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제 내면을 구분하여 글을 써봅니다.
대상은 항상 그냥 "나"이고 그 나가 넓고 깊음의 차이로 인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만 하셔 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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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난 창조를 하게 되면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지 않는 상태가 아닌가요?

나라는 것은 자신을 인식하고, 믿으며, 선언할때 완전한 스스로 존재함으로 들어난다.
나를 떠나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직은 인식하는 단계에서의 창조이다.
그러나 나에대한 믿음이 아닌 우리의 믿음이 되어지고,
나에 대한 선언이 아닌 우리의 선언으로 인한 창조이다.

이 창조방식 나맡김은 어떠한 구체적이 형태인가요?

나의 선언을 통한 창조는 창조주로써의 자신만의 공간창조이다.
그러나 나맡김은 그 공간 창조들을 연결하는 길의 창조이다.

아주 쉬운것은 그대가 창조주라는 믿음안에서
어떠한 노래를 들을때 부르는 입장이 되어 듣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봄이고,
그대가 공동창조라는 믿음안에서는
어떠한 노래를 들을때 모든 세상으로 부터 노래의 대상의 입장이 되어 듣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봄을 뜻한다.

그때 그대의 마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또 어떻게 흘러가는가?
어떤 흐름을 창조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받는 입장이라면 세상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의 변형만 낳는 것이 아닌가요?

여기서 또다른 숨겨진 계획이 숨겨지게 되었다.
자신만의 완전한 "나"의 선언뒤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항상 창조하였다.
자신으로부터 인한 창조여정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선언전의 창조는 어떠했을 것 같은가?
그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였다고 하였다.

받아들임이라는 의식은 나의 선언뒤 창조의 전의 창조였다.
그 방식은 내가 어떤 노래를 듣게 되는 완벽한 입장이라면 그것은 이미
상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믿는다는 무한한 허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의심과 분별과 판단이 전혀없는 있는그대로의 받아들임이다.
그것은 세상을 환상이 아닌 진짜로 만드는 힘이고,
그것이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내가 나를 선언한 후의 변화는 나를 내맡김상태에서 모든 받아들임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창조로부터 비롯되어진다.

즉 순수한 자신의 나에서 나오는 새로운 창조가 아닌
받아들임후의 창조이기 때문에 모든 창조주의 공간을 연결하는 길이 탄생할 수 있는것이다.



나를 떠난 후의 상태에서와 나가 존재한 후의 상태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의 방식이다. 나를 가지고 안가지고는 상관이 없다.
가장 편안한 도구를 이용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들의 방식이다.

"나"를 통해야 천국이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해라.
나를 선언하여도 선언하지 않아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중요한것이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항상 되돌아 보아야 한다.

가능성의 존재와 현재 존재하게 보이는 존재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가능성의 존재는 마음의 세계인 무안의 세계이다. 그리고 현재 드러난것은 무한한 세계의 흐름이다. 그러나 이 무한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잇는 원동력이 무안의 세계에서 드러나 선택되어지기로 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음을 돌아봄은 모두 과거의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럼으로써 무한한세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내면구조를 다시 짜게 되는 것이다.

반응이라는 것은 무한의 세계에서의 대립된 극의 상태로 인한
그대 안에서 나오는 무한한 세계와의 부딪힘이다. 그것은 고통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천한과 심한의 차이점음 무엇입니까?

천한은 무한한세계안에서 모든 흐름을 자신이라는 주체 안에서 파악함이다.
그것이 누구로 비롯되어든 그 누구또한 무안한 세계에서 드러난 가능성이었던 존재이다.
결국 주체는 자신이다. 그 안에서의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이다. 질서를 잡게 되어진다.
그러므로써 확고한 "나"의 정립으로 인한 세상에 눈을 뜸이다. 세상을 바라봄이다.


심한은 무한한 세계안서는 파악되지 못한다.
단지 그대가 "나"를 내맡긴 상태 전으로의 창조이므로 조화로움안에서의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드러난 것이 무한한의 세계이다. 무안의세계의 사랑을 받는 세상이
무한한 세계인것이다.

결국, 무한한세계에서 서로 가려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환상인것이다.
조화로움안에서 창조되어 선택되어진 것이 무한한의 세계에서의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서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제로 부터 비롯되었고,
그대가 세상의 믿음또한 사라진것도 통제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대 안의 모든 분별이 이 통제로부터 비롯되었다.

통제란 무엇인가요?

무한한 세계안에서 자신의 고유의 내면구조가 깨져 버려, 다시 창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무한한 세계안에서의 경험과 체험으로만 짜게 됨으로써 내면구조의 어긋남이 존재하여 스스로 고립하게 짜게 되었을때이다.

스스로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세상에 드러났을때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게 된다.


통제하는 상황이 변화되려면?

자신이 어긋나 고립된 내면상태에서는 변화를 기대하기가 무척 힘들다.

먼저 세상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나를 내맡긴 상태에서 가슴으로 들어보아라.
그대가 그대라는 "나"라고 여기는 자신의 최초의 근원이 고립되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아라.
그 소리를 들어보아라. 자유롭게 그 근원의 나도 자유롭게 해달라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자신의 "나"를 훌훌 날려보내라. 계속 날려보내라.

세상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 가 한번 귀기울여보아라.
내 맡김이 시작이 될것이다.
그리고 항상이라는 영원성이 그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마라.

그대는 항상 존재하다. 스스로 존재한다.

그대는 왜 맨날 반말인가요?

미안하다.

그대가 나를 세상에서 처음 불렀을때가 바로 "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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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 더는 못해요. 그대없이 사는 일.
나 때문에 그대 망가진다며 이별을 원한건 나인데

매일 가슴이 갈라져요. 숨이 다 끊어질 만큼 울어요.
수천번 잊었다 외쳐 봐도, 내 삶은 어느새 벼랑 끝에 서있네요.

My love 다시 사랑해요. 세상 반대쪽 끝에 살아도 찾을게요.
다시 그댈 놓지 않아요. 멈춘 내 심장을 뛰게 할 사람.

우리 헤어지길 잘했죠.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았죠.
하늘은 모자란 내 사랑을 눈뜨게 하려고 잠시 갈라 논 거였죠.

My love 다시 사랑해요. 세상 반대쪽 끝에 살아도 찾을게요.
다시 그댈 놓지 않아요. 멈춘 내 심장을 뛰게 할 사람.

나 때문에 망가진 게 맞네요. 내가 그대 가슴 안에 못이었네요.
사랑하고 책임 없이 도망친 나를, 성급한 이별을 용서받고 싶어요.

My love 혼자 있어줘요. 그대 있는 곳으로 지금 달려갈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우리 다시 사랑해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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