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사는 새옹지마 *♧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발밑에 흙이 쌓이게 되고,
    당나귀는 그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느 날 그 곤경의 우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게 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 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지요..
    어떤 상황에서건 낙심치 마시길...

    - 옮긴글 -       (임희순 드림)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이 새옹은 말을 잘 길렀다. 그리고 아주 사랑하는 애마가 한마리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애마가 홀연히 국경넘어 오랑캐땅(胡地)으로 도망가 버렸다. 이것을 안 동네사람들(隣人)이 그가 크게 상심하리라고 생각하여 애통한 마음으로 위문을 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지금의 슬픔이 어찌 곧 기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爲福乎!)


수개월이 지났다. 새옹의 예언대로, 그 잃어버린 말이 북방 오랑캐지역의 아주 훌륭한 준마(胡駿馬)를 한 마리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잔치분위기였다. 모두 들뜬 가슴을 안고 노인에게 경하를 하러 몰려왔다(人皆賀之). 그러나 그 노인은 조금도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또 차분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복이 내일의 화가 될 수도 있는 것, 지금의 기쁨이 어찌 곧 슬픔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能爲禍骨骨乎!)


그 새옹의 집엔 외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을 잘 길렀기 때문에 그는 말타기를 좋아했다. 새로 들어온 준마는 그에겐 너무도 싱싱한 매력이었다. 그 외아들은 어느 날 준마를 타고 달렸다. 그러다가 그만 낙마를 하고만 것이다. 비골(髀)이 크게 부러져 영영 다리병신이 되고 만 것이다. 온 동네가 상갓집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 찾아와 노인의 슬픔을 위로했다(人皆弔之).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슬픈 표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 지금의 슬픔이 어찌 곧 기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爲福乎!)


그리곤 일년이 지났다. 그런데 변경의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들어왔다. 대전쟁이 벌어졌고, 장정이란 장정은 모두 징발되어 나갔다. 그리고 열중 아홉이 목숨을 잃었다(死者十九). 그러나 새옹의 외아들은 다리병신이었기 때문에 징발되지 않았고, 父子가 다 제 명을 보전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래서 회남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또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불측하여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그 이치가 깊고 깊어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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