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과 함께 여러 차례 걸었으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았습니다. 확실히, 서로 다른 여러 형태의 반응들이 있었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직접 만났지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이 느꼈던 특별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식을 지녔으며, 이 세상의 어둠 속으로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빛을 비출 수 있는 열린 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사람들은 내적인 기억이 깨어났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그러한 내적인 기억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부정하거나, 이원성적인 논리로 변명하고자 했지만, 어쨌든 이들도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빛나는 더 큰 빛을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어, 그 빛을 섬기든지, 아니면 반-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어둠을 계속 섬기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닐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자신들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닐 수 있다고 인정하려 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입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그 마음을 자신들의 마음속에도 있게 할 수 있는(빌립보서 2:5) 가능성을 부정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진정한 선택입니다. 사람들은 반-그리스도라는 거짓된 지도자들을 계속 따를까요, 아니면 이원성으로부터 분리되어,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게 될까요?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선택에 반드시 직면해야 하며, 여러분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길로 나아가, 세속적인 자아를 부정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본보기를 보다 쉽게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그러한 길을 따르고, 자신의 더 큰 부분인,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음에 따라, 여러분은 진실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선택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받았으므로,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을 부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따를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부정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역할은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어느 정도의 그리스도 신성을 구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은 가지고 있지 못한 뭔가를 여러분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닌 뭔가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하나님의 태양(Sun of God)인, 더 큰 빛입니다.


그 빛을 의식하게 될 때, 삶에는 더 큰 것이 존재한다는 내적인 기억이 다시 깨어나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기억을 진실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여러분을 보고, “이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아. 이 사람이 하나님의 빛을 가져올 수 있는 열린 문이라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가 되기 위해, 이 행성에 오셨던 것입니다. 거짓된 교사들이 기독교에 침투하여, 예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거짓된 교사들이 만들어놓은 우상을 꿰뚫어보고,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렇게 할 때에만, 집단적인 각성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본보기를 통해, 확인될 수가 있으므로,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는 자신들과 아주 다른 사람이며,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요한복음 14:12)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아주 다른 존재이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났으며, 태초부터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으며, 자신들은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본보기로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 행성의 거짓된 교사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본보기를 말살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명을 훼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교사들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 즉 거짓된 교사들과 이들의 가르침들이 필요하다는 거짓말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예수님께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1)”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거짓된 교사들의 음모는 예수님의 사명을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이 강좌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명이 이 행성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무한히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 여러분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며, 그래야 그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으며, 반-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밖에 있는 적, 즉 이 세상의 왕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적, 즉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 사랑에는 조건이 없으며, 나는 여러분을 이러한 세속적인 자아 속에 가두어두는 어떠한 상황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줄 진리를 담고 있는 이 강좌를 전해주기 왔으며, 만약 여러분이 이 강좌를 받아들여, 여러분의 전체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누룩이 되게 한다면, 그리고 내가 전해주는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진실로 이 진리가 반-그리스도의 모든 거짓말들로부터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내가 하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이원성적인 믿음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감옥 속에 살고 있으며, 감옥의 밖에 존재하는 것들을 전혀 보지 못 했습니다. 이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벽돌 상자의 내부에 살고 있으며, 어둠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옥의 문을 열면, 밝은 햇빛이 그 문을 통해 비칠 것이며, 어둠이라는 환상은 즉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서, 어둠이란 실체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불멸의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은 여러분을 지배할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불멸의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실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존재 속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 이원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환상을 몰아낼 때, 비로소 여러분은 그러한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깜깜한 방 안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켜면, 확인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여기에서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삶의 목적은 허공이라는 어둠 속으로 빛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원래의 허공은 그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어둡습니다. 어둠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단지 빛의 부재(不在)일 뿐입니다. 허공의 어둠은 인간이 악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로 실험을 했기 때문에, 두 개의 상대적인 극성들로 인해, 하나님의 빛과 허공이 지닌 원래의 어둠이 모호해지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거짓된 교사들인, 눈먼 지도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과 악에 대해, 자신들만의 상대적이고, 이원성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악은 어둠으로 보이며, 선은 빛으로 보이게 되며,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린도후서 11:14)”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빛 혹은 허공의 어둠이라는 진실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것들은 궁극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반-그리스도의 마음속에 갇혀 있는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에 의해, 물질의 빛 위에 투사된 일시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속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악이 실제로 실체가 있으며, 하나님의 반대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 혹은 정치적인 인물들이 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실에 따라, 실제로 선이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의식에서 생겨나는 선과 악은 궁극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환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빛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상대적인 선에 불과하며, 이것 역시도 환상으로서, 더 큰 선, 즉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절대적인 선의 부재(不在)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행성에서 선과 악 사이에 싸움이 존재한다는 환상에 토대를 둔, 끝없는 게임 속에 갇혀 있습니다. 싸움은 단지 상대적인 선과 상대적인 악 사이의 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두 개의 세력들은 모두 이원성적인 의식에 의해 정해지게 됩니다. 이것들은 서로에게 실체가 없으며, 그들 속에는 어떠한 진실과 생명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이러한 환상들 뒤에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진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반-그리스도의 의식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진실에는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반대한다고 믿고 있지만, 이러한 반대는 이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들이 전체(All)와의 분리로부터 태어난 세속적인 자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한 반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 속에 어떠한 실체도 없으며, 어떠한 생명력도 없습니다. 이들이 이 지구에서 구축해온 모든 것들은 바벨탑과 같은 것입니다. 하늘에 도달할 수 있는 탑을 쌓음으로써, 이들은 힘으로 하늘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탑은 틀림없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을 수축하는 어머니의 힘이 허물어 버리듯이, 그것도 허물어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교활한 뱀과 같은 게임, 즉 이원성적인 게임을 계속 즐길 수가 있으며, 따라서 악이라고 믿고 있는 세력들에 맞서 싸움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이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편에서 싸우는 영적 혹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반-그리스도의 이원성적인 게임에 저당 잡혀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이원성의 어느 쪽도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진실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나 대의명분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제로는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토대를 둔, 환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사람으로서, 악한 사람과 맞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내밀어라. (마태복음 5:39)”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나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상대적인 선악이라는 이원성적인 게임에서 벗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사악한 사람과 싸움으로써,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이원성적인 의식 상태에 더 단단하게 갇히게 할 뿐입니다.


남은 생의 기간 동안, 심지어 여러 생에 걸쳐, 여러분은 이러한 게임을 계속 즐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끝없는 투쟁에 싫증이 나게 될 때, 대안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기 위해 나는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두 개의 세력들 간에 끝없는 이원성적인 투쟁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하나됨으로 인도해줌으로써, 모든 투쟁에서 벗어나게 해줄 길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분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1:17) 상대적인 모든 선과 악은 하나님의 태양이라는 하나의 빛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그 길을 인류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 길을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끝 날이라는 말의 의미는 많은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것처럼, 지구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끝 날이란 이원성의 종식, 즉 이 행성에서 이원성의 지배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 날은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올라서는 시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을 이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도록,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지구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제 지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지구를 영원히 지배할 왕으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건의 선구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반-그리스도의 거짓말을 체계적으로 제거하여, 자신의 존재를 정화해야 헙니다. 이러한 참된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나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갈 것입니다. 이 길은 고난의 길(Via Dolorosa)이 아니며, 끝없는 투쟁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길은 사랑의 길이며, 기쁨의 길, 자유의 길 그리고 풍요로운 삶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원성적인 투쟁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바꿈으로써, 여러분은 투쟁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곧바로 시행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결심이며, 여러분은 과거에 결심할 수가 없으며, 미래에 결심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지금 현재에만 결심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언제든지 투쟁을 버리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삶이 투쟁이라는 이미지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까지, 여러분은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삶이 투쟁이라는 이미지를 지금 당장 버리고자 할 때, 비로소 그러한 결심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결심을 할 때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은 지금도 세속적인 자아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당될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 강좌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러한 세속적인 자아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나는 필요한 도구들을 전해주게 될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의 자유, 진실로 존재하는 유일한 시간인 영원한 현재 속에서,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으며, 언제나 여러분의 것인 자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