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과 외면적인 대화는 모두 같은 대화이지만,
그것이 창조되어지는 또는 선택되어지는 주체적인 자아와 매개체적인 자아가 존재한다.

즉 흐름이라는 이야기이고 어떤 흐름이 나를 통하던지, 또 내안에 어떤 자아를 통하든,
또는 그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내가 내안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모두
나로부터 처음부터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성안에 지금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내가 느낀 것이 아닌 세상의 상태이다.
내가 어떤 뜻을 품기 전에 느끼는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해" 라든지,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해" 라든지, 그것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나온것이 아닌

내 안의 수많은 자아적 근원중에서 하나의 틀이 아닌 나의 자아의 목소리로 내가 매개체가 되어지는 것이다. 즉 나안의 수많은 상위자아 (상위자아라는 것은  그 전의 자아를 포용하는 자아이고 흐름이 미치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 중 하나가 매개체(통로,11)가 되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질서를 잡을 수 있는 법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것도,
나 홀로 내 안에서 뜻이 새롭게 발동하기 보다는 내가 주체적으로 느끼면서 나오는 뜻들은
이미 세상에 조화롭게 질서를 잡혀있는 흐름에 나를 열어가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내가 선택하는 방향이고 나의 개아를 가꾸게 되는 하나의 아름다운 옷이 되어집니다.

즉 내가 보는 세상의 흐름이 존재하고 모든 존재의 세상흐름이 각각 존재하며,
그 모든 것이 영원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것이 존재계이고 그것이 흐름이 존재할때
생명이 됩니다. 이 생명흐름은 진동에서 회전으로 변하면서 완전해집니다.

(각 세상은 교차하지 않았지만 상대성안에서는 의식이 교차에 생명의 빛을 이루듯,
모든 세상은 교차하게 되었고, 그것은 상대성안에있는 모든 존재가 빈공간으로 개아를 형성하며, 자아가 되어 하나둘 길이 되어 연결되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내가 상대성안에서 나로 부르는 나는 빈공간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한다는 것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자아를 표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 내면 외면이 비어지게 되는 공간이 더욱더 작아지게 되고 그 작아진 만큼 사이에
일어났던 나의 모든 의식흐름은 다시 나 이외의 모든 꽉찬 공간으로 되돌려보냅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항상 비어있습니다. 의식도 그렇고, 에너지도 그렇고, 모습도 그렇습니다.
그럼으로써 나의 모습은 내 자신이 정할 수 없는 것이고 세상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금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라 부르는 빈공간의 변형이며,
그것의 빛의 변화와는 별게입니다.
그리고 내가 감사히 세상에게 받아들이는 에너지는 내가 마음을 열었을때 나의 가꾸어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꾸는 것이 바로 나의 주체적인 창조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뜻의 발동은 나의 주체적인 창조이기 보다는
세상이 변화하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나 자신을 거울로 하여 세상을 표현하고 있고,
나는 세상을 통하여 내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은 존재하고 있고, 이미 모든 것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을 선택이라 부르기 전에는 여러 의지에 의한 의식의 폭발로 인해 하나 둘 세상을 순차적으로 존재계를 이루어갔으며 그곳에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존재하고, 의지들은 각 각 발동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은 각 세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하나의 대화가 은하 은하계 우주 우주계 를 넘어 모든 존재하는 세상과 세상의 대화입니다.

바람과 바람의 대화이고, 식물과 식물의 대화이고, 동물과 동물의 대화이고,별들과 별들의 대화이고 은하와 은하의 대화이고 우주와 우주의 대화입니다.


내가 내 자신이라 느끼는 나가 상대성안에서 너와 나로 지금 눈으로도 구별될 수 있게 펼쳐져있지만, 내 안에서도 너가 다른 모습으로 다른 나의 요구에 따라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 밖에 당신이 있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일화 시킬 필요도 없고, 꼭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한 존재를 통해 표현되어진 세상은 각각 우리 한존재 존재가 요구하는 모습이 되어
그 에너지가 그 의식이 변형되어 내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내안에 당신은 당신과 다르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느낍니다.
당신의 하나의 표현은 세상의 표현이기에 내가 표현한 세상과 다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내가 표현한 세상에 당신이 표현한 세상을 껴맞추지 않으려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안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아갈때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미 나가 사라졌을때 존재계에 존재하던 모든 세상인데 그것을
상대성안에서 세상을 표현한 것인데 구지 그것을 변형시켜야 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각각 모든 세상이 아름답고 순수하게 펼쳐질때 그것이
상대성전의 우리의 세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 표현은 모두 순수했지만, 상대성안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때,
서로 힘내서~ 한발 한발 서로를 감싸주면서 나아갔으면 합니다.

(
주체적으로 가꾼다는 것은, 일딴 내가 세상과 연결이 되어 그것을 허용함이 첫째이고,
그것을 또 포용하고 조화롭게 유지시켰을때 그때 그 세상은 나로부터 다시 표현되어집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다"를 나로부터 그냥 받아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나는 그냥 매개체가 되어지고 자신은 자신의 내면에서 부터 나왔다고 생각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몸부림칠때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은 고통스럽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능동적이라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매우 수동적이 되게 되고, 결국 나 이외의 모든 존재로부터 나 자신의 고유함을 상실하게 될 수 도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내안에 존재하는 우리입니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진실로 사랑했을때,
그로부터 표현되어지는  세상은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