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지니는 것은 모든 것으로 드러납니다.

내가 육신을 인식할때는 감사합니다.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구분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름 지어진것은 그 것이 바로 그 존재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앎에 따른 분별이 아닌 그 존재가 선택한 이름이기에 그렇게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입니

다.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입니다.


주관적인 판단을 고수 하게 될때 존재 이름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사라진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존재상태를 "나"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것이 아름답게 표현되어진 것입니다.



태양, 행성 , 위성   높낮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 외계인, 인간 높낮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자신안에 그런 구분이 없다면 그 " 무엇을 하지 마라"라는 의도 자체가 안나옵니다.

자신안에는 이미 구분되어졌기때문에 그것에 아직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여도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한 그것을 넘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즉 완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안에서 더이상 그것에 대한 그런 분별과 판단이 드러나지 않는 마음상태입니다.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입니다.

왜 존재하는 가는 그것이 드러날때 어떤 마음이었는가입니다.



머리로 이것은 이것이다 정의하는 것이 아닌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가가 태양을 형성했고, 행성을 형성했고, 위성을 형성했고,

소행성을 형성했고, 그 작은 것들을 흐를 수 있는 형태적 모양을 구성한것입니다.



마음으로 흐를때 그것이 생명으로 빛나는 것이지,

머리로 이것은 이렇게 창조했다 이런 느낌으로는 다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것, 그것을 소중히 하세요.

당신이 판단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가 상대를 위한 것인가에서,

그 판단이 반대로 작용하게 됩니다.





없다고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실체는 없지만 있습니다. 그것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생명이니까요.

어떤 모든 인식으로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생명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의식은 창조되어진 것입니다. 아름다운 표현을 위해서,

의식의 확장의 끝은 무의식입니다. 무의식라는 것은 의식의 사라짐이 아닙니다.

무라는 것. 그 주는 무마음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 무를 받는 무마음을 느껴보세요.


무의식은 자신이 어떤 생각자체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초의식 상태가 무의식입니다.



지금 표현되어질 것이 사라져야 한다면, 홀로 사라지면 되는 겁니다.

생명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죽음도 편안히 아름답게 쉴 수 있도록 길이 열려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말입니다.



홀로 가느냐? 함께 가느냐? 선택은 자기 자신입니다.



편안하고, 사랑하고, 아름답게, 감사하며 삽시다.

그것이 홀로가든 함께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