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여러분은 현재 자아가 지닌 힘을 표현할 수 없거나, 아니면 이 책을 읽는 것보다, 새로운 인생을 즐기려고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지닌 힘은 장애를 받고 있으며,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외적인 제약이 아니라, 자신이 삶을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실제로 어떠한 제약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제약은 단지 여러분이 현재 지니고 있는 자기감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아의 힘을 여는 열쇠는 여러분이 지닌 자기감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기감을 통해 이해하고 있는 삶에 대한 인식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지닌 관념의 틀을 의심하기 위한 열쇠는 틀 밖에 존재하는 평가의 기준을 갖는 것입니다. 현재의 인식 필터를 통해 받는 세계관을 의심하기 위해, 여러분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현재의 관념의 틀 밖으로 얼마나 멀리까지 가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사실은 자아가 지닌 힘을 약화시키고, 자아가 지닌 거의 모든 힘을 차단시키는 세계관을 우리 대다수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힘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닌 세계관과 자기감을 아주 극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러한 변화를 일시에 가져올 수는 없으므로, 점진적인 길을 따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인간이 지닌 관념의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완만하게 출발하기 위해, 나는 기본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자기계발(self-help)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자기계발이라는 주제가 지닌 기본적인 개념은 여러분의 마음가짐과 마음 상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러한 주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관을 지니고 성장해 왔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지닌 감각과 일반적인 체험, 심지어 믿음체계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 장(章)에서 과학이 발견한 것들을 통해, 마음과 물질 간에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의심해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숨겨진 이유 찾기


간단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테이블에 앉아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공이 하나 놓여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그 공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어떻게 옮길 수 있나요? 마음의 힘을 사용하여, 공이 직접 굴러가도록 만들 수 있나요? 아니면 손이라는 물체가 공이라는 물체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이용하여 손을 움직이게 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힘을 사용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의문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은 마음과 분리되어 있어!, 아니면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니야?” 만약 공과 마음이 서로 간에 연결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마음은 분명히 공을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만약 마음이 어떤 하나의 재료로부터 만들어졌으며, 공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재료로부터 만들어졌다면, 마음의 재료는 물질의 재료를 절대로 변화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은 여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 시대에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물체의 움직임을 실제로 관찰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과학이 밝혀낸 다른 발견들을 살펴보고, 이것들이 마음과 물질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는 개념은 우리의 감각적인 인식에서 보면, 아주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눈은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으로는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은 왜 이것을 인지할 수 없을까요? 우리가 지구와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이 지구의 바깥에 존재하는 평가 기준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을 통해 배워야 하는 첫 번째 과제는 우리의 감각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 말은 육체적인 감각이라는 인식 필터의 바깥으로부터 어떤 것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과학은 우리가 여러 개의 층들 혹은 단계들을 지닌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표면뿐이며, 과학자들은 이것을 육안적 구조(macroscopic level:육안으로 판별이 가능한 범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육안적 구조를 뛰어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해 왔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육체, 산 혹은 토스트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분자라고 불리는 보다 작은 건축용 블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분자는 이보다 더 작은 블록들, 즉 원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원자는 다시 소립자(elementary particles)라고 불리는 더 작은 블록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과학으로부터 얻게 된 다음번의 이해는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과 관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만약 손으로 공을 밀면, 그것은 분명히 공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보이는 현상들 뒤에 숨어 있는 원인은 더 높은 혹은 더 깊은 차원의 세계를 살펴보아야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더 깊은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물건이 지니고 있는 형태와 그것들이 작동하는 형태는 원자의 단계에서 보면, 어느 정도는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알게 되는 것처럼, 심지어 원자의 세계도 보다 더 깊은 차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통해 증명된 또 다른 중요한 이해는 우리의 감각으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성이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단지 겉모습뿐이라는 것입니다. 육안적 구조를 벗어나게 되면, 다시 말해 더 깊이 혹은 더 높이 올라갈수록, 다양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물건들이 지구에 수도 없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108개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들은 3가지 형태의 소립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지배하는 마음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요소들은 일종의 상식이며,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단지 감각에 기초한 거시적인 세계관이라는 인식 필터를 뛰어넘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관념의 틀을 실제로 훨씬 더 멀리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감각에 기초한 세계관에서 보면, 세상이 놀랄만한 첫 번째의 도전은 1905년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물리학 선생님은 세상은 두 개의 요소, 즉 물질과 에너지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나는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들었지만, 내가 배웠던 것은 여전히 두 개의 요소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이원성적인 세계관에 토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의 공식, 즉 E=mc2에 의하면, 원자의 분열을 통해 물질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유사하게 배웠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성장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 자문해 보면, 물질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원자를 분열시키면, 왜 거대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될까요? 간단한 답은 원자를 분열시키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원자의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에너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뿐입니다. 오케이, 그러면 원자의 내부에는 왜 에너지가 존재할까요?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이 진실로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905년 이후, 나는 감각에 기초한 우리의 세계관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감각으로 단단한 물체라고 감지하는 것이 실제로는 전혀 단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졌으며, 에너지는 어떠한 형태의 진동, 즉 끊임없이 진동하는 파동입니다. 단단하며, 변할 수 없다고 여겼던 물체가 사실은 정지해 있는 형틀(stationary matrix) 속에 에너지의 파동들이 갇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단단한 물질이 유동적인 에너지로 다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는 무한히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에너지의 파동은 그 에너지가 지닌 진동적인 특성을 변화시킴으로써, 다른 에너지 파동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마음과 물질 간의 장벽을 허물어뜨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에너지의 파동들로부터 만들어지게 되며, 생각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성이론에 기초하여, 인간의 마음은 현재 “단단한” 물질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 파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에너지 파동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단단하며,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체도 사실은 정지해 있는 형틀(stationary matrix) 속에 에너지의 파동들이 갇혀 있는 것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지닌 힘을 사용하여 물질적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라 할 수 있는 자기계발이 1905년 이후부터 과학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 실재적인 잠재력을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으로 인해, 우리는 일반적인 관념의 틀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질 너머의 세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난 후, 물리학자들은 매우 흥분했으며,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을 토대로, 원자의 내부 세계를 연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들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 부르는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으며, 진실로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로 보게 될 것은 소위 파동-입자라는 이원성입니다. 감각에 기초한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이든, 그것은 파동이든지, 아니면 입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소립자의 “실체”는 때로는 입자로, 때로는 파동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나는 이를 통해, 거시적인 인식의 필터를 뛰어넘어,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소립자라는 실체가 근원적으로 파동 혹은 입자보다도 더 큰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이 파동-입자라는 인식의 필터를 아원자의 세계에 억지로 적용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이들은 때로는 파동의 속성을, 때로는 입자의 속성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임금님의 새 옷과 같은 것이며,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지닌 인식의 필터에 눈이 너무 멀어 있어, 아원자의 입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이 아원자의 세계를 연구할 때, 이들이 실제로 물질세계와 물질을 벗어난 더 큰 세계 사이의 경계선 상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더 큰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stuff:재료)”은 우리가 형태라고 이해하는 형태는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물질은 아직까지 우리가 입자나 파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고착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입자 혹은 파동의 형태를 취할 가능성은 지니고 있으며, 이 물질이 띠게 될 특정한 형태는 인간이 행하는 행위에 의해 분명히 영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입자를 예상하면,  ”양자 물질(quantum stuff)“은 입자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며, 파동을 예상하면, 그와 같은 형태를 띠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단단하고, 변할 수 없는 입자들로 구성된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어 왔던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고정된 형태는 지니고 있지 않지만, 어떤 형태든, 형태를 지닐 수 있는 양자 물질로 구성된 세계와도 같은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마치 양자 물질이 어떠한 형태를 띠도록, 우리의 마음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양자 측정의 수수께끼


물리학자들이 아원자의 세계를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독립된 개체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곧바로 양자의 세계에서는 분리된 객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입자 가속기를 사용하여, 아원자의 입자를 연구할 때, 과학자들의 마음으로부터 결과는 독립적이지 못 했습니다. (마음이 영향을 미치게 됨) 그 대신에, 결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산물로, 즉 입자 가속기, 아원자 입자 그리고 과학자들의 마음이 결합된 결과물로 나타났습니다. 아원자의 세계에서는 객관적인 관찰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원자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과학자의 마음은 실험의 결과에 근본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또한 물리학자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서는 아주 잘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들이 아원자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자연의 법칙들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로켓이 화성으로 가는 경로는 아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지만, 핵 둘레를 돌고 있는 전자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유물론자도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것을 소개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 즉 물질은 단지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사실로 돌아가겠습니다. 물질은 형틀(matrix) 속에 갇혀 있는 에너지이며, 따라서 비-국소적인(non-local) 파동처럼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소적인(localized) 입자처럼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이러한 지점을 통과하게 되면, 에너지는 입자의 형태를 띠게 되며, 따라서 우리의 감각과 과학적인 도구로 감지할 수 있는 것들로 결합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이며, 이 세계는 우리가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의 지배를 실제로 받게 됩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세계에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며, 따라서 이러한 것들 혹은 자연의 법칙들에 인간의 마음은 직접적으로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양자 물리학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내 설명은 여러 개의 층들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증명했다는 것입니다. 양자 물리학이 출현할 때까지, 과학자들은 전체의 세계라는 오직 하나의 층, 하나의 주머니, 즉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양자의 세계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의 또 다른 일부가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인 층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양자의 세계에서는 자연의 법칙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며, 분리된 입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소위 아원자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물리학자들은 이 세상을 마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와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양자의 단계에서는 분명히 그렇지가 않습니다. 진보적인 물리학자들은 세상이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마음을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양자 물리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과학은 더 이상 마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척해야 할 분야는 우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개척해야 하는 것은 의식입니다. 물론, 자기계발과 영적인 스승들이 한결같이 말해오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