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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그분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절실히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글은 드루킹의 자료창고님이 쓰신 글입니다.>

아래는 드루킹의 자료창고님 블로그 주소입니다. 

http://druking.com/50156439388

언젠가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회란 없다'라는 글을 써서 올려드린적이 있습니다. 그 글안에서 제가 강조했던 이야기는 공존이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druking.com/50117813326 -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회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함께 사는것, 더불어 사는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든 남을 쓰러뜨리고 밟고 넘어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다른 누구의 핑계를 댈것도 없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 스스로가 부모님에게 그렇게 교육받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대개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 이 우주와 대자연안에서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입니다. 모든 생물들은 놀랍게도 20%의 열심히 일하는 것들과 80%의 덜열심히 일하거나 어리고, 미숙하고, 모자란 존재들 즉 잉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이 부여한 비율이기 때문에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0%만을 떼어서 가장 효율적인 사회, 국가, 기업을 만들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0:80의 사회의 역설 :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은 늘 그렇다는 것

 

능력있고 열심히 일하는 20%만을 따로 떼어서 100%의 조직을 만들어도 그안에서 다시 80%는 잉여로 변화합니다. 그게 개미사회든, 인간사회든 마찬가지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안에 들어있다는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누군가 아픈 사람들, 모자란 사람들, 그리고 덜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까지도 한데 뭉쳐서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20%라는 것은 우열이 아니라, 기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예로 들자면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심장이 별로 하는일 없이 노는것같은 엉덩이를 향해서 너도 나처럼 열심히 일해라 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몸의 모든것이 심장처럼 열심히 굴러간다면 그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하나가 경쟁하고, 비교대상이 되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두를 하나로 뭉쳐서 그 자체가 하나의 인간처럼 기능하는 공동의 존재,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안에서 우열은 없습니다. 기능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국가에는 그런 관용의 정신이 없습니다. 

 

 

1. 지식과 기술,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은 지혜로워지는 것인가?


 

역사를 백수십년, 수백년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전부터의 인간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시대의 어떤 존재였을까요? 

 

자신들의 존재, 정체성을 깨닫는데서 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게으르게 살지도 않았는데 이처럼 힘든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이것은 위정자나 언론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가 덜 노력했고,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리고 덜 노력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받고 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또는 낮은 금전적 보상을 받는것은 당연한 것인가? 

 

혹시 이런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각은 아닌가? 

 

인디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해드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합중국이 세워지기전 북아메리카대륙에 만년가까이 살아오던 인디언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간의 분쟁과 전쟁이 뭉쳐서 살면서 도시를 이루는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족들처럼 도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공동체가 150세대가 넘으면 그들을 따로 떼어서 독립시켜, 멀리 거리를 두고 서로의 영역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극단적 물질의 소유가 아닌, 물질과 정신의 평형임을 알고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던 인디언들

 

인간은 살아가면서 150명이상의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회학적으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간접적으로, 건성으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는 최대의 단위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만들지 않아 대규모의 전쟁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이 미개해서 도시를 만들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말도 안되는 편견입니다. 언젠가 동남아시아의 어느 부족이 다큐멘타리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자신들은 수백년간 전쟁하지않고 평화롭게 살아왔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 비결을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일정규모가 되면 사람들을 분리시켜서 아메리카 인디언들 처럼 떨어져서 영역을 지키며 사는것, 그것이 비결이라고 말을 하더군요. 

 

분명히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그것을 알고 지혜로왔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대규모의 전쟁이 왜 일어나는가? 그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도시화입니다. 도시가 만들어지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젠가 제가 6도(六道: 인간이 거치는 우주안의 6개의 시공)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우주의법칙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아뭏튼 그들 인디언의 세계에 대해서 들여다보면 아주 놀라운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1년에 평균 두달을 일하고 열달을 쉬었다고 합니다. 두달동안 사냥한것으로 일년을 먹고 지내면서 나머지 열달동안은 사색하고 다른 일을 했습니다. 

 

자연속에서 힘들게 살아갔을 것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디언들이 오히려 여러분보다 훨씬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디언 연구가가 이야기 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석기시대 이런 시대에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24시간을 정말 힘들게 살았다고 여러분은 배웠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겠군요. 

 

인디언 정도의 문명만 가지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비슷한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발전'했다고 하는 여러분은 어찌하여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배우자와 자식들하고 대화할 시간도 없이 뼈빠지게 일년 열두달을 일하는데 행복은 커녕, 여가를 보낼 열달의 시간은 커녕 지친몸을 쉴만한 여유도 없는 것인가? 

 

자 여기에서 부터 여러분의 자각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 시대, 이 사회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무엇이냐? 


 

도시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사회에는 추장이 남들보다 더 잘먹고 잘사는 그런 수직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의 지도자인 추장은 정신적인 멘토이며,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상담자 였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배고프면 제일먼저 자신의 식량과 가진것을 내어주고 달래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추장이 수직적인 위계가 되는 때는 오로지 '전쟁'을 할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가 극도로 이뤄진 현대의 국가, 사회시스템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애써서 만들어낸 부는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독점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능력보다 훨씬 행복해지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그 시스템안에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수직적 위계가 있는한 독재적인 시스템이 존재하는한 문제는 똑같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가장 독재적인 시스템은 국가가 아닙니다. 

 

 

산업화사회의 모순을 꼬집었던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

 

그것은 바로 경제시스템입니다. 여러분이 출근해서 일하는 기업과 다양한 삶의 터전들이야 말로 그런 수직적 시스템의 제일 하위단계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재벌시스템이야 말로 극소수의 사람들을 훨씬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셀 수 없는 다수가 불행해지고 착취당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1700년대부터 조선이 망할때까지 우리사회는 민란의 시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사회시스템에 저항했을까요? 왜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이렇게 소수를 위하여 다수를 착취하는 제도,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민화 정책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하층 계급에서 글과 학문을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우민화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시대에는 모두가 공교육을 받으니 그런 우민은 사라졌을 것 아니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럴 줄 알고 모든 국민들을 의무적으로 교육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까, 20:80의 사회처럼 80%의 우중이,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을 마구 늘려서 학비를 대출해주면서 국민들을 서른살이 다되도록 교육시켜도 바로 그 우중이 똑같은 비율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지식을 습득하는가 아닌가 하는것은 그들이 지혜로와지는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글도 모르는 무식한 촌할머니도 지혜로운 분은 있습니다. 지혜란 석사학위따고, 박사학위 딴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정체는 '직관'입니다. 그리고 직관의 힘은 생을 넘어서, 이전 생에서 지금의 생으로 넘어오는 것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인생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 소위 '도를 닦았다'하는 그것으로 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어도 '어리석은 인간'은 어리석은 인간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그런 사람들 널렸습니다. 

 

 

몰라요만 남발하시던 이분도 '박사'이십니다

 

그럼 그런 우중을 계몽하면 될것 아니냐? 제가 아는 바로는 가르친다고 소위 교육한다고 해서 그 비율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20:80의 사회에서 20%가 나머지 80%에 대해서 보살피고 먹여살리는 어떤 공동체적 의무가 있다고 제가 주장했듯이 깨어있는 20%가 나머지 80%에 대해서도 같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20%의 깨어있는 사람들(지식인이 아닌)이 나머지 80%를 이끌고 이 사회를 공존가능한 시스템으로 유지시켜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http://druking.com/50106537986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을 말함

 

그 깨어있는 사람들이란 바로 호민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말 200년 민란의 시대 그리고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말하는것은 어느시대에나 그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노비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미래의 해법은 없다


 

시대가 이렇게 흘러서 과학이 발전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사는데 우리의 삶을 수백년전 '노비'의 삶에 비유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수천년전 인디언의 삶보다도 더 여유가 없는 그 빡빡함과 일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굶어죽을 것같은 불안함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나는 빵집이나 PC방을 하는 자영업자이고 내가 사장인데 무슨 노비냐?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고려,조선시대에도 그렇게 밖에나가서 돈벌어서 갖다 바치는 '외거노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외거노비입니다. 

 

여러분이 몸이아파도 결근하면 회사에서 짤릴까봐 아픈몸을 무릅쓰고 출근해야만 하는 그런 직장인이라면 여러분은 바로 조선시대의 '사노비'입니다. 

 

그런 정규직도 되지 못해서 하루하루 불안속에서 살아가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이라면 여러분은 '노예'입니다.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 비교적 출세해서 상무, 전무 달고있는데 무슨 노비냐 나는 이미 그런 비유 맞지 않는다 할 분도 있겠군요. 그분들은 '마름'입니다. 소작들을 부리고 쇠경을 받는 관리자 말입니다. 

 

아무리 이사가 되어도 노비의 신분이 변할리가 있겠습니까? 

 

구한말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탈바꿈 하였다고 해도 인간사회의 시스템은 크게 달라진게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무나 수직적으로 되어버린 사회, 그것은 독재의 세상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사악한 사회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입니다. 

 

재벌은 몇백조의 자산을 가지게 되고 서민들은 돈이 없어서 가족이 함께 굶어죽는 시대 그것이야 말로 극단적인 수직적 경제시스템의 세상입니다. 재벌의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1894년에는 전봉준같은 '호민'들이 농민들과 힘을 합쳐 이 시스템을 바꿔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은 백만이 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120년의 세월이 흘러 시간의 수레바퀴는 2014년 갑오년을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노비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여러분 스스로의 삶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굴레를 대신해서 깨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 시대의 호민들을 모아서 1894년 처럼 피튀기는 그런 폭력적 거사가 아니더라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촛불시위같은 방법도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독재적인 시스템을, 재벌 시스템을 깨트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수천만이 사는 이 땅에서 단지 만삼천명정도의 깨어있는 시민들만 힘을 합쳐준다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이 시스템을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5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우리의 장점은 저들 기득권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촛불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경제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안심하고 있을때 일격에 그들 모두를 쓰러뜨릴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와서 시대의 고민을 나누고 계신 여러분들, 그리고 비로서 자신이 이 시스템안에서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노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 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2월 9일이면 그 힘을 결집할 열린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건데 제가 시도하려는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2014년 갑오년안에 끝을 볼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우리가 실패하면 이 민족에게 어떠한 희망도 없으리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이 민족을 지켜왔던 조상님들과 호국의 영령들이 반드시 도와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정치나 선거로서 뿐만이 아니라 이 기득권시스템 전반을 무너뜨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힘을 모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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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상가이자 문인, 관료였던 허균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darisil1/50102162647

 

허균(許均)은 (1569년 ~ 1618년) 조선 선조시대에 태어나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진 문인이지만, 관료로서도 출세하여 광해군때에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로 오늘날에 비유한다면 '장관' 벼슬까지 한 유능한 관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단히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로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관료로 일하면서 '불교'를 믿는다 하여 두번이나 탄핵을 당하기도 하고 , 명나라에 가서 '천주교 기도문'을 얻어오기도 하는등 시대사상에만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었으며 대표적으로 아래에서 다루는 '호민론'을 보면 조선시대의 관료가 쓴것이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그의 성품을 짐작케 합니다.  


허균은 선조때에 태어나 임진왜란직후에 관직에 진출하여 광해군때에 출세하였던 인물로 난세를 맞이하여서 인생의 굴곡이 심하였으며, 홍길동전도 귀양살이중에 쓴것으로, 최후는 왕인 광해군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던 기득권세력간의 암투에서 밀려 '능지처참'의 형으로 마감하는등 인생전체가 파란만장하였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시대에 처벌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 복권이 되었으나 그 만은 조선이 멸망될때까지 복권되지 않아, 그가 주류기득권에 반(反)하였던 인물임을 말해줍니다.


호민론(豪民論) - 혁명을 논하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그시대의 사회와 권력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동시에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백성(호민)을 거론함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관점을 보여줍니다.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唯民而已(유민이이)
民之可畏(민지가외)
有甚於水火虎豹(유심어수화호표)
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재상자방차압순이학사지)
抑獨何哉(억독하재)  


천하에 가히 두려워 할만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백성이 있을 뿐이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함은

홍수나 화재 또는 호랑이나 표범같은 맹수보다도 더한 것인데

그런데도 윗자리에 앉은 것들은 (백성을) 업신여기고 길들여 가혹하게 부려먹으니

또한 어찌하여 그러한가?


허균은 호민론의 첫머리에서 백성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은 그 사회와 체제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며 민본(民本)주의적 사상의 일면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이 사회개혁의 주체가 바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넌즈시 말합니다.



항민(恒民)을 말함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부가여악성이구어소상견자)
循循然奉法役於上者(순순연봉법역어상자) 
恒民也(항민야)
恒民不足畏也(항민불족외야)  


무릇 늘 그래왔던것에 얽매여 기존의 체제에 편안해하며

순순히 (때로는 부당한)법을 받아들여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바로 항민(恒民)이다

이러한 항민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허균이 말하는 항민이란 그럴 항(恒)자를 쓰는,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체제에 안주하는 일반 백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시대로 본다면 나하나 잘먹고 잘산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을 주무르는 기득권자들에게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당하는 그런(바보같은) 서민들을 일컬어 항민이라고 합니다. 허균은 이들은 권력자(기득권자)들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부류라고 말합니다.

 


원민(怨民)을 말함


?取之而剝膚椎髓(려취지이박부추수) 

竭其廬入地出(갈기려입지출) 
以供无窮之求(이공무궁지구)
愁嘆?嗟(수탄돌차)
咎其上者(구기상자)
怨民也(원민야)
怨民不必畏也(원민불필외야)  


껍데기가 벗겨지고 등의 뼛골이 빠지도록 갈취당해

벌어들이는 모든것이 없어지도록

요구하는대로 갖다 바치기를 끝없이 하면서

근심하고 한숨쉬며 탄식을 내뱉으며

그 위엣 놈들을 증오하는 사람은

바로 원민(怨民)이다

이러한 원민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허균은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한숨쉬고 욕하며 실제로는 아무런 구심점도 되지 못하는 드러난 존재들을 '원민(怨民)'이라고 규정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욕하고 원망하며 불평을 가진 세력이야 말로 가장 위협적인 존재일텐데 왜 허균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의 불평과 불만,증오와 원망이 잘못된 사회와 권력을 뒤집어 엎으려는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소극적인 저항에 불과하다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시스템이 잘못되어있더라도 선거때 관광보내주고 밥한끼 사주면 바로 자신들을 착취하는 기득권에 한표를 던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호민(豪民)을 말함


潛?屠販之中(잠종도판지중)
陰蓄異心(음축이심)
僻倪天地間(벽예천지간)
幸時之有故(행시지유고)
欲?其願者(욕수기원자)
豪民也(호민야)
夫豪民者(부호민자)
大可畏也(대가외야)


고기를 팔고, 장사를 하는등 눈에 띄지않는 곳에 자취를 숨겨놓고

그 다른 마음을 뒤로 쌓아

하늘아래 후미진 곳에서 머물며

때가 무르익으면

그 뜻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는 자는

바로 호민(豪民)이다

대저 이 호민이야 말로

크게 두려워 해야할 존재이다

허균은 호민(용감한 백성)이 체제에 위협이 되는 그러한 존재이고, 백성을 두려워한다는것은 바로 이러한 호민을 두려워 하는것이다라고 주장을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존재로 바로 이 호민을 이야기 합니다.  


즉 허균은 삐뚤어진 기득권의 편에 서서 호민론을 거론하는것이 아니라 각성한 백성들의 편에 서서 개혁의 동력으로서의 그들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호민이란 사회,권력시스템의 부조리와 잘못된점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시때때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것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세상을 지켜보며 그 국가나 정권, 사회나 경제시스템이 더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망가졌다고 생각되면 분연히 일어나 세상을 개혁하는 용기있는 백성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혁명이 작동하는 방식


이렇게 허균은 백성을 셋으로 나누어 분류한뒤에 시대가 부패하여 변화가 일어날 시기가 되면 이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합니다.  


豪民伺國之?(호민사국지흔)
?事機之可乘(첨사기지가승) 
奮臂一呼於壟畝之上(분비일호어롱무지상)
則彼怨民者聞聲而集(칙피원민자문성이집)
不謀而同唱(불모이동창)
彼恒民者(피항민자) 
亦求其所以生(역구기소이생)
不得不鋤?棘矜往從之(불득불서우극긍왕종지)

以誅无道也(이주무도야)  


호민이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편을 이용할만한 때를 노리다가

팔뚝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즉시 원민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았음에도 함께 소리지르며

저들 항민도  

또한 제 살 길을 찾느라

얻을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호미, 곰방메, 창, 창자루등을 가지고 쫓아가서

무도한 놈들을 벤다 

허균은 혁명이 시작할때에 그 주체가 되는것은 겉으로 드러나서 늘 불평과 불만을 일삼던 원민이 아니라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호민이며, 그 호민이 원민과 항민을 뭉쳐내는 구심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작금의 우리사회에도 적용될만한 합리성을 갖춘 논리로서, 어느 정권에서나 떠들어대던 비판적인 세력들 (사회운동단체나 노조 혹은 수구화된운동권정당들)은 실제로 세상을 개변할만한 구심력을 갖추지 못하며 뒤에서 세상을 관망하던 용감한 이들이 떨쳐 일어날때에만이 전체 국민을 뭉치게하는 힘이 생긴다는것을 말해줍니다. 또 이들 호민은 원민처럼 항민과 거리감이 있는것이 아니어서 원민과 항민모두를 포용하는 구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뭉쳐진 백성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착취하고 탄압했던 사회시스템에 도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秦之亡也(진지망야)
以勝廣(이승광)
而漢氏之亂(이한씨지란)
亦因黃巾(역인황건)
唐之衰而王仙芝黃巢乘之(당지쇠이왕선지황소승지)

卒以此亡人國而後已(졸이차망인국이후이) 
是皆?民自養之咎(시개려민자양지구)

 而豪民得以乘其隙也(이호민득이승기극야)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또한 황건적 때문이었다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고 일어나

마침내 백성과 나라를 망하게 한 뒤에야 그쳤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백성들을 괴롭히며,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한 죄과이며 

호민이 그러한 틈에 편승하여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역사속에서 이러한 예를 허균은 지목하는데, 진나라를 망하게한 진승과 오광은 하찮은 군졸들로서 이들이 우연히 학정에 저항하면서 큰세력이 되어 훗날 왕을 자칭할만큼 커져서 결국 진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것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또 황건적과 황소의 난을 들어서 각각의 왕조가 망할때에는 비슷한 예가 있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민란의 원인이 바로 지배세력의 전횡에 있음을 허균이 지적한것입니다. 그것을 원인으로하여 호민이 세상을 뒤엎었다고 허균은 주장을 합니다.  


夫天之立司牧(부천지립사목) 
爲養民也(위양민야)
非欲使一人恣?於上(비욕사일인자휴어상) 
以逞溪壑之慾矣(이령계학지욕의)
彼秦漢以下之禍(피진한이하지화)
宜矣(의의)
非不幸也(비불행야)  


무릇 하늘이 벼슬아치를 세운 것은  

백성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였지

그 벼슬아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서

백성의 자유와 권익을 빼앗으라고 한것이 아니다

진나라, 한나라 말미의 난리는

마땅히 일어나야 할일이 일어난 것이고

어쩌다 일어난 불행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다

허균은 당시의 사회시스템이 백성을 돌보기는 커녕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며, 백성의 자유와 권익을 탄압하는것을 빗대어 말하면서 과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법이 없다고 질타합니다. 허균의 시대가 임진왜란 직후로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수탈당하고 선조때이후로 수구적이고 무능했던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허균의 질타가 바로 자신이 살던 시대를 경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민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균은 이 글의 뒤에 붙여서 그당시 조선사회는 가장 혼란했던 고려말보다도 백성들을 더 갈취하고 괴롭히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것은 바로 호민이 없기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上之人恬不知畏(상지인념불지외)
以我國無豪民也(이아국무호민야)  


그런데도 윗사람들이 태평스레 두려워할 줄 모르니

우리 나라에는 호민이 없기 때문이다.


또 글의 말미에서는 기득권세력에 충고하여,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치고 자제하여 백성을 두려워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글의 본심인즉 그러한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줄 호민의 각성을 촉구하는것 처럼 보이는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허균의 호민론에 사족을 붙인다면 지금의 시대또한 임진왜란이후의 혼란기에 못지 않을만큼 지도자와 기득권층의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친일파가 득세하여 국가의 역사가 왜곡되고, 이집트나 리비아처럼 국민들을 학살한 독재자가 호의호식하고 잘살고있으며, 국민들은 저 항민처럼 내가 사는 아파트가격만 오르면 어느놈이 대통령이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방관이 판을 치고 있으니 허균이 살던 시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만, 허균은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분명히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각성된 국민들이 있으며, 그들을 일컬어 호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혁명은 정치적인 것일까요?

 


이 사회를 바로잡는 혁명은 경제시스템의 개혁에서 시작될것


저는 정치적인 변화는 이미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즉 각성된 국민들의 힘으로 어떠한 정치적 타협도 없이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부터 그 호민들의 혁명이 시작되었고 지금의 과정은 2012년에 노무현의 유산을 누가 물려받아서 대통령이 되느냐하는 것 뿐이라고 봅니다.  


어느 한사람의 죽음으로  꿈이 좌절되는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꿈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이어져서 영속성있는 정치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달성될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정당간의 야합으로 머릿수만 채운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뜻에 충실한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정당이 존재하느냐에 달려있고 그것은 국회의원의 숫자가 많다고 달성되는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혁명이 2002년에 시작되었고, 지금은 그 과정에 불과하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의 혁명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이 정치를 근본적으로 휘두르고 조종하는 이 사회시스템의 뒷부분, 진짜 기득권은 경제시스템을 장악한 자들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제도 시장제도와 주식회사제도등을 통해서 진전이 되어야 하고 작금의 시장은 자본주의의 모습을 흉내만 냈을뿐 전혀 공평하지도않고, 경쟁도 없는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재벌이 단지 0.2%도 안되는 지분으로 거대한 그룹을 소유하고, 상속세나 증여세도 몇푼 내지 않으면서 그 부를 자식들에게 상속하며 경영권을 틀어쥐고 온갖 혜택을 누리는 이러한 재벌시스템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흉한 모습이며,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은 '경쟁'입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경쟁이 제한되고 계급의 한계에 부딪히며 노예로 전락한다면 이미 그 사회는 민주적인,자본주의적인 사회는 아닌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허균이 말했던 바로 그 호민이며, 인터넷을 통해서 소통하는 네트워크이며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남이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자는 원민,항민이며 여러분은 스스로 각성하고 행동에 옮기는 호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재벌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의 불합리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이지만, 저 역시도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습니다. 멀지않은 미래에 여러분들은 그 숨죽이고 기다렸던 호민들의 조용한 혁명, 피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혁명을 목도하게 될것입니다.  


저와 함께 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각 분야에서 깨어있는 호민(豪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호민이란 영웅이며 영웅은 어떤 뛰어난 일 개인이 아니라 각성된 백성들의 공동체를 일컫는 대명사일 뿐입니다.  

우리가 바로 영웅이고 호민이 되어야한다고 4백년 전의 허균은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자료출처 :  

http://blog.paran.com/kydong/27010504 - 호민론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67496  - 위키백과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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