 만나게 된 셈이다. 어쨌든 전생의 여자 무사는 다른 검객들과 검술겨루기를 무척 좋아해 사람들을 수도 없이 살상했다. 그 벌로 황씨는 현생에 태어나 고통을 받게 됐다. 재미있는 현상은 황씨는 언제나 목부위와 배부위에 묵직한 통증을 느껴왔는데, 김씨는 황씨가 묻기도 전에 전생에 검으로 남의 목과 배를 많이 갈라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현상은 황씨가 김씨로부터 기치료와 기운동을 받으면서 나타났다. 황씨는 치료를 받아 몸이 좋아지자 기운동 시간을 차츰 늘려갔는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술동작이 나왔다. 평소 춤이나 노래 같은 것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고 운동이라고는 아무 것도 해보지 않았던 전업주부인 황씨에게서 놀랄만한 전통 무예동작이 나타난 것. 처음엔 가족들도 믿지 않았으나 그녀가 무술 시범을 보이자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암에서 완전히 벗어난 황씨는 지금도 김씨와 함께 기수련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김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간 질환자 등을 고쳐내면서 여인왕국과 관련된 희한한 얘기는 적지 않지만 대략 이 정도로 그치기로 하자.

『제 자신이 여인 왕국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인지, 환자들도 여인왕국과 인연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전에 박씨가 자동기술로 밝혀낸 우리 고대 역사를 마무리해 책(무린바타 전4권, 행림출판)으로 엮어 냈습니다. 여인들의 왕궁 터도 책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기 위해 박씨와 함께 안동 일대를 다니면서 찾아낸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고대사에서 잃어버린 역사를 햇볕속으로 끄집어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공상 과학소설보다도 더 앞서 나가는 논리를 가지고 매우 신념에 차 얘기한다. 김씨가 밝힌 환자들을 만나 확인해봤지만 역시 김씨의 「비상식적인」 말에 깊이 동조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찌됐건 김씨로 인해 자신의 건강을 되찾은 것을 최대의 증거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김씨는 안동의 왕궁터를 눈앞에 들이밀고 있다. 김씨는 왕궁터가 타인 소유라서 파헤칠 수 없지만, 이 왕궁터를 발굴하면 훨씬 더 구체적인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돼 있다고 확신한다.

아마추어들의 세계적 발굴기

하긴 고고학자만이 문화유적 발굴을 전담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고고학 발굴사에서 유명한 발굴들은 전문가보다도 비전문가의 손에 의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경에서 무려 1백52번이나 등장하는 고대의 대제국 앗시리아는 1843년 봄까지는 단순히 전설상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프랑스의 의사 출신인 보타와 영국의 빈털터리 여행자 레이아드가 앗시리아 제국의 왕궁터를 발굴함으로써, 그때까지 고대 이집트 문화가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던 인류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고고학자가 아닌 보타와 레이아드의 땅파기는 현대 고고학 발굴의 효시가 되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전설의 도시 트로야와 미케네를 찾아낸 실리만 역시 고고학자가 아닌 사업가였다. 고고학자들은 전설만을 믿고 주먹구구식으로 땅을 파헤치는 실리만을 정신병자라고 비웃었지만, 이후 그가 발굴한 터에서 유물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밀림속에 버려진 마야제국의 유적지를 처음 발굴한 스티븐스는 법률가 출신이었고, 캄보디아에서 사라진 크메르왕국을 찾아낸 뷰우오는 가톨릭 신부였다.

외국뿐이랴. 지난 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동양 최고(最古)의 유물선과 유물을 처음 발견하고 이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 역시 고고학과는 상관없는 아마추어들이었다.

그러니 기공사라고 해서 자신의 독특한 「비법」을 가지고 역사투영을 통해 유물을 발견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김씨는 이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흔적을 찾아내지 않았는가. 문제는 이것이 과연 사료에서 나타나는지, 직접적인 증거가 있는지 여부다. 김씨의 확신대로 땅속 깊숙이 묻혀 있을 유물들이 발굴된다면 여인왕국의 이야기도 전설이 아닌 실화로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기서는 남겨두자. 그것은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남은 것은 앞으로 이곳을 정식으로 발굴할 누군가를 위해서 참고삼아 여인 왕국 등장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들어보기로 하자. 물론 이것은 문헌에 나온 역사가 아닌 박씨가 받은 「소설 같은」 자동서기를 통해서다.

한반도의 아마조네스 왕국

때는 고조선 시대. 한반도 북쪽 땅에서 충성을 다하다 반대파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최후에 환멸을 느낀 「용장」이란 장수가 만삭의 몸으로 병든 아내와, 딸 「시애」을 데리고 사람이 살 만한 땅을 찾아 남하한다. 그러나 도중에 아내를 잃고 아버지와 딸이 정착한 곳이 지금의 안동 일대. 이후 용장은 딸인 시애를 통해 자손을 퍼뜨리게 되고, 후손들은 점점 번창해 「알신」과 「공명」이라는 씨족 집단으로 성장한다. 이들 집단은 철저하게 여성을 존대하는 모계 중심사회를 유지한다. 그것은 시조 용장의 유언 때문이었다.

이 씨족 사회가 바깥으로도 알려지면서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인구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알신과 공명 집단은 외부인의 정착은 허락했으되 혼인은 거부하는 등 순수한 혈통만을 고집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날아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격으로 유입인구가 씨족들보다 훨씬 많아지자,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지도자를 뽑아 부족국을 형성한다. 물론 그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경북 일대에 6부족 사회가 형성된다.

그런데 여성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아야 하는 알신과 공명 집단의 남성들은 이웃부족의 남성들과 자신들을 비교해보고는 크게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도 남성이 우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잠자리에서까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상전처럼 모시며 기죽어 사는 것이 억울했던 것이다. 마침내 쌓이고 쌓인 불만이 행동으로 터져 나왔다. 그들은 몽둥이를 앞세워 여성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킨 다음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듯이,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심한 매질과 구박은 물론 「살파」라는 집단농장을 만들어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가 하면, 「미루나기」라는 젊은 여인들의 수용시설을 만들어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기도 했다. 심한 경우 여자들을 인신매매하기도 했다. 이제는 짐승과 비슷한 대우을 받는 여성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여인들의 집단농장을 탈출한 한 여인이 이웃나라로 도망쳐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는다. 이때가 BC 126년의 일. 그 아이가 후에 진녀라는, 여인국의 여왕이 된다. 진녀는 당대 최고 검객이자 선비인 기른장으로부터 10년 동안 문무를 익히며 20세 처녀로 자란다. 진녀의 출현에 용기 백배한 여인들은 그녀의 휘하로 모여들고,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할 꿈을 꾼다.

그러나 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남성들보다 열세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진녀는 우선 잘 생긴 젊은 여인들을 골라 요즘 말로 하자면 미인계를 써서 남성들이 지배하는 6부족에 침투시킨다. 그리하여 소수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기습작전을 펴 부족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진녀 부대가 6부족 등을 멸망시키면서 규합한 여성은 3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처음에 숲속에 숨어서 이른바 게릴라전을 폈으나 이제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되자 「서현」(지금의 안동 왕궁터)에다 왕궁을 건설한다. BC 106년의 일이다.

이 왕궁터는 출입구를 제외한 4면이 거의 험한 산으로 둘러싸이다시피 한 천연의 요새였다. 여인들은 마치 벌집을 연상케 하는 6각형의 3층 목조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저수장을 만들고 그 물로 반 수세식 통나무 소변기를 사용할 만큼 문명한 생활을 한다. 여인들은 또 왕궁 입구에다 아기 거북을 만들어 세우고, 궁궐 옆에는 수호신이자 남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돌거북 6개를 세운다. 왕궁터 북쪽의 가장 신령하다고 믿은 언덕에는 국정자문위원격인 「상라여신」이 기거하며 여왕의 스승 노릇을 했다. 왕궁 안의 모든 길은 꽃으로 단장하고 뜰에는 금잔디를 가꾸었다.

여인들은 포로로 잡아온 남자들을 이용해 성욕을 해결한다. 만약 임신이 돼 여자 아기가 태어나면 전사로 키워내고 남자 아기는 왕궁에서 30~40리 떨어진 「월전」이란 곳에 버려서 굶어죽게 만드는 잔혹성도 보인다. 깊을대로 깊은 남성에 대한 증오심이 모성애를 가렸던 것이다.

신라 박혁거세의 정체

여왕 진녀가 왕궁을 산속 깊은 곳에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6부족국을 무너뜨려 나라를 세웠지만 주변의 남성이 통치하는 나라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약한 상태여서 일단은 여인왕국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인국 주위로는 소백산 남서쪽에 자리잡은 동인국(후의 한반도 백제)이 있었다. 동인국이라는 이름은 서해바다 건너 중국 대륙에 서인국(후의 대륙 백제)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동인국은 몇 차례 여인왕국에 기습을 시도하지만 여인국의 미인계를 이용한 첩보전과 수기(手旗)를 이용한 신속한 연락망, 고도로 훈련된 여인 기마병 앞에서 맥을 못추고 퇴각했다.

여인국 남쪽으로는 일찍부터 중국대륙에서 한반도에 진출한 6가야가 있었다. 6가야 세력은 어쩌다 여인왕국이 큰 위기를 맞을라 치면 번번히 도와주어 위기를 모면한다. 가야인들은 북쪽세력(후에 고구려)과 서쪽세력(백제)의 방어기지인 여인국이 무너지면 자신들도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인왕국이 개국한 지 30여년만에 여왕 진녀는 죽고 후에는 「울멍」이라는 장수에 의해 여인국은 문을 닫게 된다. 이때가 기원전 56년경.

이후 여인국의 여성중 일부는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여성들은 남성들에 대한 증오심을 잊기로 하고 남성사회인 사로 6촌과 더불어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바로 BC 54년 박혁거세와 여인국 출신 알영이 합의해 세운 신라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동서기로 기록한 여인왕국의 역사다. 김경보씨와 함께 안동의 여인 왕궁터에서 마지막 여정으로 경주를 향했다. 김씨의 주장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들을 화해케 하고 그 공로로 신라의 초대왕이 된 박혁거세는 첫 도읍지로 지금의 황룡사 터를 잡았다는 것. 현재 복원처리를 한 황룡사 터를 밟으면서 먼먼 과거로 눈을 돌려본다.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하면 대개 알에서 나온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설화나 금 바구니에서 출현한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전설을 머리에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 그만큼 신화시대로 여긴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은 바로 그 2천년 전에 한반도에서는 신화시대가 아닌 역사시대로 활발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88년 발굴된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는 2천년 전의 유물인 붓과 부채, 목제 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붓은 당시 우리 민족이 문자생활을 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고, 동양 특유의 공예품인 칠기는 문명의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또 최근에 발굴이 완료된 전남 광주 신창동 유적지에서는 높은 문화수준을 나태내주는 가야금과 가죽신의 신발골, 베틀의 부속기구 등이 출토됐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이전에 높은 문화를 유지한 집단들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바로 그 시기에 진녀의 여인왕국은 50년간이라는 짧은 역사를 누리다가 신라에 자리를 물려주고 무대에서 사라져간 것이다. 과연 여인 왕국은 존재했을까, 그리고 안동의 유적지는 과연 여인 왕국의 근거지였을까. 왕궁터를 발굴한다면 과연 어떤 유물이 쏟아져 나올 것인가.

만일 여인왕국의 존재가 밝혀진다면 우리 고대사는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고, 그것이 한 기공사의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쳐도 재미있는 소설 읽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역사가는 과거를 복원하는 훌륭한 추리작가』라고 누군가 말한 것이 생각난다.

유영일

2004.11.19
18:22:17
(*.162.76.16)
김경보 씨는 나도 개인적으로 30세 무렵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될 줄은 몰랐네요.

나물라

2004.11.20
01:35:33
(*.216.94.210)
그런데 위의 내용에 무우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 레무리아 대륙 이렇게 나오는데
무우와 레무리아는 태평양에 있었다던 같은 대륙 아니었나요?

소리

2004.11.20
23:19:43
(*.229.228.79)
저도 무우와 레무리아 때문에 헷갈린 적이 간혹 있습니다..^*^
무우대륙에 레무리아인들...레무리아대륙에 무우인들...이런 표현이 몇 몇 메시지에서 나오더군요..^*^
그 정도로 이해 하세요..^*^
한 대륙에 여러 인종이 거주했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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