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제 내면을 구분하여 글을 써봅니다.
대상은 항상 그냥 "나"이고 그 나가 넓고 깊음의 차이로 인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만 하셔 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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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죽이는 일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그대의 두려움을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죽음이란 자체가 삶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죽이는 것을 죄라 여기고, 타인을 죽이는 것을 죄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대안을 들어보아라. 세상에 무엇을 하여도 어긋남이 없다.
그대가 두려워 하는 그 모든 것을 되집어 보아라.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여라.

타인을 죽인것은 두려움에 휩싸였을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자신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창조범위의 모든 공격성은 두려움의 외침이다.

그대는 그 외침을 받을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이미 존재하기에 존재를 근간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죽음. 즉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나의드러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무의식중에 두려워하는 건가요?

그대는 그것조차도 존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써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그것은 그대가 해쳐나아가야 할 몫이다.

그대를 스스로 죽이는 것,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그 안에서 그대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대에게는 그대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소중한것이다.

모든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이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는 문제는 무엇을 하기 위함이죠?

그대가 그대를 알기를 원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도 존재하지 않음이 그대의 모습이다.

그대는 삶속에서 무의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일인가요?

그대가 "나"라는 신을 선언하였을때 이미 그대는 알고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였다. 무의 여정을 가는 것은 그대의 바램. 즉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자 하는 의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대가 깨달음을 추구하기 때문에 드러난 하나의 길이다.

그 무의여정을 가는 것과 펼쳐진 생명의 세상이 조화롭게 나아가는 길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그대가 행복함을 어디에 두는 냐 에 따라서 그대의 길이 밝아진다.

세상은 진화를 하는가요?

진화를 그대는 더 발전적인 모습이라 생각하고 어떤 환경을 이겨내야 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맞지만, 세상의 진화는 표현의 차이이다.

그대의 마음이 변한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형태만 변할뿐이다.
세상이 아무리 천지개벽을 하여 변한다하여도 그대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그대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라. 그대가 행복하다면 그 마음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행복한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한은 행복은 없다. 일시적일수는 있지만, 영원하질 않다.
그대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찾아야 그 후에 그대는 세상의 일원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세상이 행복하게 변해가는 것이다.

그대의 그 마음은 세상천지개벽을 하여도, 이 세상 무엇이 다 사라지더라도, 다른 차원을 해매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마음은 원래 온전하며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이미 드러난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그러나 항상은 있었다. 즉 무도 그대가 존재하지 않음도 항상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그 영원성이 언제나 존재하였다는 것. 그것은 무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대가 말하는 무도 언제나 항상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하는 마음이란 그대라는 이름의 신을 통해 변하지 않는 그대의 사랑의 표현방식이다.

그 마음은 변할 수 있다.
사랑이란 것이 두려움과 같다는 것을 아느냐?

어떤면에서 같다는 것이라는 것이죠?

영원하다는 것이다. 영원성 안에서 모든 존재는 같다.
그리고 같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대가 신을 선언했을때는 그대만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대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한다. 그대가 바라는 것만을 선택한다.
그것이 그대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항상 무로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존재하려는 이유는?

그대가 삶과 죽음속에서 더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즉 그대가 지금 곧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여도 또 홀로 영원히 산다고 하여도,
그대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존재방식은 달라진다. 존재하려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나" 안에서 "너" 와의 조화안에 함께 존재할 것이다.

그대가 신이라는 나의 사랑을 통해 그 마음만이 드러나 행복 그자체가 될 것이고,
사랑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것에는 무라는 느낌, 존재라는 느낌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항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하고 있나요?

영원성만이 존재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 모든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나"를 통한 스스로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내안에 두려움과 모든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나라고 여기는 모든 것을 죽인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대는 더이상 그것으로 부터 자신을 죽이는 것에 두려움과 아픔의 길이 연결되지 않는다.
그대는 이해했다. 단지 변화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대는 항상 있다.

그대가 항상 있는 것.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억지로 세상을 죽이고, 알면서 통제하고 하는 일에는 분노가 일게 됩니다.

억지로 세상을 죽인다면 그 마음은 자신 스스로 변하지 않는한 어딜 가도 똑같을 것이다.
알면서 통제한다면 그 마음은 자신 스스로 변하지 않는한은 어딜 가도 똑같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세상과 분리 될 것이다.
절단된 그들의 시간안에서  홀로 존재하는 긴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창조주로써 새로운 창조를 하면서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열게 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다면 무엇을 열게 될 것인가 스스로 되돌아 보아라. 그대 지금 스스로
홀로 존재하게 되었을때 그대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여야 한다. 그런시기가 올곳이다.

그때는 통제할 무엇도, 자신의 분노를 받아줄 그 무엇도 없을 것이다.
홀로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안에서 스스로 가야할 것이고,
자신의 내면의 성찰을 이루게 될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을 스스로 파괴하고 일삼는다면, 결국 자신의 소멸을 가지고 올것이다.


이 세상 공존계에서 그대는 무엇을 얻어가려 하는가?
가르치려하는가? 아니면 배우려 하는가? 아니면 이 공존계에 영원히 존재하려 하는가?

천국은 그대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라.
지구가 천국이라 생각하는가? 지구에게 천국인것이다.
그대의 천국은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라.


스스로 존재하는 시간을 위한 시작은 그 들이 스스로만든 고립된 마음안의 깊은 공간안에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세상이 떠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떠난것.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각자의 아름다운 여정이다.


그러나 드러나는 것은 이미 하나가 된 후일 것이다. 그때는 모든 창조가 아름다울것이다.


소멸이라는 말은 너무 각박하지 않나요?

소멸 그것은 항상 있다. 언제나 기억해라. 항상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것.
나에게 소멸이나 탄생은 하나의 과정이다.
항상안에서는 소멸은 형태의 변화 무로 돌아가더라도 그것또한 항상안에 존재한다.

그대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서 그대는 새롭게 다시 탄생할 수 있고,
그러지 않아도, 그대는 그대 자신을 완전히 인식못하는 무안에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는지 조차 인식할 그 무엇도 없지만, 항상이라는 영원성안에서 그대는 그대 자신을 다시 인식하리라. 그리고 스스로 홀로 우뚝 탄생하리라. 단지 그대가 바란다면.

지구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나요?

지구에서 하나가 되어 조화롭게 지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은 항상 존재할 것이고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떠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창조주가 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고,
우리는 그렇게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주는 확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