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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코리아전쟁의 진실? (1탕)

 

 

코리아전쟁에 관하여 남조선의 18번 노래는 남침타령이다.

1950년 6월 25일 북조선이 느닷없이 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조선은 늑대(惡)요, 남조선은 양(善)이라는 흑백논리가 굳어졌다.

그러나 전쟁은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명료한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너무 빨리 끝나는 바람에 산더미처럼 쌓인 군수물자를 처분하기 위해 제국주의 미국이 기획연출한 침략전쟁이었다.

 

제국주의는 주기적으로 전쟁을 해서 먹고사는 악마적 파시즘이다.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큰 의미가 없으며, 조선전쟁은 갑자기 발발한 전쟁이 아니다.

 

“누가 처음 방아쇠를 당겼는지보다 전면적 충돌을 낳은 역사적/구조적 요인이 중요하다. 전쟁의 시작은 전쟁의 기원보다 여전히 덜 중요하다(The start of the war is still less important than the origins of the war).”는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타당하다.

존 머클로이+딘 러스크+찰스 본스틸이 일본의 항복 전에 38선을 그은 것은 미국의 코리아 분단지배 야욕을 잘 보여주는 증거인데, 1945년의 해방 후 일본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조선인들의 사회주의세력 지지율이 70%였기 때문에 이승만이 대통령 해먹을 욕심으로 1948년 8월 남반부 단독정부를 수립하자 김일성도 어쩔 수 없이 9월 북반부에 별도정부를 수립한 것부터 불행의 씨앗을 잉태했던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지적대로, 전쟁 이전의 토지개혁 덕택에 남조선 농부들이 북조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바,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토지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반도를 나누어 차지한 김일성은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승만은 자본주의로 통일하고 싶어 한 것은 당연했다.

 

김일성은 1949년도 신년사인 '국토의 완정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궐기하자'라는 제목의 연설문에서 국토완정론(國土完整論)을 제시하며 赤化통일을 지향했으며...

이승만도 北進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아침은 해주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白化통일을 획책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반도에서는 38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남북 무력충돌이 계속되었고 북조선 지역에서만 880건의 소규모 교전이 있었으며 1950년초의 옹진반도 전투와 개성송악산 전투처럼 2000-3000명 연대병력의 대규모 교전도 있었다. (남조선은 1947~1950.6.24까지 5150여차 무장도발. 1949년부터는 2617회.)

 

한편 6.25 이전 남반부에서는 분단정부 반대 무장투쟁이 빈번하였고 특히 대구+여수+순천+제주 등지에서 무차별 살육이 벌어져 10만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좌익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김일성이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도외시하고 전쟁을 벌였다기보다 이승만 치하의 남조선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유혈참극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6월 25일의 북조선 반격이 최대 규모였음을 기화로 남조선은 이 날을 전쟁개시일로 규정하여 <남침>을 기정사실화하고 <북조선 악마 만들기> 작업에 나섰던 것이다.

 

즉,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날이 1950년 6월 25일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조선이 북조선에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권투에서 상대방이 약한 jab을 여러번 얻어맞다가 강한 punch를 한번 날리자 그때부터 경기가 시작됐다고 우기는 경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예상보다 2년이나 빨리 끝나서 (참전기간: 3년 8개월) 엄청난 군수물자 재고로 군수업체(철강산업 포함)들이 파산에 몰리고 특히 군수식품(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군량미)은 썩어나서 대서양+태평양에 갖다 내버려야 했을 지경에다가 1948년부터 심화된 경제공황으로 새로운 전쟁이 절실히 필요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에서 돌아온 500만명의 군인들의 취업문제도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기회를 노리던 루즈벨트가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계획을 알면서 기다렸듯이, 트루먼은 북조선의 남조선 공격정보를 입수하고 472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겨둔 미군 위장철수 및 애치슨라인 설정 등, 속임수(오그랑수)를 쓰며 동족상잔의 멍석을 깔아주었던 주었던 것이다.

트루먼의 분신으로 알려진 애치슨(국무장관) 등이 작성한 비밀문건에는, 북조선군이 남침하면 유엔안보리를 긴급 소집하여 다른 회원국들의 찬성과 협조를 얻어 미국 주도의 ‘경찰행동’을 취하되 중국의 개입가능성에 유의해야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애치슨은 또 1950년 1월 미국언론협회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방위선은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열도를 거쳐 류큐에 이르는 것이라며, “미국원조로 강력해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명시적인 군사적 보호 약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언명했는데 이는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말이었다.

실제로 6월 24일 밤(현지시간), 친구들과의 만찬회 도중 북한의 남침 보고를 받은 딘 러스크(국무차관보)는 애치슨에게 전화하여 “이미 결정된 계획대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처리 하겠다”고 보고해 애치슨의 승인을 받았고, 애치슨도 곧 고향에서 휴가 중인 트루먼에게 전화하여 “이미 세운 계획대로 유엔에서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말고 예정대로 휴가를 다 마치고 돌아오라”고 건의했다.

그리고 에치슨은 1953년 10월 애치슨은 프린스턴 세미나에 제출한 문서에서 “한국전은 여러 면에서 이론의 영역을 현실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고 밝힌 다음 “한국전은 그 발발 이전 몇 개월 동안 비밀리에 긴급 건의된 정책들을 공공연히 채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에치슨라인 설정 사기극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8일 전에 주이라크 미국대사인 에이프릴 글래스피(여자)가 후세인을 만나서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벌이고 있는 국경분쟁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바람잡은 것과 흡사한 바, 이라크-쿠웨이트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암시로 후세인의 오판을 유도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흘만인 6월 28일 유엔 안보리에서 참전을 결의시켰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rogue state, 즉 악당국가이다.

바다의 깡패가 상어이듯이 지구의 깡패는 미국이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global_2&uid=159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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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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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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