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영원한 스승”
         바바지/ 라데삼 지음/ 김진아 : 김옥수 옮김/ 아름드리어 (2000.5.10)

인도 사람들은 시바 신이 비현신과 현신의 신이라고 믿는다. 즉 무수한 현상으로
발현되는 시비 신은,  대개의 경우 인간의 오감(五感)으로는 식별 할 수 없는 신비체의
상태에 있지만, 가끔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형상을 취해 인간 역사 속에
들어온다고 여긴다. 인류 역사에서 되풀이하여 출연한 존재로서 바바지 전통은, 인류를
신성 실현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현신한 시바 신이라는 이런 믿음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다른 영혼의 성장이 그러하듯이 바바지도 수많은 생을 거쳐 신성함과의 합일을 이루었지만, 인간을 가르치고자 스스로 인간 형상으로 되돌아온 존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바바지의 유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이 같은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최고의 영적 지혜를 가진 스승이었고, 영원한 근본 진리를 당대에 적합한 현실적인 가르침을 제시한 선각자의 본보기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탁월한 권능으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각자의 문제를 자각하게 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깨닫도록 이끌었으며, 영적 성장을 위한 수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바바지는 구루(영적 스승)로서 말했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해탈을 주기 위해서 왔다. 나는 빛을 주기 위해 왔다”


          차       례

제 1장 하이다칸 바바를 만나다.
제 2장 바바지의 이전 현신들.
제 3장 바바지의 복귀에 대한 예언과 준비.    
제 4장 바바지가 하이다칸에 돌아오다.
제 5장 바바지가 자신을 어떻게 증거했는가.
제 6장 바바지가 사람을 불러들이는 방법.
제 7장 바바지의 다양한 릴라(leela)
제 8장 바바지의 가르침 : 구르의 개념과 사나타나 다르마(우주법칙)
제 9장 진리, 단순, 사랑, 합일에 대한 바바지의 가르침.
제10장 구루로서의 바바지 : 자파와 카르마 요가.
제11장 바바지의 예언들.
제12장 바바지, 신성 현실의 길을 보여주다.
제13장 바바지, 종교와 하이디칸의 의의에 대해서 가르치다.
제14장 마하사마다(열반)과 그 이후.
제15장 모험을 위한 도전.
    
역자후기
용어해설


          서  론

          오, 신이시여, 자비의 화신인 당신께 경배드립니다.
          시바여, 당신을 섬기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푸시며
          죄와 고통을 소멸시키는 님이시여,
          자비의 화신인 당신께 항상 귀의합니다.

                                      하이다칸 아라티에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마하바타르(대화신 大化身) 바바지를 가리켜 “현대 인도의 요기 그리스도”라 일컬었다. 하이다칸의 예배의식에서는 바바지를 “최고의 스승, 지비의 신”, “현자의 왕”, “우주의 신”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인류 문명의 진행과정에서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의 형태로 나타나, 인류가 신성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체험하며, 실현할 수 있게 도와준 신성의 위대한 화신, 바바지에 대한 책이다. 인도를 비롯한 동양문화에서 바바지는 다양한 시기에 --특히 인류가 정화와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도전과 전환들에 직면했을 때-- 종파에 관계없이 헌신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몸으로 헌신한 바바지는 손수 모범을 보이고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인류가 이 세상 창조물들의 신성한 근원과 의식적으로 재합일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돕곤 했다.  

바바지의 가르침은 분파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신성과의 조화로 이끌어주는 모든 종교를 지지한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의 종교 수행자들 누구라도 바바지의 생애와 가르침에서 영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영원한 태고의 진리를 토대로 하는 가르침을 펴면서도 당대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가르침이 현실 속에 녹아들어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의 삶에서 신성을 체험한다는 건 대단히 드문 일로 보일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와 관계를 맺거나 교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시대와 모든 종교의 그 많은 성인들과 현자들이 겪었던 체험과  진술을 완전히 불신 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저런 방식으로 신성을 보거나, 듣거나 혹은 체험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히말라야 지역에 존재하는 바바지에 대한 전설은 인간 문명의 아주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1946년에 출간된 “한 요기의 자서전 Autobiography of a Yogi"을 통해 바바지를 처음으로 서구에 소개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1861년부터 1920년 사이에 인도 사람이 겪는 대화신 바바지에 대한 체험들을 다루고 있다. 바바지가 하이다칸 바바로 화신한 약 1890년에서 1920년까지 다룬 책은 이 외에도 몇 권이 더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최근인 1970년 6월에서 1984년 2월까지 화신했던 바바지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직접 체험담이 담긴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있다.

본서는 이처럼 긴 역사의 과정에서 전해 내려오는 바바지 관련 이야기들을 모으고 분류하는 한편, 바바지의 가장 최근에 화신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쓰여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바바지를 만나고 있으며, 이런 체험들은 인도만으로 한정되거나, 1984년 2월 14일 돌아가신 바바지의 물질 육신만으로 국한되지 않고 있다.

바바지는 계속해서 형상 없는 신성과 물질 창조물들, 다시 말해 신과 인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해오고 있는 영적 존재다. 그는 자신이 시바 신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인도인들이 신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이름의 하나인 “시바”는 세속을 초월한 자, 도움을 주는 자,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알려진 신의 형상이다.

사실 아스트랄체(體)의 형상이든,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형상이든 관계없이, 그 어떤 형상도 마음대로 창조해내는 바바지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이야기들(그 중 일부는 이 책에 실려 있음)은 무수히 많다. 바바지가 한날한시에 매우 멀리 떨어진 세 곳에서 동시에 나타났다는 사실도 알고 있던 한 추종자에게, 자신은 동시에 여덟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 것 역시 이와 관련된 사례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바바지 모습을 경험했던 몇몇 사람들은 그 모습들이 특정시기에 세상에 출현하는 시바 신의 다섯 형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보통 네팔지역에서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형상이고, 두 번째가 젊은이의 형상, 세 번째가 자주 나타나는 하이다칸 바바의 모습이며, 네 번째가 인도의 다른 지역들에 나타나는 모습, 그리고 다섯 번째 형상이 영체 혹은 아스트랄체 모습이다. 그는 이 모든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지금 현재도 쿠마온 고지(高地)에 사는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굳건히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믿음이 자신들이 직접 겪은 체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 체험으로 접한 것이든, 꿈에서 접한 것이든, 아니면 환영으로 접한 것이든 간에, 이 각각의 모습들에는 성스런 특성들이 있다. 바바지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이런 저런 형태의 축복이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였다. 바바지가 소위 기적의 권능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체험 속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일부는 이 책에도 실려있다).  

하지만 설사 당신이 이런 경험들을 깎아 내리거나 믿지 않는다 해도, 그가 봉사하고 가르치기 위해 인간 사회 속으로 들어오리라는 예언과 선언들을 실현한, 유례없이 비범하고 권능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성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물론 그의 신봉자가 그런 신성을 인정하는 쪽이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배움과 영적 성장에 마음을 열거나 그럴 준비를 갖춘, 성실한 진리 추구자라면 누구라도 받아들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시바 신으로서, 최고의 스승으로서, 정화자로서, 친구로서, 성자로서, 성모로서, 성부로서, 최고의 요기로서, 치유자로서, 불사신으로서, 영생자로서 행한 수많은 역할들을 확인했다. 사실 그는 이 모든 것이어서 우리가 찾는 것이 어떠한 것이든 우리는 그것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우리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바바지를 통해 영혼의 여행에서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고, 자신의 참모습과 수행해야할 과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그에게 마음을 연 개인들에게 위대한 스승이자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일관된 프로그램을 주기 위해서 애쓰곤 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영혼, 다시 말해 신성과 가장 비슷해서 신성의 불꽃을 전하는 인류에게 있었다. 그는 창조자와 창조물을 하나로 보는 관점에서 가르침을 폈다. 그는 모든 창조물을 신성의 발현으로 보고, 신과 악마와 인간과 식물과 돌, 이 모두가 성스러운 창조 에너지라는 똑같은 벽돌로 “지어졌다”고 말한다.

쉬고 있는 신성은 형체 없는 혼돈의 에너지이지만, 이것이 형상을 창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 성스런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의식 에너지가 원자 미립자들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형성된 원자 미립자들은  원자를 형성하고, 다시 이 원자들은 영겁의 시간을 지나며 무수히 합쳐져서, 지금 우리 인류가 보고 있는 대로의 우주를 창조해내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창조물들은 신성의 측면들이고, 신성은 창조의 전 기간에 걸쳐서 이 모든 형상들을 거치면서 움직이는 자신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바바지는 창조물을 구성하는 수많은 형상들이 신성과 조화를 이루고, 또 서로간에 조화를 이루며 움직일 때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말하자면 바바지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또 이러한 앎을 위한 길이 예비 되어온 덕분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 메시지를 모든 창조물들이 서로 조화로워야 한다는 메시지로 확대시킨 것이다.

인간과 여타의 모든 형상들은 따로 때어내 남용할 수 있는 경우란 없다. 그 상호관계는 한 창조물이 다른 창조물에게 베푼 유익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우주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만큼 밀접하다. 말하자면 우리의 감정이나 이런저런 파동 자체가 창조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바바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이런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그의 현존은 그가 있었던 모든 공간과 장소의 기운을 변화시키고 고양시켰기에,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내면에서 신성의 불꽃이 살아남을 느꼈고, 자신의 주위의 인간 및 다른 생명체들과 조화로워지는 것을 즉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바지는 그야말로 사랑과 조화의 기운을 뿜어 냈던 것이다. 이런 진동에는 주위 사람들을 그것에 동조하는 조화로운 진동 수준으로 이끄는 힘이 되었다. 바바지가 가르친 합일이라는 개념과 창조물들 간 조화의 필요성은 우리사 사는 지구와 그 너머 우주에 대해 인간이 어느 정도로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바바지는 인류를 신성 및 우주 창조물들과의 합일의식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애썼다. 따라서 그의 말과 행동은 모든 창조 요소들이 조화로워야 한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인간이 자행하는 자연파괴와 그로 인해 닥칠 자연의 파괴적인 반작용을 경고하면서, 이런 파괴적인 결과를 막을 수 있는 건 성스런 법칙에 따라 취해지는 집중적이고 의식적이며, 다듬어진 인간 행동뿐이라고 강조했다.

바바지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어떤 특정 종교를 설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그는 모든 종교가 신성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고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이런 삶의 방식을 사나타나 다르마 Sanatan Dharma, 즉 영원한 도(또는 법칙이나 진리)라고 불렀다. 그는 천지가 창조되어 확대되고 유지되는 것이 이 사나타나 다르마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인류가 삶의 법칙을 벗어날 때, 조화롭게 운행하던 우주에 불균형과 붕괴가 초래된다. 따라서 바바지가 합일과 조화의 가르침을 펴는 것은 우주의 균형과 이 영원한 도의 복구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 점에서, 개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와 우리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바탕은 내면의 평화와 균형을 되찾은 것에 있고, 이것이 진리와 사랑, 단순에 근거한 삶의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또 몸소 보여주었다.

인류 문명의 전 시대를 통하여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한결같이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영원한 도로 나아가고 신성과 좀더 조화로워지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을 강조하면서, 그 시점에서 유효한 방법들을 제시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제시된 각각의 방법들은 검증을 받으면서 사람들을 “신성화”로 이끌었고 위대한 성자들을 탄생시켜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적합하고 영감을 주는 방법에 집중하여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정처 없이 방황하면서 이런저런 흥미로운 철학이나 의식의 열매를 맛보기만 해서는 같은 원을 계속 맴돌게 될 뿐이지, 명확한 목적에 이를 수 없다. 바바지의 가르침에서 정신과 육체의 수행은 필수요소이다. 바바지는 수행과 노력 없이는 어떤 존귀한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처럼, 수많은 쾌락의 유혹에 빠져있는 인간들로서는 수행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참된 영감으로 쓰여진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 에서는 인간들의 마음과 감각을 열두 마리의 힘쎈 말들이 매여있는 전차에 비유했다. 만일 마부(개별 영혼)가 자기 말들을 잘 길들여 다루지 못하면, 그는 평생동안 말들의 거친 주행(走行)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는 실제로 움직이는 엄청난 힘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한 개인의 종교나 철학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모양 짓는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어떤 결과나 열매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때문에 바바지는 사람들 내면의 영성뿐만 아니라, 그들 삶의 결과물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성한 의지 및 모든 창조물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익한 행동을 찾곤 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역할모델로 정한 사람을 닮아 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이 초점을 맞추고 가장 많이 연계시키는 사람을 닮아가게 마련이다. 대부분 스승들이 그러하듯, 바바지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현자들로부터 배울 것을 독려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자”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인도의 또 다른 경전. “카타 우파니샤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선은 선이고 쾌락은 쾌락이다. 이 둘은 그 지향이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실제 행동을 추구한다. 선을 택하는 자들은 축복 받겠지만, 쾌락을 택한 자들은 목표를 놓치고 만다.
인간은 선과 쾌락 둘 다를 받는다. 현자는 두 가지를 검토해보고 나서 이 둘을 구별한다. 현자는 쾌락보다 선을 좋아하지만, 육신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어리석은 자는 선보다 쾌락을 더 좋아한다“

바바지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거나, 사람들이 성장에 필요한 체험을 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신성 및 창조물들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그들이 잠깐씩이나마 신성을 맛볼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는 정화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추종자들에게도 실제적인 결과물을 요구했다. 한번은 바바지가 이렇게 훈계했다. “이 원숭이와 곰들아! 겨우 꼬리나 흔드는 걸로는 부족하다! 실제적인 일, 유용한 일들을 해야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들은 열심히 일해야하고, [가르침들을]실행해야한다. 먼저 너희들 자신을 고무시키고, 그런 다음 카르마(일)의 메시지로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라.”

그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금욕적인 생활방식으로 운영되는 자신의 아쉬람에서 일정기간 생활해보도록 독려했다. 이것은 신성 및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순수하고 집중된 생활을 체험하고 실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 현실을 사랑하는 가장(家長)으로서 세상에 봉사하거나, 각자의 나라들에서 필요로 하는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물질주의라는 바다에 떠있는 섬들”로서 아쉬람을 세우도록 독려했다.

바바지는 “인생은 한번뿐이다”라는 서양의 경구와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살았고, 또 그런 식으로 가르쳤다. 그는 영원의 근원과 목적이 그러하듯, 인간의 영혼 자체도 영원하며, 영혼(다양한 형상으로 수백만 번의 생애를 갖는)의 정수와 경험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입장에서 가르침을 폈다. 인간의 형상으로 살게되는 각각의 생애는 완벽한 영혼을 만들 기회이자 도전일 뿐이다. 영혼은 완벽을 얻을 때까지 몇 번이고 윤회하여 지상으로 되돌아온다.

영혼의 목적은 자신이 원래왔던 신성한 완벽과의 합일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삶의 쾌락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최고 영”의 발현으로서가 아니라 개별 육신으로서 자신에 대한 감각과 개념을 계속 확장함으로써 이런 신성한 완벽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따라서 영혼과 그것의 한시적인 육신은 각각의 생애를 통해 재합일 이라는 목적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고, 부주의나 무지의 고집 때문에 그 기회를 던져버릴 수도 있다.        

바바지는 가르침과 생활에서 기적의 권능을 사용했지만 (다른 여러 스승들이 그랬듯이),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통해 신성과의 합일로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권능을 얻을 수 있음을 밝혔다. 그는 그런 권능들이 우주의 창조 에너지와 조화롭게 생각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데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바바지는 사람들이 도착하거나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기도 전에 누가 자신의 아쉬람에 오고 있는지, 그들이 하이다칸을 체험할 준비가 되었는지, 그들이 머물지 아니면 떠날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고, 그들의 병을 치료했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체험들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인류역사 과정에서 인간의 형상을 하고 마음대로 왔다갔다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실제 체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특정 종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 혹은 사상적 경향성과 상관없이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힌두교도들과 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시크교도, 파르시교도(인도의 조로아스터교도), 불가지론자들, 정령숭배자들, 무신론자들이 그의 현존 안으로 들어와 생활하면서 배웠다. 그의 가르침과 행동들은 모든 종교 가운데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들을 표현했기에, 추종자들은 자신이 지닌 종교틀에 상관없이 영적인 지식과 지혜와 체험에 도전하면서, 그것들을 키우고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크리슈나와 모세, 예수, 모하메드 같은 성인들도 그 사람이 사는 방식을 보거나, 자기 종교를 실천하는 방식을 보면 그가 과연 어떤 수준의 신자인지 알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하곤 했다. 예수는 “율법 중에서 첫째 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답했다. 바바지의 가르침 역시 어떤 특정의식이나 믿음으로 신을 숭배하기보다는 신성과의 조화 속에 살아가고 모든 창조물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바바지의 오랜 친구인 님카로리  바바는 같은 뜻의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이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애쓰기보다는 모든 것 속에 신을 보는 것이 더 낫다.”

모범과 체험과 설법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주고 떠난 후, 바바지는 떠났다. 사람들이 양떼처럼 맹목적으로 그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현존을 추종하기보다는,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진리와 단순과 사랑으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이 책은 바바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경험들을 모은 것으로,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화상에 근거해서 쓰여진 일종의 바바지 전기이다. 사실 어떤 사람. 어떤 책도 이런 “존재”의 말이나 글로 “파악하게” 할 수는 없다. 그 발현 현상들 너머에 있는 신성이 인간의 이해나 설명 능력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러분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당신이 바바지를 직접 체험한 우리처럼 그를 신성한 존재로 체험하든, 아니면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며 비범한 인물 정도로 체험하든지 간에, 그의 삶과 메시지(사실 이 둘은 같은 것이다)에는 변화와 성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을 책을 통해 접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영혼은 “새로운 또 한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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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권의 책
      바바지/ 하이디칸 비쉬와 마하담(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장소)에서
            진리와 만남/ 쉬디마 구드맨, 바바하리다스 지음/
                   김진아 옮김/ 골든에이지 (1994.12.20.)


        목   차
          
      Ⅰ. 바바지 : 하이디칸 비쉬와 마하담에 진리와 만남

1. 서문
2 들어가는 말.
3. 당신의 인생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만큼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하느냐에 따라 그만큼 좋아질 수 있다  
4. 바바지께 다가가다.
5. 자아로 향한 여행의 시작
6. 진리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다.
7. 과일이 익어가다.
8. 바바지와의 더 많은 체험들  

                 부   록

9. 고라데비기 전하는 바바지의 가르침들과 바바지에 대한 그녀의 이해들.
10. 나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들
11. 티보티들과의 인터뷰.
12. 자아 치유를 위한 테크닉과 목적달성.


      Ⅱ. 하이디칸 바바 :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는것
                 (가장 위대한 성자 바바지)

13. 머리말
14. 서론
15. 수리 마헨드라 브라흐마차리의 탐색.
16. 하이디칸 정글.
17. 구만 싱 나울라.
18. 활드와니 지역.
19. 니니탈 지역.
20. 알모라 지역.
21. 개인적 체험들
22. 히말리야의 다른 싯다스들.
23.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