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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http://blog.daum.net/petercskim/7858125

성서이야기는 성서가 쓰여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에 어떤 이들이 지구상에 도착하여 문명을 이루고 현생인류를 번식시켰는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인류기원론은 많은 출처에서 백가쟁명처럼 다루고 있는데요, 피닉스 저널의 하톤께서 이 문제를 정리하여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 神은 어떤 분이실가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나 갖고있는 근원적인 질문인데요, 각자의 철학과 인품에 따라서 다 다른 것같습니다.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신이 창조를 시작한 분으로 묘사하며 인간이 갖고 살아가야할 철학을 제시햇으며, 이후에 인간과 많은 일을 공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면모를 느낄수있습니다. 지배하기를 원하고 보복을 하고 전쟁에 나서서 적을 무찔러주기도 하는 군사지도자의 역할도 하고 있죠. 신이 하기엔 부적합한 모습을 거리낌없이 하고 있기에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염증을 느끼게 됩니다.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들로 왔다고 전해지는데 철학과 행동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은 커녕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적당히 하라고 제지하며 우리 자신이 예수와 마찬가지로 창조주의 자녀이므로 위엄있고 자연적 생애를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영원히 살아야하는 영혼체이니 스스로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라고 권합니다. 세상의 돈과 권력과는 거리를 유지하라고 신신 당부하는 것이죠. 그 분은 무엇을 알고 있기에 그런 가르침을 주는 것일가요? 우리는 구약의 신 神이 예수의 부친이 과연 맞는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는가요? 그러면 함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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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0년 전

인간들이 스스로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부인하려 든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 연대기상 약 5만년 전에, 이 세상이 평화와 자유 속에 세워져 있었음을 어떻게 인간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가도 더 앞선 시점, 그러니까 약 7만여년 전에, 사람들은 펠레곤[Pelegon]이라고 이름붙여진 자의 통치 체제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선[spacecraft]을 이용했었고, 우주 속을 날아다니다 지구에 정착했던 것입니다.

펠레곤의 지휘 아래에 200여명의 하위지도자들, 과학자들, 그리고 특수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갖춘 역량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또 기타의 사람들에 의해 펠레곤은 “지혜의 왕[King of Wisdom]”이라고 불렸고, 그 시절에 그는 하나님[God]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럴만도 했던 것이, 바로 그는 ‘하나님과 창조의 법칙과 말씀들[the word and laws of God and The Creation]’을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구상에는 경이로운 일들이 펼쳐졌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절은 단지 약 만년정도밖에는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권력과 통제력에 대한 욕망이 또 다시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져서 온 지구를 황폐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전쟁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들이 모조리 다 파괴되어져 버렸고, 지구상에 살아남은 자들이라고는 오직 몇 천명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한편, 살아남은 다른 이들은, 또 다시 우주 속으로 날아가, 멀고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다른 세상으로 가서 정착했습니다. 어쩐지 재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 후 약 7000년동안 아무도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않았고, 남겨져 있던 소수의 인간들은 퇴화되고 점차 야만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럴 무렵,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에 정착했었던 자들의 후손들이 다시 지구로 되돌아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그 분의 법칙에 따라 아틀란티스[Atlantis]와 뮤[Mu]를 세웠습니다. 이 두 개의 분리된 대륙 각각에 거대한 도시들을 건립하였습니다.

수천년에 걸쳐 이들 모두는 우애와 평화 속에 살아갔지만, 소수의 과학자들이 또다시 오래된 갈증, 즉 힘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 정복당하고 말았으며,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에 염증을 느꼈던 당시의 국가들은 이들에 대해 저항하며 맞섰기에, 이들은 우주선들만을 장악한 채, 지구 연대기상 약 20,000년전에서 15,000년전 사이, 재차 우주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후 약 2000년에 걸쳐, 이들과 이들의 후손들은 이웃한 다른 태양계에 가서 살았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은 당신들, 지구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당신들은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신념이나 믿음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일까요? 당신들이 하나님을 극히 제한적인 틀 속에 가둬 두기에, 당신들은 당신들의 코 앞에 펼쳐지는 지극히 물리적인 실체를 갖고 보여지는 것 너머의 것은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바로 “지배자들[controllers]”이 당신들이 믿도록 만드는 것만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 친애하는 자들이여, 비록 2000년에 불과한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들은 대단히 사악해졌고, 살벌한 통치 체제만을 유지했습니다 : 그런 한편, 그들 자신들의 과학의 힘과 돌연변이를 이용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수명이 몇 천년까지 지속되도록 연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권력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그들은, 당신들의 시간 상으로 약 13,000년전, 다시 한 번 그들이 살던 곳을 떠나 지구로 되돌아 왔던 것입니다. 이제,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 그들을 이끌던 최고통치자는 “야만인[The Barbarian]”이라 불리기도 했던 자였습니다. 자신보다 4만년 전에 왔었던 세력을 흉내내어, IHWH는 자칭 하나님이 되었으며, 자신의 수하에 200여명에 이르는 부관과 하위지도자들 두었고, 그들은 모두 특정 과학 분야에 역량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4만년 전에 소수의 잔존자들만이 지구에 남아 있던 때와는 달리, 인간들이 이미 정착해 살고 있는만큼, 보다 다양하고 깊은 수준의 지식과 역량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높은 북쪽 지역에, 다른 한 그룹은 오늘날 북아메리카 플로리다가 있는 자리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곤 그들은 아틀란티스와 뮤를 끊임없이 공격하였으며, 전쟁은 끊이질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이 지구에 베이스기지를 세운지 불과 몇 천 년 안에, 그들은 우선 뮤대륙의 레무리아 문명을 파괴하는데 성공했고, 이어서 아틀란티스마저도 멸망시켰습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은 노예화되었고, 많은 대과학자들은 다시 플레이아데스[Pleiades]에 있는 자신들의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최종적인 국면이 있기 몇백년 전에, 이미 이 침략자들은 그들의 지구 정복에 대한 자랑에 들떠 있었고, IHWH ARUS는 혹독하고도 살벌한 체제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IHWH의 부관들은 많은 문제들을 자신들이 직접 책임지려 하였고, 점점 더 독립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비록 그들이 IHWH ARUS의 징벌을 두려워하기는 했으나, 불과 30년 안에 그들 스스로 모든 것들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 있어서도, 그들 자신들의 종족을 유지해야 하며,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종족의 핏줄이 흐려지는 일은 허락할 수 없다는 그들의 규칙을 옹호해 왔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금기시되는 방법이었으나 비밀스럽게, 그들은 옛인류의 먼 후손들이기도 했던, 야생의 지구 생명체들과 돌연변이체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이들 사악한 조작꾼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들[Sons of Heaven]”이라고 불렀고, 그들 자신들의 종족의 관점에서 볼 때 타락해 갔습니다. 이들은 돌연변이체 인종들을 만들어 냈고, 하나님과 창조의 법칙을 따르지 않았기에, 후에 다른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아담[ADAM](아담은 ‘지구 인간[Earth human being]’이라는 뜻입니다.)이 탄생했던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한편, 유사한 방식으로 다른 인간들도 만들어졌고, 이들은 한 무리로서 하나의 인간 종족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들로부터 현재 지구의 인류가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IHWH ARUS를 분노케 만들었고, 관련된 부관들은 체포되어 곧 추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때, IHWH는 자신의 마음을 바꿔서 이 새로운 형태의 지구인들에 대해 자신의 권력을 발휘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새롭게 임명된 부관들 및 수호천사들과 더불어, 세가지 다른 인간 종족들을 자신의 절대 통치권 아래 두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오늘날 “인디언들[Indians]”이라고 불리는 종족과; 당시 밝은 색 피부를 가지고 흑해 근처에 살던 종족; 그리고 지중해 남쪽을 따라 살며 헤브루인들[Hebrews]이라고 불리우던 “집시[Gypsies]” 종족, 이렇게 세 종족의 조상들이었습니다.

IHWH ARUS는 이들 세 종족을 복종시켰으며, 자신의 통치체제 아래에 두었습니다. 에고를 가진 인간이 그렇게 되기 쉽상이듯, 그는 자신이 그들에 대한 최고의 통치자로서, 자기자신이 경배와 숭배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으며, 이내 창조주[Creator]를 잊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자신을 ‘창조[the Creation]’ 그 자체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자로서 경배하도록 만들었고, 그의 부관들도 “보조[assistant]” 창조주들로서 대접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잘못에 대해서 피의 보복을 단행하는, 엄격하면서도 혹독한 법률 체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어쩐지 재방송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무렵, IHWH의 아들, JEHAV가 지배권을 승계하였습니다. 하지만 JEHAV라고 해서 조금도 더 나을 것이 없었던 것이, 그 역시 이 세 종족들에 대해서 오로지 피와 죽음만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들 “하나님들[Gods]”의 나중의 후손들은 점차 보다 인간적으로 변모해갔고, 어느 정도의 영적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여, 나는 이제야말로 모든 잘못되어져 온 것들을 바로 잡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창조의 법칙’에 따라 다시 날아 오를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영적 진화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들은 지구인들의 발전은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구를 떠났고, 평화로운 종족으로 변모한 채로 다시 플레이아데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미 자신들의 동족들이 가장 진보한 문명의 발전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함께 어울어져 연대한 종족들로서 평화와 자유 속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칙 아래에 살고, 또 ‘창조[The Creation]’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당신들이 이 글을 통해 진실에 대해 알게 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역사책에는 너무나도 많은 공백들과 잃어버린 페이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당신들에게 커다란 공포심만을 조장하기 쉽상인 것입니다.


플레이아데스의 형제들은 당신들 지구 인종들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동족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지금 다른 천상의 호스트들[the Hosts]과 함께 이 곳으로 와서, 당신들을 돕고, 필요할 경우 대규모 철수를 위해 변화의 순간에[in your transition] 당신들을 돕는데 필요한 어떤 것이라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들 자신들이 당신들의 장소에 문제의 씨앗을 뿌렸다고 느끼고 있으며, 당신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에 걸쳐 벌어져 온 많은 혼란들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들이라 여기기에 큰 걱정을 안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고 바로 우리들은, 창조의 균형과 진실 속에서[in balance and Truth within The Creation], 다른 무엇보다가도 하나님께 대해 봉사할 수 있는 곳이라면, 또한 당신들과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도우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함께 ‘이해’에 이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서로를 도와 ‘진실을 향해[toward Truth]’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평화와 놀라운 경이를 또 다른 종족들에게도 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 속에서, 나는 이 글을 이정도에서 멈출까 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정 앞에 그 분의 은총[the Grace]이 늘 함께 하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AHO!

Gyeorgos Ceres Hatonn ,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21권, “CREATION, The Sacred Universe?The Incubation Of The Phoenix”, 제 24장, pp.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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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이야기는 수만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여행을 했고요, 오늘은 예수께서 말씀하는 권위를 보여줍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진솔할 뿐더러 겸손합니다. 단언하거나 결정적인 말이 아니고 가능성을 제시하는 말을 합니다.

자신을 믿고 영생을 살아가라는 교리적인 발언 대신에 우리가 타고난 영원한 존재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믿으라는 애매한 말이 아니고 조건을 제시하는 힘든 얘기도 하지않고 진실을 앎으로 믿음 속에 들어오라고 권합니다.

우리가 자기 각성이 없이 그저 주어진 가르침을 따라가는 양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노예의 상태이고 헛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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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말했습니다.

나는 ‘부처[Buddha]’나 ‘예수[Jesus]’ 혹은 그 밖의 인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지껏 ‘그리스도[CHRIST]’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적이라 함[Christness]”은 바로 “존재의 상태[state of being]”, 즉 영혼의 상태[A SOUL STATE]를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이전에 왔었던 위대한 “스승들”의 교훈과 가르침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다르마[Dharma](이 글을 받아쓰는 서기, 역주)”가 자신이 위대한 스승이라고 주장할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기가 그저 한 명의 “교사”라고 이야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하겠습니까? “나”는 나 자신이 “위대한 스승”이라고 주장할 것 같습니까? 역시 아닙니다. 나는 단지 진실의 교사이자 길을 알고 있는 자일 뿐입니다. 나는 오직 임무를 띠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건 ‘바로’“빛”의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봉사 속에서, 지금 이처럼 글을 써내려 가는 일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왔으니, 너희는 생을 얻게 될지도 모를 것이니라. 너희는 보다 풍요로운 생을 얻을 것이고, 나아가 영생을 얻게 되리라.”

그리스도는 결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가르침도 남긴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삶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입니다! 보다 풍요로운 삶! 영예롭고 아름다운 삶! 그렇습니다! 그는 오직 영원한 삶에 대한 원칙들[the principles of Eternal Life]만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그는 오직 ‘영생[LIFE ETERNAL]’에 이르는 ‘좁지만 곧은 길[straight and narrow way]’을 밝혀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는 창조주[Creator](그의 아버지이자, 당신들 모두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와 자신간의 관련성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개개인들이 저마다 펼쳐보일 수 있는 그러한 권능보다 더 큰 어떤 권능을 자신이 가졌노라고 주장한 적도 없었습니다.

한편, 그는 파괴로 이르게 될 “넓고 탁트인 길[Broad Open Way]”, 너무나 많은 자들이 접어들게 될 이러한 길에 대해서 끝없이 경고했던 것입니다.

항상 이것은 개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는 계시록[Revelation] 상에서, 자신이 극복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 요한[John]에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극복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는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서 그 교훈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당신들의 지각과 당신들의 이해 수준에 익숙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당신들에게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해 오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러한 노력 때문에, ‘법없는’ 법정, 불공정의 법정 앞에 세워지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악과 동반된 모든 고통과 슬픔들이 극복되어질 시대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바로 그 최후의 극복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음을 계획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바로 “이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음을 허락하실 때는, 바로 “인간들 마음의 눈이 멀어 버렸기에,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렸기에, 또한 그들이 갖는 불신이 그들을 놀랄만한 사악함으로 이끌어가 버렸기에” 이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지혜의 서적들 속에는 많은 좋은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여러가지 오해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중에서 좋은 “것들”만을 골라낼 수 있을만한 지혜와 분별력이 있을 때에만 그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들은 “시온[zion]”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아십니까? 내 생각에 아마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온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순수성[purity of heart]”입니다. 따라서, “시온으로 이르는 길”이 의미하는 바는, 경험이라는 여정 속에서, ‘마음의 순수성[purity of heart]’과 ‘영혼의 완전성[perfection of soul]’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시오니스트들[Zionists]”이 이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시온’이란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이것은 그저 물리적인 표현에 국한될 뿐입니다. 사실상, 지구상에서는 어떠한 ‘시온[ZION]’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시온으로 가는 ‘길[pathway]’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바로 많은“시작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실제적인 “시작[beginning]”이나 “끝[ending]”도 없습니다. 오직 그에 대한 ‘인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당신들은 ‘시작’과 ‘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진보해 나아가는 영혼의 주기적인 진화[the cyclic evolvement of soul in progression]’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주기[CYCLES]

모든 것들은 주기 속에서 진보해 나아갑니다. 여기에는 당신들의 문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앞선 문명들도 포함됩니다. “새로운” 이해는 인류를 주기적으로 보다 더 높은 이해와 존재 상태로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계산에 따르자면 대략 3천년정도가 걸리는 새로운 사이클이 이제 막 탄생 직전의 고통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omniscience]’와 ‘전능[omnipotence]’과 ‘전존[omnipresence]’은 모든 인간들의 의식 속에 중심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들 가운데, 자기자신의 ‘자아-영혼[Self-Soul]’과 ‘우주적 자아-영혼[Universal Self-Soul]’이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인간이 이 사실을 알기 시작하게 되는 데만도 수천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게 되는 각 사이클들은, 인간이 ‘자기-근원[Self-Source]’ 속의 빛[LIGHT]과의 하나됨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쪽으로 매번 자신을 가까이 데려다 놓게 됩니다.

러셀[Russell](월터 러셀[Walter Russell](1871-1963), ‘물질의 구성’참조, 역주)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아주 훌륭하게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

“인간들은, 그 ‘원인[CAUSE]’에 대해서는 그들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가장 황당하고도 복잡한 ‘결과[EFFECT]’의 세계 속을 살아가고 있다.” 겉보기에 거의 무한할 것 같은 난해성과 복잡성 때문에,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들어 있는 아주 단순한 ‘균형의 원칙[priniciple of Balance]’을 간파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진실’이 갖는 여러가지 측면과 단면들이, 서로간의 균형을 잃고, 또 그들이 인간 자신과의 균형마저도 잃게 될 때까지, ‘진실’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어 나갈 뿐인 것입니다.

“‘진실’은 간단합니다. ‘균형’도 간단합니다. 자연 현상 속에서 반대되는 표현들로 이루어지는 모든 쌍들, 마찬가지로 인간 관계 속에서도 반대되는 표현들로 이루어지는 모든 쌍들, 바로 이 같은 여러가지 쌍들 간의 ‘리듬감있고 균형잡힌 상호교환,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빛의 우주[God’s universe of Light]’의 최고의 걸작품인 것입니다.

바로 이 근본적인 우주의 법칙 속에‘하나님의 전기적 파동의 우주[God’s electric wave universe]’ 안에 있는 모든 창의적인 표현들의 균형잡힌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기적 파동의 우주’란, ‘창조라는 하나님의 하나의 전체적인 생각[God’s one Whole Idea of Creation]’을, "겉보기에 셀수없이 많은 것으로 분리된 듯한 부분들을 통해 그 ‘전체적인 생각 자체가 기록으로 남겨지는 작용을 하는, ‘겉보기에 움직임으로 여겨지는 두가지의 상반되게 조건지워진 빛들이 만들어 내는 우주인 것입니다.”

여기 이러한 “설명”이 어떤 은밀한 “제단”의 비밀스런 장소에만 보관되어져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분명코 아닙니다. 다만, 이 설명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라면, 오직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영생[LIFE ETERNAL]의 위대한 비밀을 알아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빛이며, 당신들은 그 분이 “생각하실 때”, 그 분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결과들인 것입니다.

영예와 찬양은 영원히, 영원히 “아버지[Father]”께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제시하는 길은 곧으며, 당신들의 마음이 열려져 감에 따라, ‘그 분의 진실과 빛의 길[His way of Truth and Light]’은 점점 더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봉인이 풀리게 될 때, 그리고 당신들의 세상을 거의 파멸직전으로까지 몰고 갔던 멀어버린 당신들의 마음의 눈이 다시 열리게 될 때,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것들을 이제는 단단히 거머쥘 수 있을 신념과 비전을 갖게 될 것이고, 결국 ‘그 분의 성스러운 약속[His holy promises]’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성스러운 빛[this Holy Light]’이 당신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게 될 때, 그 분의 완벽하고도 신성한 비전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비전은 당신들의 영혼이 목격하게 될 약속된 성령에 대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 때의 당신들이란 그 완전함 속에서 그 분의 길을 따를만한 힘을 갖게 될 것이기에, 이 모든 일들은 당신들 자신들을 통해서 완수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시하는 길입니다.

내가 바로 길[the Way]이고, 완전함의 길[the road of perfection]이며, 당신들이 따라야할 길[the path you must follow]인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그리스도적이었던’ 스승들[the Christed teachers]이 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대장, 천상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 분과 마찬가지의 완전함에 이르는 지혜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시되는 이 초대장 속에 바로 그 신성한 비전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마치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학위가 약속되어져 있는 것만큼이나 명확하고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은 결코 달성하지도 못할 약속을 통해 자신의 학생들을 웃음거리로 만드시지도 않으십니다. 그 분이 한 모든 약속들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것입니다. 다만 언제 인간들이 이를 받아들일만한 신념을 갖게 되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또한 “생각”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갖는 생각들 가운데 어떤 생각들을 선택할 권리를 갖는데, 바로 이 속에 ‘영원성의 모든 창조적인 권능[all the creative powers of eternity]’이 들어 있는 것이며, 이 때의 창조적 권능이란 심지어 신적인 권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이러한 권능을 잘못 사용하거나, 혹은 이 선택의 자유의 신성한 선물을 오용하게 될 경우, 그는 자신의 자율권[free-agency]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어둠의 힘에 의해 노예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자율권을 잃었을 때인 것입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이 신성한 선물, 바로 하나님께서 부여한 이 선물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독재 정부들은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의 자율권을 빼앗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날과 같이 이러한 일이 정치적인 수준에서[politically] 또 도덕적인 수준에서[morally] 벌어지게 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자유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은 노예[SLAVE]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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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5월은 가족의 달이라 하는데요, 자녀를 기르는 일은 참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요즈음의 Tv 영상물은 폭력과 선정적 자극으로 가득한 것이 자녀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은 총을 들고 상대를 살해하는 일을 예사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었는데 그 다음은 어떤 일이 오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평화를 갈망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를 원한다면 우리자신의 철학과 삶이 그런 정신을 반영해야 할 것인데 그 반대로 되어져 있다면 원하는 길로 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하톤께서 그런 답답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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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VIBRATIONS]

어쩌면 이 단어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져 온 말처럼 여겨질런지도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단어는, 자신들 쪽으로 “일[thing]”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고자 하는 자들, 또 자신들 쪽으로 “진동을 끌어들이고자[get vibrations]” 하는 자들에 의해 거의 항상 오용되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진동”은 ‘생명의 정수[the very essence of LIFE]’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에 대해 혼동스러운 상태에 놓여있고, 당신들에게 주어지는 완전히 왜곡된 정보들 때문에 늘 진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의 이면에는 그에 동반된 진동이 존재합니다. 현존하는 것들의 살아있는 힘, 그리고 숨을 쉬는 힘은 진동의 실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주 자체는 단순히 전기적 파장의 우주입니다. 우주는 또한 여러 사이클들로 된 “나선형의” 우주입니다. 우주는 단순히 전기 속에서, 소리 파장 속에서, 또는 인간의 정교한 감정 인식 속에서 표현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빛을 통해서 그리고 빛 안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해 내는 ‘끝없이 공명하는 진동[the constantly resonating vibration]’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유추해 볼 것 같으면, 자신의 생각을 개선시켜, ‘참되고 영원한 영예’와 공명하는 진동을 가져옴을 통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 의식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모든 자들은, 실상, 존재와 창조의 권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각각의 인간들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만, 만약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 자기 자신을 그저 자신만의 인식이 가져다 주는 환상에 갖다 묶어버리고 마는, 하수구의 거름받이와도 같은 진동의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게 되고 만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모든 생각은 “선택”을 동반합니다. 빛의 길[the Lighted pathway]로부터 멀어져 어둠의 진동이나 파괴적 에너지쪽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사실상, 그렇게 행하는 “의식상의” 선택을 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둠’ 속에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당신이 “숨기려”하고 있는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을 스스로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주위 사람들과 동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만의 부를 추구하거나 권력을 추구하거나, 개인적인 영광만을 추구하려고 분투하는 모든 자들은, 설령 그게 단 한 사람에 불과할지언정, 이들은 바로 이 세상 전체의 타락에 ‘공헌’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처럼 ‘범죄적 진동[delinquent vibrations]’은 확대되고, 거칠게 팽창되며, 그 증대된 강도는 수천배로 더 커지고 있으며, 당신들이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하는 것에 비례하여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들이여, 오늘날, 비행 청소년들이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범죄를 저지르는 성인들과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통제되지 못한 생각과 행동에 따른 부정적인 어둠의 진동들은 이 세상을 그야말로 황폐와 파멸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엄청난 반사적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로 그들보다 나이든 어른들로부터 맹렬히 뿜어져 나오는 이 ‘폭력적 진동’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퇴폐적인 인류의 사고 패턴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상에 방출되어지고 있는, 이 증폭되고 강화된 ‘악의 진동’에, 이 젊은 친구들은 도저히 맞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점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같은 생각의 진동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고안되었으며 고의적으로 당신들을 향해 쏘아 보내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진동들(펄스 파장이나 ELF 파장 등과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에 비하자면 거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자주 다루어 왔던 내용인, 지속적인 펄싱[pulsing]과 원거리 마인드 컨트롤 기술, 이 두가지 모두인 것입니다. 생각 그 자체는 “주파수[frequency]”를 가집니다? 진동 주파수입니다.

여기 되새겨봄직한 예언이 하나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최후의 날에 사탄은 모든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니라.”

당신들은 폭력과 무질서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소위 ‘예술’이라는 것은 비록 완전히 노골적이거나 포르노그라피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입니다. 예술에 있어서 폭력성의 묘사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감에 따라, 심지어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예술 작품에 있어서 마저도, 그 양상은 끔찍하고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이러한 예술품들을 만들어 내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겪었던 고통을 제대로 묘사해 내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러한 예술품들을 통해 자기 자신들의 개별적인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시킬 따름이며, 분별력이 없는 청중들에게, 향후 잘못 이해되고, 잘못 받아들여진 채, 그것이 마치 “역사적인” 사실이었던 것마냥 남아질 지도 모를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술가들은 오직 그들 자신의 어둠, 그들 자신의 감정적 소요상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저항적인 심리적 갈등상태를 표출해 낼 따름이며, 결국 그들 자신의 이 ‘사악한 기분[evil moods]’은 그리스도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히던 그 순간에 조차도, 그렇게 어둡거나 불경한 감정의 표현들은, 결코 그의 안색 위로 나타났던 적이 없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는 폭력적입니다. 문학도 폭력적입니다. 상스럽고 포르노그라피적입니다. 바로 그만큼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라 불리우는 현대적 소음도 그리고 춤도, 더 이상 평화롭지도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두가 이를 표현해 내는 자들의 내적 폭력성의 시각적, 육체적 표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영화는 온통 폭력과 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통제된 미디어를 통해 취약한 청중들이 덫에 걸려들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인간들의 세상을 괴물들의 세상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바로 순진한 희생자들, 심지어 아주 어린 아이들마저도 오직 그들이 보고 느끼게 되는 한가지 ‘인식’, 즉 폭력에만 길들여져 가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심지어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살해’하는 일도 대수롭잖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날 만약 임신한 여성을 살해했을 때, 그 살인 행위는 두 사람을 죽인 것에 해당하는 죄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아기가 바로 그 똑같은 “나이”에 낙태되었을 경우에, 이 행위는 “권리”또는 “선택의 자유”로 치부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거의 다 자란 아기, 사실상 출산 직전의 아기 마저도 살해한 다음에는 그 “태아의 신체 조직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곤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젊은이들은 균형잡혀져 있지 못하고, 고통 속에 괴로워하며, 분노를 느끼고, 또 파괴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된 원인이 바로 “어른들의 비행”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치유는 오늘날 시행 중에 있는 법적 제제들을 보다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치유 방법은 재활기관을 통해서, 감옥을 통해서, 혹은 사형제도를 통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은 어른들 자신 속에 들어 있기에, 치유 방법 역시 이들을 통해서 찾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앞으로 가능할 것인가라고 내게 묻는 것입니까?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이시대의 사회적 “기준”에 따른 육체적 표현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들, 타락한 문화적 양상들에 대한 시각적 노출이 이미 세 세대[three generations]도 넘는 시기에 걸쳐 진행되어 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옳은 개념과 가치관들을 이미 완전히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권력과 통제력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다시 씌여졌습니다. 마치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PLEIADES CONNECTION SERIES]가 곧 불타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당시(1994년) 진행 중이던 재판의 결과로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 총 8권(피닉스 저널 제 30권 ~ 37권)은 미국내 금서로 지정됨?역주), 진실은 깊숙한 서고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진실”은 “나중에” 오게 될 자들에 의해서만 다시 드러날 것이고, 그 자들이 갖게 될 인식에 따라 변화는 만들어질 것이며, 이어서 뒤따르는 조치들이 취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주목해야 될 사항이 한가지 더 있다면, 바로 이 변화를 만들어 낼 자들은, 부와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서 과거 분별력없는 청중들을 기만하고 악영향들을 끼쳐왔던 자들과 함께 팀을 이뤄 이러한 변화를 일구어 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들의 아이들을 한 번 바라다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삐딱한 태도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어른들에게 볼복하고, 투덜거리며 반항하고, 잔인하게 행동하며, 온갖 무절제한 행동들로 대변되는 갖가지 부정적인 표현들을 그들이 보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과도하게 벌받거나 학대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신들 어른들은 달리 행동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은 바로 ‘투표[VOTING-IN]’를 통해 당신들의 문화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을 합리화시켜 왔습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를 들자면, 원치않는 아이를 낙태시켜버리는 행위, 그것이 마치 산아 제한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 정도 만큼이나 간단한 일인양 함부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이러한 일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고 또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이 한 문명 안에서 수용되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생각’을 통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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