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서 알려주신 수련 사이트를 가보니 초보 과정이 편하고 오히려 고급 과정이 빙의, 업장, 원래 약한 부분 등이 나타내는 명현현상등...으로 더 힘들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처음부터 고급과정이 진행되고(카르마의 정리, 빙의, 사념체 문제)
(사람들과의 충돌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치유....갈등...을 통해)

이 때의 능력은 초보적인 영안이 열려져 감. 소리의 기운을 느끼기 시작함.

나중에서야 몸적인 반응들(몸적인 명현현상, 나른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때서야 아..내가 무엇을 보고 있구나...라고 인지했습니다. 그것이 능력이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무슨 징조가 있었다는 것을 별 생각없이 넘어갔던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머리 아프면 머리 아프네... 몸 아프면 몸 아프네...라고 지나가는 것던 것이 제게는 안전했던 것 같습니다. 의미부여는 에너지 체험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인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오는 변화에 좀 여유있게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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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어느 분에게 제가 변해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수행 체계를 언급한 글입니다.

저는 불교식 참선을 해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명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이후로 명상법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더군요. 아무리 호흡을 조절하면서 명상 상태에 들어갈려고 해도 되지 않다가 호흡을 조절하지 않고도 그냥 편히 숨쉬면서 이미지를 몸에 그리면서 하는 명상은 아주 빠른 속도의 진척 효과를 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수행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은 의식을 좀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미세관념을 드러나게는 못합니다.
미세관념은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내면의 갈등 그리고 정서적 흔들림을 통해 드러나고 이것이 단순한 불안함 내지 충돌로 끝나느냐와 지혜로 한단계 성숙되어가느냐는 본인의 몫입니다.

이쪽 영성계 분들과 워낙 충돌이 많았고 현실적으로 감정이 뒤집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고 에고가 많다거나 정화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러는 와중에 이미 저는 떨구고 있었습니다.

혈자리가 열려진다...능력이 생긴다....에너지를 느낀다는 것은 그 한계가 있습니다.
삼매는 있지만 지혜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광신자들도 혈자리가 열려지고 증산 계열의 신도들도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종교 안의 에너지가 최고인 줄 압니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모습이며 지혜없는 삼매인 것입니다.

생각을 번뇌 망상이라 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번뇌 망상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번뇌의 모습을 한 진리일 수 있습니다. 인도의 명상법에는 이러한 생각의 속성을 이용하여 생각으로 생각을 추적하는 심리 명상법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12연기를 역으로 추적하는 역관이 있지요.
이러면서 지혜가 증장되며 삼매가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기존의 수행체계는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언급합니다. 인도의 쿤달리니 각성 수련에서는 환청, 환시, 공포감, 두려움, 성적욕망의 증폭, 육체의 이상반응 등등을 말합니다.
이런 부작용들은 삼매가 깊어지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몸이 깨끗해지고(단식이나 채식 등으로)
의식이 정화되면서(환청과 환시 및 영안이 열려지면서 귀신, 도깨비를 보게 됨)
갖가지 부작용을 겪으면서 의식이 깊어집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의식이 정화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서적인 혼란감이 왔고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고 생각이 폭주되고 대인관계가 어려웠습니다.
의식이 정화되는 과정과 육체의 정화과정(열이 남 혹은 두통, 나른함, 피곤함, 잠이 옴) 등등의 과정을 같이 겪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수행이라는 것....호흡조절, 기체조, 기순환, 채식, 명상, 금욕 등등을 하지 않았고 그냥 현실 생활에서 몸부림치고 힘들어했을 뿐인데..결과는 수행을 한 결과에 귀결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과정은 그다지 수행적이지 않은데..
결과가 수행의 결과로 귀결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고통, 가정 불화, 인간관계의 파탄 등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되거나 물질의 허망함, 인간적 집착의 허망함을 깨닫고 의식이 정화되는 과정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이미 경제적 고통이나 가정 불화등의 형태로 '에너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꼭 혈자리가 열리고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이 에너지 체험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광신도들이 혈자리를 열려서 에너지를 느끼지만 지혜가 없는 것처럼
쿤달리니 각성자들이 각종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면서 아주 힘든 과정을 겪는 것처럼
에너지 체험에는 지혜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존의 수행과정에서 말했던 과정을 동시에 겪습니다.
지혜가 증장되고 삼매가 동시에 깊어지며
삼매가 깊어지면서 지혜가 증장되는...그런 과정입니다.

지금 변해가는 분들은 수행체계에서는 설명되어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노력'을 한다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도 '노력'에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개의 모습을 한 개가 그 존재의 본질이 개일까요?
지금 보여지는 모습이 영성적이지 않으면, 그 '영성'이라는 우리의 관념으로 우리는 존재를 영성적이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노력'과 인간적 '품위'와 도덕관념에 부합되는 모습으로
존재의 에센스를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