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과 생명이 드러나 차원변화되어 둘 모두 드러난것이 편안한 빛이다.

편안한 빛을 구분하여 극으로 가면 암흑의 시린 빛과 생명의 따뜻한 빛으로 나뉘게 된다.


편안한 자신의 상태가 되더라도 그것이 제로포인트인데

그 제로포인트가 각 차원변화시 항상 존재하며 +와 + 의 제로 포인트 지점이 있꼬

- 와 - 의 제로 포인트 지점이 있는데 그 두 제로포인트의 중간의 제로포인트가

본래의 편안한 자리이다. 양의 제로포인트 지점 즉 ++ 와 +- 지점의 +0 지점과

-+와 --지점의 0- 지점이 존재하고  +0와 0- 의 중간이 편안하고 중심의 자리이다.




그 어둠의 빛에서 새롭게 차원변화시
생명의 빛이 변화되어 그 자체로 드러나고 또 빛기둥으로 존재하고

그 어둠의 빛에서 새롭게 차원변화시
암흑의 빛이 변화되어 그자체로 드러나고 또 자기의 빛으로 존재한다.


빛기둥은 자신의 중심 +0 에서 스스로 빛을 드러내어 자신의 선택한 상에게 작용하여

빨강이면 빨강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빨강을 제외한 모든 빛의 의식을

자신의 상을 제외한 모든 상대에게 빨강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의 빛은 자신의 중심 0- 에서 스스로 빛을 드러내어

상대에게 작용되게 되는데

상대가 빨강이라면 그 빨강만 반사시켜 그 상대의 빨강의 선택을 존중하여

자신의 무한한 색깔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중심은 스스로의 선택임으로 빛기둥으로 존재하며 상대에게 작용할때는

자기의 빛을 띄게 되며 그것이 마법이 된다.

그 자기의 빛은 암흑과도 연결되어졌는데 그 안에서 상대를 향한

무시, 증오 , 분노 등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빛은 원래 무한하여 자신의 처음 선택에서 무한대로 뻣어가나

빛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굴절로 인해 변화한다.


어떤 밝음이건 어둠이건 그것은 상에의한 자신의 선택이다.

중심에 빛을 모았으며 시작이 빛으로 시작되고 암흑이라면 암흑이 중심이 된다.


단지 의식적 부분이 그 상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고,

우리 우주는 빛이 중심으로 있다를 표현하기로 서로가 약속했기에 이렇게 존재하고있다.



어떤 최악의 상황이든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 너무도 깊은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그곳도 행복하다는 것. 암흑이라도 행복하다는 것.

인식을 전환하여 그것을 자신을 향하게 돌아보면 자신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존재하고 잇는것

이다. 항상 그 자리가 가장 편안한 자리라는것.



어떤 도움도 어떤 해결책도 스스로의 선택에 도움 그 뿐이지 강요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라도 최종 선택은 스스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



일이 생기게 된 이유는 본래 상을 갖기전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상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즉 상은 굳어있었는데 비유적으로 육신을 가지게 되면 보통 항상 잠을 계속 자게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상은 본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육신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 까닭은

자신의 몸을 활성화시키고 풀어주기 위한 것이다.



너무 진부해질 필요도 너무 가벼울 필요도 없다.



순간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를 항상 지켜보면 그 자체가 자신에게 큰 신뢰로 작용하게 된다.


단지 그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