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스스로의 힘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중심이 깨어나 즉. 있음과 없음으로 인한 인식의 탄생에 의한 자신의 중심이

펼쳐질때 스스로 빛을 드러낼 수가 있다.


즉 드러날때는 있음이나 없음을 자각함으로써 중심이 생기며

그때 있음은 환하게 빛나고 없음은 없게 되는데

그것은 100:100 이며 자신의 인식하에서 다시

빛을 중심으로 모으므로 빛과 어둠이 갈리며 50:50을 이루게 된다.

그 인식의 탄생전에는 모든 있음과 없음의 표현들이 짝을 이루어 결합되어

가능성이라 불리는 하나의 나아닌 나를 구성하며 존재하면서 사라진다.


존재는 항상 스스로 빛으로 드러났다. 누구나 어느 존재나 인간뿐아니라

대자연도 그 모든것도 똑같이 스스로 빛을 내었다.



그러나 베일의 장막이 계속 쳐지며,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좃같은 놈들때문에,

다른 존재의 기운을 빨아먹는 빛의 종족들이 생기더라.


모두 빛의 종족인데 이 미친것들은 지하나 살 궁리 하더라.

무슨 인간을 기운을 흡수하는 좃같은 것으로 보는 개새기들.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식물을 먹는다.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것은 그 사람 동물 식물 그 이름을 떠나 그 존재가

그렇게 내어주는 어둠역할을 하느냐 이다.

빛에서 어둠역할을 하는 존재는 빛을 빨려도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위하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후에가 타 종족간에서는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 종족들끼리 빛과 빛들을 빨아먹는 싸움은 못봐주겄다.

이 미친것들은 지 기운하나 키울려고 미친듯이 지 종족도 잡아먹더라.



내 그 놈들은 가장 기운이 커졌을때 그 중심핵을 폭파시킨다.

그 기운이 어느정도 커졌을때 그 핵을 폭파시켜 그 존재자체를 없앤다.




모든 존재는 빛으로 중심을 구성하고 태어났기에 있음에 빛이 붙게 되었다.

어느 존재나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한다.

즉 어둠역할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이 미친 빛의 존재들때문에 시작되었다.


더 장엄한 체험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을 용납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런 존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적용된다.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던가?

사랑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의지가 커짐으로써 사랑도 확장하는 것이다.

커지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의지가 더욱더 명확해 지는 것이다.


빛은 나누는 것이지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으로 부터 나오는 빛을 나누는 것이지 흡수하고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누고 흡수하면 그나마 괜찮지만, 흡수가 먼저라면 용서가 안된다.


지금으로부터 과거는 과거로 잊지만, 내가 육신이 죽어 그 후에 만약 죽일려고 마음먹는다면
지 하나 멋지게 좃같이 빛나보이겠다고 다른 존재의 기운과 피와 살을 빨아먹는 대가리 큰놈들이다.  

죽더라도 알고 죽어라.




다른 존재의 즉 식물 동물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었을때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감사함이다. 그것이면 된다. 감사함이다.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감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