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ONLY LOVE is REAL/ 브라이언 와이스/
                     김철호 옮김/ 나무심는사람 (2002.9.10)


       들어가는 말

인간의 영혼은 물과 같아서,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니,
그 왕복은 영원하도다.     --- 괴테



나의 첫 책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Many Lives, Many Masters"가 출간되기 직전에 우리 동네의 서점에 찾아가 내 책을 주문해놓았는지 알아본 일이 있었다. 나의 요구에 주인이 컴퓨터를 두드려보고 나서 말했다. “주문량이 네 권이군요. 한 권 더 주문해 놓을까요?”
  
나는 내 책의 판매량이 출판사에서 제작해놓은 부수에 근접할 수 있는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보기에 명망 있는 정신과 의사가 쓸 법한 책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나를 찾아왔던 한 여성의 환자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전생요법으로 이 여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삶은 물론 나의 삶까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나는 설사 내 책이 미국 내 여타 지역에서 단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친구들, 동네 사람들, 그리고 틀림없이 나의 친척들이 네 권 이상은 사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점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재 친구들하고 환자 몇 분하고 그 밖에 제가 아는 몇 분이 제 책을 사로 올 겁니다. 더 주문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까딱 잘못 되었다간 그렇게 해서 주인이 머뭇거리며 주문한 책 백 권을 나 혼자서 책임져야할 판국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2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로서 나의 인생은 다시 한 번 흔치 않은 곡절을 겪게 되었다.

컬럼비아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 수업을 마친 나는 뉴욕 대학교 부속병원의 인턴 과정을 거쳐 예일 대학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피스버그 대학교와 마이에미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이 후 11년 동안 나는 마이에미에 있는 마운트사이나이 의료센터의 정신과 과장을 지냈다. 그 사이 수 십 편의 의학 논문을 저술하고 여러 권의 의학 서적을 공저했다. 나는 의학자로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케서린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 환자가 마운트사이나이 의료센터에 있는 내 진찰실에 찾아왔다. (이 여성은 바로 나의 첫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케서린은 최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생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렸고(처음에는 나로서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초월적인 메시지들을 전해주었다. 이 사건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나의 세계관이 통째로 뒤집어졌다.

케서린 이후로 수많은 환자가 나를 찾아와 전생퇴행요법을 받았으며, 전통적인 내과 치료법이나 정신 치료법으로는 잘 낫지 않는 증상으로 고생하던 환자들이 이 요법으로 완치되었다.

나는 전생퇴행요법의 치유력에 관해 알게된 내용들을 두 번째 책인 “전생요법Tbrougb Time into Healing"에 상세히 실었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환자들의 실제 사례가 실려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사례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의 세 번째 책인 이 “기억”에 실려 있다. 이 책에는 한 쌍의 소울메이트soulmate 이야기가 실려있다. 소울메이트는 서로 사랑으로 영원히 묶여 있으면서 여러 생애를 거듭하여 함께 환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발견하고 알아보게 되는 과정은,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내려야만 하는 결정들은, 우리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도 감동적이고 중요한 순간들이다.

운명이 소울메이트의 만남을 주재한다. 우리는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만남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 혹은 자유의지 영역에 속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기회를 놓쳐버리면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과 고통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기회를 자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한없이 축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미국 중서부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엘리자베스는 어머니를 여윈 뒤 얻게된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을 극복 하고자 나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남자관계에도 문제가 있어서, 만나는 남자마다 불량스럽거나 가학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엘리자베스에게 이런저런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떤 남자관계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다.

엘리자베스와 나는 먼 과거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엘리자베스가 전생요법을 받고 있던 무렵, 매력적인 맥시코 청년 페드로도 나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페드로 역시 깊은 슬픔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최근에 끔찍한 사고로 사랑하는 형을 잃은 대다가, 어머니와의 갈등과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온 비밀들이 그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절망과 회의에 짓눌려 있었던 페드로에게는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페드로 역시 해결책과 치유책을 찾아 아득히 먼 시간을 향해 탐사를 시작했다. 엘리자베스와 페드로는 같은 시기에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일주일 단위로 진행되는 치료 일정이 서로 다른 요일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커플과 일가족을 치료해오면서 나는 전생에서 현재의 인연이나 배우자를 발견하게 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한 쌍의 남여가 동시에 똑같은 전생에서 서로 만났던 장면을 떠올리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그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은 안생 처음이었다. 내 진찰실 안에서 전생의 장면들이 펼쳐지는 동안 당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은 나중에 가서야, 깊은 최면 상태에서 깨어난 뒤에야 자신들이 똑같은 장면들을 보고 있었으며, 똑같은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또한 그때서야 두 사람 사이의 오래된 인연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와 페드로의 경우는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두 사람의 삶과 두 사람이 겪었던 생애들은 나의 진찰실 안에서 전혀 개별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 페드로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출신 국가도 달랐고 문화적 배경도 달랐다. 나 역시 처음에는 두 사람을 연관짓지 않았다. 두 사람을 따로 따로 만나고 있었던 데다가. 둘 사이에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측을 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시실이지만 엘리자베스와 페드로가 이야기하는 구체적인 사실들과 두 사람이 느꼈던 감정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고, 결국 두 사람이 똑같은 전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두 남여가 수많은 생애를 거치면서 서로 사랑하고 헤어졌었단 말인가? 처음에는 세 사람 중에서 아무도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세 사람 모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조용한 진찰실 안에서 진작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매혹적인 드라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만에 하나 나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야기를 할 경우 의사와 환자사이의 비밀 유지 원칙은 어찌되는가? 두 사람의 현재 관계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남의 운명에 서투른 조작을 가하는 짓이 되지 않을까? 현생에 다시 관계를 맺는 일이 영적인 차원에서 두 사람의 계획에 들어 있지 않거나, 혹은 두 사람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둘 사이의 관계가 또 다시 실패해서 지금까지 두 사람이 얻은 치유성과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뜨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과대학 시절과 그 이후 예일 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밟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환자에게 어떤 피해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단단히 뿌리를 박게 되었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해가 될만한 일을 하지 말라!  엘리자베스와 페드로는 둘 다 증세가 호전되고 있다. 그냥 이렇게 계속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페드로의 치료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치료가 끝나는 대로 미국을 떠날 예정이었다. 나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책에 두 사람의 모든 면담 치료를 싣지는 않았다. 어떤 부분은 이 책의 이야기와 직접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특히 엘리자베스 경우가 그렇다), 최면이나 퇴행 없이 전통적인 정신 치료만 시도했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의료 기록과 오디오테이프 녹취물, 그리고 나의 기억에 의지해 씌어진 것이다. 비밀 유지를 위해 인물들의 이름과 소소한 사항들만 바꾸었다. 이것은 운명의 이야기이며 희망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날마다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이날만은, 누군가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도서에는 목차가 없습니다)


        에필로그

나는 내가 여기 있는 것처럼  이전에 천번 존재했다는 것을 확신하며, 앞으로도 천번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 괴테.


엘리자베스와 페드로는 지금도 이따금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 두 사람은 멕시코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페드로는 사업가에서 정치가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엘리자베스는 긴 갈색머리칼을 지닌 아름다운 두 꼬마 숙녀를 돌보면서 정원에서 꽃을 따기도 하고 팔랑거리는 나비들을 쫓아다니는 일을 사랑한다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최근의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은 선생님 덕분이에요. 우리는 아주 행복해요. 그 행복의 많은 부분을 선생님께 빚지고 있어요.”

나는 두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는데 내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내가 없더라도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만났을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자유롭게 흘러갈 수만 있다면, 사랑은 모든 장애를 뛰어 넘는다.    


       옮기고 나서

인연이란 참 묘하다. 1994년에 우연히(?) 브라이언 와이스의 첫 책을 번역하게 되었을 때, 그의 책을 세 권이나 번역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의 네 번째 책 번역 의뢰까지 받아 놓은 상태이다.)

브라이언 와이스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다. 그의 책을 만난 이후로 나의 인생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한, 내가 브라이언 와이스를 알게 되면서부터 겪은 변화의 순간들은 나의 현생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었다.

브라이언 와이스는 유물주의자였던 나를 정신주의자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사를 포함한 온 우주의 현상의 최초 원인을 물질로 여기는 사람과, 그 원인을 정신 혹은 의식이라고 믿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전자와 후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나였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과거와 판이해진 나의 현재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라는 데 대한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가 고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앎에 대한 욕구”였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언제나 나는 앎을 추구하는 인간이었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살고 있는 목적을, 죽음의 비밀을, 우주의 신비를 통째 알고 싶었다. 내 눈에 잡히는 모든 현상의 배후를,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상념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밤마다 꾸는 꿈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뒤흔들어 놓은 욕망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마르크스는 모든 것의 원인을 물질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삼라만상은 태초의 극소한 물질에서 퍼져나감 거대한 그물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든 것의 원인을 의식이라고 했다. 모래 한 알도, 우리 몸도, 지구도 의식의 산물 혹은 의식 자체라고 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의식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물방울이라는 것이었다.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관점이 실은 같은 전제에 발을 딛고 있었다. 양자가 “모든 것이 하나”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을 뒤좇았지만, 결국 한가지를 추구한 것이었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언제나 나는 진리를 갈구하는 인간이었다.

이 책의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사랑만이 실재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사랑 외에 모든 것은 허상이라는 선언이다. 브라이언 와이스가 말하는 “사랑은 의식”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사랑은 우주의 최초의 원인이자 재료다. 사랑이 없으면 우주도 없다. 사랑이 없으면 삶도 없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나는 그의 믿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김 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