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인생은 苦>라고 했지만, 그것은 최종적으로 삶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붓다를 비롯한 마스터들은 육체를 입고 있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세계이고 외관의 세계이며, 환상임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맏는 원인의 세계 즉 스피릿 혹은 의식의 세계에서 진정한 자신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붓다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진 외관의 세계만을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현상에 집착하여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통찰했습니다. 그래서 실상의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환상이니까,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 자체를 부정하라고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약 이 세계를 부정한다면 그 자신도 부정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신이 육체를 입고 온 목적도 부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후대의 수행자들이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이 세계는 외관으로 이뤄진 허상의 세계이고, 우리 자신은 스피릿(靈)의 세계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계에서 영성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허상이 실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허상의 세계에서 실상을 드러내고 구체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목적입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단지 이 세계를 부정하고 해탈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본심에는 단지 "이 혼란한 세계로부터 떠나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붓다와 마스터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확실히 가상의 세계에서 실상의 가르침(진리)으로 살아가려 해도 잘 되지 않고 괴롭고 힘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회피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갈 곳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이 세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오류는 뉴에이지의 "긍정의 길"에서도 벌어집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의 가르침, 상승, 神人에 열광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현실의 어려움과 괴로움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스터들은 분명히 "여러분은 神이다. 모든 것은 여러분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괴로움을 부정하거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 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영성계의 사람들은 "편안해지고 싶다. 빨리 상승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미 모든 것이 되어진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神性을 말하면서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한 것은 지키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그것은 아직 자신이 신임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神이라고 말하면서 타인을 부정합니다. 타인을 부정하는 것은 타인이 신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아직 자신이 신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며 상처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사랑과 神人, 마스터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른바 "神人, 창조에너지, 사랑, 허용" 등을 외치며 "긍정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실제로는 긍정이 아니라 부정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냉정한 현실을 "달콤한 이상"으로 회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회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현실의 창조주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에 그 해답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모든 진리탐구行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