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동양의 종교들은 카르마라는 개념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카르마는 기독교의 죄라는 개념에 어느 정도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현대의 영성인들 중에는 이러한 개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승한 마스터들은 카르마라는 개념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영적인 길이 바로 카르마를 청산하는 것이 아닐까요?


상승한 마스터들은 카르마의 실체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카르마는 다양한 여러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카르마를 이해하고 나면,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수준은 아주 다양하므로, 어떠한 하나의 영적인 가르침이 절대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스터들은 다양한 의식 수준에 적합한 여러 가지 다양한 가르침들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적인 가르침들이 카르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부 동양의 종교에 따르면, 카르마가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하게 되면, 좋지 않은 카르마(악업)을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행위들은 좋은 카르마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니르바나(열반)에 들기 위해, 구원을 받거나 혹은 상승을 하기 위해, 이 번의 생과 지난 과거의 생들에서 쌓은 나쁜 카르마를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나쁜 카르마를 청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사고(事故), 질병 혹은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좋은 카르마, 즉 봉사 혹은 자선활동을 함으로써, 좋은 카르마를 만들어냄으로써, 나쁜 카르마를 상쇄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영적인 수련을 통해, 나쁜 카르마를 청산함으로써, 보다 높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보다 빠르게 얻을 수도 있습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은 카르마와 행위에 대해 이러한 가르침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실례로서, 1930년대에, 성 저메인이라는 마스터는 보라색 화염을 소개한 바가 있으며, 보라색 화염은 카르마를 청산하는데 아주 적합한 영적인 에너지입니다. 또한 성 저메인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라색 화염을 기원하는 많은 디크리들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카르마가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은 카르마의 의미를 실제로 아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soul)”이라는 용어에서 보았던 것처럼, 많은 영적인 가르침들은 영혼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은 영혼이라는 개념에서처럼, 카르마에 대해서도 보다 높은 수준의 이해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마스터들의 말에 따르면, 인류가 진보해 감에 따라, 우리는 여러 단계들을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구약의 시대에서는, 실제로 외적인 행위들을 개선하기 위한 입문과정들을 거쳐야 했으며, 이것은 카르마가 행위라는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준의 가르침에 따르면, 부정적인 카르마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삼가고, 긍정적인 카르마를 만들어내는 행위들을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구약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실이 “너희는 이런저런 행위들을 해서는 안 되며, 그러면 나쁜 카르마는 만들어내지 않게 될” 것이라는 10계율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개념도 들어 있으며, 이것은 누군가를 죽이게 되면, 그러한 카르마를 상쇄시키기 위해, 자신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 방식이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어떤 단계의 의식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나쁜 카르마를 적게 만들어내기 위해, 외적인 행위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들의 행위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신들에게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로서 카르마를 가르치는 것이 유효한 것이지만,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실제로, 인류는 예수님의 시대인, 쌍어궁 시대에, 카르마에 대한 이해를 더 높여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다른 쪽 뺨마저 내밀어, 용서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의 원리를 훨씬 뛰어넘으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도 말씀하셨으며, 이 말은 대단히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숨겨진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의식 상태를 비유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적인 어떠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의식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카르마를 청산하는 데에는 단순히 외적인 행위를 개선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태를 개선하는 것도 또한 필요하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식을 통해, 우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에 기초하여, 우리의 행동은 언제나 우리의 의식과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는 상황들로부터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의식적인 마음으로 하는 의사결정에 기초하여, 어떠한 행위를 하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결정은 중립적이거나 혹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사결정은 우리의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마음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정신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라는 만화경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와 믿음들로 인해 생겨난 산물입니다. 이것에 기초하여, 우리는 3가지 형태의 카르마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카르마


우리는 모든 것이 에너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카르마가 오직 행위들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에너지라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에너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물리적인 행위를 하게 될 때, 실제로는 우리가 에너지적인 자극(energy impulse)을 만들어내서, 그러한 충격을 외부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극을 우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시공간의 연속체(space-time continuum)”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연속체가 폐쇄된 회로(closed loops)를 형성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 동일한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되면, 결국에는 반대편에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시공간의 회로 내부에 존재하므로,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카르마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지구 행성은 단지 더 큰 에너지의 장, 혹은 에너지의 연속체 중에서 보이는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이러한 연속체에는 4개의 층들, 즉 에테르, 정신, 감정 그리고 물질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누군가를 죽이는 어떠한 행위를 한다고 합시다. 그러한 행위는 에너지적인 자극을 만들어내게 되며, 이러한 자극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에너지 회로로 보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에너지는 4개의 층들을 통해 순환하게 될 것이며, 어느 시점에서 반대편의 방향에서 원래의 지점 (물질의 세계)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카르마적인 에너지의 자극이 되돌아오게 됨에 따라, 이 자극은 여러분의 삶에서 사고, 질병, 혹은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어떠한 사건들을 촉발시킬 수가 있습니다. 카르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건을 설명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이 원죄(original sin)에 따른 하나님의 벌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러한 설명으로는 대다수의 영성인들이 지닌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유물론자라면, 이러한 사건은 완전히 무작위적인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여러분은 안심해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카르마를 인정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건을 피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르마가 이전의 삶에서 우주의 회로로 보낸 에너지적인 자극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러한 충격이 빙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와, 삶에서 좋지 않은 사건을 촉발시키기 전에, 그러한 에너지적인 자극을 상쇄시킬 수 있는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낮은 주파수의 에너지를 중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공동 창조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학에 따르면, 에너지는 파동으로서, 움직이는 어떠한 형태의 진동이라고 합니다. 가시적인 사례로서, 쓰나미(tsunami)를 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다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파동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파동을 만들어내게 된다면, 두 개의 파동들은 서로 만나, 서로를 상쇄시키게 될 것입니다. 두 개의 파동들이 만날 때, 이 파동들은 과학자들이 간섭무늬(interference pattern)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하게 됩니다. 하나의 파동이 다른 진동을 지닌 또 다른 파동과 부딪치게 되면, 간섭무늬로 인해 완전히 잠잠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파동이 또 다른 파동을 중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인 의식(儀式)을 통해 카르마를 청산할 수 있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식(儀式)을 통해, 높은 주파수를 지닌 에너지를 만들어서, 우주의 4개 층 속으로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돌아다니면서, 과거의 생에서 만들어냈으며, 앞으로 돌아오게 될 카르마의 파동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높은 주파수의 에너지를 충분히 보내게 되면, 돌아오는 카르마의 에너지 파동은 물질적인 사건을 촉발시키기 이전에 중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에테르계, 정신계 그리고 감정계에 존재하면서, 앞으로 돌아오게 될 카르마를 물질계로 내려가기 이전에 중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카르마는 에너지적인 충격으로서, 그러한 자극이 빙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와, 삶에서 좋지 않은 사건을 촉발시키기 이전에, 이러한 에너지적인 자극중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것은 보라색 화염을 기원하는 것과 같은 영적인 의식(儀式)을 실천하는 것이며, 우리는 과거의 나쁜 카르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잠깐만, 서두르지 마세요.


정신적인 카르마 (Mind karma)


상승한 마스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한편으로 카르마는 물질적인 요소, 즉 우주로 보내진 에너지적인 자극을 확실히 지니고 있지만, 이것이 카르마에 존재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카르마는 또한 정신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으며, 정신적인 요소를 처리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카르마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원인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결과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생에서 무엇이 카르마적인 자극을 만들어냈을까요? 그것은 그러한 생에 우리가 지녔던 의식 상태였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카르마적인 자극을 내보내게 했던 의식 상태를 내가 과연 초월했는가?”라는 실질적인 의문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카르마가 무엇일까요? 글쎄요, 서구에서도 많은 영성인들이 카르마를 인정하지만, 기독교적인 죄라는 유산으로 인해, 나쁜 카르마를 어떠한 형태의 벌로 여기는 성향이 있습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은 영적인 세계에 사는 어떠한 존재도 인간을 벌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카르마에 대해 아주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스터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유의지를 행사하는데 대해 별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배우기를 바라시며, 여러분이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방법을 통해 배울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왜냐하면 물질의 빛은 물질의 빛에 투사되는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든지, 그러한 이미지의 형태를 지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행한 선택이 어떤 것이든, 여러분은 그러한 선택의 결과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가 자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닌 공동 창조의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우리는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이미지를 감정이라는 동력에 주입하여, 우주로 보냄(물질의 빛 위에 투사함)으로써, 우리가 지닌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전혀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물질의 빛이 물질의 빛 위에 우리가 투사한 이미지를 물질적인 형태나 사건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가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카르마는 벌이 아닙니다. 카르마는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과 정신적인 마음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에 기초하여,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러한 이미지에 감정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주입하게 되며, 그런 다음 그러한 에너지를 순수한 정신적인 자극으로 혹은 물질적인 행동으로 투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보낸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물리적인 환경으로 물질의 빛이 되돌려줄 때, 여러분은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으면, 내보내는 것을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주의 거울은 필연적으로 여러분이 거울 속으로 투사한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환경들로 반사되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승한 마스터들이 여러분을 심판하거나, 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유쾌하지 않은 물질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정신적인 이미지들을 계속 내보냄으로써,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승한 마스터들은 여기에 대해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마스터들은 언제나 여러분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여러분이 특정한 선(線)을 넘을 때까지, 즉 돌아오는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보내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때까지, 결코 여러분을 도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스터들은 여러분의 행위에 따른 결과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여러분을 보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마스터들은 여러분이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뿐이며, 그러면 필연적으로 결과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