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는 환상이다. "라는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계가 환상이라고 할 때, 그 진정한 의미는 이 세계는 만들어진 세계이고 외관의 세계이라는 것, 이것을 만든 원인의 세계 혹은 내면의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진정한 실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자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환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실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해탈이자 깨달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환상의 세계만이 실재이며 전부라고 생각하며 물질과 욕망을 추구하는 자신 주변의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에 태어난 것 자체가 "괴로움"이며 조용히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붓다 또한 그가 깨달음을 열어 대우주와 일체가 되었을 때, 처음에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 자신이 아무리 내가  깨달은 우주의 진리를 말한다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 붓다는 단식하면서 자신의 육신의 생명이 다하기를 기다려 실재계로 돌아가기를 바랬습니다.

그 때 실재계의 커다란 빛의 의식들이 붓다에게 나타나서 그를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비록 그가 깨달은 붓다일지라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타마,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대가 피할 곳은 없다. 무엇보다도 고타마, 당신은 실재계에서 우리와 약속하며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았는가? 그대는 그 약속을 잊어버렸는가? "

그때 붓다는 잠시라도 자신이 잘못된 마음을 먹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지상에 온 자신의 본래의 목적을 자신의 삶을 통해 완수해 나갑니다.

붓다는 이 세상을 떠나는 해탈이나 소멸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자체가 자신의 마음이 낳은 것이기에 그것을 떠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붓다는 허상에 집착하는 인간의 마음의 약함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괴로움을 통찰하였고,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길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하나하나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의 강함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현실을 피하거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붓다의 가르침 또한 후대로 와서 왜곡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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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세상으로 가상의 세계로 온 것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세계 자체가 괴로운 것일까요? 아니면 그러한 괴로움의 원인을 우리의 마음이 낳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자신이 살고 있고 경험하는 이세상) 자체는 하나의 경험의 재료일 뿐이며, 그 자체에 괴로움이나 기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러한 자신의 현실을 괴롭게 느끼고 있다면, 그 안에서 자신이 만들고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무엇인지를 찾아내면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여 현실을 보다 즐길 수 잇도록 만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현실 속에 담긴 자신의 마음을 보고, 그 안에 있는 어리석음과 미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그 참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현상을 낳는 그 뿌리, 근원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러한 현실이 존재하고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가를 근본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현실에 담긴 의미를 알지 않는 한 근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근원과 참으로 하나가 된 사람은 현실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깨닫기 때문에, 모든 것의 존재가치와 목적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자신의 거울이며, 자신의 마음이 모든 것을 낳고 있음을 머리가 아닌 체험으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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