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자신 안의 신성을 깨달은 붓다(마스터)들을 보면  보편적으로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첫번째 유형은 지구나 우주 어느 곳에 태어나서 창조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부정적인 경향을 가진 마스터들.


대표적인 존재가 <인생은 고(苦)이다>라고 말했던 석가모니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삶은 환영(maya)이라고 말한 마스터들이 과거에는 많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예수 사후에 3세기까지 예수의 가르침을 비교적 잘 보존해가던 영지주의(靈智主意)자들도 그런 경향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질은 바로 신의 본질과 같으며,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와 그를 도운 신들이 최고의 신이 아니며,이 세상을 창조한 신들이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반역자 또는 얼간이 신으로 비하했다 합니다.영지주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진정한 구원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오직 최고신의 신비를 깨달음으로써만 불완전한 현세를 해탈할 수 있다고 어떤 논문글을 설명한 글에서 보았습니다.

아마 예수도 그런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무묘앙 에오와 비슷한 말을 하는것 같네요.에오가 들었으면 춤이라도 추었을것 같습니다.^^)

(토바야스의 메시지에 보면 우리가 바로 우주의 은하와 별들을 창조한 천사들이라는데 그럼 우리가 반역자,얼간이?^^)


무묘앙 에오는 우주나 지구에서 벌어지는 창조를 쓸데없는 짓이며 창조병이라고 말했고,좀 더 중도에 가깝지만 창조가 과연 존재했는지를 질문자에게 말하는 라마나 마하리쉬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유형의 마스터들은 깨달음과 함께 해탈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무묘앙 에오의 정의에 의하면 해탈은 두번 다시 우주에 환생하지 않고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것 이라고 말한것 같습니다.




두번째 유형은 창조에 대해서 대단히 긍정적이고 좋은것으로 말하는 마스터들.


최근의 붓다들이나 최근의 채널링에 등장하는 지구상을 걸었던 마스터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많은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쇼 라즈니쉬 인것 같습니다.

오쇼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에 나오는 <조르바>라는  등장인물까지 인용해가며 <조르바 붓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습니다.

외면은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면서 동시에 내면은 붓다인 존재.

크림슨 서클의 토바야스가 말한 신인(神人 Divine Human)과 같은 뜻인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이들은 해탈보다는 깨달음(상승)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무묘앙 에오는 해탈과 대오(깨달음,광명)는 어느것이 더 우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깨달은 존재의 취향과 선택이라고 말한것 같습니다.

산이 더 좋은가 바다가 더 좋은가 라고 고민하는 개인의 취향처럼..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