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계를 들어와서 아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제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내적으로는 애증의 감정이 같이 있었습니다.

나 저 사람이 싫은데....나 저 사람이 좋아...라는 모순된 감정..

그것은 내가 나를 속이고 합리화하는 모습이었음을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기에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의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에고에 기반한 것이고 내가 정화해야 할 것이고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나의 시각의 문제이며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그 사람의 에고가 보인다는...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성적인 모습을 한 합리화였습니다. 나는 싫어하면 싫다고 분명히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 사람과 형으로서의 관계가 이어지든 말든..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볼 이유가 없다고 내면적인 정리가 끝났을 때
명상 중에 내 몸에서 해괴한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된 모양과 같은 벌레였습니다.

분명 그 분은 영성적인 자질이 있으시기에 제 모순점과 허위를 까발리고 부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아프고 그 와중에 저 스스로를 보기도 했지만....저를 계속 속여온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 연연하고 나의 외로움이 그 분에게 투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대로 그 분을 통해 저를 보았지만...
그 체험이 끝나자 그 분에 대한 인간적 애착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 분과의 체험이 정리되었습니다.

기대고자 하는 것..일체를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에 기대는 사람을 탐욕이 많다고 하지만

영성적 이야기나 메시지에 기대는 사람..
그리고 깨달음에 기대는 사람...
석가모니의 말씀에 기대는 사람은 왜 탐욕이 많다고 하지 않을까요?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언뜻보면 영성의 길을 가는 분들이 철저히 혼자서 가는 듯 보이지만 나름대로 의지처는 있습니다. 경전 그리고 사상 혹은 성인의 말씀...

저는 불교에 대한 것과
사람에 대한 것과
우정과 의리와 예의에 대한 것에 대한 집착이 많았기에 거기에 의존하지 않게 하는 체험이 많았습니다.

그 분과의 길다면 긴 2년이 넘는 시간의 교류에서 저는 깊이 깊이 의존했었고
정서적인 위안을 찾았으며 영성적인 조언을 구했습니다.
나의 모든 애착이 그 분에게 갔기에 그 분과의 에너지적 정리가 끝나자
내 안에 있던 집착의 벌레들이 기어 나왔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밝습니다.

지금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그것은 이유가 있으며 때가 되면 잘 될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제목을 '체험의 마침표'라 적은 것은 그 분과의 관계에서 저의 체험이 종료되었다는 의미에서 적었습니다. 전반적인 체험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겸손 같군요...^^; 잘난 척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요...하지만 글은 사실 맞습니다...전반적인 체험이 끝나진 않았지요..다른 체험이 진행 중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