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全) 생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에게 태양이 지닌 훌륭한 속성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을 볼 수 있도록 설득한다고 해보세요. 그 사람은 여러분을 따르려고 하겠지만, 문 앞의 계단에 서서, “비용이 얼마나 되느냐?"라고 묻게 됩니다. 여러분은 “비용은 들지 않아, 마음껏 태양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해줍니다. 그는 곧바로 의심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며, 태양이 공짜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태양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은 그 사람이 태양을 보는데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인류도 이 사람과 같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속적인 자아라는 동굴 속에서 전 생을, 심지어 여러 생에 걸쳐 삶을 살아 가고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위 자아라는 태양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태양이 동굴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줄 스승들과 메신저를 보내게 되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스승을 따르고자 할 때, 문지기(doorkeeper)로 변장을 하고 있는 이 세상의 왕은 동굴을 떠나기 앞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을 그냥 통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완강하게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면서, 동굴 속에 계속 무한정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필요치도 않은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행한 선택들과 잘못 권능을 부여한 에너지들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그러한 선택들을 무효화해야 하면, 에너지의 진동수도 끌어올려야만 합니다. 외적인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이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과거를 회피하려고 해서는 해결될 수가 없으며,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들을 행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하늘나라로 가는 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출입구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데, 자신의 외부에서 그러한 출입구를 찾고자 한다면,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외부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출입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늘에 이르는 길은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며,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출입구를 볼 수 없게 하는, 하위의 4개 몸체들 속에 지니고 있는 쓰레기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세속적인 정체감 속에 여러분을 묶어둠으로써, 삶에 대한 세속적인 의식을 버리지 못하도록 끌어당기고 있는 자력도 극복해야 합니다. 이원성적인 믿음들을 지녀서는 하늘나라에 들 수가 없습니다. 이원성적인 마음으로,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강요하거나, 하나님께서 마지못해 들여보내 주는 방법은 말 그대로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왕은 - 많은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 이러한 사실을 강력하게 부정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이원성적인 믿음들의 희생양들이며,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즉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마태복음 19:24)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소유하고 있으며, 천상에 들어가기 위해, 재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유의지에 반하는, 불완전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불완전한 믿음을 버리고자 선택해야 하며, 가장 먼저 그러한 믿음이 하위의 4개 몸체들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했던 것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할 때까지,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힘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회피하려는 습관을 유지함으로써, 여러분은 말 그대로 하위의 4개 몸체들이 지니고 있는 불완전한 믿음들 속에 자기 스스로를 계속 가두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며,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 불완전한 믿음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회피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바꿀 수가 있으며, 삶을 긍정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회피하려는 습관을 포함하여, 습관을 버리기가 어려운 이유는 하위의 4개 몸체들 속에 저장되어 있는 부적격한 에너지들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되거나, 아니면 어떠한 패턴들 속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부적격한 에너지들을 제거함으로써, 불완전한 믿음들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어려운 의사결정들을 회피하려는 습관이 아주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습관의 핵심은 가능한 최선의 의사결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이원성적인 의식으로 내려가게 됨으로써,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통합된 시각을 더 이상 가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는 언제나 많은 옵션이 존재하며, 각각의 옵션을 지탱해주는 주장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선택하기가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볼 수 있는 모든 옵션들은 이원성적인 의식에 의해 정해지게 되며, 그러한 옵션들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빼도 막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선택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더 이상 의사결정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명확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갑자기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원성적인 의식이라는 정글 속으로 빠지기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불편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자아라는 형태로 여러분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26) 이 보혜사는 여러분의 내면의 스승으로서, 여러분을 나선형의 계단 위로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하나하나의 계단마다,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 자아는 필요한 안내를 제공해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지시를 받기 위해, 여러분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반드시 요청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 이것은 극복해야 하는 각각의 이원성적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다소 거북하더라도, 참된 스승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잘못된 믿음들을 노출시켜,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삶의 영적인 측면들을 찾아내고, 고차원적인 안내라는 개념을 깨닫게 된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 혹은 나에게 기도를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다른 영적인 인물들에게, 그리고 일부는 자신의 상위 자아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회피하려는 습관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한,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답들을 절대로 받을 수가 없으며, 앞으로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요청하면, 답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문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들은 진실로 스스로를 도우려고(help to help themselves)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안내를 원치 않고 있으며, 자신들은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마술과 같은 극적인 해결책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자립적인 공동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회피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기준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거짓된 스승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돕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참된 스승은 그러한 습관과 의지를 강화시키는 어떤 것도 결코 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의사결정을 회피하려는 마음상태에서 요청을 하게 된다면, 참된 스승의 대답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 대신에, 세속적인 자아, 혹은 외적인 스승이라는 거짓된 스승의 답을 듣게 될 것이며, 외적인 스승은 여러분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자신을 따르기를 바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로서의 여러분의 책임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개체성을 지니도록 여러분을 창조하고, 여러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며, 그리고 자유의지를 행사해볼 수 있는 전(全) 우주를 창조하심으로써, 일을 하고 계십니다. 공동 창조하는 것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그러한 토대 위에 쌓아가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의사결정을 회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세속적인 자아가 만들어냈거나, 세속적인 자아가 지니고 있는 불가능한 꿈으로, 세속적인 자아는 여러분을 대신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회피하려는 생각이 지닌 오류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습관을 버리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내적인 안내가 훨씬 더 명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이러한 안내를 따름으로써, 여러분은 내적인 스승의 소리를 들을 수 능력을 키워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장을 제약하는 결과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도와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스승의 안내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삶을 상향 나선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의사결정을 해줄 스승을 계속 찾고 있는 한, 여러분은 하향 나선 속에 머물게 될 것이며, 삶은 지속적인 투쟁이 될 것입니다.


앞장에서 내가 말했던 것, 즉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했던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 여러분을 책망하시지 않으신다는 것 위에 쌓아감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보다 쉬워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치심, 죄의식 혹은 낮은 자긍심(Low Self-Esteem)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이들은 강한 죄의식 혹은 수치심 빠져, 자신들의 자긍심이 훼손될 거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다시, 감정의 강도는 감정체 속에 축적되어 있는 부적격한 에너지들로 인해 유발됩니다. 그러한 에너지를 제거함으로써, 강도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완벽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시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며, 그러한 자유의지를 실험해볼 수 있는 권리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선택을 했다고 해서, 여러분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러한 선택들을 통해, 여러분이 배우고, 그러한 선택들과 선택에 따른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느낌들로 인해, 오히려 교훈을 배우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잘못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도 않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필요한 교훈을 배우고 난 후, 실수를 하게 했던 이원성적인 믿음들을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지른 모든 잘못들은 이원성적인 의식, 즉 반-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이원성적인 의식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여러분의 참된 존재의 일부가 아니며, 또한 자아라는 구체의 필수적인 요소도 아닙니다. 참된 여러분, 즉 본연의 여러분인, 불멸의 영적인 존재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잘못들을 저지르게 된 것은 일시적으로 여러분이 이원성적인 의식에 기초한 정체성을 구축했기 때문이며, 궁극적인 면에서 보면, 이러한 정체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지나치게 극단으로 몰아가, 그러한 의사결정에 의식적인 여러분이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못 합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의사결정을 했지만, 그렇게 하게 된 것은 의식적인 여러분이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로 더 이상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은 보다 적은 정체성이라는 필터를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필터, 즉 하나님과의 분리에 기초한 이러한 정체성은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분의 일부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위로 올라가, 자신의 불멸의 정체성과 다시 연결됨으로써, 그러한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의식적인 의지에 따른 행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의사결정을 회피하려는 것을 반드시 멈추어야 하며, 또한 세속적인 정체성을 반드시 죽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체성을 전혀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세속적인 정체성을 대신하여 입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자아를 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체성의 몸체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최고의 정체성을 찾아내야만, 세속적인 정체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라는 것을 알고, 충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속적인 정체성을 죽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긍심, 즉 그리스도의 바위 위에 자긍심을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본연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창조자이며, 창조주께서 지구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할 권리를 주셨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지니고 성장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여러 생에 걸쳐, 어떠한 기대감을 구축해 왔습니다.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자신을 위해 상황을 훨씬 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가장 교묘한 기대감들 가운데 하나는 정확하게 말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완벽해지는 것을 요구하신다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분이 인간을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기준에 따라, 끝까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천상으로 상승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존재들, 그리고 지구 행성에서 마지막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지구 위를 걷었을 때,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완벽했던 존재들은 아니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에는 상승해 있는 존재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구에 존재했을 때,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아주 많은 기독교들이 완벽했었다고 믿고 있는 예수님조차도 그랬습니다. 

  

상승한 존재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 존재들이 아니며,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통해 배우고 난 후, 그러한 잘못을 버렸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천상에 있지 못하게 하고, 또한 풍요로운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한 가지는 여러분이 어떤 것들에, 즉 과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풍요로운 삶 속으로 뛰어들게 하고, 여러분을 천상으로 올려 보내주는 한 가지는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버리고, 과거를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자아와 이 세상의 왕은 과거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활한 거짓말이며, 진실은 과거의 모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완전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불완전한 것들을 반드시 버리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간단한 문구를 마음속에 새겨두세요. 천상으로 가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버리느냐에 있다는 것을.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반면에 제 목숨을 잃고자 하면, 다시 말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이원성적인 정체성을 잃고자 하면, 불멸의 삶을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5)”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