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과 권력, 섹스, 음식, 쾌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많이 얻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으며,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향 나선이 됨으로써, 이들에게 어떠한 대가도 제공하지 않고, 이들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만족감, 행복감, 혹은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 절대로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에는 전 생(生)을 불태워 가며,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잘못된 욕망들을 끝임없이 충족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다 영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이러한 패턴에 완전히 갇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가 설명한 속성들을 지닌 어떠한 욕망들과 동일시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과 동일시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것들을 보다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들을 다스리고, 자신의 존재로부터 제거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욕망들은 언제나 여러분의 감정을 잡아당겨, 영적인 삶을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최선의 노력들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욕망들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잘못된 욕망들을 끝없이 충족시키려고 하는 패턴 속에 갇히게 되기를 바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속적인 자아와 이 세상의 왕에 의해 그러한 욕망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목표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세속적인 욕망들을 추구하는데 계속 몰입해 있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실현할 수 없게 하고, 신성한 계획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른 목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항상 원하는 나선 속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여, 에너지에 권능을 잘못 부여하게 함으로써, 세속적인 자아와 이 세상의 왕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젖을 짤 수 있는 젖소로 여러분을 여기고 있으며, 그런 다음 더 이상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면, 폐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러한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잘못된 모든 욕망들을 억지로 억눌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이것은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열쇠는 잘못된 욕망은 정말로 참된 욕망의 왜곡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참된 욕망이 지닌 주요한 속성들 가운데 하나는 결핍이 아니라, 풍요라는 느낌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을 정도로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욕망이 지닌 또 다른 주요 속성은 어떤 것도 갖고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주는 것 속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감정적인 보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욕망들은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느낌은 내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 즉 온전하다는 느낌, 완전하다는 느낌, 충만하다는 느낌입니다. 잘못된 욕망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생겨납니다. 세속적인 자아는 하나님과의 분리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세속적인 자아는 여러분에게 온전하다는 느낌을 절대로 줄 수가 없습니다. 세속적인 자아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극복할 수 없으며, 여러분이 하나님과 하나이며,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때에만, 여러분은 온전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세속적인 자아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속적인 자아도 여러분에게 온전하다는 느낌을 주고자 애를 쓰지만, 단지 이원성적인 마음 상태와 이 세상의 것을 활용함으로써만, 이렇게 할 수가 있을 뿐입니다. 세속적인 자아는 온전하다는 것을 정적인 상태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이 이 세상의 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으며,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것을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속적인 자아는 잘못된 욕망들을 정의하게 되는 것이며, 여러분이 충분한 돈, 물질적인 재산, 권력, 혹은 쾌락을 누리고 있다면, 여러분이 온전하며, 보람을 느끼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세속적인 자아는 이 세상의 것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면, 여러분이 온전하다고 느끼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여러분에게 참된 온전함을 제공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 데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에서, 온전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자아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분리될 수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자아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질 때까지, 여러분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상위 존재의 참된 욕망들과 다시 연결될 때까지, 여러분은 잘못된 욕망들을 제대로 극복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영적인 스승으로서 봉사하고 있는 큰 그룹의 영적인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들 가운데 한 분은 붓다이시며, 붓다께서는 예수님처럼 지구로 내려와, 새로운 영적인 가르침을 전해주셨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 불교라는 종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의 교리 가운데 핵심적인 교리는 삶은 교통이며, 교통은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 사성제(四聖諦) :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에 대한 깊은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 강좌의 목적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핵심적인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붓다께서 모든 욕망을 정복함으로써, 어떠한 욕망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모든 집착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된 욕망이란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게 하는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며, 욕망의 대상을 가지지 않고는, 온전해질 수가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고통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욕망도 가지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성장할 수가 있으며, 오늘날의 여러분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기본적인 창조의 힘은 하나님의 열망으로, 더 큰 존재가 되고, 허공을 빛으로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을 차단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통해 흐르고 있는 생명의 강과도 차단이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자아의 잘못된 욕망들을 충족시키는데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 건설적이지 못한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 역시도 영적인 성장을 위해, 건설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모든 욕망을 극단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중도(Middle Way)를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도(中道)는 모든 욕망들을 억누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자아에서 생겨나는 잘못된 욕망들로부터 벗어나고, 중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원성적인 의식을 초월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자신의 상위 존재가 지닌 열망들, 즉 여러분을 처음 지구로 오게 했던 당초의 열망들과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열망들은 자기 자신을 주는 것, 즉 하나님의 화염을 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열망들은 자신의 신성한 개체성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실현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일부의 욕망들은 지구에서 어떠한 상황들을 체험하고자 하는 영혼(lifestream), 즉 생명의 흐름이 지닌 소망에서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대개 세속적인 자아에 의해 아주 쉽게 왜곡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육체적인 쾌락과 관련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들이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될 때, 이러한 욕망들은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깊은 수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하위의 욕망들 하나하나는 여기에 해당되는 고차원적인 열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차이는 고차원적인 열망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충족될 수가 있으므로,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이 이러한 특정한 상황을 물질 우주에서 더 이상 체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더 큰 존재가 되기를 바라게 되며, 따라서 물질세계에 무한정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 우주를 초월하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위의 욕망들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며, 그러한 욕망들을 고차원적인 욕망으로 대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억지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어떠한 욕망을 억누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을 제약적인 욕망으로 인식하게 되며, 제약적인 욕망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보게 됨으로써, 참된 욕망을 찾아내게 되며, 따라서 잘못된 욕망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참된 욕망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많은 영적인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한 가지의 욕망은 남녀가 결합(sexual union) 하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 생겨나는 잘못된 욕망에 토대를 둔 섹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섹스를 해도, 이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이러한 욕망 뒤에는 보다 고차원적인 욕망, 즉 서로 반대되는 성(性)을 가진 두 영혼들(lifestreams)이 영적인 참된 결합을 통해, 하나가 되는 데에서 만끽하게 되는 온전한 상태를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확장하는 아버지의 힘과 수축하는 어머니의 힘이 상호 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생겨나게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될 때, 새로운 생명은 이들의 결합과 온전함을 통해 창조되는 것입니다. 영혼(lifestream), 즉 생명의 흐름은 물질세계에서 그러한 온전함을 체험하고자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더 큰 결합을 하려는 참된 열망으로부터 생겨나며, 이러한 열망은 충족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결합을 충분히 체험했다고 느끼게 되는 상황이 찾아올 수가 있으며, 따라서 이제는 육체와 육체적인 기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뛰어넘어, 그 너머의 어떤 것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영적인 결합을 바라게 되며, 그러한 영적인 결합은 자기 존재 속에 지니고 있는 참된 극성(polarity)을 찾아내야만, 즉 자기 존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참된 극성으로서, 의식적인 여러분(Conscious You)과 신적 자아 간에 결함이 이루어져야만,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 그대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맘몬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데, 즉 예수님께서 맘몬(mammon)이라고 부르셨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여러분이 남은 생을 허비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위 존재가 지닌 참된 열망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주신 개체성과 창조력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신성한 계획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잘못된 욕망들은 결핍이라는 의식으로부터 생겨나며, 잘못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핍의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여러분은 어떻게 초월할 건가요? 하위 4개 몸체들을 하나님의 빛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가득 채워, 모든 결핍감을 연소시킴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내가 설명했던 과정을 따라야 하며, 따라서 정체성의 몸체로 곧바로 올라가, 자신의 참된 정체성과 다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즉 하나님의 빛이라는 무한한 풍요에 접근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진실로 세속적인 느낌, 즉 하나님의 풍요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생겨나는 결핍의 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체 속으로 하나님의 빛을 가져올 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온전하다는 느낌에서 생겨나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온전해지고 하는 욕망은 잘못된 욕망과 참된 열망들 모두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때, 더 이상 결핍감을 느끼지 않게 되므로, 잘못된 욕망들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빼앗겼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의미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참된 열망들을 충족시키는데, 바깥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욕망의 본질은 자신이 온전하지 않으며,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세속적인 자아, 타인들 혹은 이 세상의 왕이 여러분을 통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해지기 위해, 그리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이 여러분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참된 정체성과 다시 연결되고, 하나님의 빛이 자신의 존재를 통해 흐르게 하면, 온전해지는데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참되고, 궁극적인 온전함을 제공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자신의 존재를 통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함이 감정체를 다스리게 될 때, 타인들에게서 어떤 것을 받으려고 하는 욕망을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타인들에게 주려고 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참된 열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가장 아름다운 상황, 즉 예수님의 가장 심오한 말씀들 가운데 하나 뒤에 숨어 있는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8) 삶의 진실을 이해하게 될 때, 즉 하나님께서는 좋고, 완벽한 모든 것들의 원천이며, 여러분에게 왕국을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내면적으로 온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이러한 느낌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데 따르는 두려움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회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을 거저 주게 될 때, 사람들의 결합된 노력들은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풍요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전체의 합이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는 말속에 설명되어 있으며, 진실로, 이것이 바로 지구에서의 풍요로운 삶인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풍요로운 삶은 위로부터 거저 받은 것을 여기 아래에서 거저 주게 될 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